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과 함께 해주신 분들께.

2023년 8월 16일의 대화


오늘을 끝으로 <대화록>은 진행을 마칩니다.


2021년 9월의 초입이었습니다. 매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가던 당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아리랑시네센터에서 기주봉 배우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체 프로그램 중 일부 몇 작품의 상영 후엔 기주봉 배우가 참석하는 GV가 예정돼 있다는 정보가 포함된 소식이었습니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통해 그를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예의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그가 실제로 말할 때의 자세, 태도, 뉘앙스 같은 것들이 궁금해져 시간이 맞는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그렇게 예매한 영화는 <윤희에게>로 널리 알려진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였고, 흑백영화라는 것, 기주봉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가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정보 정도만 가지고 극장 내 상영관 의자에 앉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우는 일이 제겐 잘 없는 일인데, 그날은 왜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지, 가끔 다시 그날을 더듬으며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한 쇼트 한 쇼트 빠짐없이 제게 달라붙었고, 영화가 끝날 때쯤, 눈물의 이유를 찾는 걸 포기한 제게 남은 생각은 그저 이 영화를 최대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주봉 배우를 보러 갔던 날이었지만, 기주봉 배우와 관련된 기억은 주차장 구석에서 소탈하게 담배를 태우며 임대형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모습이 전부입니다. 모르는 이의 사적인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고,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저는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집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되새겼고, 되새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영화처럼, 제가 좋아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좀 더 알려졌으면 하는 영화가, 음악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 그 영화를, 음악을, 글을, 찍고, 만들고, 쓰는 사람들이 작업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건 아마 멈추지 않는 그들에게 힘을 얻어 저 또한 멈추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대화록>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인터뷰 전문 웹진으로 방향을 잡았고, 친구에게 부탁해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서툰 감각이지만 로고 디자인을 바탕으로 홈페이지도 직접 제작했죠. 그 후, 인맥이랄 것도 없던 저는 닥치는 대로 인스타그램 DM을 보내고, 댓글을 남기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타 웹진에서 진행했었던 영화감독과 배우의 합동 인터뷰 하나만이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저의 포트폴리오였지만, 감사하게도 그 인터뷰 하나만 보고도 몇몇 분들은 인터뷰를 수락하셨습니다. (대화록 초기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는 특별히 더 고마운 마음입니다.)


몇 개의 인터뷰 일정이 잡혔고, 인터뷰를 준비하며 몇 가지 기준을 세웠습니다. 기존의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질문은 반복하지 말 것, 껄끄러울 수 있는 질문이라도 필요하다면 꼭 시도할 것, 인터뷰를 매끄럽게 정리하지 말 것 등이었죠. 이 기준들은 <대화록>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지키고자 했습니다. 거창한 신념이 있었다기보단, 사실 별 영향력이 없을지도 모를 <대화록>과 저와의 대화를 신뢰하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제 딴에는 예의를 갖추고자 세운 기준이 인터뷰를 함께 한 상대에겐 곤란함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배려로 <대화록>의 인터뷰는 현장에서 나눈 대화의 원본에 가까운 형태로 발행되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에 걸쳐 <대화록>엔 26개의 인터뷰가 모였고, 이 편지를 쓰기 전 다시 읽어보니 공통으로 언급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고향, 동네, 불안, 외로움, 생각, 변화, 과정 등이었는데, 이 단어들을 씹으며 이것들은 지난 2년간 저를 맴돌았던 화두였다고, 동시에 저를 포함한 동시대의 사람들이 완곡하게, 가끔은 느슨하게 품고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가 뽑아낸 저 말들이 <대화록>의 인터뷰에 담긴 마음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는 훨씬 많은 마음이 질문과 답변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 마음들을 느끼길 원하시는 분은 <대화록>의 인터뷰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대화록>의 모든 인터뷰는 당연히 개별적입니다. 그러나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대화록>의 진행을 마치는 까닭에 대해 말씀드리며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2년 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보고 집에 와 했던 그 생각은 제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건넬 수 있는 질문이 더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일정이 정해지면 상대에 대한 자료를 찾고, 기존 인터뷰를 읽어보고, 그가 만든 것들을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보며 질문지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성된 질문지를 가지고 인터뷰를 하고 돌아서면 실은 그 질문들이 모두 저를 향한 질문이었다는 걸 깨닫곤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 동안 저를 향해 질문을 쏟아내고 나니, 이제는 대답할 때가 됐다는 결심이 섰고, 제가 앞서 적은 질문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어찌 보면 쌓은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다는 말로 바꿔 적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대화록>을 하는 동안 잠시 놓고 있었던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할 수 있는 대답 중 하나겠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대화록>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도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설을 쓴 사람이 저라고 알아채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대화록>과 저의 소설은 분명 개별적이지만, 그러나 연결될 것입니다.

 

인터뷰할 때면 처음 건네는 질문으로 쓰곤 했던 날씨 얘기를 하며 편지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비가 많이 왔고, 이어지는 더위가 꽤 힘겨운 이번 여름입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좋은 시간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2023.08.16

<대화록> 드림


zcott.camus@gmail.com

대화의 기억과 내용에 대한 권한은 

대화를 나눈 이들과 '대화록' 페이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