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니"

2021년 9월 25일의 대화


20대의 작업을 보며 '뭐가 이리도 불안한가'란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이는 그 작업자에게 던지는 핀잔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그 질문이 도착하기 때문에 나오는 토로에 가깝다. 이런 시기가 시간이 흐른다 해서 자연스레 해결되는 건 아닐 거란 생각만이 점점 커지고, 날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상태가 주는 외로움이 자꾸만 빈약학 선택을 강요할 때, 그 빈약한 선택조차 하지 못하고 망설이게만 되는 그런 시기를 누구나 통과하게 된다. '원니'의 노래를 들으며 '원니'는 지금 그 시기의 절정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안정의 팻말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니'를 만나 동선동의 한 카페에 자리 잡았다.



지난날 저녁 6시에서 7시로 넘어가는 시간에 질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 즈음이라 낮과 저녁, 밤이 다 맞물려 있었고, ‘원니’의 음악을 틀었다. 최근 인터뷰를 준비하며 출퇴근길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원니’의 음악을 자주 들어왔지만, 어제 생각해보니 그 시간에 듣는 건 처음이었고, 그 시간이 다른 어느 시간대보다 ‘원니’의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루 중 언제를 가장 좋아하나

 

밤이 좋다. 아침을 누려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야행성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땐 지각도 많이 했고, 일과의 시작은 늘 낮이었다. 낮엔 친구를 만나거나 할 일을 하고,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밤이 되어서야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뭔가를 성취하며 뿌듯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좋다. 예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새벽이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작업이란 게 끝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새벽 시간에 작업을 이어가는 게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주더라. 그렇게 요즘엔 밤 시간대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새벽이 길어지는 날이 반복되는 것이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비슷한 경험을 나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 역시 내 육체와 정서의 건강을 위해 패턴을 바꾸자는 것이었는데, 조금 더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패턴을 바꾸자 정도의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꽤 건강해진 상태였다는 거다. 상태가 너무 안 좋을 때는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원니’는 최근 약 6개월 간격으로 계속 노래를 발표하고 있고, 무언가를 완성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에너지가 본인의 패턴을 바꿀 수 있도록 작용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음.. 그냥 단순히 ‘이렇게 계속 살다간 큰일이 나겠다’ 이런 생각 때문에 바뀐 거 같다. 아침에 자고, 이른 점심때 일어나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는데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나는 사람이 속해 있는 공간과 그 사람의 관계에 관하여 관심이 많다. 그런 까닭에 자신이 사는 동선동에 대해 적은 ‘원니’의 글이 반가웠고, 그 글은 인터뷰를 해야겠다 마음먹게 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동선동으로 터를 옮긴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동선동은 어떤 곳인가

 

동선동에 오기 전엔 대치동에서 컸다. 그곳에선 안식처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살았음에도 친한 주민이라던지, 친한 가게 사장님이 생긴다던지 하는 경우도 없었다. 대치동은 학원이 아주 많고, 나 역시도 학원에 다녔는데, 매일같이 봤던 학원 선생님조차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동선동에 오기 전까지는 딱히 동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향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의미를 가질까? 할 정도로. 처음 동선동을 선택한 것엔 큰 이유는 없었다. 강남에 오래 살았으니 강남이 아닌 곳으로 가자, 학교 근처지만 학교 바로 앞은 아닌 곳으로 가자 정도만 생각했다. 그렇게 우연히 자리 잡은 동네에서 집 앞 카페나 편의점 사장님과 친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처음으로 동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동선동에서 사는 시간이 대치동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게 만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선동은 주변에 북악산과 북한산, 인왕산이 있기에 시각적으로도 대치동과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런 환경과 풍경의 변화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없다고 할 수 없다. 대치동에선 꿈을 키우기가 정말 힘들었다.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똑같이 살고, 그 삶이 좋은 삶이라 믿어지며 강요되는 분위기가 있다. 조금만 다른 걸 하려고 하면 방황한다는 낙인을 찍는 곳이다. 그 당시에도 음악을 좋아했던 건 마찬가지였지만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동선동에 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이 조금 자유로워졌고, 그때야 내 곡을 처음 써볼 수 있었다. 취향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좋아했던 음악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나는 한 작업자의 작품들을 따라가 볼 때 이 사람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잘 꿰어지지 않는다거나, 너무 자주 바뀐다 느껴지면 작업에 대한 신뢰를 잃는 편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로 ‘원니’의 음악을 어떻게 엮어볼까 생각했을 때 처음 발표한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은 조금 튄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이 노래의 가사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져 있고, 이후 노래엔 영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악기의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보컬은 이 노래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을 들으며, 이 당시는 ‘원니’에게 좋은 음악을 만들자는 생각보단, 노래를 빨리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기도 했다.

 

이 노래를 처음 만든 건 약 3년 전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건반이 있었고, 그걸 치며 놀다가 자연스레 곡과 가사가 나왔다. 영어로 가사를 쓴 건,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당시 해외 팝을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 영어 가사가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 노래는 잠시 잊혀 있었다. 다시 이 노래를 생각한 건 작년인데, 고등학교 때 밴드를 같이 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연락이 와 요즘은 노래 안 만드냐고 물었다. 당시엔 음악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없다고 말했다가,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만들어 놓았던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이 생각났다. 그래서 친구에게 들려주게 됐고, 듣고 난 친구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가 좀 더 다듬어 보겠다고 했다. 난 마음에 든다고? 그래? 했고, 친구는 1주일 만에 지금 형태의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을 완성해왔다. 들어 보니 너무 신났고, 좋았다. 하지만 노래는 완성됐어도 이걸 뭐 어떻게 하겠단 생각은 없어서 혼자 간직해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꼭 어디에라도 올려야 된다 강조했고, 결국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게 됐다.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또 자기가 다 해줄 테니 음원을 내자고 했고, 그렇게 음원이 나오게 된 거다. 난 스튜디오에 가 노래만 녹음했다. 마지막 믹스, 마스터까지 모두 그 친구가 다 했다. 음원을 낼 당시엔 내 의지가 크게 들어간 것은 아니었는데 내고 나서 오히려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 너무 좋았다.

 

그럼 그전까지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본인을 규정하다가,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을 발표하고 나서부터 본인을 작업자, 직업인으로써 음악가로 정의하게 된 건가.

 

맞다. 그리고 그렇게 날 정의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반응이었다. 내 노래를 듣고 누군가 반응해준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한두 명이어도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음악을 듣고, 댓글도 남기고 한다는 것이 좋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때만 가사를 영어로 썼고, 이후엔 한글로만 가사를 쓴다.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과 그 이후 노래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영어가 별로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말이지만, 내 노래의 가사로 영어가 딱히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고.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다. 가사를 쓴다는 건 그 언어가 무엇이든 어려운 일이겠지만, 한글과 영어는 상반된 지점에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인상이지만, 영어는 경량하고, 선명한 언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의 가사 중 ‘you just stay with me, remember this moment’ 하면 귀엽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의 들뜸이 느껴지지만 같은 말을 한글로 ‘넌 그냥 내 옆에 있기만 해,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해’라고 하면 신파극이 되어버린다. 이를 크게 확장해 보면 동양과 서양의 표현 방식의 차이일 것이고, 좁혀 생각하면 한글이 가진 의미의 모호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글이란 언어 자체가 모호하기에 어떤 의미에 대해 직접 말해버리면 오히려 더욱 불완전하게 느껴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전달이라 여겨지며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달까. 난 ‘원니’의 노래가 <바람편지>, 보다 정확하게는 <모래성>부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고 느꼈기에 한글로만 이루어지는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어 보고 싶었다.

 

한 곡, 한 곡 낼 때마다 더 진지해졌다. 그 전의 마음이 진지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생각이 짧았다는 거다. 두 번째 노래인 <바람편지>부터 친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하게 된 건데, 이때는 애매하게만 아는 것들이 많은 상태로 노래가 나왔다. 노래를 듣는 나만의 틀도 어느 정도 있었고, 편곡도 할 줄 알았고, 뭐 시퀀스 프로그램도 다를 줄 알았지만 그 모든 게 다 애매했다. 그래서 틀만 갖춰진 상태에서 나온 노래라는 티가 좀 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운드 부분도 아쉬운 게 많았다. 그런 아쉬움들이 자연스레 음악에 관한 공부를 더 하자고 마음먹게 했고, <모래성>을 내기까지 더 많이 고민하고, 공부했다. 태도도 더 깐깐해졌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했던 것들을 다 다시 진중하게 점검했다. 작업 과정에서의 일부분만 얘기했지만, 노래를 만드는 전체적인 태도에 있어 훨씬 진지해지고 엄격해졌다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좋다.




 

‘원니’는 소개 글을 통해 자신이 왜 노래를 만들었는지 자세히 얘기하는 편이다. 따라서 각 노래에 관한 얘기보단 전체에 걸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우리가 사랑을 찾은 날>을 제외하고 다른 네 곡을 관통하는 단어는 아쉬움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처음엔 그리움인가 했지만, 곧 아쉬움이 더 정확한 말이란 판단을 했다. 내게 그리움과 아쉬움의 차이는 다시 시도하는 것에 관한 가능성의 존재 유무다. 그리움은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고 감정이고, 아쉬움은 그 아쉬움을 깨달았다면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감정이다. ‘원니’의 노래에 대한 이런 정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실 내 노래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늘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한없이 우울하기만 한 노래보단 그 끝에 가능성이 있는 노래를 만들자는 거였다. <모래성>은 마지막 가사인 ‘그냥 내게 남아줘’가 구체화하며 만들어진 노래다. 이제 상대가 없는 건 맞지만, 내게 슬픔을 줘도 좋으니 내 옆에 남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존재가 없다 해서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에 낸 <사람들은 무심하고도 무서웠다>에서도 아웃트로에 다다랐을 때, 장조로 반전을 주며 분위기를 전환해 끝을 내고 싶었다. 늘 그렇게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많이 생각한다.

 

아쉬움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가, 그리움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인가

 

그리움이다. 그리움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에 아쉬움에 관하여 얘기하려 한다.

 

노래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원니’의 노래는 우선 스스로를 홀로 고립시킨 체 생각에 잠기게 만든 뒤, 아쉬움을 깨닫고, 깨달은 아쉬움을 돌이켜보려는 힘으로 일어나며 노래가 끝마쳐지는 것 같다. 노래가 이렇다면 실제 일상에서 아쉬운 순간을 깨달을 땐 어떻게 대처하나. 아쉬운 일을 되돌리는 건, 이미 찢어진 부분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고, 상대가 있는 경우라면 상대의 생각은 알 수 없기에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랑에 관련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사랑하며 아쉬운 일이 생기면 아쉬움이 사라질 때까지 어떻게든 노력해보는 것 같다. 상대가 못 느낀다고 할지라도 나 스스로 하는 노력이 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한 끝에 상대에게 노력했음을 얘기해보게 되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아쉬움이 사라지는지 계속 남는지 결정된다.

 


지금부턴 노래와 브런치에 써 온 글을 엮어 얘기를 나눠보자. 노래에도 가끔 ‘너’라는 상대가 등장하고, 글에도 ‘그’라는 상대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너’와 ‘그’는 실존하는 특정 인물이라고 느껴지기보단 ‘원니’가 기다리고 있는 어떤 지점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생각됐다.

 

내 노래는 결국 다 내 얘기니, 그냥 내 얘기를 해보자면 요즘은 더욱 확실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성인이 돼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아주 자유로운 동시에 주관이 뚜렷한, 그런 분명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늘 스스로를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지금 대화는 음악가 ‘원니’의 정체성으로 임하고 있지만, 친구들 사이에 가면 그냥 대학생 중 한 명이 되고, 또 다른 무리에 가면 또 다른 정체성이 부여된다. 예전엔 나의 이런 면이 장점이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좀 더 확실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마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라서 더욱 그럴 거다. 가끔 주변에서 조금 더 음악을 열심히 하면 안 되냐는 얘기를 듣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가가 아닌 다른 정체성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겐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런 게 답답하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게 아닌, 뭔가 하나에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

 

어디에도 단단히 결속되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이, ‘원니’가 글을 쓸 때 ‘하더라’란 구어체 형태의 끝맺음을 불쑥 등장시키는 배경이 아닐까 짐작해 봤다. 노래야 당연히 수신자가 불특정 다수라 할지라도 존재하지만,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일기에 가깝게 느껴짐에도 언젠가 ‘원니’에게 닿을 수신자를 바라며 쓴 것만 같았다. 본인이 ‘하더라’를 자주 쓴다는 걸 알고 있나? 알고 있다면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최근에 글을 쓰는 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글을 쓴 계기였다. 그때 ‘하더라’를 많이 쓴다는 걸 알았고, 프로젝트에서 글의 첨삭을 담당했던 분도 역시 알아챘다. 당연히 그분은 내게 평서문으로 끝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지만 난 그냥 그대로 두었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구어체로 썼을 때 내 마음이 더 잘 전달된다고 느꼈다. 꼭 써야만 하는 내 생각이 나올 때 자연스레 구어체가 등장했다.

 

글은 가사에 비해 훨씬 긴 분량이어서 설명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단어는 가사의 단어들보다 색이 훨씬 선명하다. 본질, 진실, 암흑, 횃불, 상처, 외로움 등등. 현재 20대의 절반을 통과하고 있는데, 누구나 한번은, 훗날 돌이켜 보면 다소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시기엔 그럼에도 이런 말들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열병을 앓는 시기를 지나는 것 같다. 요즘이 그런 때일까.

 

맞는 거 같다. 어릴 때부터 외로움과 공허함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걸 건강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최근에야 발견했다. 우선 관계와 그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 큰 힘이 되고, 노래와 글이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다’는 식의 문장도 많은데 이 말엔 자신과 ‘사람들’이라 지칭되는 불특정 다수를 구분 짓고자 하는 욕망이 깔려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이 꼭 남을 업신여기고 싶어서라기보단, 우리는 자신을 객관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남과 비교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남을 흉보고 깎아내리며 내 안에 있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칭찬해주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아 보였다. 다른 사람을 보며 난 왜 저럴 수 없을까하는 구별을 많이 지었다. 주변의 영향으로 내가 품은 꿈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부러움이 더 컸다.

 

‘원니’는 글보단 아무래도 영상이, 음악도 어쿠스틱보단 전자음악이 더 익숙한 세대다. 그럼에도 원니의 음악이나 글에선 그런 취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오래 지속하여온 취향인가 아니면 계기가 있었나.

 

아이돌 음악도 많이 듣고, 유행하는 해외팝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음악을 만들 땐 그런 취향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엔 워낙 다양한 취향과 장르가 뒤섞이니까 내가 발표한 음악 스타일을 지속하는 것에 망설여지는 것도 딱히 없다. 5년 전, 처음 시퀀스를 배울 땐 올드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가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엔 지금의 음악 스타일이 맞다는 판단이 든다.

 

영화도 좋아하나? 좋아한다면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음.. 사실 영화를 많이 보진 않는다. 그래도 최근에 좋게 봤던 건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윤희에게>다. <윤희에게>를 보며 영화를 왜 즐겨 보지 않았나 깨닫게 됐다. 영화는 스크린에 주어지는 이미지를 바로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근데 난 그 속도가 좀 느린 편이고, 그러다 보니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윤희에게>를 보고 나와 <윤희에게>의 O.S.T를 들었을 때 <윤희에게>가 훨씬 더 풍부하게 이해되는 경험을 했다. 음악을 들으며 봤던 장면을 상상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얘기다.

 

 


이제 정말 막바지다. 완성돼 발표까지 끝마치는 노래들을 기준으로 해서, 원니의 노래는 어디서 시작하나

 

내 노래는 다 내 경험에서 나온다. 실제로 한 경험에 이미지를 덧붙여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모래성>은 나와 함께했던 강아지, 고양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감정에 모래성이란 이미지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경험이라 해서 모든 경험이 노래가 되는 건 아니다. 잊히지 않는 기억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새기게 되는 기억들이 노래가 된다. 그 말은 어떤 경험을 노래로 만들 때, 그 경험 직후엔 만들 수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은 긴 시간을 하나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인데, 아직 감정이 너무 격한 상태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원니’의 노래를 들으며 백예린, 선우정아, 장필순 등을 생각했다. 그리고 ‘원니’가 지금 지나고 있는 불안의 시기를 통과하면 ‘원니’의 노래에서 위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 걷히고, ‘원니’의 색이 더욱더 선명히 자리 잡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그때 정규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 정규 앨범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그것이 불안의 시기에 대한 정리여도 좋고,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여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쉬지 않고 짧은 주기로 노래를 내왔다. 그리고 이번 더블 싱글을 냈을 때, 조금 쉬면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내고 나면 늘 새로운 다음 것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았는데, 이번엔 조금 쉬며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 음악도 많이 듣고, 연습도 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공연에 대한 욕심도 있기 때문에 공연 준비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올해는 훌쩍 지나가지 않을까.


사진 신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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