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의 대화
물이 적당히 담긴 유리병 속에 잠겨 있던, 화분에 정돈돼 심겨 있던, 그 앞에 서는 순간 그들이 가진 생기에 조심스러워진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이토록 자신의 존재 증명을 강하게 하는 생명이 또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눈앞의 식물을 사고, 선물하고, 집에 두려 하나,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길어지고, 내가 이 생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의 부주의로 이 생명의 시간이 줄어든다면 그건 그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로 퍼진다. 하지만 결국 늘 돈을 지불하고, 하나의 생명을 취득한다. 머릿속으로만 셈해본 윤리 앞에 늘 이기는 건 나의 욕구다.
꽃다발을 사기 위해 <탐화소록>에 들어갔을 때, 유달리 식물들의 건강함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화이트 톤의 벽지나 강렬한 형광등으로 식물을 최대한 싱싱하게 소개하려고 애쓴 흔적은 전혀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 속의 식물들은 공간과 공간을 만드는 인간과 함께 건강히 숨 쉬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재촉하지 않는 주인을 옆에 두고, 여느 때처럼 천천히 직접 꽃을 골랐고, 풀을 많이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꽃을 이리저리 배치하던 그는 꽃대를 잘라내고, 꽃 사이사이 풀을 섞고, 섞인 꽃과 풀을 고정한 뒤, 포장할 종이를 골라 감쌌다. 아주 천천히, 그 생명에게만 집중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는 마치 이 공간과 한 몸인 것처럼,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그도 이 공간의 한 편으로 조용히 스며들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그와 또는 그가 속한 이 공간과 한번 얘기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로
입춘이 한참 지난 요즘도 여전히 아침과 밤은 쌀쌀하지만, 낮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면 봄이 왔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다. 아무래도 식물이 더 건강해지고, 화려해지는 시기로 접어드는데, 봄이 오는 요즘 어떤가
일단 내 업종 자체가 매일 식물을 돌보는 거고, 매장 내에 식물이 많으니까, 누구보다 계절을 빨리 느끼고, 변화를 알게 된다. 봄이 오기 직전, 잎이 펼쳐지기 전에 자그마한 초록색의 알맹이가 올라오는데, 이걸 잎눈이라고 한다. 잎눈은 잎의 새싹이다. 이 잎눈이 맺히는 걸 보면 봄이 오는 걸 내 눈으로, 바로 앞에서 실감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느낌도 있고. 다른 생명이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느끼고, 시간의 순환을 보여준다는 게 매번 신기하다
세월이 흘러간다고 얘기했는데, 어떤 사람은 1년이 바뀔 때 나이가 든다거나, 다음 해가 왔다거나 하는 등, 더함의 개념으로 생각할 텐데, 내가 만약 식물과 함께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면 더함이 아닌 순환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될 거 같다.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감각이 우선된달까
한 사람으로서는 나이를 또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식물을 대하는 입장에선 순환의 개념으로, 또 봄이 왔구나, 또 새잎을 내는 구나 하면서 계절의 순환, 식물의 생명력을 감지한다. 서주연으로서의 입장과 <탐화소록>의 주인으로서의 입장이 공존한다. <탐화소록> 주인으로의 입장이 더 크긴 하다
언급한 생명력을 적극적으로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이 봄이 오면 꽃놀이를 하곤 한다. 벚꽃을 보러 가고, 유채꽃을 보러 가고, 나 역시도 언제 없어질지 모를 삼익비치 벚꽃길을 다녀왔다. 식물 가게를 운영하고, 매일 꽃을 보지만, 그럼에도 봄이 오면 따로 꽃놀이를 가나
부산에서 벚꽃을 보기에 삼익비치만 한 곳이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나는 꽃이 피기 전부터, 그러니까 봄이 딱 시작하는 시기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봄이 시작되면 꽃도, 화분도 많이 찾으니까. 행사도 많이 있고. 그래서 꽃이 오면 꽃놀이는 따로 못 가고 일만 한다
일만 한다는 사람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꽃놀이하러 가기 좋은 곳을 추천해 줄 수 있을까. 방금 우리가 삼익비치 얘기를 하긴 했지만, 부산이어도 좋고, 전국 어디라도 좋다. 보통 꽃놀이하러 갔다가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가끔은 유유자적 꽃들 사이만 지나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적절한 곳이 있을까
기장 쪽에 ‘안적사’라는 절이 산 위에 있다. 정돈된 꽃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길가에 들풀과 들꽃이 자라 있고,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안적사’에 도착하기 전 작은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를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몇 km 되지 않는 짧은 길이다. 거기에 가면 물도 있고, 풀도 있는데 사람이 없어 정말 한적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시간이 나면 항상 거기에 간다. 주말이나, 가게 오픈 하기 전 새벽에 다녀온다
대화를 준비하면서 꽃놀이라는 말을 적고 보니, 참 예쁜 말이라는 생각에 곱씹게 됐다. 사전을 찾아보니 꽃을 구경하며 즐기는 놀이라고 돼 있던데, 꽃을 구경하며 즐긴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사람은 왜 꽃을 구경하고, 그건 왜 놀이가 될 정도로 즐거운 일일까. 직관적으로 예쁘니까, 즐거우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을까
꽃놀이 자체가 일단 찰나에만 즐길 수 있는 일이지 않나. 벚꽃도 찰나에, 그 시간에만 짧게 폈다가 금방 진다. 그 찰나를 사람들이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봄에 꽃이 가장 예쁘다는 건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서 봄이 오면 꽃놀이가 바로 연결되는 거 같다. 그때만 볼 수 있는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기에 대한 이유가 그렇다면 보다 근원적으로, 식물, 꽃의 존재 자체가 사람의 욕망을 추동하는 힘도 있지 않을까
글쎄, 생명력, 생기, 푸릇푸릇함에서 오는 활력이지 않을까.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있고. 나는 짙은 초록의 우거진 숲보다, 4~5월 정도에 숲길 또는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 나온 연둣빛 잎, 즉 신엽을 좋아한다. 여리고 작은 잎들이 살랑거릴 때의 색. 그걸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나 무거운 생각이 다 정화된다. 다른 분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식물을 보며 그런 마음을 느낀 건 언제부턴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그런 부분에 예민했던 거 같다.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좋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한참 많이 남아 있으니, 우선 다른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거두절미하고 부산이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나
뭐.. 살기 좋은 곳?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원래 한적하고, 붐비지 않고, 조용한 걸 좋아한다. 서울에 갔다가 다시 부산에 오면 적당히 붐비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이 좋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부산 내에서 옮겨 다닌 과정을 알 수 있을까
주로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다. 광안리, 해운대, 용호동 등. 그래서 그런지 바다는 크게 안 좋아하고, 산을 더 좋아한다. 어머니도 산을 좋아하셔서, 다녀오시는 길에 꽃을 꺾어 오곤 하셨던 기억이 있다
<탐화소록>을 운영한 지 3년 정도가 됐는데,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나
회계 관련된 일을 했다. 회사 생활을 6년 정도 했는데, 그중 3년을 회사 일과 병행하며 꽃을 배웠다. 6년 차에 딱 그만두고 <탐화소록>을 시작한 거지
식물 가게를 하고 싶다고 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음먹게 된 건가
그 과정에 대해 나도 매번 생각해 보는데, 확실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 거 같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으니까, 은연중에 꽃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배우다 보니까 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부산 내에서 옮겨 다닌 과정을 물어봤던 건 왜 민락동일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백성민에 즐거울 락을 쓰는 민락동은 광안리를 품고 있고, 또 민락동 하면 회센터고,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 민락동은 시끄럽고 놀기 좋은 동네이면서 하드보일드한 동네이기도 하다. 그런 민락동에 마치 지브리 영화에 나올 거 같은 <탐화소록>이 있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성 내부에, 모두가 신나고 취한 틈을 타 작은 아지트를 짓고 들어 온 것처럼 느껴졌다
가게 자리를 찾기 위해 몇 개월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적당히 다니는 곳에, 상가 건물이 아닌 주택이었으면 했다. 그러던 와중에 원래 이 자리를 사무실로 쓰고 있던 내 친구가 여기를 내놓게 됐다는 얘기해주길래 보러 왔다. 친구의 추천도 있었고, 와서 보니 마음이 많이 갔다. 조용했고, 주택 건물 1층에, 평수도 넓고, 지하 공간도 있어서, 바로 여기다 했다. 손을 거의 안 대고 들어왔다
지내보니 어떤가. 동네나 공간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원래 품고 있던 생각이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새로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다
문이나 바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공간은 내 취향으로 채워 만들어진 곳이다. 어릴 때부터 고고학이나, 어릴 때부터 유물, 한국의 고가구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냥 내가 좋아한 느낌을 살리고자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기 때문에 내 마음엔 든다. 그리고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 내가 느꼈던 마음과 비슷한 느낌의 손님이 많이 온다. 조용한 손님이 많다는 얘기다. 식물도 다 취향이 있지 않나. 취향에 맞는 분들만 단골이 되기 마련인데, 연령대가 다양한 편이다
공간이 주는 느낌도 민락동 속의 탐화소록의 존재가 주는 느낌과 닮아 있다. 꽃이 가득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드러내기보단 수렴하는 공간이다. 이는 꽃의 수와 비슷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무 화분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한데, 색이 다채로운 꽃과 초록과 갈색을 주로 띠는 나무들의 충돌이 조용하지만 적당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같고, 그 긴장이 안정을 취하게 만든다. 탐화소록을 준비하면서 어떤 공간을 생각했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탐화소록>이란 이름에 걸맞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데 2년은 걸린 거 같다. 오픈하고 1년 동안은 판매보단 공간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다. 어울리는 식물을 찾고, 가구를 찾고, 소품을 찾았다. 누군가 처음 왔을 때 정돈돼 있고, 채워져 있다고 느끼길 바라서 그것에 집중했다. 요즘 들어서야 <탐화소록>만의 분위기나 색을 갖춘 거 같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탐화소록>이란 네 글자를 읽으며 난 당연히 탐할 𣤉, 꽃 花, 작을 小, 푸를 綠을 쓸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꽃이 주는, 그리고 그동안 경험한 꽃집의 이미지에서 느꼈던 욕망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 <탐화소록>은 찾을 探, 꽃 花, 작을 小, 기록할 錄을 쓰더라. 꽃을 찾는 사람들과의 작은 기록 정도로 의미를 만들어봤는데, 맞을까
꽃을 찾는 사람들과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좀 더 나를 위한 이름이다. 내가 보는 계절의 변화, 자연에 대한 기록이란 의미를 담았다. 이름을 지을 때도 공간이 주는 느낌과 함께 가려면 한자로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 몇 글자로 할지, 어떤 뜻을 담을지 6개월 정도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탐화라는 단어와 소록이란 단어를 따로따로 발견했는데, 그걸 이어 붙여서 뜻은 내 식대로 풀었다. 탐화는 꽃을 보고 즐긴다는 뜻이고, 소록은 작은 기록이란 뜻인데, 꽃을 본다는 나의 작은 기록이란 의미지. 계절마다 만나는 자연을 기록한다는
당신이 만든 이름과 몇 년에 걸쳐 채운 당신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나는 꽃을 살 때면 이제 고민 없이 <탐화소록>에 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또 꽃집이 이게 뭐냐고 한다거나, 지인 중에선 편한 말로 정신 차리라든지, 이래가지고 돈 벌겠냐 하는 걱정을 했을 것도 같다
간혹 이건 장사니까 장사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내 주변엔 대부분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내게도 이건 업이니까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맞고, 사업적인 고민을 하는 것도 맞지만, 돈에 연연하기보다 즐기면서 하자는 마음을 먹으니 일단 스트레스가 없다. 월세 내고 먹고만 살자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괜찮다. 안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은 내가 그냥 안 만났던 거 같기도 하고. 영향을 안 받으려고 피했다
처음 손님으로 <탐화소록>에 왔을 때, 이 공간과 당신의 어울림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정제된 말투, 작은 몸짓, 적당한 친절, 어느 것 하나 과할 것 없는 정돈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표현이 길고, 몸짓이 크고, 대부분 과한 나는 궁금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욕망을 표출할 텐데, 그걸 나는 말이나 글, 손짓, 눈빛으로 어떻게든 다 표출하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그 욕망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혹시 식물을 대할 때가 당신에겐 그런 순간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 오로지 내 색을 넣어 만든, 나를 위한 꽃을 꽂으면서 욕구를 표출하는 거 같다. 판매 목적에 집중된 꽃이 아니라 내 색을 다 담아낸 꽃을 꽂으면서. 그게 완성되면 어느 정도의 욕구가 해결된다. 완성된 작품을 SNS 공유하면서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거 같고. 혼자 남은 꽃들로 꽃꽂이하는 시간이 내겐 그런 순간들이다. 난 일도 혼자 하고, 식물을 보러 가거나, 사입하러 다닐 때도 혼자 다니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탐화소록>을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3년 정도가 됐다
그렇게 혼자 일하고, 돌아다니고, 욕망을 해결하는 게 지겹지는 않나. 누군가의 필요를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혼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하는 과정이 지속되니 나는 지겹다고 느낀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직은 지루할 틈이 없다. 항상 돌아다니고, 가게에 오면 할 일이 많고, 집에 가면 바로 자야 하니까, 항상 바쁘다. 그냥 너무 좋아해서 하는 일이고, 온전히 내 일을 하는 거니까 다른 것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까운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아직은 혼자 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
알겠다. 이제 내가 평소 혼자 생각해 봤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좀 구하고자 한다. 식물을 사고, 집에 둔다는 건 뭘까. 소리 내지 않는 자연 중에서, 식물이 유독 생명의 존재 증명을 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식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거기에 생명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적용하자면, 식물을 사고, 가꾸고, 꽃다발로 또는 분재로 만든다는 건, 어쩌면 생명을 잠시 즐기기 위해 잠재적으로 죽이거나, 마음대로 그 생김새를 바꾸거나,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지고 노는 거라는 생각도 들더라. 윤리적으로 왜 잘못된 일을 하냐고 묻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궁금한 건 부딪히는 마음에 대한 것인데, 의심의 여지 없이 당신은 그 누구보다 식물을 좋아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일 테고, 동시에 식물을 가장 많이 죽이는 사람이기도 할 거다. 그 둘 사이의 충돌에 대해, 충돌 사이에서 어떤 고민이 있지는 않을까 묻고 싶었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음.. 식물이란 단어 자체로 포괄적인 의미로,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 같다. 고사리나 콩나물도 그렇고 정말 흔히 먹는 상추, 깻잎도 식물이다. 이런 종류 또한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인간의 윤리를 적용하자면 복잡해진다,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보고 즐기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구보다 식물을 사랑한다. 시들어 가는 식물들을 보거나 꽃들이 시들어 가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관점에서 지키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다
요즘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건, 나의 평소 생활과도 연관이 돼 있을 텐데, 이를테면 부산에 와 자주 바다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또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로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그럴 때도 같은 맥락의 생각이 드는 거다. 인간은 우리끼리니까 어떻게 잘 풀어가보자 싶은데, 인간 외의 생명을 가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 있어, 과연 인간은 반려동물이 어쩌고, 반려식물이 저쩌고 할 만큼 그 생명들에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고민되더라.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면서 쓰이는 언어도 변화하지만, 이런 변화가 결국은 인간이 더욱 마음 편히 타 생명을 즐길 수 있도록 고도하고 세밀하게 상황을 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기도 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나의 생명으로 동등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쉽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진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 나부터도 모든 식물을 동등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건 정말 애정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식물과 꽃이 있고, 어떤 식물은 또 그냥 무던하게 관리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즐기고 또 그 존재로 인해 치유 받는 만큼 생명을 가진 수많은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지키려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용되는 비닐이 아주 많은데, 이 쓰레기가 굉장하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비닐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존중하려는 마음을 항상 상기시키고 나부터 존중해 나가면 되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꽃을 선물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언어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애인에게, 부모에게, 친구에게, 개업선물로, 장례식장에 등등 많은 경우에 꽃이 선물 된다. 식물이 가진 어떤 힘이 언어가 되게 만든 것일까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언어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말보다 마음이 더 많이 담기기 때문에,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선물 받는 사람이 더 크게 느끼는 거겠지. 선물을 받았을 때 선물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 과정의 정성이 꽃과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함께 담기고, 그게 시각적으로 확인되니까
당신도 가끔 꽃 선물을 받나
나는 꽃을 정말 좋아하는데, 꽃을 다루는 일을 하니 꽃을 받을 일이 없다. 누군가 선물해 줬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업종에 계신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매일 꽃을 보는 게 일인데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꽃 선물이다. 한 송이라도 툭 받고 싶다. 선물하러 오시는 분들 보면 너무 부럽다. 꽃을 만들다 보면 내가 만든 거지만 정말 내 마음에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더 부럽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 이 대화를 보라고 해야겠다
주변에 플로리스트가 계신다면 꽃을 선물하는 걸 추천한다. 좋아할 거다
그 말도 적어두겠다. 앞서 말한 엄청난 에너지의 언어적 활동을 하기 위해 당신의 손님들은 <탐화소록>으로 들어올 거다. 식물을 사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일단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긴장한다. 꽃은 영원할 수 없고, 다른 것들보다 훨씬 빨리 시들고, 죽는 거니까, 그래서 더욱 선물할 때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꽃을 선물하는 특별한 경우가 많으니까, 내가 판매하는 꽃이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손님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된다
가끔 버겁진 않나?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렇게 매 순간 긴장하게 된다면 더욱 더 말이다
나는 원래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사람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한 이 동네로 자리 잡은 것도 있고 하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손님들이 오셔서 꽃이 예쁘다, 가게가 분위기 있다 해주시면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크다.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쯤 또 다른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시 힘이 난다. 이런 반복으로 일을 한다
이제 대화를 마칠 때가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탐화소록>이 가진 공간의 힘이 워낙 대단해서 이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재미난 상상이 떠올랐는데, 당신이 가진 상상이 궁금하다. 이 공간과 공간을 채운 식물들과 어디로 가고 싶나
처음 만든 나의 이 공간은 여기 이 자리에서 되도록 오래 남고 싶고. <탐화소록>의 색깔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심이 크다. 꽃과 식물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떤 새로운 공간에,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과 어우러지도록 공간을 연출하는 일을 다양하게 하고 싶다. 공간 장식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나의 색을 낼 수 있는지 계속 연구하는 중이다
요즘 내가 오랜 시간 좋아해 온 공간들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오랜만에 부산에 돌아와 처음으로 애착이 생긴 공간 <탐화소록>이 오랜 시간 민락동에서 자리를 지키면 좋겠다
<탐화소록>이 크게 성장하는 것도 물론 정말 좋겠지만, 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 일을 오래 하는 거다. 돈을 벌어야 유지를 하겠지만, 어떻게든 고정적인 수익을 만들어 내서 <탐화소록>이 오래 갈 수 있도록, 정말 오래 하고 싶다. 이 자리에서
2023년 4월 16일의 대화
물이 적당히 담긴 유리병 속에 잠겨 있던, 화분에 정돈돼 심겨 있던, 그 앞에 서는 순간 그들이 가진 생기에 조심스러워진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이토록 자신의 존재 증명을 강하게 하는 생명이 또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눈앞의 식물을 사고, 선물하고, 집에 두려 하나,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길어지고, 내가 이 생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의 부주의로 이 생명의 시간이 줄어든다면 그건 그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로 퍼진다. 하지만 결국 늘 돈을 지불하고, 하나의 생명을 취득한다. 머릿속으로만 셈해본 윤리 앞에 늘 이기는 건 나의 욕구다.
꽃다발을 사기 위해 <탐화소록>에 들어갔을 때, 유달리 식물들의 건강함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화이트 톤의 벽지나 강렬한 형광등으로 식물을 최대한 싱싱하게 소개하려고 애쓴 흔적은 전혀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 속의 식물들은 공간과 공간을 만드는 인간과 함께 건강히 숨 쉬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재촉하지 않는 주인을 옆에 두고, 여느 때처럼 천천히 직접 꽃을 골랐고, 풀을 많이 섞어 꽃다발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꽃을 이리저리 배치하던 그는 꽃대를 잘라내고, 꽃 사이사이 풀을 섞고, 섞인 꽃과 풀을 고정한 뒤, 포장할 종이를 골라 감쌌다. 아주 천천히, 그 생명에게만 집중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는 마치 이 공간과 한 몸인 것처럼, 모두가 잠든 밤이면 그도 이 공간의 한 편으로 조용히 스며들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그와 또는 그가 속한 이 공간과 한번 얘기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로
입춘이 한참 지난 요즘도 여전히 아침과 밤은 쌀쌀하지만, 낮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면 봄이 왔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다. 아무래도 식물이 더 건강해지고, 화려해지는 시기로 접어드는데, 봄이 오는 요즘 어떤가
일단 내 업종 자체가 매일 식물을 돌보는 거고, 매장 내에 식물이 많으니까, 누구보다 계절을 빨리 느끼고, 변화를 알게 된다. 봄이 오기 직전, 잎이 펼쳐지기 전에 자그마한 초록색의 알맹이가 올라오는데, 이걸 잎눈이라고 한다. 잎눈은 잎의 새싹이다. 이 잎눈이 맺히는 걸 보면 봄이 오는 걸 내 눈으로, 바로 앞에서 실감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느낌도 있고. 다른 생명이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느끼고, 시간의 순환을 보여준다는 게 매번 신기하다
세월이 흘러간다고 얘기했는데, 어떤 사람은 1년이 바뀔 때 나이가 든다거나, 다음 해가 왔다거나 하는 등, 더함의 개념으로 생각할 텐데, 내가 만약 식물과 함께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면 더함이 아닌 순환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될 거 같다.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감각이 우선된달까
한 사람으로서는 나이를 또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식물을 대하는 입장에선 순환의 개념으로, 또 봄이 왔구나, 또 새잎을 내는 구나 하면서 계절의 순환, 식물의 생명력을 감지한다. 서주연으로서의 입장과 <탐화소록>의 주인으로서의 입장이 공존한다. <탐화소록> 주인으로의 입장이 더 크긴 하다
언급한 생명력을 적극적으로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이 봄이 오면 꽃놀이를 하곤 한다. 벚꽃을 보러 가고, 유채꽃을 보러 가고, 나 역시도 언제 없어질지 모를 삼익비치 벚꽃길을 다녀왔다. 식물 가게를 운영하고, 매일 꽃을 보지만, 그럼에도 봄이 오면 따로 꽃놀이를 가나
부산에서 벚꽃을 보기에 삼익비치만 한 곳이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나는 꽃이 피기 전부터, 그러니까 봄이 딱 시작하는 시기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봄이 시작되면 꽃도, 화분도 많이 찾으니까. 행사도 많이 있고. 그래서 꽃이 오면 꽃놀이는 따로 못 가고 일만 한다
일만 한다는 사람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꽃놀이하러 가기 좋은 곳을 추천해 줄 수 있을까. 방금 우리가 삼익비치 얘기를 하긴 했지만, 부산이어도 좋고, 전국 어디라도 좋다. 보통 꽃놀이하러 갔다가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 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가끔은 유유자적 꽃들 사이만 지나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적절한 곳이 있을까
기장 쪽에 ‘안적사’라는 절이 산 위에 있다. 정돈된 꽃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아니지만, 길가에 들풀과 들꽃이 자라 있고,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안적사’에 도착하기 전 작은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를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몇 km 되지 않는 짧은 길이다. 거기에 가면 물도 있고, 풀도 있는데 사람이 없어 정말 한적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시간이 나면 항상 거기에 간다. 주말이나, 가게 오픈 하기 전 새벽에 다녀온다
대화를 준비하면서 꽃놀이라는 말을 적고 보니, 참 예쁜 말이라는 생각에 곱씹게 됐다. 사전을 찾아보니 꽃을 구경하며 즐기는 놀이라고 돼 있던데, 꽃을 구경하며 즐긴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사람은 왜 꽃을 구경하고, 그건 왜 놀이가 될 정도로 즐거운 일일까. 직관적으로 예쁘니까, 즐거우니까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을까
꽃놀이 자체가 일단 찰나에만 즐길 수 있는 일이지 않나. 벚꽃도 찰나에, 그 시간에만 짧게 폈다가 금방 진다. 그 찰나를 사람들이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봄에 꽃이 가장 예쁘다는 건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서 봄이 오면 꽃놀이가 바로 연결되는 거 같다. 그때만 볼 수 있는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기에 대한 이유가 그렇다면 보다 근원적으로, 식물, 꽃의 존재 자체가 사람의 욕망을 추동하는 힘도 있지 않을까
글쎄, 생명력, 생기, 푸릇푸릇함에서 오는 활력이지 않을까.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있고. 나는 짙은 초록의 우거진 숲보다, 4~5월 정도에 숲길 또는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 나온 연둣빛 잎, 즉 신엽을 좋아한다. 여리고 작은 잎들이 살랑거릴 때의 색. 그걸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나 무거운 생각이 다 정화된다. 다른 분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식물을 보며 그런 마음을 느낀 건 언제부턴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그런 부분에 예민했던 거 같다.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좋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한참 많이 남아 있으니, 우선 다른 이야기부터 해보려 한다. 거두절미하고 부산이 어떤 도시라고 생각하나
뭐.. 살기 좋은 곳?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원래 한적하고, 붐비지 않고, 조용한 걸 좋아한다. 서울에 갔다가 다시 부산에 오면 적당히 붐비고,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이 좋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부산 내에서 옮겨 다닌 과정을 알 수 있을까
주로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다. 광안리, 해운대, 용호동 등. 그래서 그런지 바다는 크게 안 좋아하고, 산을 더 좋아한다. 어머니도 산을 좋아하셔서, 다녀오시는 길에 꽃을 꺾어 오곤 하셨던 기억이 있다
<탐화소록>을 운영한 지 3년 정도가 됐는데,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었나
회계 관련된 일을 했다. 회사 생활을 6년 정도 했는데, 그중 3년을 회사 일과 병행하며 꽃을 배웠다. 6년 차에 딱 그만두고 <탐화소록>을 시작한 거지
식물 가게를 하고 싶다고 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음먹게 된 건가
그 과정에 대해 나도 매번 생각해 보는데, 확실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닌 거 같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으니까, 은연중에 꽃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배우다 보니까 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부산 내에서 옮겨 다닌 과정을 물어봤던 건 왜 민락동일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백성민에 즐거울 락을 쓰는 민락동은 광안리를 품고 있고, 또 민락동 하면 회센터고,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 민락동은 시끄럽고 놀기 좋은 동네이면서 하드보일드한 동네이기도 하다. 그런 민락동에 마치 지브리 영화에 나올 거 같은 <탐화소록>이 있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성 내부에, 모두가 신나고 취한 틈을 타 작은 아지트를 짓고 들어 온 것처럼 느껴졌다
가게 자리를 찾기 위해 몇 개월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적당히 다니는 곳에, 상가 건물이 아닌 주택이었으면 했다. 그러던 와중에 원래 이 자리를 사무실로 쓰고 있던 내 친구가 여기를 내놓게 됐다는 얘기해주길래 보러 왔다. 친구의 추천도 있었고, 와서 보니 마음이 많이 갔다. 조용했고, 주택 건물 1층에, 평수도 넓고, 지하 공간도 있어서, 바로 여기다 했다. 손을 거의 안 대고 들어왔다
지내보니 어떤가. 동네나 공간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원래 품고 있던 생각이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새로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다
문이나 바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공간은 내 취향으로 채워 만들어진 곳이다. 어릴 때부터 고고학이나, 어릴 때부터 유물, 한국의 고가구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냥 내가 좋아한 느낌을 살리고자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기 때문에 내 마음엔 든다. 그리고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 내가 느꼈던 마음과 비슷한 느낌의 손님이 많이 온다. 조용한 손님이 많다는 얘기다. 식물도 다 취향이 있지 않나. 취향에 맞는 분들만 단골이 되기 마련인데, 연령대가 다양한 편이다
공간이 주는 느낌도 민락동 속의 탐화소록의 존재가 주는 느낌과 닮아 있다. 꽃이 가득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드러내기보단 수렴하는 공간이다. 이는 꽃의 수와 비슷하게 자리 잡고 있는 나무 화분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한데, 색이 다채로운 꽃과 초록과 갈색을 주로 띠는 나무들의 충돌이 조용하지만 적당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같고, 그 긴장이 안정을 취하게 만든다. 탐화소록을 준비하면서 어떤 공간을 생각했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을까
<탐화소록>이란 이름에 걸맞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데 2년은 걸린 거 같다. 오픈하고 1년 동안은 판매보단 공간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다. 어울리는 식물을 찾고, 가구를 찾고, 소품을 찾았다. 누군가 처음 왔을 때 정돈돼 있고, 채워져 있다고 느끼길 바라서 그것에 집중했다. 요즘 들어서야 <탐화소록>만의 분위기나 색을 갖춘 거 같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탐화소록>이란 네 글자를 읽으며 난 당연히 탐할 𣤉, 꽃 花, 작을 小, 푸를 綠을 쓸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꽃이 주는, 그리고 그동안 경험한 꽃집의 이미지에서 느꼈던 욕망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 <탐화소록>은 찾을 探, 꽃 花, 작을 小, 기록할 錄을 쓰더라. 꽃을 찾는 사람들과의 작은 기록 정도로 의미를 만들어봤는데, 맞을까
꽃을 찾는 사람들과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좀 더 나를 위한 이름이다. 내가 보는 계절의 변화, 자연에 대한 기록이란 의미를 담았다. 이름을 지을 때도 공간이 주는 느낌과 함께 가려면 한자로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 몇 글자로 할지, 어떤 뜻을 담을지 6개월 정도 고민했다. 그러던 와중에 탐화라는 단어와 소록이란 단어를 따로따로 발견했는데, 그걸 이어 붙여서 뜻은 내 식대로 풀었다. 탐화는 꽃을 보고 즐긴다는 뜻이고, 소록은 작은 기록이란 뜻인데, 꽃을 본다는 나의 작은 기록이란 의미지. 계절마다 만나는 자연을 기록한다는
당신이 만든 이름과 몇 년에 걸쳐 채운 당신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도 맞아떨어졌고, 그래서 나는 꽃을 살 때면 이제 고민 없이 <탐화소록>에 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또 꽃집이 이게 뭐냐고 한다거나, 지인 중에선 편한 말로 정신 차리라든지, 이래가지고 돈 벌겠냐 하는 걱정을 했을 것도 같다
간혹 이건 장사니까 장사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내 주변엔 대부분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내게도 이건 업이니까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맞고, 사업적인 고민을 하는 것도 맞지만, 돈에 연연하기보다 즐기면서 하자는 마음을 먹으니 일단 스트레스가 없다. 월세 내고 먹고만 살자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괜찮다. 안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은 내가 그냥 안 만났던 거 같기도 하고. 영향을 안 받으려고 피했다
처음 손님으로 <탐화소록>에 왔을 때, 이 공간과 당신의 어울림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정제된 말투, 작은 몸짓, 적당한 친절, 어느 것 하나 과할 것 없는 정돈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표현이 길고, 몸짓이 크고, 대부분 과한 나는 궁금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욕망을 표출할 텐데, 그걸 나는 말이나 글, 손짓, 눈빛으로 어떻게든 다 표출하는데, 당신 같은 사람은 그 욕망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혹시 식물을 대할 때가 당신에겐 그런 순간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 오로지 내 색을 넣어 만든, 나를 위한 꽃을 꽂으면서 욕구를 표출하는 거 같다. 판매 목적에 집중된 꽃이 아니라 내 색을 다 담아낸 꽃을 꽂으면서. 그게 완성되면 어느 정도의 욕구가 해결된다. 완성된 작품을 SNS 공유하면서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거 같고. 혼자 남은 꽃들로 꽃꽂이하는 시간이 내겐 그런 순간들이다. 난 일도 혼자 하고, 식물을 보러 가거나, 사입하러 다닐 때도 혼자 다니다 보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탐화소록>을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으니, 3년 정도가 됐다
그렇게 혼자 일하고, 돌아다니고, 욕망을 해결하는 게 지겹지는 않나. 누군가의 필요를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혼자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하는 과정이 지속되니 나는 지겹다고 느낀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직은 지루할 틈이 없다. 항상 돌아다니고, 가게에 오면 할 일이 많고, 집에 가면 바로 자야 하니까, 항상 바쁘다. 그냥 너무 좋아해서 하는 일이고, 온전히 내 일을 하는 거니까 다른 것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까운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일에 집중하다 보니, 아직은 혼자 하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고 있다
알겠다. 이제 내가 평소 혼자 생각해 봤던 부분에 대해 도움을 좀 구하고자 한다. 식물을 사고, 집에 둔다는 건 뭘까. 소리 내지 않는 자연 중에서, 식물이 유독 생명의 존재 증명을 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식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거기에 생명에 대한 인간의 윤리를 적용하자면, 식물을 사고, 가꾸고, 꽃다발로 또는 분재로 만든다는 건, 어쩌면 생명을 잠시 즐기기 위해 잠재적으로 죽이거나, 마음대로 그 생김새를 바꾸거나, 좀 심하게 말하면 가지고 노는 거라는 생각도 들더라. 윤리적으로 왜 잘못된 일을 하냐고 묻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궁금한 건 부딪히는 마음에 대한 것인데, 의심의 여지 없이 당신은 그 누구보다 식물을 좋아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일 테고, 동시에 식물을 가장 많이 죽이는 사람이기도 할 거다. 그 둘 사이의 충돌에 대해, 충돌 사이에서 어떤 고민이 있지는 않을까 묻고 싶었다
그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음.. 식물이란 단어 자체로 포괄적인 의미로,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 같다. 고사리나 콩나물도 그렇고 정말 흔히 먹는 상추, 깻잎도 식물이다. 이런 종류 또한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인간의 윤리를 적용하자면 복잡해진다,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보고 즐기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구보다 식물을 사랑한다. 시들어 가는 식물들을 보거나 꽃들이 시들어 가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관점에서 지키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다
요즘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건, 나의 평소 생활과도 연관이 돼 있을 텐데, 이를테면 부산에 와 자주 바다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 또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로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그럴 때도 같은 맥락의 생각이 드는 거다. 인간은 우리끼리니까 어떻게 잘 풀어가보자 싶은데, 인간 외의 생명을 가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 있어, 과연 인간은 반려동물이 어쩌고, 반려식물이 저쩌고 할 만큼 그 생명들에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고민되더라.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고,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나면서 쓰이는 언어도 변화하지만, 이런 변화가 결국은 인간이 더욱 마음 편히 타 생명을 즐길 수 있도록 고도하고 세밀하게 상황을 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기도 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나의 생명으로 동등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쉽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진심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 나부터도 모든 식물을 동등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건 정말 애정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식물과 꽃이 있고, 어떤 식물은 또 그냥 무던하게 관리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즐기고 또 그 존재로 인해 치유 받는 만큼 생명을 가진 수많은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것을 지키려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용되는 비닐이 아주 많은데, 이 쓰레기가 굉장하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비닐 사용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존중하려는 마음을 항상 상기시키고 나부터 존중해 나가면 되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꽃을 선물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언어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애인에게, 부모에게, 친구에게, 개업선물로, 장례식장에 등등 많은 경우에 꽃이 선물 된다. 식물이 가진 어떤 힘이 언어가 되게 만든 것일까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언어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말보다 마음이 더 많이 담기기 때문에,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선물 받는 사람이 더 크게 느끼는 거겠지. 선물을 받았을 때 선물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 과정의 정성이 꽃과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함께 담기고, 그게 시각적으로 확인되니까
당신도 가끔 꽃 선물을 받나
나는 꽃을 정말 좋아하는데, 꽃을 다루는 일을 하니 꽃을 받을 일이 없다. 누군가 선물해 줬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업종에 계신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매일 꽃을 보는 게 일인데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꽃 선물이다. 한 송이라도 툭 받고 싶다. 선물하러 오시는 분들 보면 너무 부럽다. 꽃을 만들다 보면 내가 만든 거지만 정말 내 마음에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더 부럽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 이 대화를 보라고 해야겠다
주변에 플로리스트가 계신다면 꽃을 선물하는 걸 추천한다. 좋아할 거다
그 말도 적어두겠다. 앞서 말한 엄청난 에너지의 언어적 활동을 하기 위해 당신의 손님들은 <탐화소록>으로 들어올 거다. 식물을 사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
일단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긴장한다. 꽃은 영원할 수 없고, 다른 것들보다 훨씬 빨리 시들고, 죽는 거니까, 그래서 더욱 선물할 때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꽃을 선물하는 특별한 경우가 많으니까, 내가 판매하는 꽃이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손님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된다
가끔 버겁진 않나?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간단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렇게 매 순간 긴장하게 된다면 더욱 더 말이다
나는 원래 굉장히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사람 상대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한 이 동네로 자리 잡은 것도 있고 하지 여기서 지내는 동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손님들이 오셔서 꽃이 예쁘다, 가게가 분위기 있다 해주시면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크다.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쯤 또 다른 좋은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시 힘이 난다. 이런 반복으로 일을 한다
이제 대화를 마칠 때가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탐화소록>이 가진 공간의 힘이 워낙 대단해서 이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재미난 상상이 떠올랐는데, 당신이 가진 상상이 궁금하다. 이 공간과 공간을 채운 식물들과 어디로 가고 싶나
처음 만든 나의 이 공간은 여기 이 자리에서 되도록 오래 남고 싶고. <탐화소록>의 색깔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심이 크다. 꽃과 식물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떤 새로운 공간에,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과 어우러지도록 공간을 연출하는 일을 다양하게 하고 싶다. 공간 장식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나의 색을 낼 수 있는지 계속 연구하는 중이다
요즘 내가 오랜 시간 좋아해 온 공간들이 많이 사라져서 그런지, 오랜만에 부산에 돌아와 처음으로 애착이 생긴 공간 <탐화소록>이 오랜 시간 민락동에서 자리를 지키면 좋겠다
<탐화소록>이 크게 성장하는 것도 물론 정말 좋겠지만, 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 일을 오래 하는 거다. 돈을 벌어야 유지를 하겠지만, 어떻게든 고정적인 수익을 만들어 내서 <탐화소록>이 오래 갈 수 있도록, 정말 오래 하고 싶다. 이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