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8일의 대화
대화를 올리기 전엔 언제나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대화를 나눈 서로의 말투와 뉘앙스를 잘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두 번째로는 글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니 문장이 너무 무너져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듬는다. 그 후, 마지막 순서인 교정을 거치면 대화는 하나의 기록으로 완성되는데, ‘양승우’와의 이번 대화를 다듬는 건 유독 고민이 많이 됐다. 이 사람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있는 것 같고, 찌든 거리와 낡은 거리에서 사랑을 얘기하는 것 같고, 현재에 서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지켜보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어떻게 옮겨야 가장 정확할지에 대한 답이 잘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했던 대화를 글자로 옮긴 뒤, 몇 번을 반복해 읽으며 고민했지만, 결국 그냥 그대로 쓰고, 그대로 보는 게 가장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 대화를 읽은 뒤 ‘양승우’의 사진을 보게 될 당신에게, 그의 사진도 그저 그대로 보고, 그대로 느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전하고 싶다. 그의 사진은 분명 자극적일 수 있고, 위험해 보일 수 있고, 어두워 보일 수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사진을 반복해 찾는 이 마음이 단순한 자극이나 선정적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욕망인 것은 아닌지 되물었던 때도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사진을 지켜본 지금은, 그건 그저 표면일 뿐이라고, 현상의 겉면일 뿐이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게 됐다. 믿음이라고 쓴 건, 당신이 다른 마음을 느낀다 해도 그건 당신의 마음이니 존중하고 싶다는 뜻에서다. 당신의 그 마음조차, 명백해 보이는 결과나 현상이나 표면이 아닌,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일 테니까. ‘양승우’를 나는 그렇게 소개하려 한다
며칠이 지나면 새해가 밝는다. 올해를 뒤돌아보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무슨 마음이 자리 잡나
올해.. 책을 두 권 내고, 전시를 네 번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한 거 같다. 너무 빨리 왔다 작년은. 시간이 너무 빨랐다. 전시를 네 번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보통 전시장에 손님이 많이 없는데, 그래도 내 전시는 많이 온 편이다. 코로나 전에는 내가 전시를 하면 손님들이 그 뭐라고 하지.. 바이니루 부쿠로? 그.. 비닐.. 비닐 봉투에 캔맥주를 다 담아 오신다. 내가 술 좋아하는 거 아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반절 정도밖에 안 들고 왔더라. 아쉽고 그렇다. 술 안 들고 오면 다 보내 버린다, 하하하
술은 어떤 걸 좋아하나
도수 약한 거. 맥주나 그런 거
특별히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가 있나
맥주 맛도 잘 모른다. 아무 메-까(메이커)나 상관없다. 양주하고 와인 같은 건 안 먹는다
좋다. 계절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 지금은 신주쿠 쪽에 살고 있나? 이케부쿠로 쪽인가
이케부쿠로에서 좀 더 변두리 쪽으로 나왔다
나는 일본에 두 번 가봤다. 처음은 열 살 때,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의 경유지가 도쿄였고, 나리타공항 근처 숙소에 잠깐 묵기만 했다. 두 번째는 2018년, 도쿄와 가마쿠라로 혼자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20일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그 두 번이 모두 여름이어서, 뜨겁고 습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일본의 그 더위는 생생하다. 하지만 겨울의 일본에 대한 기억은 없다. 도쿄의 겨울은 어떤가
음.. 도쿄 겨울.. 우선 눈이 귀하고, 눈 오면 뉴스에 나올 정도니까. 눈은 거의 안 온다. 요즘은 춥긴 추운데, 옛날에 한국 추운 거 생각하면 여긴 추운 것도 아니다. 눈 오면 여긴 교통이, 버스가 마비된다. 저기 윗 지방 가면 아주 잘 돼 있는데, 눈이 많이 와도 다 하는데, 도쿄는 눈에 약한 거 같다
눈이 오면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줄어들겠다
없다. 지금 신주쿠 광장에 가면, 겨울 되면, 노숙자들이 다 지하실로,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 광장은 썰렁하니 사람이 없다. ‘사람 다 똑같겠지, 추우니까 다 들어갔겠지’ 한다
대부분의 당신 사진엔 사람이 꼭 등장하지 않나.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겨울엔 어쩔 수 없이, 사람 없는, 비어있는 풍경을 찍는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찍긴 찍는데, 찍긴 찍는데.. 원래 사람 냄새가 좋아서, 사람 냄새를 찍으려고 하니까, 피사체가 없는 것 같다 겨울에는. 그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찍으려고 한다
당신은 일본에서 자라 일본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처럼 비칠 때가 많지만, 사실 아직은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다. 30살 무렵까진 한국에 있었으니까. 일본에 산 지는 아직 30년이 좀 안 됐고. 일본에서 한국의 겨울을 생각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 고향인 정읍의 겨울도 좋고
한 5년 정도? 4년 정도? 더 길다. 근데 그건 한국, 자기들이 나를 안 불러주니까 안 가지. 여기는 그냥 내가 ‘전시하고 싶다,’, ‘이 책 내고 싶다,’ 하고 완성된 사진을 가지고 가면 그냥 다 내주고, 해주고, 하는데, 한국은 다 내 돈으로 해야 한다.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제작비 같은 거 주는 콘테스트, 어워드 같은 걸 냈는데, 내면 내는 대로 다 떨어진다. 흠.. 겨울, 고향 정읍은 생각 많이 나지. 고향인데. 어린 시절은 아무 생각 없이 흥미 위주로 가지 않나. 단순하게, 재밌으면 막 하고 그러는데, 여기서 힘들고, 뭐할 때 보면 그때 생각이 제일 난다. 겨울엔.. 그 비료 푸대 있지 않나. 그걸로 썰매 타고 산에서 막 내려오고, 대나무 쪼개서 스키 타고 논에서, 타다가 깨져가지고 막 빠지고 얼음 속으로. 그런 생각 나지
난 도시에서 자라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 봤던 만화책이나 영화에서 본 장면을 통해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대화를 준비하며 당신의 책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를 읽었다. 정읍에서의 시절이 꽤 자세히 적혀 있었고, 그건 과거 다른 매체에서 진행했던, 일본에서의 이야기만 주로 담긴 인터뷰에선 보기 힘들었던 내용이라 더욱더 반갑게 읽었다. 당신의 정읍을 소개해줄 수 있겠나
객지에서 정읍 놈들 만나면 맨 사기꾼 놈들밖에 없고, 그래서 정읍 사람들은 별로 만나기 싫다. 옛날 친구들 외에는. 그래도 추억은 있으니까, 정읍 가면 그냥 좋다. 맥없이 편안하다. 지금도 정읍 시내에서 달리기하면 내가 다 도망칠 자신 있다. 그 정도로 돌아다녔고 정읍을. 선배들한테 맞고, 후배들 때리고 그런 기억밖에 없다. 충렬사 생각은 난다. 전봉준 기념탑이랑, 황토현 전적지라고 거기가 동네 바로 옆에 있는데, 그쪽 생각이 바로 난다. 충렬사에서 뭐 다른 학교 애들하고 패싸움하고 그랬다
2022년에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가보겠다. 당신은 60년대에 태어났고, 70년대와 80년대를 정읍에서 보냈다. 그 당시 전라도는 군부 정권의 악마 같은 횡포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지역이지 않나. 차마 말하기 힘든 역사의 참상도 많고. 정읍에 살았을 때,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경험이 있나
많이 있었지. 광주 운동 때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갈 정도였으니까. 바로 옆인데, 아무도 몰랐다. 그냥 ‘뭐 또 훈련이 있는갑다,’ 그 정도로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광주 운동이었던 거지.. 힘들지, 아는 형도 그쪽에 있었고, 죽진 않았지만 다쳤고. 그때는 서비스.. 그 가스.. 주유소? 주유소에서 다른 도시 남바 달고 오면 기름도 안 넣어주고 그랬다. 하도 많이 당해서
그 기억이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까
작업? 사람들은 나를 뭐 대단한 사진가라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안 그렇다. 그냥.. 그냥 좀 이상한 놈 그 정도밖에 안 된다. 내가 특별한 예술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나를 위해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까 나를 위해서 찍는 거지
알겠다. 전라도는 오래도록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했던 지역이니, 정읍에서 자란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궁금해지더라. 일본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아내와 삼겹살을 종종 구워 먹는다는 얘기를 책에서 봤다.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끔 생각나는 것도 있나
맛있지. 지금 먹고 싶은 건, 철은 아닌데, 논에서 우렁 잡아다가 무쳐서 먹고, 청국장 집에서 만들어서 먹고. 그다음에 오이나, 가지, 생으로 먹는
우렁은 어디에 무쳐 먹는 건가? 된장?
초장이지 초장. 삶아서 그 알만 빼갖고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있다.
일본에선 우렁을 구하기 힘든가?
그런 식으로 하는 데는 없다. 한국 식당가면 있긴 있는데, 우렁 말고 다른 거 있긴 있는데, 한국 식당은 너무 비싸서, 평소에 잘 안 간다
결혼식도 정읍에서 했고, 몇 년 전 정읍에서 전시도 했다. 정읍에서 전시했을 땐 다른 전시와는 마음이 조금 달랐을까.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를 보면 정읍은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몇 죽음이 발생했던 장소이지 않나. 그중 하나의 죽음에서 당신의 사진이 시작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사진을 가지고 다시 정읍을 찾았을 때, 물론 건방진 짐작이겠지만,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에서는 그 전에 두 번인가 했었는데, 쪼그만한 갤러리에서 했었는데, 그럴 때, 내가 사진하는 줄 몰랐던 정읍 친구들이 와서 깜짝 놀래고 그랬다. ‘너 진짜로 사진 허냐?’ 그러면서. 호남 고속도로에서 정읍 인터체인지로 이렇게 내리면은 그 무식한 옛날 친구들이 천막에다가 글씨 쓰고, 붙이는 거 있지? 그런 거 해놓고 막.. 내가 챙피해서 혼났네. 뭐 전시하면서 특별한 마음이 있지는 않았고
좋다. 매체가 당신의 사진을 포장할 땐 ‘날 것의 사진’, ‘거리의 사진’, ‘위험한 사진’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에겐 내가 본 사진 그 어느 것보다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찍은 어릴 적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볼 때와 비슷한 마음을 늘 느꼈다고 하면 좀 설명이 되려나. 그래서 난 앞서 말한 저런 포장들이 싫었고,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맞다 그거, 사진 잘 보시네. 가소롭다까진 생각 안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적당히.. 그냥.. 글지. 제대로 말했다. 말투가 조금 이렇고, 점잔하지 않고, 피사체가 막 그런 사진이라 다들 무섭고 그런 사람인 줄 아는데, 만나면 전혀 안 그렇거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보고 싶은 모양이지. 내 사진은 막 이런 걸 전하고 싶다 그런 건 별로 없고, 사진으로 하는 수필이라 해야 하나? 단편 영화라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서 내고, 다음, 다음, 다음, 계속 가는 거다. 그걸 뭐 날 것이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네.. 형식은 다큐멘타리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다른 거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신과 당신 사진을 소개하는 사람들인데, 포장을 그렇게 해버리면 소개받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훨씬 더 많은 감정이 있는 사진인데, 저런 설명을 거쳐 당신의 사진을 마주하게 됐을 땐 그저 자극적인 사진으로만 보이게 될까 봐 굉장히 아쉬웠다. 화가 나기도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여기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덜한 편이다. 알아주는 사람도, 당신처럼 그런 감상을 말해주는 사람도 꽤 있는데, 한국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당신의 사진을 보고 다정하다 느낀 건,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만큼 당신이 다정한 마음을 품은 주변의 사람, 거리를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당신의 사진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때도 있었다. 주변의 사람과 거리를 다정하게 찍었지만, 결국엔 사진을 찍고 있는 당신이 그곳에선 외부인이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거다. 물론 이것은 국적에 따라 간단히 규정해버리려는 나의 성급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쓴 책이나, 다른 인터뷰의 답변에서도, 위와 같은 마음을 간혹 느낀 적이 있었기에 물어보려 한다. 당신은, 당신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거리의 다정한 친구인가, 아니면 친한 손님인가
노력은 한다. 친해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친구가 될 순 없다. 솔직히. 이쪽, 저쪽 확실히 나눠져 있고. 그냥 같은, 같은.. 동네 사람 정도?는 간 거 같다. 친구라고까진 아직 안 간 거 같다.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친구들 찍은 사진이라 그건 친군데, 이쪽에서 찍은 건 아직 친구까진 못 간 거 같다. 그냥 동네 사람, 동네 아저씨 정도밖에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일까
아아아, 너무 친해져도 안 된다. 딱 좋은 것 같다, 지금이. 너무 친하게 되면 또, 사적인 저기가 되고, 어느 정도 거리를 항상 유지하면서 찍어야 될 것 같아서, 너무 친해지면 못 찍을 것 같다
거리 얘기를 하니 궁금해진다. <청춘길일>이나 <양승우 마오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같은 사진집은 거리가 거의 없는 사진에 가깝지 않나. 굳이 비교하자면 언급한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은 당신의 초기 사진들이고, 그러니까 최근으로 넘어오면서 거리를 유지하며 찍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건데, 거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
아무리 친해져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까. 가족이나 <청춘길일>의 친구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친해서 상관없이 했는데, 여기서 친해진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눈앞에서 술 마시면 친구친구 하지만서도 결국에는 자기 벽을 쌓고 있다. 이 이상은 접근하지 말라는 그런 게 생활 습관이 돼 있어서, 더 친해지고 막 가려 하면 이 사람들도 이건 안 된다, 저건 안 된다, 거부하는 게 있다. 찍을 순 있는데 상대편이 싫어하는 사진을 내가 발표할 순 없지 않나. 상대에 대한 예의 같은 건데, 그게 없으면 찍을 필요가 없다. 내가 뭐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고. 보통 그런 세계가 다 있으니까. 이 사람들을 이용해서 뭘 하고 싶진 않다. 그 사람들이 다 이해한 다음, 이렇게 하면 괜찮다 했을 때 찍고 싶다
일본에 대한 얘기도 해보자. 2018년, 일본을 여행했을 때, 주 목적지는 가마쿠라였지만, 도쿄에도 1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때의 도쿄를 떠올리면 시부야의 음악 감상실 <라이온>, 긴자의 라멘집 <카자미>, 아키하바라의 낮과 밤, 우구이스다니 역 근처 골목의 호객하던 여자들, 신주쿠의 밤이 주던 긴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풍경만 놓고 봤을 땐 도쿄와 서울의 차이를 크게 느끼진 못했다. 내가 짧게, 잠깐 머물렀기 때문일까
요즘은 별로 차이가 없다. 25, 26년 전만 해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별로 차이 없는 것 같다. 25, 26년 전엔 그때만 해도 비행기 안에서 담배 필 때니까, 창밖을 이렇게 보는데 한국이랑, 서울이랑 별 차이도 없고, 약간 실망했는데, 일본 학교 다니면서 한 6개월 있다 보니까 점점 차이가 보이더라고. 좁은 술집에서, 어깨가 부닥칠 정도로 작은 곳에서 술 먹고 하는데 한국 사람 같으면 꼭 싸움이 일어나거든. 좁고 하니까. 근데 싸움도 안 일어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막 얘기도 하고. 규동, 규동이라고 있는데 300엔짜리. 소고기덮밥처럼 생긴 거 있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면 한 대여섯 명이 가서 먹고 그랬는데, 여긴 혼자 가서 말도 없이 묵묵히 먹고, 돈 계산하고 ‘잘 먹고 갑니다’ 인사 하고 나가고, 그런 게 틀리긴 틀리다 싶었다. 그리고 치마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막. 그런 게 충격이었지. 할아버지들도 하얀 백발인데 가죽잠바 입고, 할리 오토바이 타고 다니고
내가 도쿄에서 한국과 일본이란 나라와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꼈던 건, 도시가 완벽하게 계획돼 있고, 구획돼 있다고 생각했을 때다.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인데, 굉장히 큰 포르노 가게가 있었고, 그곳에 들어갔을 때, 마치 한국의 대형 서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직장인들이 깔끔한 정장 차림에, 백팩을 매고, 책을 고르듯 포르노 DVD를 살피는 것을 봤으니까. 그 모습을 통해 일본은 욕망이란 것을 도시의 체계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생각이 더욱더 짙어졌던 건, 아키하바라의 화려한 빠칭코와 메이드 카페 점원들의 호객 행위를 통과해 민가로 들어섰을 때인데, 그곳은 방금 내가 있었던 공간과는 몇백 킬로는 떨어진 공간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각 구역마다 허용된 욕망이 있고, 허용된 욕망만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충 맞는 말이다. 동네마다 문화가 다 틀리다. 그런데 신주쿠만 오면 그런 게 다 합쳐져 있다. 그러니까 신주쿠 가부키초에 사람들이 그렇게 모이나 보다
방금 당신이 말했듯, 앞서 내가 한 생각과 가장 상반되는 일본의 모습을 본 건, 당신의 사진과 글을 통해 기록된 신주쿠다. 그곳은 허용과 비허용의 기준 따윈 없어 보였고, 가장 핍진한 욕망까지도 꺼내 들고야 마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당신의 글과 사진을 봤을 땐 그랬단 얘기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일부러 밤의 신주쿠에, 가부키초에 갔다. 위험하단 얘기는 나 역시도 들었지만,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들은 것이 있어 잔뜩 긴장하고 걷긴 했지만, 예상보단 훨씬 평화로워서, 당신의 사진이나 글에서 느꼈던 가부키초는 없어서, 한 시간 정도만 걷다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이것 역시도 내가 짧게, 잠깐 머물렀기 때문일까. 당신의 일본과 신주쿠를 조금이나마 엿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하하 맞다. 한국 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위험하다 생각 안 한다. 일본 지방 애들은 가부키초 오면 무섭다 그런다. 그런데 이곳도 요즘엔 변했다. 아무나 와서 돈만 있으면 즐기는 동네로. 옛날처럼 그렇게 바가지요금도 별로 없어졌고. 깡패들도 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카지노 같은 것도 다 적발하고. 정화 작전을 많이 했다, 옛날에. 신주쿠 정화 작전 해가지고 도지사가, ‘이시하라’ 도지사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싹, 많이 없앴다. 비자 없이 불법 체류 하는 사람들도 싹 적발해가고. 그때는 한국 가게가 많아가지고 한국 아가씨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월급날이면 꼭 현찰 갖고 다니니까, 한국 사람들을 노리는 쓰리꾼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여자가 걸어 다니면 안 된다 그랬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런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다 변했다. 많이 없어졌고. 98년부터 2006년? 까지를 내가 신주쿠에서 흑백으로 찍고, 그다음 부터는 칼라로 찍기 시작했는데, 흑백으로 찍은 사진집을 보면 지금은 다 없어졌다. 골든가이 같은 데 가 봐라. 골든가이나 아가씨들 있는 가게, 그런데 가면 재밌지. 그런데 골든가이는 돈이 많이 안 드는데, 아가씨들 있는데 가면 돈이 많이 들고
변한 신주쿠를 보면 아쉬운 마음이 아무래도 크나? 아니면 변한 건 또 뭐 그 나름대로 괜찮나
너무 많이 아쉽지. 옛날에 내가 찍은 거 필름 찾아가지고 보면 후회를 많이 한다. 이렇게 재미난 사람이 있었는데 왜 안 찍었을까 하고. 그냥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거기서 박스 깔고 자면서 찍었을 텐데.. 그때는 거의 다 찍고 싶은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못 찍는다, 그렇게 밖에서. 찍고 싶은 애들이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지금은 가부키초에서 30년 이상 가게를 한다던가, 야쿠자를 30년 이상 했다던가, 무슨 장사든 30년 이상 가부키초에서 한 사람들을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많이 바뀌었다, 내가 찍고 싶은 것도. 밖에서 돌아다니며 찍는 건.. 지금은 못 찍겠다. 사람이 없어서. 사람 냄새가 안 나. 싸구려 향수 냄새만 나고
최근에 찍고 싶은 것에 대해 조금만 더 들어볼 수 있을까. 대상이 궁금하다기보단 그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은 가부키초에 간다. 찍으러 간다는 게 아니라 그냥 둘러보러. 시간도 많이 있고, 내일 일도 없고 그러면 아침까지 찍고 가는데, 아침까지 돌아다녀도 샤타 한 방도 못 누를 때가 많다. 마지막 카바레라는 62년 된 가게가 있는데, 그거 찍은 다음부터는 가부키초에서 오래된 가게를 한번 찍어봐야 되겄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금 호스트 클럽도 계속 찍고 있다. 2년 정도 됐는데, 손님도 마스크 하고, 접대도 마스크 하고 하기 때문에 별로 사진으로써는 안 좋더라. 시대 반영을 위해선 몇 장 들어가도 좋은데. 이 상태로 계속 찍어선 안 될 거 같아서 지금 좀 쉬었다가 코로나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지 한다. 또 30년 이상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인터뷰해가면서 찍고. 그리고 홈리스들 가방 찍은 거. 엊그저께 전시한 건데, 노숙자들이 가방을 꼭 하나씩 들고 다니더라고. 뭐가 들어 있길래 저렇게 껴안고 다니는가 했더니, 나는 무슨 추억이나, 가족사진이라던가, 그런 거 들어있을 줄 알고 ‘가방을 좀 보여주세요.’ 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술이나, 빵이나, 마요네즈, 그런 거만 나오더라고. 찍으면서 약간 실망은 했는데.. 그것도.. 역시 살아남는 게 중요하구나.. 했다. 그런 추억보다는 현실적인 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더라고. 간장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음식 받았는데 좀 싱거우면 간장 찍어 먹고 그런다
정리하자면 오래된 것인 동시에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찍는 거겠다
그렇지. 더 없어지기 전에. 좀 남겨놓고 싶어서. 한국에 유명한 사람들, 유명한 작가들, 그런 사람들 보면 옛날에 뭐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래 하신 분들. 옛날에 그렇게 좋았던 것들 기록도 안 해 놓고. 그 사람들 보면 그래서 짜증이 난다. 잘난 척은 다 하면서. 아우 한국 얘기 하지 말자, 짜증 나니까
섣부를 수 있겠지만, 당신의 작업 중심에 놓여있는 건 후회,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거 많지. <청춘길일> 찍은 것도 옛날 친구들 기억하고, 그리움에서 시작한 거고. 마오랑 처음 데이트할 때부터 지금 찍고 있는데, 요즘 애가 태어난 뒤부터는 서로는 안 찍고 애만 찍으니까 재미가 없다 하하하
요즘 후회나 아쉬움으로 가장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까
많지. 거의 다 글지. 그래서 지금 빨리 찍어야 한다. 가부키초에 가서. 다 남겨놔야 한다. 그리고 그 깡패들도 지금 힘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남겨놔야 하고. 애도 찍어야 하고, 딸도. 나도 찍어야 하고, 아무도 안 알아주니까 내가 찍어 가지고 남겨 놓을 거다
딸이 몇 살인가
3살, 한국 나이로 4살이구나
책에서 딸 얘기가 적힌 부분을 보며 궁금했던 게, 당신 사진은 아까 우리가 나눴던 단어들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위험하고 어둡다는 식의. 당신은 물론 당신의 사진을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다정한 마음을 담은 거지만, 근데 이게 또 딸을 생각하면 다른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알 수가 없으니까. 난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지만, 딸은 다른 것에 관심이 있으면 좋겠다던가, 가부키초에 관심이 없으면 좋겠다라던가
하하하 맞다. 지금 <청춘길일>도 그렇고, 마오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찍은 것도 그렇고, 애가 태어나기 전에는 집에 막 전시도 하고 그랬는데,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는, 마오가, 집사람이 다 치웠다. 이거는 제발 애가 20살 될 때까지는 참으라고 그런다. 나는 이제 끝났다. 애가 태어난 뒤부터는. 사진가가 아니다. 딸바보 돼갖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사진가로 나는 끝났다
당신은 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해왔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나? 좋아한다면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옛날에는, 고등학교 땐가? ‘박노식’이나 ‘허장강’ 그런 사람들 영화, 주먹 한 번 휘두르면 네다섯 명 다 쓰러지고 그런 영화 극장 가서 보고 그랬었는데, <용팔이> 뭐 그런 영화 보고 그랬었는데, 영화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 그랬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한참 있다가 <친구>가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게 이거다 했다. 영화에 있어서는 내가 10년을 앞서간 거 같다. 그다음에 그 누구지? ‘양익준’인가? <똥파리>인가 뭔가 그 영화도 좋아하고, 그 사람도 좋아하고. 액션이나, 그 시원시원한 느와르 영화 같은 거 좋아하고, 아니면 그냥 아주 순수한 영화라고 해야 되나? 늙어 갖고 그런 영화 보면 눈물 나고 그런다니까
난 일본 감독 중에서도 ‘기타노 다케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의 느와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원하다가도 마지막엔 결국 찝찝함이 자리 잡는다. 그에 비해 야쿠자를 찍은 당신의 사진은 굉장한 뜨거움이 느껴진다. 야쿠자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당신이 찍은 사진들과 비교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나
발표 못 한 사진이 많다. 너무 심해서. 그런데 영화는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아쉽다. 책도 전시도 한국에선 검열에 꼭 걸려서 고치고, 사진을 빼라고 한다. 여기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한국에서는 꼭 그런다
야쿠자 영화 하나 추천해주겠나
‘징기 나키 타타카이(仁義なき戦い)’ 시리즈가 한 50편 된다. 옛날 한국 사람이 밀항해갖고, 오사카에서, 그때부터 계속 지금까지 50편 100편 되는 영화가 있다. 오야붕이 계속 바뀌어 가면서. 근데 재미는 없다. 너무 뻥이 심해서. 영화는 좋아는 하는데, 막 팀으로 해서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난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 영화도 해보고 싶었는데, 사진은 그냥 혼자 하니까, 사진을 찍지
당신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당신의 모습을 기록한 르포르타주나 다큐멘터리 소설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가끔 했다. 영화로 찍어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물론 했고. 만약 그 작업이 진행된다면 어떤 장면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나
내가 피사체한테 접근하는 방법. 날 찍은 사람은 많이 있다. 한국 사람 중에도 다큐멘터리 찍고 싶다고 온 적이 있고, ‘아사히TV’에서도 한 적이 있고. 근데 너무 어디 가서 사진 찍고 뭐 그런 거밖에 안 나와서. 내가 사람들을 찍기 위해서 몇 개월 동안 접근하는 방법, 그런 게 재밌을 것 같다
맞다. 그게 마음이 쌓이는 시간이니까. 잠깐 와서 사진 찍는 당신을 며칠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내 영화를 찍는다면 그런 거 찍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혼자 박스 깔고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이렇게 둘러보고 있다가, 찍고 싶은 사람 있으면 접근하는데, 어떻게 접근하나 생각하면서, 그런 게 재밌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나눌 얘기 이전에 갑자기 궁금해진 것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 내가 생각해봤을 때 사진 작업이라 하면, 우선 찍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다가가고, 찍을지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이 있을 테고, 그 고민을 풀어서 찍고, 편집하고, 인화하는 과정이 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좋나
찍을 때하고 암실 들어갔을 때가 가장 재밌지
하나만 골라줄 수 있나
아... 찍을 때가 재밌나? 찍을 때 대충 알지 않나. ‘야~ 이거는 표지다,’ 오래 하다 보면 감이 오지 않나. 이건 표지고, 이건 뭐고 하는. 그게 딱 왔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좋은 거 찍었다 하고 혼자 막 좋다. 혼자 휘파람 불고, 좋아갖고
그 휘파람 소리를 같이 들을 날이 얼른 다가오면 좋겠다. 당신과의 대화가 <대화록>에 공개되는 2022년의 첫 대화다. 2022년엔 상황이 좀 나아져, 도쿄로 찾아가, 만나서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새해에 바라는 것이 있나
내년 5월에 또 책 준비해야 한다. 전시랑 책 준비하고.. 특별히 올해 이걸 해야겠다, 이걸 찍어야겠다 하는 생각은 평상시에 잘 안 한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이거 재밌네 싶으면, 발견하면 찍는 거고. 계획은 없다. 근데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한국서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를 너무 피하는 거 같아서. 무섭다고 그러나? 만나서 얘기해보면, 술 먹으면 더 재밌는데, 안 본 사람들이 난 안 된다고, 깡패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모양인데.. 제작비, 갤러리 빌리는 거, 사진 인화, 액자.. 돈이 많이 드니까, 기회가 되면 한번 해야지
사진 ㅣ 양승우 https://photoyang.jimdofree.com/
2021년 12월 28일의 대화
대화를 올리기 전엔 언제나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대화를 나눈 서로의 말투와 뉘앙스를 잘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두 번째로는 글의 형태로 전달되는 것이니 문장이 너무 무너져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듬는다. 그 후, 마지막 순서인 교정을 거치면 대화는 하나의 기록으로 완성되는데, ‘양승우’와의 이번 대화를 다듬는 건 유독 고민이 많이 됐다. 이 사람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있는 것 같고, 찌든 거리와 낡은 거리에서 사랑을 얘기하는 것 같고, 현재에 서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지켜보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의 말을 어떻게 옮겨야 가장 정확할지에 대한 답이 잘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녹음했던 대화를 글자로 옮긴 뒤, 몇 번을 반복해 읽으며 고민했지만, 결국 그냥 그대로 쓰고, 그대로 보는 게 가장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 대화를 읽은 뒤 ‘양승우’의 사진을 보게 될 당신에게, 그의 사진도 그저 그대로 보고, 그대로 느껴주길 바란다는 부탁을 전하고 싶다. 그의 사진은 분명 자극적일 수 있고, 위험해 보일 수 있고, 어두워 보일 수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사진을 반복해 찾는 이 마음이 단순한 자극이나 선정적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욕망인 것은 아닌지 되물었던 때도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사진을 지켜본 지금은, 그건 그저 표면일 뿐이라고, 현상의 겉면일 뿐이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게 됐다. 믿음이라고 쓴 건, 당신이 다른 마음을 느낀다 해도 그건 당신의 마음이니 존중하고 싶다는 뜻에서다. 당신의 그 마음조차, 명백해 보이는 결과나 현상이나 표면이 아닌,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일 테니까. ‘양승우’를 나는 그렇게 소개하려 한다
며칠이 지나면 새해가 밝는다. 올해를 뒤돌아보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무슨 마음이 자리 잡나
올해.. 책을 두 권 내고, 전시를 네 번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한 거 같다. 너무 빨리 왔다 작년은. 시간이 너무 빨랐다. 전시를 네 번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보통 전시장에 손님이 많이 없는데, 그래도 내 전시는 많이 온 편이다. 코로나 전에는 내가 전시를 하면 손님들이 그 뭐라고 하지.. 바이니루 부쿠로? 그.. 비닐.. 비닐 봉투에 캔맥주를 다 담아 오신다. 내가 술 좋아하는 거 아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반절 정도밖에 안 들고 왔더라. 아쉽고 그렇다. 술 안 들고 오면 다 보내 버린다, 하하하
술은 어떤 걸 좋아하나
도수 약한 거. 맥주나 그런 거
특별히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가 있나
맥주 맛도 잘 모른다. 아무 메-까(메이커)나 상관없다. 양주하고 와인 같은 건 안 먹는다
좋다. 계절 얘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 지금은 신주쿠 쪽에 살고 있나? 이케부쿠로 쪽인가
이케부쿠로에서 좀 더 변두리 쪽으로 나왔다
나는 일본에 두 번 가봤다. 처음은 열 살 때,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의 경유지가 도쿄였고, 나리타공항 근처 숙소에 잠깐 묵기만 했다. 두 번째는 2018년, 도쿄와 가마쿠라로 혼자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20일 정도 머물렀다. 그리고 그 두 번이 모두 여름이어서, 뜨겁고 습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일본의 그 더위는 생생하다. 하지만 겨울의 일본에 대한 기억은 없다. 도쿄의 겨울은 어떤가
음.. 도쿄 겨울.. 우선 눈이 귀하고, 눈 오면 뉴스에 나올 정도니까. 눈은 거의 안 온다. 요즘은 춥긴 추운데, 옛날에 한국 추운 거 생각하면 여긴 추운 것도 아니다. 눈 오면 여긴 교통이, 버스가 마비된다. 저기 윗 지방 가면 아주 잘 돼 있는데, 눈이 많이 와도 다 하는데, 도쿄는 눈에 약한 거 같다
눈이 오면 거리에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줄어들겠다
없다. 지금 신주쿠 광장에 가면, 겨울 되면, 노숙자들이 다 지하실로,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 광장은 썰렁하니 사람이 없다. ‘사람 다 똑같겠지, 추우니까 다 들어갔겠지’ 한다
대부분의 당신 사진엔 사람이 꼭 등장하지 않나.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겨울엔 어쩔 수 없이, 사람 없는, 비어있는 풍경을 찍는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찍긴 찍는데, 찍긴 찍는데.. 원래 사람 냄새가 좋아서, 사람 냄새를 찍으려고 하니까, 피사체가 없는 것 같다 겨울에는. 그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찍으려고 한다
당신은 일본에서 자라 일본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처럼 비칠 때가 많지만, 사실 아직은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다. 30살 무렵까진 한국에 있었으니까. 일본에 산 지는 아직 30년이 좀 안 됐고. 일본에서 한국의 겨울을 생각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나. 고향인 정읍의 겨울도 좋고
한 5년 정도? 4년 정도? 더 길다. 근데 그건 한국, 자기들이 나를 안 불러주니까 안 가지. 여기는 그냥 내가 ‘전시하고 싶다,’, ‘이 책 내고 싶다,’ 하고 완성된 사진을 가지고 가면 그냥 다 내주고, 해주고, 하는데, 한국은 다 내 돈으로 해야 한다.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제작비 같은 거 주는 콘테스트, 어워드 같은 걸 냈는데, 내면 내는 대로 다 떨어진다. 흠.. 겨울, 고향 정읍은 생각 많이 나지. 고향인데. 어린 시절은 아무 생각 없이 흥미 위주로 가지 않나. 단순하게, 재밌으면 막 하고 그러는데, 여기서 힘들고, 뭐할 때 보면 그때 생각이 제일 난다. 겨울엔.. 그 비료 푸대 있지 않나. 그걸로 썰매 타고 산에서 막 내려오고, 대나무 쪼개서 스키 타고 논에서, 타다가 깨져가지고 막 빠지고 얼음 속으로. 그런 생각 나지
난 도시에서 자라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 봤던 만화책이나 영화에서 본 장면을 통해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 대화를 준비하며 당신의 책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를 읽었다. 정읍에서의 시절이 꽤 자세히 적혀 있었고, 그건 과거 다른 매체에서 진행했던, 일본에서의 이야기만 주로 담긴 인터뷰에선 보기 힘들었던 내용이라 더욱더 반갑게 읽었다. 당신의 정읍을 소개해줄 수 있겠나
객지에서 정읍 놈들 만나면 맨 사기꾼 놈들밖에 없고, 그래서 정읍 사람들은 별로 만나기 싫다. 옛날 친구들 외에는. 그래도 추억은 있으니까, 정읍 가면 그냥 좋다. 맥없이 편안하다. 지금도 정읍 시내에서 달리기하면 내가 다 도망칠 자신 있다. 그 정도로 돌아다녔고 정읍을. 선배들한테 맞고, 후배들 때리고 그런 기억밖에 없다. 충렬사 생각은 난다. 전봉준 기념탑이랑, 황토현 전적지라고 거기가 동네 바로 옆에 있는데, 그쪽 생각이 바로 난다. 충렬사에서 뭐 다른 학교 애들하고 패싸움하고 그랬다
2022년에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가보겠다. 당신은 60년대에 태어났고, 70년대와 80년대를 정읍에서 보냈다. 그 당시 전라도는 군부 정권의 악마 같은 횡포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지역이지 않나. 차마 말하기 힘든 역사의 참상도 많고. 정읍에 살았을 때,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경험이 있나
많이 있었지. 광주 운동 때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갈 정도였으니까. 바로 옆인데, 아무도 몰랐다. 그냥 ‘뭐 또 훈련이 있는갑다,’ 그 정도로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광주 운동이었던 거지.. 힘들지, 아는 형도 그쪽에 있었고, 죽진 않았지만 다쳤고. 그때는 서비스.. 그 가스.. 주유소? 주유소에서 다른 도시 남바 달고 오면 기름도 안 넣어주고 그랬다. 하도 많이 당해서
그 기억이 당신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까
작업? 사람들은 나를 뭐 대단한 사진가라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안 그렇다. 그냥.. 그냥 좀 이상한 놈 그 정도밖에 안 된다. 내가 특별한 예술 한다는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나를 위해서,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까 나를 위해서 찍는 거지
알겠다. 전라도는 오래도록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했던 지역이니, 정읍에서 자란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궁금해지더라. 일본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아내와 삼겹살을 종종 구워 먹는다는 얘기를 책에서 봤다.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끔 생각나는 것도 있나
맛있지. 지금 먹고 싶은 건, 철은 아닌데, 논에서 우렁 잡아다가 무쳐서 먹고, 청국장 집에서 만들어서 먹고. 그다음에 오이나, 가지, 생으로 먹는
우렁은 어디에 무쳐 먹는 건가? 된장?
초장이지 초장. 삶아서 그 알만 빼갖고 초장에 무쳐 먹으면 맛있다.
일본에선 우렁을 구하기 힘든가?
그런 식으로 하는 데는 없다. 한국 식당가면 있긴 있는데, 우렁 말고 다른 거 있긴 있는데, 한국 식당은 너무 비싸서, 평소에 잘 안 간다
결혼식도 정읍에서 했고, 몇 년 전 정읍에서 전시도 했다. 정읍에서 전시했을 땐 다른 전시와는 마음이 조금 달랐을까.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를 보면 정읍은 당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몇 죽음이 발생했던 장소이지 않나. 그중 하나의 죽음에서 당신의 사진이 시작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사진을 가지고 다시 정읍을 찾았을 때, 물론 건방진 짐작이겠지만,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서울에서는 그 전에 두 번인가 했었는데, 쪼그만한 갤러리에서 했었는데, 그럴 때, 내가 사진하는 줄 몰랐던 정읍 친구들이 와서 깜짝 놀래고 그랬다. ‘너 진짜로 사진 허냐?’ 그러면서. 호남 고속도로에서 정읍 인터체인지로 이렇게 내리면은 그 무식한 옛날 친구들이 천막에다가 글씨 쓰고, 붙이는 거 있지? 그런 거 해놓고 막.. 내가 챙피해서 혼났네. 뭐 전시하면서 특별한 마음이 있지는 않았고
좋다. 매체가 당신의 사진을 포장할 땐 ‘날 것의 사진’, ‘거리의 사진’, ‘위험한 사진’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에겐 내가 본 사진 그 어느 것보다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찍은 어릴 적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볼 때와 비슷한 마음을 늘 느꼈다고 하면 좀 설명이 되려나. 그래서 난 앞서 말한 저런 포장들이 싫었고,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맞다 그거, 사진 잘 보시네. 가소롭다까진 생각 안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적당히.. 그냥.. 글지. 제대로 말했다. 말투가 조금 이렇고, 점잔하지 않고, 피사체가 막 그런 사진이라 다들 무섭고 그런 사람인 줄 아는데, 만나면 전혀 안 그렇거든. 그 사람들은 그렇게 보고 싶은 모양이지. 내 사진은 막 이런 걸 전하고 싶다 그런 건 별로 없고, 사진으로 하는 수필이라 해야 하나? 단편 영화라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서 내고, 다음, 다음, 다음, 계속 가는 거다. 그걸 뭐 날 것이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네.. 형식은 다큐멘타리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다른 거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신과 당신 사진을 소개하는 사람들인데, 포장을 그렇게 해버리면 소개받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훨씬 더 많은 감정이 있는 사진인데, 저런 설명을 거쳐 당신의 사진을 마주하게 됐을 땐 그저 자극적인 사진으로만 보이게 될까 봐 굉장히 아쉬웠다. 화가 나기도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여기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덜한 편이다. 알아주는 사람도, 당신처럼 그런 감상을 말해주는 사람도 꽤 있는데, 한국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가 당신의 사진을 보고 다정하다 느낀 건,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만큼 당신이 다정한 마음을 품은 주변의 사람, 거리를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당신의 사진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때도 있었다. 주변의 사람과 거리를 다정하게 찍었지만, 결국엔 사진을 찍고 있는 당신이 그곳에선 외부인이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거다. 물론 이것은 국적에 따라 간단히 규정해버리려는 나의 성급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쓴 책이나, 다른 인터뷰의 답변에서도, 위와 같은 마음을 간혹 느낀 적이 있었기에 물어보려 한다. 당신은, 당신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거리의 다정한 친구인가, 아니면 친한 손님인가
노력은 한다. 친해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친구가 될 순 없다. 솔직히. 이쪽, 저쪽 확실히 나눠져 있고. 그냥 같은, 같은.. 동네 사람 정도?는 간 거 같다. 친구라고까진 아직 안 간 거 같다.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친구들 찍은 사진이라 그건 친군데, 이쪽에서 찍은 건 아직 친구까진 못 간 거 같다. 그냥 동네 사람, 동네 아저씨 정도밖에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일일까
아아아, 너무 친해져도 안 된다. 딱 좋은 것 같다, 지금이. 너무 친하게 되면 또, 사적인 저기가 되고, 어느 정도 거리를 항상 유지하면서 찍어야 될 것 같아서, 너무 친해지면 못 찍을 것 같다
거리 얘기를 하니 궁금해진다. <청춘길일>이나 <양승우 마오 부부의 행복한 사진일기> 같은 사진집은 거리가 거의 없는 사진에 가깝지 않나. 굳이 비교하자면 언급한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은 당신의 초기 사진들이고, 그러니까 최근으로 넘어오면서 거리를 유지하며 찍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건데, 거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
아무리 친해져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까. 가족이나 <청춘길일>의 친구들은 너무 어릴 때부터 친해서 상관없이 했는데, 여기서 친해진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눈앞에서 술 마시면 친구친구 하지만서도 결국에는 자기 벽을 쌓고 있다. 이 이상은 접근하지 말라는 그런 게 생활 습관이 돼 있어서, 더 친해지고 막 가려 하면 이 사람들도 이건 안 된다, 저건 안 된다, 거부하는 게 있다. 찍을 순 있는데 상대편이 싫어하는 사진을 내가 발표할 순 없지 않나. 상대에 대한 예의 같은 건데, 그게 없으면 찍을 필요가 없다. 내가 뭐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고. 보통 그런 세계가 다 있으니까. 이 사람들을 이용해서 뭘 하고 싶진 않다. 그 사람들이 다 이해한 다음, 이렇게 하면 괜찮다 했을 때 찍고 싶다
일본에 대한 얘기도 해보자. 2018년, 일본을 여행했을 때, 주 목적지는 가마쿠라였지만, 도쿄에도 1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때의 도쿄를 떠올리면 시부야의 음악 감상실 <라이온>, 긴자의 라멘집 <카자미>, 아키하바라의 낮과 밤, 우구이스다니 역 근처 골목의 호객하던 여자들, 신주쿠의 밤이 주던 긴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풍경만 놓고 봤을 땐 도쿄와 서울의 차이를 크게 느끼진 못했다. 내가 짧게, 잠깐 머물렀기 때문일까
요즘은 별로 차이가 없다. 25, 26년 전만 해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별로 차이 없는 것 같다. 25, 26년 전엔 그때만 해도 비행기 안에서 담배 필 때니까, 창밖을 이렇게 보는데 한국이랑, 서울이랑 별 차이도 없고, 약간 실망했는데, 일본 학교 다니면서 한 6개월 있다 보니까 점점 차이가 보이더라고. 좁은 술집에서, 어깨가 부닥칠 정도로 작은 곳에서 술 먹고 하는데 한국 사람 같으면 꼭 싸움이 일어나거든. 좁고 하니까. 근데 싸움도 안 일어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막 얘기도 하고. 규동, 규동이라고 있는데 300엔짜리. 소고기덮밥처럼 생긴 거 있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면 한 대여섯 명이 가서 먹고 그랬는데, 여긴 혼자 가서 말도 없이 묵묵히 먹고, 돈 계산하고 ‘잘 먹고 갑니다’ 인사 하고 나가고, 그런 게 틀리긴 틀리다 싶었다. 그리고 치마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막. 그런 게 충격이었지. 할아버지들도 하얀 백발인데 가죽잠바 입고, 할리 오토바이 타고 다니고
내가 도쿄에서 한국과 일본이란 나라와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느꼈던 건, 도시가 완벽하게 계획돼 있고, 구획돼 있다고 생각했을 때다.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인데, 굉장히 큰 포르노 가게가 있었고, 그곳에 들어갔을 때, 마치 한국의 대형 서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직장인들이 깔끔한 정장 차림에, 백팩을 매고, 책을 고르듯 포르노 DVD를 살피는 것을 봤으니까. 그 모습을 통해 일본은 욕망이란 것을 도시의 체계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생각이 더욱더 짙어졌던 건, 아키하바라의 화려한 빠칭코와 메이드 카페 점원들의 호객 행위를 통과해 민가로 들어섰을 때인데, 그곳은 방금 내가 있었던 공간과는 몇백 킬로는 떨어진 공간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각 구역마다 허용된 욕망이 있고, 허용된 욕망만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충 맞는 말이다. 동네마다 문화가 다 틀리다. 그런데 신주쿠만 오면 그런 게 다 합쳐져 있다. 그러니까 신주쿠 가부키초에 사람들이 그렇게 모이나 보다
방금 당신이 말했듯, 앞서 내가 한 생각과 가장 상반되는 일본의 모습을 본 건, 당신의 사진과 글을 통해 기록된 신주쿠다. 그곳은 허용과 비허용의 기준 따윈 없어 보였고, 가장 핍진한 욕망까지도 꺼내 들고야 마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당신의 글과 사진을 봤을 땐 그랬단 얘기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일부러 밤의 신주쿠에, 가부키초에 갔다. 위험하단 얘기는 나 역시도 들었지만,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들은 것이 있어 잔뜩 긴장하고 걷긴 했지만, 예상보단 훨씬 평화로워서, 당신의 사진이나 글에서 느꼈던 가부키초는 없어서, 한 시간 정도만 걷다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이것 역시도 내가 짧게, 잠깐 머물렀기 때문일까. 당신의 일본과 신주쿠를 조금이나마 엿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하하 맞다. 한국 사람들은 그 정도로는 위험하다 생각 안 한다. 일본 지방 애들은 가부키초 오면 무섭다 그런다. 그런데 이곳도 요즘엔 변했다. 아무나 와서 돈만 있으면 즐기는 동네로. 옛날처럼 그렇게 바가지요금도 별로 없어졌고. 깡패들도 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카지노 같은 것도 다 적발하고. 정화 작전을 많이 했다, 옛날에. 신주쿠 정화 작전 해가지고 도지사가, ‘이시하라’ 도지사라고 있는데 그 사람이 싹, 많이 없앴다. 비자 없이 불법 체류 하는 사람들도 싹 적발해가고. 그때는 한국 가게가 많아가지고 한국 아가씨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월급날이면 꼭 현찰 갖고 다니니까, 한국 사람들을 노리는 쓰리꾼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여자가 걸어 다니면 안 된다 그랬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런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다 변했다. 많이 없어졌고. 98년부터 2006년? 까지를 내가 신주쿠에서 흑백으로 찍고, 그다음 부터는 칼라로 찍기 시작했는데, 흑백으로 찍은 사진집을 보면 지금은 다 없어졌다. 골든가이 같은 데 가 봐라. 골든가이나 아가씨들 있는 가게, 그런데 가면 재밌지. 그런데 골든가이는 돈이 많이 안 드는데, 아가씨들 있는데 가면 돈이 많이 들고
변한 신주쿠를 보면 아쉬운 마음이 아무래도 크나? 아니면 변한 건 또 뭐 그 나름대로 괜찮나
너무 많이 아쉽지. 옛날에 내가 찍은 거 필름 찾아가지고 보면 후회를 많이 한다. 이렇게 재미난 사람이 있었는데 왜 안 찍었을까 하고. 그냥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거기서 박스 깔고 자면서 찍었을 텐데.. 그때는 거의 다 찍고 싶은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못 찍는다, 그렇게 밖에서. 찍고 싶은 애들이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지금은 가부키초에서 30년 이상 가게를 한다던가, 야쿠자를 30년 이상 했다던가, 무슨 장사든 30년 이상 가부키초에서 한 사람들을 찍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많이 바뀌었다, 내가 찍고 싶은 것도. 밖에서 돌아다니며 찍는 건.. 지금은 못 찍겠다. 사람이 없어서. 사람 냄새가 안 나. 싸구려 향수 냄새만 나고
최근에 찍고 싶은 것에 대해 조금만 더 들어볼 수 있을까. 대상이 궁금하다기보단 그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은 가부키초에 간다. 찍으러 간다는 게 아니라 그냥 둘러보러. 시간도 많이 있고, 내일 일도 없고 그러면 아침까지 찍고 가는데, 아침까지 돌아다녀도 샤타 한 방도 못 누를 때가 많다. 마지막 카바레라는 62년 된 가게가 있는데, 그거 찍은 다음부터는 가부키초에서 오래된 가게를 한번 찍어봐야 되겄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금 호스트 클럽도 계속 찍고 있다. 2년 정도 됐는데, 손님도 마스크 하고, 접대도 마스크 하고 하기 때문에 별로 사진으로써는 안 좋더라. 시대 반영을 위해선 몇 장 들어가도 좋은데. 이 상태로 계속 찍어선 안 될 거 같아서 지금 좀 쉬었다가 코로나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지 한다. 또 30년 이상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 인터뷰해가면서 찍고. 그리고 홈리스들 가방 찍은 거. 엊그저께 전시한 건데, 노숙자들이 가방을 꼭 하나씩 들고 다니더라고. 뭐가 들어 있길래 저렇게 껴안고 다니는가 했더니, 나는 무슨 추억이나, 가족사진이라던가, 그런 거 들어있을 줄 알고 ‘가방을 좀 보여주세요.’ 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술이나, 빵이나, 마요네즈, 그런 거만 나오더라고. 찍으면서 약간 실망은 했는데.. 그것도.. 역시 살아남는 게 중요하구나.. 했다. 그런 추억보다는 현실적인 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더라고. 간장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음식 받았는데 좀 싱거우면 간장 찍어 먹고 그런다
정리하자면 오래된 것인 동시에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찍는 거겠다
그렇지. 더 없어지기 전에. 좀 남겨놓고 싶어서. 한국에 유명한 사람들, 유명한 작가들, 그런 사람들 보면 옛날에 뭐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래 하신 분들. 옛날에 그렇게 좋았던 것들 기록도 안 해 놓고. 그 사람들 보면 그래서 짜증이 난다. 잘난 척은 다 하면서. 아우 한국 얘기 하지 말자, 짜증 나니까
섣부를 수 있겠지만, 당신의 작업 중심에 놓여있는 건 후회,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거 많지. <청춘길일> 찍은 것도 옛날 친구들 기억하고, 그리움에서 시작한 거고. 마오랑 처음 데이트할 때부터 지금 찍고 있는데, 요즘 애가 태어난 뒤부터는 서로는 안 찍고 애만 찍으니까 재미가 없다 하하하
요즘 후회나 아쉬움으로 가장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까
많지. 거의 다 글지. 그래서 지금 빨리 찍어야 한다. 가부키초에 가서. 다 남겨놔야 한다. 그리고 그 깡패들도 지금 힘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남겨놔야 하고. 애도 찍어야 하고, 딸도. 나도 찍어야 하고, 아무도 안 알아주니까 내가 찍어 가지고 남겨 놓을 거다
딸이 몇 살인가
3살, 한국 나이로 4살이구나
책에서 딸 얘기가 적힌 부분을 보며 궁금했던 게, 당신 사진은 아까 우리가 나눴던 단어들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위험하고 어둡다는 식의. 당신은 물론 당신의 사진을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다정한 마음을 담은 거지만, 근데 이게 또 딸을 생각하면 다른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 알 수가 없으니까. 난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지만, 딸은 다른 것에 관심이 있으면 좋겠다던가, 가부키초에 관심이 없으면 좋겠다라던가
하하하 맞다. 지금 <청춘길일>도 그렇고, 마오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찍은 것도 그렇고, 애가 태어나기 전에는 집에 막 전시도 하고 그랬는데,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는, 마오가, 집사람이 다 치웠다. 이거는 제발 애가 20살 될 때까지는 참으라고 그런다. 나는 이제 끝났다. 애가 태어난 뒤부터는. 사진가가 아니다. 딸바보 돼갖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사진가로 나는 끝났다
당신은 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신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말해왔다.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나? 좋아한다면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옛날에는, 고등학교 땐가? ‘박노식’이나 ‘허장강’ 그런 사람들 영화, 주먹 한 번 휘두르면 네다섯 명 다 쓰러지고 그런 영화 극장 가서 보고 그랬었는데, <용팔이> 뭐 그런 영화 보고 그랬었는데, 영화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 그랬다. 그런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한참 있다가 <친구>가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게 이거다 했다. 영화에 있어서는 내가 10년을 앞서간 거 같다. 그다음에 그 누구지? ‘양익준’인가? <똥파리>인가 뭔가 그 영화도 좋아하고, 그 사람도 좋아하고. 액션이나, 그 시원시원한 느와르 영화 같은 거 좋아하고, 아니면 그냥 아주 순수한 영화라고 해야 되나? 늙어 갖고 그런 영화 보면 눈물 나고 그런다니까
난 일본 감독 중에서도 ‘기타노 다케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의 느와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원하다가도 마지막엔 결국 찝찝함이 자리 잡는다. 그에 비해 야쿠자를 찍은 당신의 사진은 굉장한 뜨거움이 느껴진다. 야쿠자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서 당신이 찍은 사진들과 비교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나
발표 못 한 사진이 많다. 너무 심해서. 그런데 영화는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아쉽다. 책도 전시도 한국에선 검열에 꼭 걸려서 고치고, 사진을 빼라고 한다. 여기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한국에서는 꼭 그런다
야쿠자 영화 하나 추천해주겠나
‘징기 나키 타타카이(仁義なき戦い)’ 시리즈가 한 50편 된다. 옛날 한국 사람이 밀항해갖고, 오사카에서, 그때부터 계속 지금까지 50편 100편 되는 영화가 있다. 오야붕이 계속 바뀌어 가면서. 근데 재미는 없다. 너무 뻥이 심해서. 영화는 좋아는 하는데, 막 팀으로 해서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난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 영화도 해보고 싶었는데, 사진은 그냥 혼자 하니까, 사진을 찍지
당신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당신의 모습을 기록한 르포르타주나 다큐멘터리 소설을 써보고 싶단 생각을 가끔 했다. 영화로 찍어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물론 했고. 만약 그 작업이 진행된다면 어떤 장면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나
내가 피사체한테 접근하는 방법. 날 찍은 사람은 많이 있다. 한국 사람 중에도 다큐멘터리 찍고 싶다고 온 적이 있고, ‘아사히TV’에서도 한 적이 있고. 근데 너무 어디 가서 사진 찍고 뭐 그런 거밖에 안 나와서. 내가 사람들을 찍기 위해서 몇 개월 동안 접근하는 방법, 그런 게 재밌을 것 같다
맞다. 그게 마음이 쌓이는 시간이니까. 잠깐 와서 사진 찍는 당신을 며칠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내 영화를 찍는다면 그런 거 찍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혼자 박스 깔고 앉아서, 맥주 마시면서, 이렇게 둘러보고 있다가, 찍고 싶은 사람 있으면 접근하는데, 어떻게 접근하나 생각하면서, 그런 게 재밌을 거 같다
마지막으로 나눌 얘기 이전에 갑자기 궁금해진 것 하나만 더 물어보겠다. 내가 생각해봤을 때 사진 작업이라 하면, 우선 찍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다가가고, 찍을지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이 있을 테고, 그 고민을 풀어서 찍고, 편집하고, 인화하는 과정이 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이 가장 좋나
찍을 때하고 암실 들어갔을 때가 가장 재밌지
하나만 골라줄 수 있나
아... 찍을 때가 재밌나? 찍을 때 대충 알지 않나. ‘야~ 이거는 표지다,’ 오래 하다 보면 감이 오지 않나. 이건 표지고, 이건 뭐고 하는. 그게 딱 왔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좋은 거 찍었다 하고 혼자 막 좋다. 혼자 휘파람 불고, 좋아갖고
그 휘파람 소리를 같이 들을 날이 얼른 다가오면 좋겠다. 당신과의 대화가 <대화록>에 공개되는 2022년의 첫 대화다. 2022년엔 상황이 좀 나아져, 도쿄로 찾아가, 만나서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새해에 바라는 것이 있나
내년 5월에 또 책 준비해야 한다. 전시랑 책 준비하고.. 특별히 올해 이걸 해야겠다, 이걸 찍어야겠다 하는 생각은 평상시에 잘 안 한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이거 재밌네 싶으면, 발견하면 찍는 거고. 계획은 없다. 근데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한국서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를 너무 피하는 거 같아서. 무섭다고 그러나? 만나서 얘기해보면, 술 먹으면 더 재밌는데, 안 본 사람들이 난 안 된다고, 깡패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모양인데.. 제작비, 갤러리 빌리는 거, 사진 인화, 액자.. 돈이 많이 드니까, 기회가 되면 한번 해야지
사진 ㅣ 양승우 https://photoyang.jimdofr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