"Salamanda"

2022년 01월 09일의 대화


B90엔 나무가 있고, 바다가 있고, 모래가 있고, 따뜻한 공기가 있다. 밤엔 별이 적당하고, 달은 꽤나 밝아서,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는 나뭇잎들 하나하나가 선명히 인식될 정도다. B90을 거닐면 가끔 투명한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손을 뻗어 내게 다가오는데, 그럴 때 난 그들의 경이로움에 잠깐 물러섰다가, 곧 조심스레 손바닥을 내밀어 인사하곤 했다. 대체로 평화롭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밝음이 늘 존재하는 곳이 B90이었다. 그리고 그런 B90도 가끔은 요동칠 때가 있었다. 그건 이 행성에 음악이 울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 음악은 비슷하게 들리면서도 늘 새로웠고, 어떨 때는 과거를 되새기게 만들고, 어떤 날은 미래를 꿈꾸게 만들고, 또 어느 때는 우주의 다른 공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음악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형태에 따라 B90은 요동쳤고, 음악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잠잠해졌는데, 잠잠해진 뒤의 B90을 걸으면, 어딘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당장은 또 바뀐 B90이 주는 감각이 좋아서, 변화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려는 마음은 금방 거두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은 가끔 들었다. B90이 이렇게,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꿔왔다면, 그리고 그 바뀌는 순간엔 언제나 음악이 울려 퍼졌다면, 그 음악을 연주하는 이를 만나 함께 B90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 연주를 잠시 멈추고, 자신들의 음악이 만든 B90을 함께 차분히 걸어 보자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 나는 B90의 가장 늙은 정령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정령은 내게 다른 건 모르나 그들의 이름이라고 전해져 오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난 검지에 진흙을 찍어 넓은 나뭇잎 위로 그 단어를 적었고, 진흙이 마르자 불에 태운 뒤,  나뭇잎이 타며 생긴 연기가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바다 너머를 바라봤다   



반갑다. 여기는 행성 B90이다. 당신들의 여행은 지금 이곳에 도착했다. 뭐 사실은 지금 을지로 3가의 한 카페에 앉아 떠들고 있을 뿐이지만, 당신들의 음악은 언제나 날 다른 공간으로 보내버리니까, 이번엔 내가 여기 B90으로 초대한 거다. 도착해 나와 얘기하는 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Manda: 저는 ‘장예진’이고, 'Salamanda'에서 ‘Manda'를 맡고 있고요, ’Yetsuby'이기도 하고요, 오늘 뭔가.. 다른 인터뷰와는 색다른 느낌이 있다. 훨씬 편하고, 같은 세월을 지나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B90이라는 행성의 컨셉도 마음에 든다. 재밌을 것 같다. 다른 매거진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우리의 부분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당신은요?

Sala: 안녕하세요? 저는 ‘성지민’이고요? 'Salamanda'의 'Sala'고.. 하하하 나도 다른 인터뷰와 다른 느낌일 것 같아 너무 기대가 되고, 아, ‘Umantherma'기도 하고요,. 맞네요.. 네.. 보통 인터뷰를 했을 때 질문지도 미리 받아보고 딱딱한 답변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이번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편할 것 같다

 

내가 둘의 그 기대에 잘 부응해보도록 하겠다

 

최근에 한국어 인터뷰보다 영어 인터뷰가 훨씬 더 많았다. 언니가 영어를 엄청나게 잘한다. 구어체 영어도 잘하지만, 격식이 있고, 공식적인 영어도 가능한 사람이라서, 그런 식으로만 우리가 답변했지, 이렇게 막..

아니, 근데 그게 나중에 읽어보니까 너무 딱딱하더라고

한국말로 우리들의 동년배와 이렇게 대화하는 게 즐겁다. 기대에 부응 꼭 안 해도, 우린 그냥 한국말로 하는 거 자체가 너무 좋다

 

B90은 BIRTH와 90년대의 숫자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당신들과 나는 90년대, 군부 정권의 막바지에 태어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은 시대에 초중학교를 다녔고, 그 사이 2002년 월드컵도 통과했다. 그러나 다시 약 10년간 정권은 바뀌었고, 저주받은 4월엔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얼마 안 가 그 두 명의 대통령은 모두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2022년 우리는 이제 막 삼십 대가 됐다. 우린 지금 어디쯤 왔을까. 시기를 나눈 기준은 신경 쓰지 말아 달라. 큰 시간의 덩어리를 구분 짓기 위해 가장 많은 수의 사람이 체감할 수 있는 기준을 끌어왔을 뿐이다

 

아포칼립스인 거 같다. 뚜렷한 주관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총체적으로,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너무 암울한 시기에서 다들 살아나가려고 아등바등 하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사회가 개인을 충분히 챙겨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 모르겠다. 어디쯤 와 있는지. 진짜로.. 모르겠다. 모르겠다.. 너무 최악이다


90년대는 뭐였을까. 난 90년대에 태어났지만, 정작 90년대엔 너무 어렸으니까. 사실 90년대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B90은 기억나지 않는 90년대를,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한 90년대를, 그리고 그 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당신들과 함께 끄집어 내보고 싶어 만든 행성이기도 하다. 뭐 큰 명분은 없다. 아마 서른이란 숫자가, 나이가, 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 거라 생각 된다

 

당신은 90년대의 우리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뚜렷하게 다 기억난다. 간단한 단어, 사물로 얘기해보자면 카세트테이프와 CD를 같이 들을 수 있었던 큰 라디오와 델몬트 유리병을 말하겠다. 그 유리병에 항상 보리차를, 엄청나게 시원하게, 냉장고에, 난 그게 너무 좋았다. 그 라벨, 엄마가 뽀독뽀독 씻잖아. 그거. 90년대는 내가 어릴 때니까, 엄마 아빠가 나 데리고 나들이도 많이 다녔는데, 그때의 기억 보다 정작 많이 남아 있는 건, 집에서 O.S.T CD나 클래식 CD 바꿔가면서 들은 거? 나는 내가 그 기계를 눌렀을 때 조작되는 게 너무 좋았나 봐. 음악이 나오고, 다음 노래 나오고, 내가 골라 듣고, 그게 너무 좋아서 맨날 그 앞에 있었다. 담요 같은 걸로 드레스 만들어서 ‘셀린 디옹(Celin Dion)’ 흉내 겁나 내고. 그 기억이 너무 강하다. 나는 그 두 가지 사물로 90년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음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카세트 플레이어가 너무 생각난다. 그때 살던 집 거실에 있었는데, 요즘 듣지도 않는 테이프로 노래 엄청 듣고, 오빠가 ‘서태지’ 되게 좋아해가지고, <난 알아요> 들어 있는 테이프가 있었는데, 한 부분이 늘어져서 그 부분이 나오면 늘어진 부분까지도 따라 부를 정도로 많이 불렀다. 그리고 그때는 동화책들도 카세트로 나오는 게 있었다. 종류별로 다 있었는데, <빨간 구두> 이런 건 무서워가지고 중간에 끄고.. 나중에 종소리 나온단 말이야, 교회 종소리. 무서운 상태로 막 듣고.. 그때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는데, 내가 카세트테이프 듣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밥해주고, 그런 생각이 많이 난다. 90년대에 일이 많았지 않나. IMF도 있었고, 컴퓨터도 슬슬 접했고, 그렇게 일이 많았는데도, 생각나는 건 카세트 플레이어와 카세트테이프인 것 같다.

 

90년대의 이미지들을 모아 콜라주를 만든다면 어떤 조각들을 넣고 싶나. 나부터 말해보자면 초등학교 운동장의 만국기, 문방구 오락기에 모여 있는 아이들, 복도식 아파트, 소나타Ⅱ 자동차, 그런 게 생각난다

 

나는 나가서 노는 사람이 아니었어가지고, 집에 있는 얼룩진 쇼파? 지금은 가구의 종류도 많아지고, 디자인이나 형태도 미니멀해졌잖아. 근데 그때는 르네상스 무늬나, 자수 들어간 쇼파, 그런 문양.. 지금 사람들의 기준엔 촌스러운 쇼파가 생각난다.. 아니면 ‘거북이알’ 아이스크림, 킥보드, 전동 킥보드 말고 바퀴에서 빛나는 그 킥보드.. 우리 엄마가 왜 안 사줬는지 모르겠네.. 도시의 풍경은 당신이 말한 것과 비슷하다

나도 사적인 게 훨씬 더 많이 생각난다. 집에 있었던 검은색 업라이트 피아노나, 레고, 바비인형, 미미, 이런 것들? 놀이터에 있었던 뺑뺑이, 유치원 앞에 있었던 엄청 큰 느티나무. 어릴 때는 다니는 곳이 한정적이니까, 집 안에서 놀고,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 만나거나, 가족들과만 노니까, 그 범위 안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이 생각난다.

 

90년대는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니까, 더욱 집에서의 기억이 많은 것 같다. 소리는 어떤 게 있을까. 나는 5시 정도 되면 SBS에서 해줬던 <슬램덩크>, <우리는 챔피언>, <쥬라기 월드컵> 같은 만화들의 노래, 또 저녁에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밖에서 재첩국 파는 아지매들의 소리가 아주 작고, 정확하게 들리곤 했다. 또 그땐 자전거에 버튼을 누르면 경고음으로 온갖 소리가 나왔는데, 그런 것도 생각난다.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다니며 만들어진 웅성거림도 생각나고

 

당신 얘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게, 우리 동네에 맨날 오는 두부 아저씨가 있었다. 저녁 6시만 되면 종을 와이퍼에 달아 놓고선 와가지고 종소리를 냈다. 그럼 주민들이 다 나갔다. 난 엄마가 시키면 나가서 두부를 사 왔는데, 사서 가져 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서리 떼먹고 그랬다. 너무 맛있었다. 진짜 맛있었다 그 아저씨 두부가. 두부 말고도 뻥튀기나 다른 것도 파셨는데, 그걸 맨날 듣고 자라서, 이사할 때 아쉬울 정도였다. ‘요즘도 오실까?’ 그런 생각 많이 한다

저희 동네는 찹쌀떡 아저씨랑.. 트럭 안에서 확성기 연결해가지고 ‘고장 난 세탁기, 냉장고 에에에~’ 하는.. 이 아저씨는 아직도 온다. 옛날에는 편의점도 없고, 동네 슈퍼나 할인마트였지 않나. 당시에는 슈퍼에서 생업을 하시면서, 생활도 하는 형태가 많았다. 문 열면 부엌이고, 거실이고, 그러다 보니 그 아저씨가 보던 TV 소리? 슈퍼 갔는데 그 아저씨의 프라이버시.. 가족의 소리가 다 들리는? 이런 것도 독특한 기억인 것 같다. 이런 게 90년대가 끝나니까, 구멍가게가 슬슬 없어졌다

 

그렇게 2000년대에 접어들고, 우리의 기억은 조금씩 선명해진다. 90년대가 수면 아래에서 우리를 형성했다면 2000년대는 대놓고 우리를 헤집어 놓았을 거다. 초등학교 시기는 어땠나. 난 축구 엄청 했다. 축구 하고, 자전거 타고, 집에 오면 ‘로알드 달’이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뭐 이런 작가들 책 읽고, 새까매질 때까지 엄청 놀았다. 노래는 ‘조성모’, ‘임창정’ 뭐 이런 거 엄청 듣고, 여자애들 ‘동방신기’ 좋아하는 거 보면서 괜히 질투하고 하하하

 

맞다, 그런 친구들 있었다. 나는 90년대 말에 미국에 있었고, 거기서 1학년을 마친 체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다시 1학년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입학한 학교의 같은 반에 유치원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많이 도와줬다. 미국에서 경험했던 거랑 너무 다르니까,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다음부턴 만화방 같은 데 많이 가고, 서점도 갔고, 그리고 ‘천리안’, ‘유니텔’ 이런 거 나오면서 인터넷하고 그랬지

그치. ‘버디버디’ 시작하고, ‘싸이월드’ 엄청 꾸미고, ‘네이버 마이홈’ 들어가서 홈페이지 겁나 만들고, 소스 긁어다가.. 그거 알죠? html..

아니, 요즘은 코딩 배우라고 해도 안 배우는데, 그때는 태그 이런 거 직접 찾아가지고 배경음악 넣고 막.. 난 대문도 만들었다

그 우클릭하면 ‘속성’ 한 다음에 그거 긁어가지고.. 맞아 맞아.. 포토샵에서 gif 만들고..

그때는 인터넷 천재였는데.. 왜 이 모양이 됐지

더 퇴보되는 거 같다.. 나는 진짜 별것 없다. 집이 마포구고, 달동네 비슷한 골목길인데,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서대문구에 있는..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주소 이전을 해서 좀 좋은 공립학교에 들어갔다. 거기 사는 애들은 아파트 살고.. 난 집에 다 거실이 없는 줄 알았다. 근데 애들 집에 가니까 거실이 있더라고. 우리 집은 거실이 없는데. 애들은 아파트에 살고, 놀이터도 있고, 학원도 다니고 하는데, 난 끝나면 집에 와서 맨날 만화 보고, 피아노치고, 동생 유치원 데리고 오고, 이게 내 일상이었다. 이거 말고 아무 기억이 없다. 어쨌든 나는 이런 기억이 대부분이라서, 만화, 피아노, 동생 끝

 

그때 봤던 만화엔 어떤 게 있나

 

만화 진짜 많이 봤다. 만화방이나 찜질방 가면 만화책 꽁짜로 읽을 수 있는 거 알지. 가서 ‘이토 준지’ 엄청 많이 봤다. <토미에> 이런 거. 그리고 <김전일>, <탐정학원 Q> 이런 추리물을 좋아했고, 또 <CLAMP> 사의 학원물을 엄청 좋아했다. <후르츠 바스켓>, <홍차왕자>, <크레용 신짱> 등등..

나의 경우엔 취향이라는 게 생긴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그때 힙합 음악을 처음 들었고, 음악을 파는 동시에 내 안으로도 파기 시작한 것 같은데, 당신들은 어떤가

아니 근데 진짜.. 너무.. 한 게 음악밖에 없다. 자라온 세월 동안.. 별다른 재밌는 게 아무것도 없네? 갑자기 회의감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멍청한가 보다

음악 잘하잖아요. 뭐 잘하는 게 없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나는 진짜 학원 다니고.. 학교에서 방황하고.. 뭐 사회에서 말하는 불량 학생이었단 소리는 아니고..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학원 번갈아 다니면서 하루하루 보냈는데, 음악 듣는 거 진짜 좋아했다. ‘Iriver' 사 들고 다녀가지고 친구들한테 노래 들려줬다. ’나 잘 건데 노래 골라줘‘ 그러면 MP3 DJ처럼 플레이리스트 만들어 주고 막.. 그런 거 말고는 별 재미가 없었던 거 같다

나는.. 중학교 때.. 일본 영화, 일본 드라마에 한참 빠지면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무지개 여신>으로 시작해가지고, <너는 Pet>도 보고, 그 일본 영화.. 이상한 영화 보는 거.. 고어 영화도 찾아봤었다. 중학교 때 ‘도쿄지헨’의 ‘시이나 링고’를 알게 됐는데, 그걸 기점으로 점점 얼터네이티브와 전자음악 쪽으로 빠졌다. 나중에 커서 이런 거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했고. ‘어떻게 만들지이??’ 혼자 생각했다. ‘서태지’도 진짜 많이 들었고, 클래식도 진짜 많이 들었다. 원래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레 고등학교 진로도 그렇게 된 거고

 

당신도 MP3가 있었나? 있었다면 역시 'Iriver'? 아니면 'Yepp'인가

 

원래 ‘Iriver' 썼었는데, 친구 중에 오빠가 있는 애가 'iPod'을 들고 온 거다. 'iPod'을 처음 만지고.. 허어..... 너무 간지나는 거다.. 그 휠이... 아빠한테 사달라고 쫄랐지.. 근데 안 사줬지.. 하지만 계속 쫄라서 3세대를 처음 가졌다. 그 정사각형. 난 아직도 그게 생각난다. 내 보물. 내 인생은 그 'iPod’을 만나고 변한 거 같다. 최고! 최고의 기계! 잡스는 최고다!

 

맞다. 그 휠을 돌릴 때 따다다다다다 돌아가는 소리 하며.. 딸깍딸깍 소리도.. 괜히 안 돌려도 되는데 돌리고 그랬다. 청소년기의 학교생활은 어땠나. 지금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만한 것들이 그때는 일상적이었다. 교사들의 폭력은 당연했고, 바리깡으로 머리 밀리고, 낡은 건물 속 좁은 교실에 책상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니까. 또 우리 학교엔 학년별로 일진들이 있었는데, 학교를 마치면 3학년은 교문 앞, 2학년은 스탠드, 1학년은 조회대 앞에서 모이는, 말한 적도 없는 약속 같은 게 있었다. 그게 다 폭력의 논리인 거지. 그렇게 폭력과 힘의 논리에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또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큰일이, 당시엔 작은 해프닝 정도로 느껴진 거 같기도 하다

 

너무 멍청했지. 정년퇴임이 2년? 3년? 정도 남은 국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늘 장난이라는 듯 ‘너희들은 노예근성이 있어서 맞아야 정신 차려’라는 말을 했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냥 그런 선생님 성대모사나 하며 웃고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것도 당연히 많았고.. 맞다. 폭력의 시대였다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내가 다닌 학교는 양반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친구들하고 얘기할 땐 우리도 심각했지만, 이 나이가 돼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별로 심한 일이 없었다. ‘저 언니가 물갈이했대’ 이런 소문이 돌아도, 실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담배도 교내에서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심하게 패고, 싸우고 하는 일도 없었고. 다른 학교에 다닌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심각한 것도 아니었구나 싶어진다

내가 나온 중학교는 실내에서 장갑이랑 목도리를 하면 안 되는 교칙이 있었다. 근데 내가 급식실에 목도리를 하고 갔다고, 전교생 다 보는 앞에서 싸대기 맞고 날아갔다. 그 선생이 내 목도리를 동여매 목을 조르며 때리기도 했고.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당시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진 못했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사진 찍어서 올리거나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엔 은연중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인간이라는 인식 전에 학생이라는 틀 안으로 매몰된 거다. 인격체가 아니라 어른들이 말하는 미성숙한 학생으로 우리 자신을 규정했던 거지. 그러다 보니 그냥 맞았구나.. 하게 된 거고

맞다. 학교를 빨리 나가고 말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그래도 약자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 많이 유연해졌는데, 그때는 모두가 강자가 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약자보단 강자를 이해하는 것에 쉽게 생각이 뻗었고. 내가 맞는데, 내 친구가 맞는데, 맞는 나나 친구가 아니라 저 선생님이 왜 우리를 때렸는지에 대해 헤아려보고 있었으니까.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학생이 아닌, 학생보다는 더 강한 사회적 위치에 있고 싶다는 욕망이 투여된 바람인 거 같고

 

그 사람 이름은 ‘박세용’이었다. 박, 세, 용. 세가 어 이였고. 연세대학교 발레 전공이라고 난 알고 있다. 서울여자중학교의 체육 선생님이었고, 너무 끔찍한 기억이다

 

나도 중학교 때 학교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잘린 적이 있는데, 특별히 규정을 위반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선생이 심심해서 바리깡 켜고 돌아다니다가 자른 거였다. 그 귓바퀴 옆에서 천천히 진동하던 바리깡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소리는 미용실에 늘 듣던 바리깡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그 진동 소리가 바짝 가까워졌을 때, 내 눈앞으로 머리카락이 날렸다

 

이런 기억은 못 잊는다. 이런 경험들은

 


그 이후 우린 성인이 됐고, 대학에 진학하고, 알바하고, 취업도 하고, 음악도 발표하고, 공연도 하면서 10년이 지났다. 20대는 비교적 최근이니 간단히만 훑어보자. 지난 10년은 어땠나. 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가진 남루한 것들 사이에서 불안해하고, 고민하고, 떠돌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다행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움직였기에, 건강한 상태로 30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란 건, 내가 나를 인정하는 아주 작은 단위부터, 큰 인정까지 모두 포함한다

 

나는 20대가 아주 프레셔스하다. 지금도 내가 완성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20대를 잘 마무리한.. 약간.. 약간... 성숙하고 있는.. 숙성이 잘 된 아보카도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그래서 30대 중후반에 진짜 맛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던 10대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 채 무지하게 보냈던 시기였다면, 20대는, 그 10년을 보내면서 내가 나은 사람이 된 거 같다. 몰랐던 세계도 알게 되고,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고, 나랑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안 불쾌해할지도. 그렇게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10년을 보냈다. 성숙해져 가는 방법을 배운 시기였기에, 소중하다. 고마운 10년이다

나도 비슷한 거 같다. 다들 그렇겠지만, 정말 성숙해가는 과정이었다. 10대 때는 내가 형성돼가는 과정에 있고, 주변에 너무 눈이 많이 가서, 나를 돌아볼 시간을 못 가지지 않나. 남들이 보는 나를 보지, 내가 보는 나를 보는 게 아니니까. 근데 20대는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도 다양해졌고. 영문학을 공부할 때 특히 좋았던 건 소설과 희곡인데, 인물들을 분석하는 게 좋았다. 어떤 수업에선 한 학기 내내 수업 자료로 썼던 작품들의 모든 주인공이 죽기도 했다. 그 인물에겐 미안하지만, 그 과정이 재밌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말 좋았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의 시기는 그때 생각하고 말한 것들을 실전에 적용해보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성장은 잘 모르겠지만..

아직 성장 중이라서 저희 둘 다.. 호호호

성장기가 멈추질 않네요..

아직 딱딱하고 초록색인 아보카도?

 

(무시하고..)그리고 서른이 됐다. 서른이라는 숫자가, 시기가 의미하는 게 좀 있었나. 난 늘 서른이 되면 멋있어져 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조금은 흡사한 모습인 거 같아 ‘뭐 나쁘지 않네’ 정도의 생각을 한다. 1월 1일이 되는 딱 그때, 그래도 세레모니를 하고 싶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었는데, 그때 옆에, 오랜 연애를 끝낸 친구가 있어 그런지 만감이 교차하긴 하더라

 

나는 인스타에도 적었는데, 20대 때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친 편이었다. 나 자신을 옥죄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를 많이 했고. 그래서 힘들지 않아도 될 부분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하지만 30대 때부터는 그런 내 모습을 놓아주고, 좀 떵떵거리며 살려고 한다. 20대 때 내가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고, ‘난 이렇게 해도 돼!’ 하는 마음으로. 정말 그렇게 해도 되거든. 이렇게 먹은 마음을 잘 지키면서 30대를 보내고 싶다

이게 너무 좋다. 사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은 거 말고는. 그런데도 뭔가 엄청 바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서른 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던 어느 날, 택시에서 <서른 즈음에>가 나온 적이 있었다. 혼자 와.. 하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했다. 근데 그 노래를 들어도, 내가 변한 건, 사실 아무것도 없더라. 하지만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거 자체가 너무 좋다. 그걸 계기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귀엽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근데, 저는, 진짜, 써리매직이라고 생각해요. 써티매직이요. <해리포터> 보면 그 ‘슬러그혼’이 물약 주잖아. ‘혼혈 왕자’ 책 보고, 잘 만들어가지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약을 주는데, 그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근데 ‘론’이 그거 먹고 막... 삼십 살이 마치 그 약을 마신 느낌이다. 근데 언니 말 멋있다. 변한 건 없는데, 그냥 그렇게 됐다는 게

나도 그런 건 있었다. 주변에 음악하는 언니, 오빠 중에 삼십 대가 돼 한자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용하게 한 자리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 때가 되면 저렇게 돼야지 하곤 했다. 요란하지 않은데, 자기 일을 너무 잘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늘 멋있다고 생각했다

 

길게 돌아왔는데, 드디어 ‘Salamanda’의 음악 얘기를 해보자. 나는 음악을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니, 전문 용어를 쓴다거나, 분석하거나 그런 이야기는 못 한다. 순전히 내 감상 위주로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 우선 ‘Salamanda’의 음악을 들으면 난 지구를 떠나게 된다. 지구를 떠나서 어떤 행성에 도착하는데, 당신들 노래에 따라 그 행성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게 상상된다. ‘Salamanda’의 음악을 이미지나 공간으로 옮긴다면, 어떤 세계를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가정이 아니라, 이미 우리 세계가 있다. 만들고 있고

 

그것에 대해 말해 달라

 

그건 비밀이다. 이건 30대가 끝나고 나면 공개될 예정이다. 진짜 큰 그림이라 말할 수 없다. 여기까지 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상상한 걸 말해보겠다. 내가 느낀 ‘Salamanda’의 세계는, 우선 넓은 숲이 있고, 한 편엔 바다가 있고, 그 속에 정령들이 살고 있다. 사람 형태의 정령들이 돌아다니고, 그 아래 땅과 풀, 나무 기둥을 타고 벌레가 천천히 기어 다닌다. 그 세계는 빛과 상관없이 어둡지 않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까닭이, 당신들의 음악 안에 숨어 있는 걸까

 

우리는 우선 듣는 사람이, 열린 결말처럼, 개개인의 상상에 맡기는 편이다. 지금 말한 키워드들은 우리가 염두에 둔 키워드이거나, 평소에 좋아하는 키워드들인 건 맞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꼭 그걸 하려고 안 해도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지 않나. 올해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만든 노래를 쭉 들어봤는데, 어쩔 수 없이 묻어나오는 것들이 있다. 또 우리 음악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아시안’의 성질이 있는데, 난 그것도 좋아졌다. 당신이 잘 들은 거 같아 뿌듯하다

영감이라는 걸 받는 게 결국은 재료로 쓰기 위한 거니까, 평소에 듣고, 보고하는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걸 풀어내게 되니까 묻어나온 것 같다. 그런 걸 잘 캐치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 우리가 소리 전달을 잘했나 보다. 사람들이 전자음악이라고 하면 진입장벽을 많이 느끼거나, EDM만 생각하는데, 그냥 느끼면서 들으면 좋겠다. 전시회나 미술관에 갔을 때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건 아니듯이, 분석하고 해석하는 건 아니듯이, 이해하지 못한 것에 좌절할 필요도 없이, 그냥 각자 느낀 것들을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냥 느낀 걸 얘기해줘서 고맙다. 사람들도 그렇게 들었으면 좋겠다



나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런 감상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느낀 건 분명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내 입을 막았으니까. 이것 역시도 우리가 겪은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를 읽는 교육의 대부분은 서사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까. 그 경우에, 서사가 있다는 건 결말이 있다는 얘기인데. 늘 그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교육만 받은 거다. 내가 글을 꽤 읽었지만, 그럼에도 시는 늘 어려운 것도 그래서다. 그냥 느껴야 하는데, 그걸 하나하나 뜯어서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니, 당연히 불가능하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렇게 들으면 조금은 쉽게 ‘Salamanda’의 음악에 다가갈 수 있을 거다 하는 게 있을까

 

어렵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럼 뭐가 쉬운 거냐고 되묻고 싶어진다. 무슨 악기가, 무슨 기술이, 무슨 필터가 쓰였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음악도 그냥 지금 들리는 소음과 다르지 않은 거다. 사람들은 항상 분석하려고 한다. 분석이 되냐고. 우리도 분석하면서 만드는 게 아닌데. 틀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Salamanda 음악 중에 입문자용이 뭐예요?’ 하고 물으면 말해줄 수 있는 게 있지만, 그걸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우리가 제목도 영화처럼 재밌게 지으려고 하는 편인데, 끌리는 제목의 곡을 틀어놓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면 그냥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던, 수학 문제를 풀던, 무엇이든 해도 좋다

아 근데 운동할 때 듣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텐션 떨어진다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유성원’ 감독의 <WE ARE THE SAME>과 <Sound of X> 영상을 보면서 나도 ‘Salamanda’ 속으로 보다 사뿐하게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음악만으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신들의 음악은 환상의 공간에서 현실로 보내는 주파수 같은데, 그 사이에서 영상이 송수신기 역할을 해주면,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쉽게 주파수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나는 영상보단, 공연을 보러 오라고 하고 싶다. 영상도 물론 좋다. 경우에 따라 음악이 영상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영상이 음악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음악에 정말 들어와 보고 싶다면, 공연장에 오면 음악이 지금 이 카페 안에 있는 소음처럼 되니까, 우리 음악을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영상을 포함한 다른 작업 형태와의 콜라보는 늘 환영이다

나는 영상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엔 사람들이 듣는 것에만 만족을 못 하고 볼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니까. 영상이 있는 곡들이 관심을 많이 끄는 것도 사실이고. 하다 못 해 라이브 셋 영상이 있으면 많이 찾는다. 도움이 많이 된다. 아니면 그냥 배경음처럼 틀어놔도 좋다. 그렇게 했을 때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내가 또 추천하고 싶은 건, 책을 읽을 때 듣는 거다.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를 읽을 때 당신들 노래를 엄청 들었다. 종이에 적힌 평면의 텍스트가 음악을 타고 3차원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뭐.. 다음으로 넘어가자. 세상에서 채집한 소리와 당신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소리, 그리고 당신들의 목소리까지가 어우러지며 ‘Salamanda’의 음악은 완성된다. 그래서 ‘Salamanda’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이 영화가 될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요즘엔 어떤 소리가 음악이 되나

 

나는 최근에.. 최근이 아니고.. 내가 원래 클래식 전공을 했지 않나. 그래서 어쿠스틱 악기들의 소리와 되게 친했다. 왜냐하면 맨날 들으니까. 근데 전자음악을 만들게 되고부터 나서는 실제 악기의 소리를 많이 못 들었다. 대학교 때는 ‘예술의 전당’ 자주 가서 공연 보고 하던 사람이 지금은 연주회도 못 가고 하니까, 악기 소리가 너무 그립더라.그래서 진짜 악기 소리를 넣고 싶어서 연구 중이다. 나중이 되더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 우리가 진짜 상황들이 뒷받침이 될 때, 오케스트라 불러서, 제대로. 욕심이 많은 부분이라 당장의 계획은 아니다. 개멋있겠다

나도 당장 어제 어쿠스틱 악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만드는 거랑은 너무 안 어울리니까, 아예 변형을 심하게 해서 쓰거나, 나중에 꼭 해보려고 생각 중이다. 그리고 직접 배워 보고 싶기도 했다. 현악기도 배워보고 싶고

나는 오선지에다가 스케치를 많이 하는데, 전자음악도 오선지에 안 그리면.. 이건 병이다. 뭐라도 그렇게 해놔야 뭔가 한 거 같다. 근데 지금 내가 쓴 오선지를 보면 글자가 너무 많아서, 옛날에는 음표가 훨씬 더 많았는데, 구조에 대한 얘기나, 마테리얼만 적힌 게 많아서, 어느 순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 여기까지 하겠다

 



당신들의 음악은 환상적이고, 나를 저 먼 곳으로 보내버리지만, 그 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비논리적인 것들을 재료로 시도하는 굉장한 이성과 논리의 작업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드는 음악이 어떤 지점으로 가고 있다는 상상과 동시에 꼭 붙잡고 있어야 할 이성이 공존하는 작업 과정일 텐데, 가끔 혼란스럽진 않나

 

나는 이성적인 편이다. 직관적이고 충동적으로 음악을 만들긴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니까, 음악을 진행하는 과정도 똑같은 거다. 중심이 되는 하나의 소스를 가져와서 내가 생각한 세계로 발전 시켜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시스템을 만드는 거다. 그 시스템 안엔 나름의 규칙이 있고.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깝게 가자고 설득하는 거니까, 논리적인 편이다. 작업의 모습은

난 이성적이지만, 논리적이진 않다. 엄청 체계적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못한다. 하다가도 오리지널 아이디어 자체를 갈아엎는 경우도 많고. 그 판단들은 이성적으로 이루어진다. 다 만들어놓은 소스들 갈아엎고, 밀고, 잔인하고..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작업 과정이다

곡 만들 때 정말 조물주 되는 느낌이 있다. 다 만들고! 딜리트!

 

'Salamanda'가 계속 지금 행성에 머무를지, 전혀 다른 행성으로 이사할지 나는 모르겠다. 요즘 관심 가는 것들에 대한 얘기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최근에 영화를 많이 봤다. 12월까지 미치도록 바빴다가, 1월엔 작업만 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앉아서 8시간 10시간 작업하면 허리가 너무 아픈데, 그때 누워서 영화를 본다. 너무 재밌다. 디즈니 플러스? 미쳤어. 그리고 요즘 공예에 관심이 많다. 다음 주에 실크스크린 배우러 간다. 그 다음 주엔 유리 공방을 뒤져보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를 해보고 싶어서. 앤 유? 운전면허 얘기 한번 꼭 해라

면허는 너무 현실적인 부분이다. 면허는... 내 인생의 안 좋은 기억만.. 나는 원래 밴드 공연 같은 걸 못해도 2년에 한 번은 보러 갔던 사람이다. 매년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는 매년 갔었고. 근데 최근 2년 동안 전혀 간 게 없더라. 일상의 한 부분이 없어진 거지. 지금은 군중들 사이에 껴 있는 느낌만으로 너무 싫으니까. 영감 받을 게 많이 떨어졌다. 옛날에는 그런데 가면 음악적인 것들로 많이 채워져서 오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적다. 그래서 넷플릭스로 영화 많이 보고, 음악 많이 찾아 듣고, 듣던 음악도 다시 여러 번 듣는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루트를 많이 늘리려고 한다. 발레도 배워 보고 싶다. 발레 하면서 자세 교정하고, 근육을 사용하는 게 기분 좋을 것 같다

 

B90을 만들어 당신들의 시간을 간략히 정리해본 건, 당신들의 음악 역시 핍진한 현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일 텐데, 그 현실이 어땠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들이 조심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대답해줘서 고맙다. 요즘 가장 기쁜 것, 슬픈 것, 원하는 것 하나씩만 말해달라. 기쁜 거부터

 

Salamanda

 

예진이도?

 

(끄덕)

 

그럼 슬프 게 하는 건? Salamanda?

 

맞네..

 

원하는 건..? 

 

(둘이 같이) Salamanda 



B90은 이제 폭파되고, 그 잔해들을 모아 또 새로운 행성을 만들어야 할 때다. B90을 떠나며 인사 한마디 해 달라

 

꼭.. 꼭.. 폭파 시켜야 해? 우리는 이런 거 이입을 너무 잘해서.. 폭파 안 시키는 게 좋을 거야. 바로 가루가 되는 걸 상상한다고. B90은 남겨두되, 우리가 떠나는 느낌으로 해도 될까? 왜냐면 다른 사람이 B90에 올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이것만 넣어줘. (버튼을 누르는 손동작) 내가 없애는 거야

그냥 나는.. 너 따라가겠다



사진 제공 I Salam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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