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3일의 대화
끊어놓은 영화 시간 보다 일찍 극장에 도착할 때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투명한 막 뒤의 비좁은 창구에 앉아, 예약번호를 듣고 표를 내어주는 사람. 그렇게 관객이 받아든 티켓을 확인하고 좌석으로 안내하는 사람. 스크린을 비추는 빛의 시작점인 영사기 뒤에서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상영관에 불이 꺼지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는 사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제 내가 곧 만날 영화를 오늘 이 시간에 틀겠다고 결정한 사람까지. 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큰 덩어린지,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에도, 상영하고 감상하는 것에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믿고 싶어진다. 좋은 영화를 만든 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좋은 영화를 보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거라고. 그리고 좋은 영화를 트는 극장은 좋은 극장이니, 좋은 극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이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거라고. 지금 반복해서 말한 '좋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안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는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제는 종로3가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순간을 어떻게든 기록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좋은'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대화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종로3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래머 '김보년'을 만나 '좋은'에 관하여 차분히 얘기했던 소설이었다.
절기로 어제가 ‘소설’이었는데, 오늘부터 기온이 거짓말처럼 급격히 떨어졌다. 겨울을 좋아하는 편인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나는 어렵다. 그래도 편하게 해보겠다. 편하게 해보겠다는 말을 아마 대화 끝까지 할 거 같다. 겨울.. 겨울 좋아한다.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겨울은 벌레가 별로 없어서 마음이 편해 좋아한다. 너무 건조한 건 싫긴 하지만, 습한 것보단 낫다. 또 겨울에는 옷을 많이 입으니 주머니가 많다. 주머니가 많아 편한 것도 좋다. 여름엔 아무래도 옷이 얇으니까, 자세라던지, 배가 좀 나온 거라던지, 그런 걸 신경 쓰게 되는데, 겨울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써도 되니, 그런 게 겨울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추운 건 되게 싫지만, 또 겨울만의 장점도 많이 있으니, 이렇게 추운 것도 받아들이자 생각하고 있다. 오늘 정말 춥긴 했다
대답을 충분히 잘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난 ‘안 좋아한다’ 하고 끝날까봐 걱정했는데, 훌륭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특정한 시기나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기도 하지 않나. 겨울에 어떤 영화를 생각하나. 나는 겨울이 되면 ‘레오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떠올린다. 특히 ‘드니 라방’이 쭉 미끄러져 ‘줄리엣 비노쉬’의 다리 사이에서 멈추는 그 장면
겨울을 제일 잘 표현한 것 같은 영화는.. 역시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있고, 또 ‘이만희’ 감독님 영화를 보면 겨울이 정말 춥게, 그러면서도 예쁘게 있는 것 같다. ‘에릭 로메르’의 <겨울 이야기>는 너무 모범답안이고.. 지금은 겨울을 따뜻하게 담은 영화 보다 춥게 담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겨울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나는 그 중 <북촌방향>과 <북촌방향>에 나오는 겨울을 그의 영화와 영화 속 겨울 중 가장 좋아한다. 당신은 어떤가
<옥희의 영화>에 나온 겨울도 정말 좋았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겨울을 보면, 물론 다른 감독님들의 영화도 그렇지만, 진짜 추워하는 게 보인다. 그게 좋다. <북촌방향>도 아름다웠고, <그 후>에서 ‘김민희’가 택시 타고 가다 창문을 내렸을 때 눈이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은 따뜻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겨울이 아니면 못 찍는 장면이니까. 또 어디에 겨울이 있었나.. 아, <오! 수정>도 있었다. <오! 수정>에선 물이 얼었다는 질감을 되게 잘 보여주는데 그런 것도 생각나고. 추워하는 걸 잘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 지금은 생각난다
만약 당신이 겨울을 찍는다면 어떤 걸 찍고 싶나
내가 겨울을 찍는다 그러면 제일 디테일한 것들을 찍게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내복, 나는 내복을 입는데, 영화에서 내복 입은 사람을 잘 보지 못한 거 같다. 어르신들 빼고는. 근데 난 나 말고도 내복을 입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도 한번 찍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막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건 다른 영화에서 많이 봤던, 그 영화들이 나에게 심어준 이미지이기 때문에.. 지금 딱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다. 염화칼슘 뿌리는 거? 그런 장면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겨울의 <서울아트시네마> 근처는 유독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근처 노인들이 많은데, 그 노인들의 남루한 행색이 눈에 자주 밟힌다. 낡아 있는 외투나, 찬 바람에 갈라진 손, 추위를 피해 바삐 걷지만 빨리 움직이지 않는 다리 같은 것들이. <서울 아트시네마> 맞은편의 포장마차도 비교적 한산해지고, 주황색 비닐도 바람을 막느라 모두 내려가 있어 단절된 느낌을 준다. 요즘 출퇴근길에 어떤 생각을 하나
종로3가, 4가는 특별한 공간이다. 방금 어르신들 얘기를 했는데, 어르신들의 활동 시간은 아무래도 오전부터 이른 저녁까지인 경우가 많다. 홍대나 강남은 저녁부터 시작이겠지. 하지만 종로3가는 그 시간이 되면 다 빠져나간다. 물론 조금만 더 가서 종각까지 가면 사람이 많지만, 저녁 또는 밤 시간의 종로3가, 4가는 한적한 느낌이 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있을 땐, 거긴 정말 극장 빼면 다 상가니까 상인 분들 퇴근하고 나면 아무도 없었는데, 여기도 <서울극장>이 문 닫고 난 뒤에는 싫을 정도로 썰렁하다. 옛날엔 그 썰렁한 느낌이 좋았는데, 이 정도로 썰렁해지니까 싫더라. 하지만 우리가 극장 중심으로 이 지역을 생각하니 밤이 되면 썰렁하다고 얘기하는 거기도 하다. 조금만 움직여 을지로나 익선동으로 가면 생활의 리듬이 확 바뀐다. 익선동 쪽은 또 옛날부터 게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골목에 들어가 보면 불빛이 있고, 되게 시끄럽다. 거기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걸 기준으로 종로를 보면 내가 방금 어르신들의 생활 리듬과 극장의 관점에서 종로에 관해 얘기한 건 거짓말이 된다. 종로 3가는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런 측면에서 조금 이상한 공간은 맞는 거 같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출퇴근길에 하는 생각
요즘은 종묘 쪽에서 버스를 내려 3분에서 5분 정도 걸어온다. 식당들이 보고 싶을 땐 피맛골 쪽으로 오고, 아닐 땐 큰길로 걷는다. 옛날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싫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코로나. 코로나가 생기고, 보이던 어르신이 확 줄었다. 그게 좀 서글펐고, 두 번째는 우리 극장이 이사를 가게 되니까. 아마 종로가 아닌 쪽으로 가게 될 텐데,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에 있을 때부터 종로를 다닌 걸 생각하면 2007년부터가 된다. 극장이 이사 가면 이제는 이 풍경을 예전처럼 못 보겠구나 생각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여기 없으면 내가 뭐 여기 올 일이 뭐 있겠냐. 많이 봐 놓아야 하겠다 생각한다. 밤에는 진짜 썰렁하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조용해서 좋기도 한데, 사람이 너무 없으니 역시나 쓸쓸하기도 하다. 근데 또 익선동이나 을지로 쪽으로 가면 난리니까 ‘가게 좀 그만 생겨라’ 생각하기도 하고. 도시에 감정이입을 하면 밤에는 좀 쉬게 놔둬도 될 거 같은데, 가게들이 다 들어서서 그러고 있으니까. 어느 방향으로 퇴근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바뀐다
<서울아트시네마> 첫 출근은 낙원 때겠지만, 오늘은 종로3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니까. 여기로 첫 출근할 때의 기억이 아직 있나
출근이 기억난다기보단, 이사를 직접 했기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쨌든,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던 낙원의 <허리우드 극장>은 물론 좋은 기억이 많지만, 시설이 아주 낡은 극장이었다. 그에 비해 <서울극장>은 나름 멀티플렉스였으니까, 되게 좋았다. 화장실이 깔끔해지고,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극장 앞에 편의점도 있고. 관객들이 더욱 편하게 찾아주시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멀티플렉스라 정신없는 점이 아쉬운 것도 분명 있었지만, 그런 부분도 활력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관객으로서 <서울아트시네마>에 처음 왔을 땐 어땠나. 2007년 정도가 처음인 걸로 안다. 물론 그때는 극장이 낙원에 있을 때고
2007년에 학교 때문에 처음 서울로 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드디어 왔다 하는 마음이었다. 고향인 대구에선 아무래도 보기 힘든 영화를 많이 트니까. 극장이 낡았다는 생각도 별로 안 했다. 대구에서 갔던 극장인 <동성 아트홀>이 더 낡았었으니까. 나에겐 다 새로운 것이어서 ‘와! 좋다!’ 딱 그거였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순간으로 가보자.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나
TV를 늘 좋아했고,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 자주 자문을 해보는 질문이긴 하다. ‘왜 영화를 좋아하지?’하고. 소설이나 만화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영화가 매혹의 강도가 더 커서 그럴까.. 이건 뭐 최면 걸어서 무의식에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냥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영화를 공부해보고 싶다 생각하는 건 좀 다르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허영이었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에너지도 없는데 시간은 넘치던 시기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 뭐 하나 싶어 근처 영화관에 갔다. 이수에 위치한 <아트나인>이었는데, 거기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감독,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됐다. 당연히 재미없었다. 그런데 그 재미없는 영화가 제법 있어 보이긴 해서, 재밌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더라. 근데 또 모르는 걸 안다고 거짓말하긴 싫으니까, 그렇게 영화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됐다
처음 전공은 국제관계학 쪽이었다. 역시 말로 명확하게 설명은 못 하겠지만,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던 그때,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하더라. 원래도 좋아했지만,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하루에 하나씩 꼬박꼬박 챙겨보고, 글도 보고, 영화비평학회 같은 곳에 찾아가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하던 공부도 재밌긴 했지만, 늦기 전에 영화를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 좋아했던 영화와 영화를 공부하며 좋아진 영화는 다를 것 같다
공부라는 단어가 다양한 과정과 의미를 포함한 말이다. 지금도 계속 공부하는 중이지만, 공부하면서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도 이 감독들이 싫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처음에 많이 봤던 영화의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 ‘기타노 다케시’, ‘짐 자무쉬’,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등등이다. 되게 좋아했었다. ‘짱이다’ 이러면서. 그게 한 20살, 21살 정도였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다른 영화나 책을 많이 보게 됐고, 저 영화들을 그때만큼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좋아하지만, 보다 거리를 두고 본다. 이제는 영화를 보고 ‘우와’ 하는 빈도 자체가 많이 줄었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엔 영화를 보면 매일매일이 감탄의 연속이었는데, 요즘엔 많이 줄었다는 얘기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쉽지도 않고. 최근엔 특정 장면이나 어떤 순간을 보며 ‘이건 정말 좋다’ 하는 정도다
그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해보면 영화에 관한 나름의 정의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영화를 정의해보자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정의할 수 있겠나
글쎄, 늘 고민하지만 역시나 어렵다. 그래도 해보자면 ‘희망을 증명하기 위해, 공간과 사람을 재료로, 시간을 주물러 보려는 시도’라고 해보겠다
가장 넓게 정의했을 때.. ‘움직이는 이미지’, ‘움직임을 내포한 이미지’는 모두 영화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가면 생각이 너무 붕 떠버리지 않나 싶지만, ‘손목시계에 초침이 움직이는 것도 영화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를 정의하는 게 너무 힘들어진다. 영화라는 집합에 들어갈 원소를 어디까지 끌어모을 것인가 하는 건 너무 어려운 문제다.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집합에 어디까지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영화가 뭘까란 질문과는 다르다. 그렇게 질문을 바꿔보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에 관한 얘기를 안 한다는 게 흥미롭다. 영화와 관련된 많은 사람은 영화에 관해 설명할 때 시간을 가장 먼저 꺼내 드니까. 나 역시도 방금 그랬고
영화에 관해 얘기할 때 시간을 끌어오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는 별개로 또다시 시작해야 할 고민의 한 지점이다. 중요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란 건 알고 있다
하나 더 나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재미난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의 차이야 취향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나는 좋은 영화와 잘못된 영화 혹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영화다. 다시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영화. 그게 영화 속 인물이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든, 누가됐든 다시 해볼 수 있게 만드는 거. 그런 의미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도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의 영화에 희망은 없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감독 본인을 살게 한다고 느껴졌다. 그럼 된 거란 생각이다. 나쁜 영화는 아무런 고민 없이 희망만 덕지덕지 발라 놓았거나,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고
왜 이런 질문들을 나한테 하는 건가.. 좋은 영화라는 게 있다는 전제를 해보자. 거기서 출발해 좋은 영화의 반대말은 뭘까 묻는다면, 당신은 나쁜 영화라고 했고, 나는 일단 별로인 영화, 또는 덜 좋은 영화라고 하겠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한 편에 좋은 영화가 있고, 반대편엔 별로인 영화가 있다고 해야 사고가 좀 더 수월해질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고의 과정에서 ‘프랑수아 트뤼포’를 참고하고 싶다, 참고한다고 말하는 건, 내가 정말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여전히 답이 명확하게는 있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트뤼포’가 했던 얘기 또는 썼던 글을 참고하겠다는 거다. ‘트뤼포’처럼 생각한다거나, 트뤼포를 따라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50년대 ‘트뤼포’가 썼던 글들을 참고해보면 그때 ‘트뤼포’에겐 영화 안에 좋은 가치, 좋은 세계관, 좋은 윤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던 거 같고. 나쁜 가치관이 있는 영화는 저주하며 싫어했다. 그럼 또 좋은 가치관은 뭐고, 나쁜 가치관은 뭐냐. 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상대의 가치관을 까내려도 되냐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정리가 안 되는데, ‘트뤼포’를 참고해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정도로 알아주면 좋겠다
이걸 물어보려고 앞의 그 거창한 것들을 물어봤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를 틀기 위해 애쓰는 극장일 것이고, 상영될 영화를 고르고, 소개하는 일을 하는 게 프로그래머인 당신의 일이다. 당신의 업무에 대해 좀 말해 달라
극장은 일 년 내내 운영되는 공간이고, 그다음 해에도 운영해야 하는 공간이니 연속성을 가진다. 또 어떤 계획이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예산도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항상 내일을 생각하며 여력을 남겨두기도 해야 하고. 느린 리듬으로 일한다. 프로그램 기획하고, 어떤 영화 틀지 결정하고, 작품 수급하고, 뭐 그런 업무는 모든 프로그래머가 공통으로 할 거다. 우리 극장은 작은 극장이니까 멀티로 해야 하는 게 많다. 창구에서 관객에게 표도 발권해야 하고, 가끔이지만 영화 상영도 직접 했다. 또 행사 진행도 하고, 필요하면 글도 쓴다. 되게 다양한, 극장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한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극장에서 일하는 직원 모두가 그렇다
약 8년 전 진행했던 다른 인터뷰에서 김성욱 선생님이 전체적인 기획을 맡으시고, 당신과 다른 프로그래머가 의견을 더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진가
마찬가지다. 그 인터뷰 당시에 일했던 구성원이 지금도 그대로 일하고 있다. 김성욱 선생님이 전체 기획을 하시면 디테일을 우리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근데 이게 뭐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거 있어?’ 말하며 다가오시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런 과정이다
로카르노 인 서울 / 수요 단편 극장 / 시네 바캉스 / 친구들 영화제 / 베니스 인 서울 등 오랜 시간 서울아트시네마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이 있다. 가장 아끼는 프로그램은 뭔가
약 3년 정도 전에 했던 프로그램 중에 <영화 밖의 영화>란 게 있었다. 극장 개봉용 영화가 아닌,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상영됐던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재밌었다. 소위 말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오셔서 보기도 했고. 또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준비했던 “합동영화사와 함께”도 기억난다. 서울극장을 세운 영화사가 합동영화사다. 합동영화사가 제작한 60년대 작품을 21세기의 서울극장에서 다시 필름으로 상영하는 게 정말 좋았다. 현재 합동영화사 회장님이신 고은아 배우님이 시네토크를 하기도 했다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둘 사이를 두고 어떤 고민이 오가나
많은 관객이 오는 거 정말 중요하다. 규모의 문제이지 않을까. 대규모 멀티플렉스라면 구체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관객이 많이 오는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을 짜는 단계에서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고민을 할 거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엔, 물론 관객이 많이 드는 것에 관한 고민은 하지만, 우리 극장을 찾는 관객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으신 분들이랄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상영하면 관객들이 많이 온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걸 틀면 관객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게 있다면 한국 독립 영화. 어떻게 해야 한국 독립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볼까 하는 고민은 늘 한다. GV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설 때 마주하는 풍경도 좋아한다. 극장 밖을 나서면 눈앞엔 주황색 포장마차가 줄지어 서 있고, 거기엔 내가 극장 안에서 영화와 보낸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머릿속에선 방금 봤던 영화가 여전히 재생되는데, 그럴 때 나는 현실과 영화 사이 어디쯤 있는 완충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사하고 나면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굉장히 아쉽기도 하다. 특별히 기억날 것 같은 극장을 둘러싼 풍경이 있나
내 기억에 특별하게 남아 있는 극장은 비교적 낡고, 오래된 극장이 많다. 아까 말했던 대구의 <동성 아트홀>이 그렇고. 그곳도 영화 보고 나오면 어둡고, 약간 무섭기까지 한 풍경이다. 또는 과거 요트경기장 앞에 있던 부산의 <시네마테크> 그 극장도 영화 보고 나오면 컴컴하니 그랬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와 있는 <서울극장>은 60년대부터 있었던 건물을 계속 증축한 거라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공간이 많다. 건물 안을 따라 걷다 보면 한 건물 안에서도 구역에 따라 시간대가 다르다.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해 있는 공간이라 이상한 극장, 이상한 이미지가 제일 많이 떠오를 것 같다. 관객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상영관 뒤쪽으로 있는 비상구에 갔을 때보게 되는 종로의 풍경, <서울극장> 주변의 고양이 밥 주는 분들이 있는 골목. 그런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무실에 창문이 없어서 일하다 답답하면 주변을 걷곤 하는데, 그때 봤던 골목들도 떠오를 것 같고. 5층에 올라갔을 때 보이는 종로의 전경도 생각나겠다. 근데 뭐가 떠오를지는 떠나봐야 알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기억과 이미지가 다 섞여 있다. 게다가 <서울극장>이 떠난 뒤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불 꺼진 극장의 서글픈 이미지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서울아트시네마> 종로3가 시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함께했다. 그 시간을 잡아채듯 빠르게 쭉 훑어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곳을 떠나는 게 정해진 상황에서.. 부정적인 형용사를 쓰고 싶진 않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얘기를 쭉 하고 있지만, <서울극장>이 사라지는 것에 관한 생각과 분리하기가 쉽진 않다. 그건 정말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근데 또 그것과는 별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른 곳으로 가 열심히 할 생각이라 두근두근하는 마음도 있다. 새로운 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동네에 새로운 건물에 자리 잡는 서울아트시네마는 분명 또 다른 시작을 해야만 할 거다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나
옮겨 갔다 해서 <서울아트시네마>가 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다. 하던 걸 꿋꿋이 계속 잘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인 바람은 코로나가 내년부턴 조금 나아진다고 예상할 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느슨하고, 유연한 관객 공동체가 든든하게 생기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극장을 둘러싼 좋은 기억들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21년 11월 23일의 대화
끊어놓은 영화 시간 보다 일찍 극장에 도착할 때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투명한 막 뒤의 비좁은 창구에 앉아, 예약번호를 듣고 표를 내어주는 사람. 그렇게 관객이 받아든 티켓을 확인하고 좌석으로 안내하는 사람. 스크린을 비추는 빛의 시작점인 영사기 뒤에서 상영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 상영관에 불이 꺼지면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는 사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제 내가 곧 만날 영화를 오늘 이 시간에 틀겠다고 결정한 사람까지. 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큰 덩어린지,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에도, 상영하고 감상하는 것에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믿고 싶어진다. 좋은 영화를 만든 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좋은 영화를 보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거라고. 그리고 좋은 영화를 트는 극장은 좋은 극장이니, 좋은 극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이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거라고. 지금 반복해서 말한 '좋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안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는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제는 종로3가를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순간을 어떻게든 기록해놓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좋은'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대화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종로3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래머 '김보년'을 만나 '좋은'에 관하여 차분히 얘기했던 소설이었다.
절기로 어제가 ‘소설’이었는데, 오늘부터 기온이 거짓말처럼 급격히 떨어졌다. 겨울을 좋아하는 편인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나는 어렵다. 그래도 편하게 해보겠다. 편하게 해보겠다는 말을 아마 대화 끝까지 할 거 같다. 겨울.. 겨울 좋아한다.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겨울은 벌레가 별로 없어서 마음이 편해 좋아한다. 너무 건조한 건 싫긴 하지만, 습한 것보단 낫다. 또 겨울에는 옷을 많이 입으니 주머니가 많다. 주머니가 많아 편한 것도 좋다. 여름엔 아무래도 옷이 얇으니까, 자세라던지, 배가 좀 나온 거라던지, 그런 걸 신경 쓰게 되는데, 겨울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써도 되니, 그런 게 겨울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추운 건 되게 싫지만, 또 겨울만의 장점도 많이 있으니, 이렇게 추운 것도 받아들이자 생각하고 있다. 오늘 정말 춥긴 했다
대답을 충분히 잘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난 ‘안 좋아한다’ 하고 끝날까봐 걱정했는데, 훌륭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특정한 시기나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기도 하지 않나. 겨울에 어떤 영화를 생각하나. 나는 겨울이 되면 ‘레오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떠올린다. 특히 ‘드니 라방’이 쭉 미끄러져 ‘줄리엣 비노쉬’의 다리 사이에서 멈추는 그 장면
겨울을 제일 잘 표현한 것 같은 영화는.. 역시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가 있고, 또 ‘이만희’ 감독님 영화를 보면 겨울이 정말 춥게, 그러면서도 예쁘게 있는 것 같다. ‘에릭 로메르’의 <겨울 이야기>는 너무 모범답안이고.. 지금은 겨울을 따뜻하게 담은 영화 보다 춥게 담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겨울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나는 그 중 <북촌방향>과 <북촌방향>에 나오는 겨울을 그의 영화와 영화 속 겨울 중 가장 좋아한다. 당신은 어떤가
<옥희의 영화>에 나온 겨울도 정말 좋았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겨울을 보면, 물론 다른 감독님들의 영화도 그렇지만, 진짜 추워하는 게 보인다. 그게 좋다. <북촌방향>도 아름다웠고, <그 후>에서 ‘김민희’가 택시 타고 가다 창문을 내렸을 때 눈이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장면은 따뜻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겨울이 아니면 못 찍는 장면이니까. 또 어디에 겨울이 있었나.. 아, <오! 수정>도 있었다. <오! 수정>에선 물이 얼었다는 질감을 되게 잘 보여주는데 그런 것도 생각나고. 추워하는 걸 잘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 지금은 생각난다
만약 당신이 겨울을 찍는다면 어떤 걸 찍고 싶나
내가 겨울을 찍는다 그러면 제일 디테일한 것들을 찍게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내복, 나는 내복을 입는데, 영화에서 내복 입은 사람을 잘 보지 못한 거 같다. 어르신들 빼고는. 근데 난 나 말고도 내복을 입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도 한번 찍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막 이미지들이 떠오르는데 그런 건 다른 영화에서 많이 봤던, 그 영화들이 나에게 심어준 이미지이기 때문에.. 지금 딱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다. 염화칼슘 뿌리는 거? 그런 장면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겨울의 <서울아트시네마> 근처는 유독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근처 노인들이 많은데, 그 노인들의 남루한 행색이 눈에 자주 밟힌다. 낡아 있는 외투나, 찬 바람에 갈라진 손, 추위를 피해 바삐 걷지만 빨리 움직이지 않는 다리 같은 것들이. <서울 아트시네마> 맞은편의 포장마차도 비교적 한산해지고, 주황색 비닐도 바람을 막느라 모두 내려가 있어 단절된 느낌을 준다. 요즘 출퇴근길에 어떤 생각을 하나
종로3가, 4가는 특별한 공간이다. 방금 어르신들 얘기를 했는데, 어르신들의 활동 시간은 아무래도 오전부터 이른 저녁까지인 경우가 많다. 홍대나 강남은 저녁부터 시작이겠지. 하지만 종로3가는 그 시간이 되면 다 빠져나간다. 물론 조금만 더 가서 종각까지 가면 사람이 많지만, 저녁 또는 밤 시간의 종로3가, 4가는 한적한 느낌이 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에 있을 땐, 거긴 정말 극장 빼면 다 상가니까 상인 분들 퇴근하고 나면 아무도 없었는데, 여기도 <서울극장>이 문 닫고 난 뒤에는 싫을 정도로 썰렁하다. 옛날엔 그 썰렁한 느낌이 좋았는데, 이 정도로 썰렁해지니까 싫더라. 하지만 우리가 극장 중심으로 이 지역을 생각하니 밤이 되면 썰렁하다고 얘기하는 거기도 하다. 조금만 움직여 을지로나 익선동으로 가면 생활의 리듬이 확 바뀐다. 익선동 쪽은 또 옛날부터 게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골목에 들어가 보면 불빛이 있고, 되게 시끄럽다. 거기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걸 기준으로 종로를 보면 내가 방금 어르신들의 생활 리듬과 극장의 관점에서 종로에 관해 얘기한 건 거짓말이 된다. 종로 3가는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런 측면에서 조금 이상한 공간은 맞는 거 같다. 근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출퇴근길에 하는 생각
요즘은 종묘 쪽에서 버스를 내려 3분에서 5분 정도 걸어온다. 식당들이 보고 싶을 땐 피맛골 쪽으로 오고, 아닐 땐 큰길로 걷는다. 옛날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싫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코로나. 코로나가 생기고, 보이던 어르신이 확 줄었다. 그게 좀 서글펐고, 두 번째는 우리 극장이 이사를 가게 되니까. 아마 종로가 아닌 쪽으로 가게 될 텐데,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에 있을 때부터 종로를 다닌 걸 생각하면 2007년부터가 된다. 극장이 이사 가면 이제는 이 풍경을 예전처럼 못 보겠구나 생각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여기 없으면 내가 뭐 여기 올 일이 뭐 있겠냐. 많이 봐 놓아야 하겠다 생각한다. 밤에는 진짜 썰렁하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조용해서 좋기도 한데, 사람이 너무 없으니 역시나 쓸쓸하기도 하다. 근데 또 익선동이나 을지로 쪽으로 가면 난리니까 ‘가게 좀 그만 생겨라’ 생각하기도 하고. 도시에 감정이입을 하면 밤에는 좀 쉬게 놔둬도 될 거 같은데, 가게들이 다 들어서서 그러고 있으니까. 어느 방향으로 퇴근하느냐에 따라 감상이 바뀐다
<서울아트시네마> 첫 출근은 낙원 때겠지만, 오늘은 종로3가의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니까. 여기로 첫 출근할 때의 기억이 아직 있나
출근이 기억난다기보단, 이사를 직접 했기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쨌든,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던 낙원의 <허리우드 극장>은 물론 좋은 기억이 많지만, 시설이 아주 낡은 극장이었다. 그에 비해 <서울극장>은 나름 멀티플렉스였으니까, 되게 좋았다. 화장실이 깔끔해지고,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극장 앞에 편의점도 있고. 관객들이 더욱 편하게 찾아주시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멀티플렉스라 정신없는 점이 아쉬운 것도 분명 있었지만, 그런 부분도 활력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관객으로서 <서울아트시네마>에 처음 왔을 땐 어땠나. 2007년 정도가 처음인 걸로 안다. 물론 그때는 극장이 낙원에 있을 때고
2007년에 학교 때문에 처음 서울로 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드디어 왔다 하는 마음이었다. 고향인 대구에선 아무래도 보기 힘든 영화를 많이 트니까. 극장이 낡았다는 생각도 별로 안 했다. 대구에서 갔던 극장인 <동성 아트홀>이 더 낡았었으니까. 나에겐 다 새로운 것이어서 ‘와! 좋다!’ 딱 그거였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순간으로 가보자.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했나
TV를 늘 좋아했고, 움직이는 이미지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 자주 자문을 해보는 질문이긴 하다. ‘왜 영화를 좋아하지?’하고. 소설이나 만화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영화가 매혹의 강도가 더 커서 그럴까.. 이건 뭐 최면 걸어서 무의식에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냥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영화를 공부해보고 싶다 생각하는 건 좀 다르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허영이었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에너지도 없는데 시간은 넘치던 시기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 뭐 하나 싶어 근처 영화관에 갔다. 이수에 위치한 <아트나인>이었는데, 거기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감독,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됐다. 당연히 재미없었다. 그런데 그 재미없는 영화가 제법 있어 보이긴 해서, 재밌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더라. 근데 또 모르는 걸 안다고 거짓말하긴 싫으니까, 그렇게 영화 공부를 조금씩 하게 됐다
처음 전공은 국제관계학 쪽이었다. 역시 말로 명확하게 설명은 못 하겠지만,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던 그때,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하더라. 원래도 좋아했지만,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하루에 하나씩 꼬박꼬박 챙겨보고, 글도 보고, 영화비평학회 같은 곳에 찾아가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하던 공부도 재밌긴 했지만, 늦기 전에 영화를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 좋아했던 영화와 영화를 공부하며 좋아진 영화는 다를 것 같다
공부라는 단어가 다양한 과정과 의미를 포함한 말이다. 지금도 계속 공부하는 중이지만, 공부하면서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도 이 감독들이 싫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처음에 많이 봤던 영화의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 ‘기타노 다케시’, ‘짐 자무쉬’,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등등이다. 되게 좋아했었다. ‘짱이다’ 이러면서. 그게 한 20살, 21살 정도였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다른 영화나 책을 많이 보게 됐고, 저 영화들을 그때만큼 좋아하진 않는다. 물론 좋아하지만, 보다 거리를 두고 본다. 이제는 영화를 보고 ‘우와’ 하는 빈도 자체가 많이 줄었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엔 영화를 보면 매일매일이 감탄의 연속이었는데, 요즘엔 많이 줄었다는 얘기다.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쉽지도 않고. 최근엔 특정 장면이나 어떤 순간을 보며 ‘이건 정말 좋다’ 하는 정도다
그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해보면 영화에 관한 나름의 정의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영화를 정의해보자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정의할 수 있겠나
글쎄, 늘 고민하지만 역시나 어렵다. 그래도 해보자면 ‘희망을 증명하기 위해, 공간과 사람을 재료로, 시간을 주물러 보려는 시도’라고 해보겠다
가장 넓게 정의했을 때.. ‘움직이는 이미지’, ‘움직임을 내포한 이미지’는 모두 영화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가면 생각이 너무 붕 떠버리지 않나 싶지만, ‘손목시계에 초침이 움직이는 것도 영화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를 정의하는 게 너무 힘들어진다. 영화라는 집합에 들어갈 원소를 어디까지 끌어모을 것인가 하는 건 너무 어려운 문제다.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화라는 집합에 어디까지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영화가 뭘까란 질문과는 다르다. 그렇게 질문을 바꿔보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에 관한 얘기를 안 한다는 게 흥미롭다. 영화와 관련된 많은 사람은 영화에 관해 설명할 때 시간을 가장 먼저 꺼내 드니까. 나 역시도 방금 그랬고
영화에 관해 얘기할 때 시간을 끌어오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는 별개로 또다시 시작해야 할 고민의 한 지점이다. 중요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란 건 알고 있다
하나 더 나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재미난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의 차이야 취향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나는 좋은 영화와 잘못된 영화 혹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영화다. 다시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영화. 그게 영화 속 인물이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든, 누가됐든 다시 해볼 수 있게 만드는 거. 그런 의미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도 좋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의 영화에 희망은 없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감독 본인을 살게 한다고 느껴졌다. 그럼 된 거란 생각이다. 나쁜 영화는 아무런 고민 없이 희망만 덕지덕지 발라 놓았거나,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고
왜 이런 질문들을 나한테 하는 건가.. 좋은 영화라는 게 있다는 전제를 해보자. 거기서 출발해 좋은 영화의 반대말은 뭘까 묻는다면, 당신은 나쁜 영화라고 했고, 나는 일단 별로인 영화, 또는 덜 좋은 영화라고 하겠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한 편에 좋은 영화가 있고, 반대편엔 별로인 영화가 있다고 해야 사고가 좀 더 수월해질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고의 과정에서 ‘프랑수아 트뤼포’를 참고하고 싶다, 참고한다고 말하는 건, 내가 정말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여전히 답이 명확하게는 있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트뤼포’가 했던 얘기 또는 썼던 글을 참고하겠다는 거다. ‘트뤼포’처럼 생각한다거나, 트뤼포를 따라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50년대 ‘트뤼포’가 썼던 글들을 참고해보면 그때 ‘트뤼포’에겐 영화 안에 좋은 가치, 좋은 세계관, 좋은 윤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했던 거 같고. 나쁜 가치관이 있는 영화는 저주하며 싫어했다. 그럼 또 좋은 가치관은 뭐고, 나쁜 가치관은 뭐냐. 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상대의 가치관을 까내려도 되냐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정리가 안 되는데, ‘트뤼포’를 참고해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정도로 알아주면 좋겠다
이걸 물어보려고 앞의 그 거창한 것들을 물어봤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좋은 영화를 틀기 위해 애쓰는 극장일 것이고, 상영될 영화를 고르고, 소개하는 일을 하는 게 프로그래머인 당신의 일이다. 당신의 업무에 대해 좀 말해 달라
극장은 일 년 내내 운영되는 공간이고, 그다음 해에도 운영해야 하는 공간이니 연속성을 가진다. 또 어떤 계획이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예산도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항상 내일을 생각하며 여력을 남겨두기도 해야 하고. 느린 리듬으로 일한다. 프로그램 기획하고, 어떤 영화 틀지 결정하고, 작품 수급하고, 뭐 그런 업무는 모든 프로그래머가 공통으로 할 거다. 우리 극장은 작은 극장이니까 멀티로 해야 하는 게 많다. 창구에서 관객에게 표도 발권해야 하고, 가끔이지만 영화 상영도 직접 했다. 또 행사 진행도 하고, 필요하면 글도 쓴다. 되게 다양한, 극장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한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극장에서 일하는 직원 모두가 그렇다
약 8년 전 진행했던 다른 인터뷰에서 김성욱 선생님이 전체적인 기획을 맡으시고, 당신과 다른 프로그래머가 의견을 더하는 식으로 진행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진가
마찬가지다. 그 인터뷰 당시에 일했던 구성원이 지금도 그대로 일하고 있다. 김성욱 선생님이 전체 기획을 하시면 디테일을 우리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근데 이게 뭐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거 있어?’ 말하며 다가오시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런 과정이다
로카르노 인 서울 / 수요 단편 극장 / 시네 바캉스 / 친구들 영화제 / 베니스 인 서울 등 오랜 시간 서울아트시네마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이 있다. 가장 아끼는 프로그램은 뭔가
약 3년 정도 전에 했던 프로그램 중에 <영화 밖의 영화>란 게 있었다. 극장 개봉용 영화가 아닌,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상영됐던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재밌었다. 소위 말하는 작가님들이 많이 오셔서 보기도 했고. 또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준비했던 “합동영화사와 함께”도 기억난다. 서울극장을 세운 영화사가 합동영화사다. 합동영화사가 제작한 60년대 작품을 21세기의 서울극장에서 다시 필름으로 상영하는 게 정말 좋았다. 현재 합동영화사 회장님이신 고은아 배우님이 시네토크를 하기도 했다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둘 사이를 두고 어떤 고민이 오가나
많은 관객이 오는 거 정말 중요하다. 규모의 문제이지 않을까. 대규모 멀티플렉스라면 구체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관객이 많이 오는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을 짜는 단계에서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고민을 할 거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엔, 물론 관객이 많이 드는 것에 관한 고민은 하지만, 우리 극장을 찾는 관객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으신 분들이랄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상영하면 관객들이 많이 온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걸 틀면 관객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게 있다면 한국 독립 영화. 어떻게 해야 한국 독립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볼까 하는 고민은 늘 한다. GV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설 때 마주하는 풍경도 좋아한다. 극장 밖을 나서면 눈앞엔 주황색 포장마차가 줄지어 서 있고, 거기엔 내가 극장 안에서 영화와 보낸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머릿속에선 방금 봤던 영화가 여전히 재생되는데, 그럴 때 나는 현실과 영화 사이 어디쯤 있는 완충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사하고 나면 이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굉장히 아쉽기도 하다. 특별히 기억날 것 같은 극장을 둘러싼 풍경이 있나
내 기억에 특별하게 남아 있는 극장은 비교적 낡고, 오래된 극장이 많다. 아까 말했던 대구의 <동성 아트홀>이 그렇고. 그곳도 영화 보고 나오면 어둡고, 약간 무섭기까지 한 풍경이다. 또는 과거 요트경기장 앞에 있던 부산의 <시네마테크> 그 극장도 영화 보고 나오면 컴컴하니 그랬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들어와 있는 <서울극장>은 60년대부터 있었던 건물을 계속 증축한 거라 말도 안 되게 이상한 공간이 많다. 건물 안을 따라 걷다 보면 한 건물 안에서도 구역에 따라 시간대가 다르다.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해 있는 공간이라 이상한 극장, 이상한 이미지가 제일 많이 떠오를 것 같다. 관객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상영관 뒤쪽으로 있는 비상구에 갔을 때보게 되는 종로의 풍경, <서울극장> 주변의 고양이 밥 주는 분들이 있는 골목. 그런 것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무실에 창문이 없어서 일하다 답답하면 주변을 걷곤 하는데, 그때 봤던 골목들도 떠오를 것 같고. 5층에 올라갔을 때 보이는 종로의 전경도 생각나겠다. 근데 뭐가 떠오를지는 떠나봐야 알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기억과 이미지가 다 섞여 있다. 게다가 <서울극장>이 떠난 뒤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있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불 꺼진 극장의 서글픈 이미지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서울아트시네마> 종로3가 시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함께했다. 그 시간을 잡아채듯 빠르게 쭉 훑어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곳을 떠나는 게 정해진 상황에서.. 부정적인 형용사를 쓰고 싶진 않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얘기를 쭉 하고 있지만, <서울극장>이 사라지는 것에 관한 생각과 분리하기가 쉽진 않다. 그건 정말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근데 또 그것과는 별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른 곳으로 가 열심히 할 생각이라 두근두근하는 마음도 있다. 새로운 것에서 새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동네에 새로운 건물에 자리 잡는 서울아트시네마는 분명 또 다른 시작을 해야만 할 거다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나
옮겨 갔다 해서 <서울아트시네마>가 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다. 하던 걸 꿋꿋이 계속 잘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인 바람은 코로나가 내년부턴 조금 나아진다고 예상할 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느슨하고, 유연한 관객 공동체가 든든하게 생기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극장을 둘러싼 좋은 기억들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