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2021년 12월 29일의 대화


열일곱 때의 일이다. 졸업한 학교 선배들과 늦게까지 떠들던 날이었는데, 그들은 취기가 오르자 돌아가며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나, 당시 씬에서 꽤 유명해지고 있던 한 밴드의 드러머가 '다프트 펑크'의 <Discovery> 앨범을 재생했고, 재생하며 쓰고 있던 비니를 벗더니 팔짱을 끼고 허여멀겋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난 그가 많이 취했나 생각했고, 그의 친구들은 또 왜 저라나 싶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는데, 그때 그가 검은색 백팩의 지퍼를 열었다. 그 속으로 손이 들어가고,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듯 천천히 무엇인가 들어 올렸는데, 그건 종이었고, 책이었고, 그 책의 표지엔 가면인지 헬멧인지를 쓴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머리 위로 적혀있는 다섯 개의 알파벳, D A Z E D. 난 당시 '다프트 펑크'가 누군지도 몰랐고, 그들의 헬멧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으며, 그저 D A Z E D 그 다섯 글자에 묘한 끌림을 느꼈는데, 그건 아마 저릿한 속물성에 나의 욕망이 반응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가판대에 멋진 표지가 있는 잡지를 보면 하나씩 사기 시작했고, 그 속의 속된 글과 육감적인 대화를 읽으며 낄낄거렸고, 머뭇거렸고, 생각에 잠겼고, 뭔가를 써보곤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부터, 정확하게 특정할 순 없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잡지를 사지 않는다. 꼼꼼히 살펴보던 웹진들도 체크하듯 훑게만 됐다. 그런 현상은 꽤 섭섭한 것이었지만, 그 이유는 뻔하고도 단단해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받아들여 갈 무렵, '신은별'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게 됐다. 저릿한 속물성과 육감적인 욕망으로 가득차보이는 그의 인터뷰를 보며, 오랜만에 낄낄 거리고, 머뭇 거렸는데,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생각에 잠기기보단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났다. 동대문 근처의 불교 건물 안 카페에서  



오늘 나눌 대화는 <대화록>의 2022년 두 번째 대화로 공개되겠지만, 우리가 만난 오늘은 2021년 연말이니까, 어떤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고 있나

 

mbti 테스트를 하면 항상 ESTJ가 나온다. ESTJ가 엄청난 계획형? 체계적인 걸 좋아하고, 계획에 따라 뭔가를 성취해나가는 스타일이더라. 그래서 나는 그걸 보고 ‘맞아 나에게 그런 성향이 있지, 난 계획형이야’ 생각했었는데, 막상 연말이 되고 나니 내가 계획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연말계획도, 내년엔 뭘 하겠다는 계획도. mbti로 나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구나 생각 하면서.. 내가 가진 내년 바람은 하나다. 책 내기. 책을 내기 위해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할지, 연재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다. 그런데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올해, 전 직장을 퇴사하고 강릉으로 여행 간 적이 있었는데, 평소엔 바다를 보면 늘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바다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고, 다음 직장에 관한 생각만 하게 되더라. 그 정도로 일하고, 새롭게 자리 잡은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바닥에 쌓인 눈이 보이더라. 난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눈과 친하진 않다. 그렇다고 마주하기 귀하다는 이유로 눈을 엄청 좋아하는 건 또 아니고. 당신은 제천에서 태어나 원주, 대전, 서울을 거쳤으니, 눈이 그렇게 낯설진 않을 것 같다. 눈을 생각하면 어떤 마음인가

 

어릴 때 제천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당시 하신 일 덕분에 산속에 살았다. 그렇게 겨울이 되면 산에 쌓인 눈을 보며 컸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나, 절에서 ‘댕~ 댕~’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는데, 그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가면 설산이 있었고, 그게 정말 절경이었다. 그때 봤던 눈의 이미지 때문에 거리의 눈 쌓인 풍경엔 큰 감흥이 없다

 

얘기를 들으니 그럴 만 하겠다 싶다. 내가 기존에 별로 관심 없던 눈에 눈길이 간 건 ‘홍상수’의 영화 덕분이다. <북촌방향>,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등의 영화에 나오는 눈을 보고 있으면 ‘저 눈이야말로 영화 같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베티블루>란 영화가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영화에서 눈 오는 날, 눈을 맞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또 생각나는 건 <블루 발렌타인>, 이 영화 속 ‘딘(라이언 고슬링)’은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와 데이트 할 비용 정도는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낭만 싸나이다. ‘딘’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엘리트, ‘신디(미셸 윌리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어느 날 ‘신디’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을 고백하는 얘기를 듣고도,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자신의 두툼한 가죽 재킷으로 ‘신디’를 덮어 품 안에 안는다. ‘가족이 되자’라고 말하면서.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이 영화의 계절인 겨울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겨울은 좋아하나

 

진짜 웃기다. 이 질문 받을 줄 알았다. 꼭 물어볼 거라 생각했다. 근데 나는 ‘트로피컬 걸’이라 할 정도로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에 더 피어나고, 사진도 여름에 찍은 게 더 예쁘다. 여름이 되면 얼굴에 빛이 난다. 광합성이 잘 돼서 그런가.. 왜 그렇게 웃나..

 

아니다.. 알겠다.. 당신 직장은 동대문 근처에 있으니, 동대문 얘기를 좀 해보자. 출퇴근하며 DDP를 자주 보게 될 텐데, DDP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나는 볼 때마다 화가 나는 쪽에 가깝다. 동대문 운동장을 깔끔하게 무너뜨리고 세운 건물이지 않나. 동대문 운동장의 시간은 100년이 가깝게 흐르고 있었다. 그걸 ‘디자인 서울’이란 멍청한 이름하에 흔적조차 없이 쓸어버렸고, 세계적인 건축가를 앞세워 서울과 한국의 역사라곤 조금도 곱씹을 수 없는 거대한 건물을 쌓아 올렸다. 광화문에서 출발해, 종로1가부터 종로5가를 지나, 여기에 도착하면 맥이 끊어진 것 같아 숨이 탁 막힌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건축과 이미지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는 나의 의견일 뿐이다. 당신은 나에 비해 훨씬 다양한 지식이 있고, 감각도 예민할 테니까, DDP를 보면 어떤가

 

글쎄, 나는 DDP를 처음 봤을 때.. 되게 낯선 형태이지 않나. 돔 형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곡선 형태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굉장히 애매하고 추상적인 형태인데, 그런 건물이 서울의 중심부에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 서울이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는 우리에게 있는 국민성,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가져다 놓은 뒤, 이상한 방식으로 현대화 시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건축물이 자주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삼청동이나 인사동만 가도 그렇다. 일본의 기모노와 우리의 한복을 교묘히 섞어놓은, 정체불명의 옷을 대여하는 괴상한 한옥이 많지 않나. 반면 DDP는 ‘나는 현대적인 건축물이야’ 하고 그 지역을 과시하듯 점령했다는 것 자체로, 그런 면에선, 디자인적인 의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사실 DDP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냥 DDP에서 포럼이 있다 그러면 가서 취재하고.. 사진 찍고.. 그런 거지. 산업 디자인보단 파인아트에 내 관심이 더 집중돼 있기 때문에 DDP에서 진행하는 전시를 즐겨 보고 그러진 않는다

 

동대문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창신동이 가까워 그런지, 나는 동대문을 생각하면 먼저 ‘김승옥’의 소설이 떠오르고, 그의 소설 속 남루한 사람들이 함께 선명해진다. 광화문이나 남대문 부근을 생각할 때와는 달리 가난하고, 낡은 풍경이 먼저 상상 속에 자리 잡기도 하고. 역사를 상상할 때도 광화문, 남대문을 떠올리면 양반이나 권력가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동대문은 나 같은 서민들이 떠오르고 그렇다. 당신 SNS를 통해 당신의 직장 로비를 본 적이 있는데, 고급스럽고 값비싸 보이는 작품이 가득하더라. 내가 동대문의 풍경을 지나, 직장에 도착해 그 로비의 작품들을 마주한다 상상해봤는데,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고민이 많아질 것 같더라. 물론 그 작품들이 잘못됐다거나, 그 작품을 선택해 로비를 꾸민 담당자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단지 이미지의 간극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는 거다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지하철에 내려 사무실로 올라오는 길에 장충동 먹자골목을 지나게 된다. 거기엔 유서 깊은 족발집이 여러 곳 있고. 70년의 역사를 지닌 빵집 <태극당>도 있다. 입사하기 전에 내가 장충동에 가졌던 생각은 족발집, 신라호텔, 이 정도가 다였다. 요즘엔 조금 다각적으로 보게 된다. 옆에 장충동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가을에 산책을 많이 했다. 떨어지는 낙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더라. 그 옆으로 보이는 동국대학교 캠퍼스 전경과 날리는 낙엽이 영화 같아 열심히 찍었다. 그런 길을 지나 사무실에 들어오면 ‘백남준’ 작가의 미디어 아트가 있고, <붉은 산수화>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다른 작품도 많이 있고. 당신이 말한 상충하는 부분은 나 역시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좋다 싫다로 나누기보단, 다양한 색깔이 있는 동네에서, 예술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게 기쁘다는 생각 정도다

 

동대문 얘기는 이게 마지막인데, 워낙 맛있는 게 많기로도 유명한 동네지 않나. 직장인의 점심이랄 게 뭐 대단하겠냐마는, 맛있게 먹은 식당이 있으면 알려 달라

 

동네를 조금 옮겨도 될까? 동대문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을지로3가인데, 거기서 밥을 자주 먹는다. 을지로3가에 양대창을 파는 <양미옥>을 좋아한다.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자주 들린 가게이기도 하고. 그 집이 가진 역사와 맛은 평생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도 좋아한다. <을지오뎅>. 빠듯하게 앉아서, 한 열댓 명 간신히 들어가는 다찌 형태의 일식집이 있다. 메뉴는 도루묵과 오뎅 단 두 개인데, 거기에 가면 그 분위기 덕분에 술을 안 마실 수가 없다

 

<양미옥>.. 정말 비싸고.. 정말 맛있는... 술을 제법 좋아하나 보다

 

맥주를 좋아한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손발이 저리더라고. 서른을 앞두고.. 손발이 저리나 보다. 그래서 와인으로 주종을 바꾸는 중이다

 


슬슬 내가 당신을 만나야겠다 생각하게 된 이야기들을 해보자. 당신은 갤러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이후 <YCK>(YOUNG CREATIVE KOREA)에서 선임 에디터로 일하며 100건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도 여러 편 썼고. 그런데 뭐 거기서의 생활이 어땠는지는 크게 궁금하지 않다.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우선 에디터라는 단어에 대한 것인데, 당신이 규정하는 에디터는 뭐하는 사람인가. 너무 많은 에디터가 있고, 에디터와 기자의 차이는 무엇이며, 에디터가 작가나 리포터와 구분되는 점은 어떤 게 있는지에 대해 에디터인 당신과 얘기해보고 싶었다

 

각자의 포지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얘기다. 하지만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 필드에선 에디터란 직함과 기자란 직함이 섞여서 사용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또 내가 함부로 정의하기엔, 일하시는 분들께 결례가 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어찌 됐든 좋은 아이템, 그러니까 기사가 될 소재를 발굴한 뒤, 그걸 독자들이 소비하기 좋게 편집 및 가공하는 역할을 하는 건데, 그 차이를 섣불리 구분 짓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어렵다. 맨날 질문을 하기만 하다가 질문받는 입장이 되니 쉽지 않다

 

잘 얘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의 조심스러움도 충분히 이해되고.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잡지 시장이 어렵다 보니 많은 에디터가 다른 매체로 이동했다. TV로 나가기도 하고, Youtube를 하거나, 모임 플랫폼의 진행자가 되는 식으로. 글을 쓰던 사람들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쇄 매체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많이 아쉽다. 어릴 때 잡지들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접했고, 좋아하는 에디터의 글은 찾아 읽기도 했었는데, 그리고 에디터 특유의 속된 글, 속물성이 과감히 드러낸 글은 잡지에만 있는 것이어서 더욱 소중했는데, 더 이상 그런 글을 읽을 기회는 많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몸담은 매체는 모두 웹진이다. <YCK>도 그랬고, 지금 일하고 있는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도 그렇다. <YCK>에서 지금 직장으로 넘어 올 때, 좋아하는 종이 매체가 있는지, 좋아하는 에디터가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받았었다. 물론 그때 나는 무조건 '디자인 프레스'가 최고라고 이야기했었지. 다른 매체와 비교 불가라고 대답했다. 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디자인 프레스’에서 취재한 인터뷰이, 이를테면 ‘폴 스미스’, ‘박서보’, ‘재스퍼 모리슨’ 등이 등장하는 인터뷰를 보며 입을 벌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하지만 좀 더 솔직하게 들어가 보자면, 말하기 굉장히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잡지를 즐겨 봤던 사람은 아니다. 소설이나 시를 더 많이 읽었지. 그래서 좋아하는 에디터를 뽑는 것보단, 좋아하는 작가를 뽑는 게 더 익숙하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긴 한데.. 이 직종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하..하..하.. 선배들이 좋아하는 매거진이나, 좋아하는 에디터는 누구이며, 그 에디터의 성향은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열심히 메모한다. 나중에 다 찾아보고

 

그렇게 찾아본 에디터 중에 끌리는 사람이 있었나

 

음... 음... 나 정말 어떡하나.. 당장은 생각나지 않는다

 

뭘 어떡하나, 갑자기 물어봤으니 그럴 수 있다.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고, 정보를 접하기도 쉬운 세상인데, 그 정보를 전달하던 에디터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글엔, 지금은 정보만 있고, 정보를 담은 사람이 없다는 감상을 자주 느낀다. 거칠게 말해 ‘에디터라면서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짜증이 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신은별’의 ‘양승우’ 작가 인터뷰를 보게 됐다. 건방진 표현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말해보자면, 오랜만에 괜찮은 에디터가 한 명 나왔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지금부터 당신이 한 인터뷰와 글을 나누어 얘기해보려 하는데, 우선 인터뷰 먼저. 당신의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당신이 똑똑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하는 건 쉽다. 하지만 보통 그 본능이란 건 멍청할 경우가 많아서, 똑똑한 본능이라는 건 드문 재능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똑똑한 본능? 나한테? 재밌다

 

그리고 인터뷰하는 에디터엔 두 종류의 에디터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A부터 Z까지의 질문을 성실하게 처리하는 에디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맨몸으로 마주 앉아 동물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에디터. 당신의 인터뷰는 그사이 정도에 있다고 느꼈는데, 보다 자세하게 말해보자면, 인터뷰를 철저하게 준비하지만, 준비한 범위 밖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필요하다고 느낄 땐, 맹렬하게 달려든다는 느낌을 당신의 인터뷰에서 느꼈다는 얘기다. 그 맹렬함 때문에 준비한 것이 틀어진다 할지라도, 그 순간의 욕망이 당신에겐 더욱더 중요하게 느껴졌고. 사적인 욕망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은 에디터가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고만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에, 당신의 인터뷰가 더욱 재밌게 느껴진 거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어떤 타이밍에, 마치 축구 경기를 보다 ‘지금 슛 때려야지!’ 하듯, ‘지금 이거 물어봐야지!’ 하게 될 때가 있는데, 당신은 내가 방에서 혼자 저런 말을 할 때마다 기대에 부응하며 질문을 던지더라. 아주 만족스러웠다

 

당신 말을 듣고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내가 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날 것이 아닌 것엔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에 가깝다. 잘 가공되고, 세련되게 만들어진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만, 사람은 제련하지 않은 원석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가공하기 전 거친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좋다. 그게 인터뷰에도 그대로 들어가는 것 같고. 상대의 좋은 이야기가 너무 많을 때, 내가 어느 한 부분을 건드리면 수도꼭지 연 것처럼 터져 나오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주저하지 않고 묻는다. 능청스럽게.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를 정도로. 대답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수도꼭지를 열고 싶었던 사람은 다 솔직한 사람이어서, 편하게 다 대답해줬다

 

당신 역시도 솔직해 보였기 때문에 편히 대답해준 것 아닐까. 묻는 사람 속이 구려 보이면 어떻게 솔직히 답할 수 있겠나. 인터뷰에 대해 이야기 하니 궁금해지는 건데, 인터뷰와 글쓰기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굉장히 이성적인 작업이고, 감정이나 생각을 잘 추려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에피터이저부터 디저트까지를 풍성하게 구성한 뒤, 정확한 타이밍에 테이블로 올려놓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인터뷰는 앞서 말했듯, 동물적인 작업인 동시에 상대에게 예의도 갖춰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걸 잘 해내고, 정리까지 잘 마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인터뷰인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

 

좋은 인터뷰는.. 나한테 있어서 좋은 인터뷰는.. 지면을 통해서든, 디지털을 통해서든, 그 인터뷰를 읽는 독자의 눈앞에,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전달하는 것이 좋은 인터뷰다. 아까 말한 것처럼, 주저하지 않고 묻는 까닭 역시도 그 인터뷰이가 보다 생동감 있게, 지면 위나 화면 위에서 움직이는 걸 바라기 때문이고. 그리고 다른 매체에서 다룬 정보라 할지라도, 내가 발행하는 매체에서 보다 재미있게, 그 사람의 말맛이나 행동, 느낌을 표현해내는 것이 좋은 인터뷰라 생각한다

 

그것이 인터뷰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라면 인터뷰 과정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

 

일단은 대화를 잘 끌어내는 게 중요하겠지. 경청하는 건 당연하지만, 상대의 답변을 평가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인터뷰이는 말하기를 주저하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잘 경청하는 동시에 음소거돼 있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리액션을 할 때도, 본능적인 동시에 치밀한 계산 역시도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대화록>은 어떤가. 괜찮게 하고 있나

 

되게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라 생각했다. 또 이런 인터뷰가 많아져야 독자들이 인터뷰이뿐만 아니라 인터뷰어까지도 잘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인터뷰가 나오기 위해선 인터뷰어의 내공과 수고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보통 인터뷰이만 주목을 받으니까. 그런데 <대화록>은 둘 다가 주목받을 수 있는, 아주 독특한 구조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대화들 사이 편집이 별로 없으니까, 그 흐름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재밌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으니까.. 매년 말을 좀 줄여야겠다 생각하는데.. 흠.. 아쉬운 건 없었나

 

글쎄, 궁금한 건 있었다. 질문 뒤에 왜 마침표가 없는지

 

줄글의 형식으로 발행되면 마침표를 찍는 게 마땅한데, 질문 다음 한 줄을 띄우고 답변을 적으니까, 그 한 줄 띄우는 것이 마침표의 기능을 해준다고 판단했다. 문장부호, 맞춤법이란 것도 다 약속이니까. <대화록>만의 약속을 만들자는 마음에서. 마침표가 찍히면 대화가 좀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음.. <대화록> 얘기는 그만하자. 인터뷰 얘기의 막바지인데, 인터뷰를 하면 몇 % 정도 만족하나. 나 같은 경우엔 평균 100%다. 모든 대화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80%이거나 120%인 대화만 있다는 얘기다. 대화를 준비할 때 예상한 것에 비해 늘 아쉽거나, 더 좋거나, 둘 중 하나다

 

%로 나누자면.. 정말 만족하는 인터뷰는 10% 정도다. 일처럼 한 인터뷰도 많다. 충족해야 하는 수량이 있었기 때문에, 소재에는 관심이 있으나, 그 사람에 대한 호감까지는 가지지 못한 채로 진행했던 인터뷰가 많다. 10%라 말한 건, 그 10%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인터뷰니까. 그중에서도 당신이 즐겁게 읽었다는, ‘지금 두 살인 딸이 커서 이상한 놈 데리고 오면 디지게 패줘야 하는데, 늙어서 질 것 같다. 그래서 권투를 시작했다. 체중을 실어 안면에 원투 꽂아버릴 거다.’라고 말한 '양승우' 작가 인터뷰를 가장 좋아하고

 

대화를 준비하며 당신이 진행한 모든 인터뷰를 읽었는데, 인터뷰마다 편차를 느꼈고, 그 점이 속상하더라. 당신의 인터뷰에서 본 가능성이 있는데, 처한 상황 때문에 마음껏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음 놓고 한 번 원하는 대로 인터뷰해 볼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단 생각도 했고

 

진행했던 것 중에 ‘양익준’ 인터뷰가 있는데, 그 인터뷰에 덧붙여 쓴 글에 ‘나는 왜 이렇게 항상 끓는 불덩이가 있을까, 너무 답답하다.’라는 부분이 있다. 나에게 있는 많은 말을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거고, 그 이력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데, 아직은 그 갑갑함을 해소한 글은 몇 개 없는 것 같다. 말한 것처럼 10%...?

 


이제 글 얘기를 해보자. 당신의 글은 나의 글과는 정반대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의 글은 내게 건조했다. 문장도 그렇고, 글을 쓰는 태도도 그렇고, 심지어 건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건조한 와중에 발견되는, 곳곳에 숨어 있는 촉촉한 뾰족함 역시도 존재하는 글이 당신 글이었다. 이 단서가 당신의 글을 그저 건조한 기사 형태의 글이 아닌, ‘신은별’의 글로 만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 뾰족함의 이름은 다소 거창하지만, 사랑이 아닐까 혼자 짐작해봤다

 

너무 근사한 칭찬이라 감사하다. 내 글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느낀 것이니,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하기보다는, 내가 왜 그런 글을 쓰게 됐나 생각해보자. 나는 문창과 출신이다. 문창과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지적이 감정이 과잉돼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객관화가 안 된다는 거였지. 그때부터 건조하게 쓰는 연습을 하게 됐다. 그렇게 글은 건조하게 만들어져 갔는데, 근데 또 나의 기본 정서는 항상 마음속에 끓는 불이 있고, 열렬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건조한 글 위로 묻어난 게 아닐까 싶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글은 세련되고, 솔직한 글쓰기다. 그만큼 내게 솔직함은 중요한 키워드고. 그걸 나타내려고 글을 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내가 말을 잘하고 있나? 횡설수설하는 거 같은데..

 

너무 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건조함과 함께 동시에 느꼈던 건 정확함이다. 글을 정확하게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정확하다는 말을 반듯하다, 단정하다와 헷갈리는 사람 또한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지저분하다 할지라도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말하는 정확함이 당신이 말한 솔직함과 같은 말일 수도 있겠는데, 거기까지 가닿기 위해서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게 정말 맞는지, 아닌지, 계속해서 헷갈려야만 정확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당신은 정확함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한다고 느껴졌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음.. 되게 좋네.. 근데 그런 정확함을 추구하는 것 역시 나의 인생 서사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꺼내는 것 같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유별난 문제아였다. 선생님들이 문제아라고 낙인찍고 기피하는 아이. 사고를 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가 특별하다 생각했고, 흔히 말하는 반골 기질이 있었다. 반지나 목걸이를 못 하게 하면 다음 날 열 손가락 가득 반지를 끼고 나타나는 아이였으니까. 그러다 보니 늘 튀었고. 그때부터 배제된다는, 사랑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조각하듯 나를 깎아온 것 같다. 평범해지기 위해서 나를 훈련시킨 거지. 그러다 보니 내가 자꾸 나만의 규칙이나 규율을 만들어서 살고 있더라. 그게 또 효과가 있었고. 지금 겉으로 보면 내가 문제아였다는 걸 아무도 모를 정도로 사회에 제대로 편승했으니까. 그게 편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추구하며 살았고, 하루하루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상황을 직면하고, 상황의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습관처럼 생겼는데, 그런 습관이 글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것처럼, 글 역시도 그렇게 접근하는 거지

 

내가 자꾸 건조하다, 정확하다고 말하니, 당신의 글을 아직 읽지 못한 체, 우리의 대화를 읽는 사람은 당신의 글이 다소 딱딱하겠다고 짐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반대라는 얘기를 지금 나는 하고 있는 거다. 글은 굉장히 건조하고, 정확한데,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감상은,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천방지축의 아이가 떠오르니까. 그런 대비가 아주 재밌기도 하고. 이 대비가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보자 결국 간단한 답이 도출됐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욕심 많고, 주어진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다 잘하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싶은 마음도 큰데, 하지만 결국 당신에게 최종적으로 중요한 건, 자기 욕망에 끌리는 그 순간인 것 같았으니까. 당신이 이런 사람이니까 당신의 글도 그렇게 읽힌다고 생각했다

 

너무 정확한 판단인 것 같다. 더 붙일 말이 있을까 싶다. 그래도 얘기를 해보자면 어느 한 쪽으로 나를 규정지으려고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다. 규칙과 규율에 따라 나의 일상을 만들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스타일이나 성향도 하나의 컨셉으로 규정돼야 내가 완성된다고 생각했거든. 그것에 걸맞은 키워드를 찾아보려 하기도 했고. 이를테면 외적으론 섹시함, 카리스마, 힙함 등에 맞추려 했었고, 내적으론 심각함, 우울함 등의 성향을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작위적인 느낌이 드는 걸 지울 수 없더라. 떠올린 키워드에 맞추려 할 때마다 오히려 그에 반대되는 나의 모습만 떠올랐고. 그러다 보니 그냥 나에게 있는 많은 욕망이 결국 나라는 걸 받아들이자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받아들임의 과정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과제가 아닐까 하게 된다

 


그런 당신의 욕망 중, 가장 큰 두 가지 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랑이었다. 사랑을 생각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

 

사랑.. 음.. 너무 어렵다. 나에게 사랑은 큰 키워드다. 사랑.. 그냥 사랑이란 키워드가 들어가 있지 않은 어떤 콘텐츠도 소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고. 천방지축이라고 했는데 너무 보수적인 답변일까..

 

보수적이라기보단, 순정이 있다고 정리하자. 두 번째는 예술

 

예술, 예술은, 나조차 나를 문제아로 인식하고, 외롭다고 느꼈을 때, 나대로 살아도 된다는 걸 알려준 게 예술이다. 그러다 보니 나대로 사는 사람을 계속 찾게 됐고. 그게 어떤 형태라 할지라도. 그런 사람을 찾으며 인생의 기쁨을 얻는다

 

좋은 글을 만나면 나는 한편으론 글의 미래가 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요즘은 대부분 무형의 것들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시대니까. 그에 비해 글은 너무나 명징한 실체고

 

최근에 <누데이크>의 ‘박선아’ 아트디렉터 인터뷰를 발행하면서 ‘아무리 지면 매체가 사양화되고, 디지털 콘텐츠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이 상황에서도, 양질의 콘텐츠라는 건 존재하기 마련이다’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글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누군가에겐 콘텐츠 그 이상의 개념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글도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좋은 글은 그냥 좋은 글이란 거다. 그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쓸 수 있는 대로 남을 것이고, 쓸 수 없는 사람은 쓸 수 없는 대로 남을 것이다. 다만, 사람이 정말 좋은 글을 쓰려면 그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크지 않은 것 같다. 글의 발전과 함께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존중도 높아지면 좋겠다

 

대화의 막바지다. 신년이니까, 아까 말했던 책 쓰기 말고도 올해 하고 싶은 것이 있나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내가 목소리 특이하단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그래서 목소리로 뭔가 하나 하고 싶다. 그리고 몇 달 전 술 마시다 신발끈을 밟아 엎어졌는데, 그러면서 발목을 삐는 바람에 운동을 못 한 지 오래됐다. 몸에 꼭 맞는 운동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헬스장에서 쇠질하는 내 모습을 찾고 싶다

 

신년에 하는 많은 다짐 중 하나가 또 독서다. 오늘 대화와 어울리는 책 한 권 추천해줄 수 있겠나

 

오늘 너무 어렵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 가지고.. 책 추천.. 문학적인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 생각이 잘 안 난다. 흠.. ‘아니 에르노’, 프랑스 작가고, 자전적 소설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데, 그의 대표작 중에 <단순한 열정>을 골라보겠다. 이 단편집 안에 작가 본인이 대사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불륜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륜, 섹스, 낭만 이런 키워드를 가지고 전개된다. ‘아니 에르노’는 문학 박사고, 문단에서 강연을 할 정도로 엘리트인데, 주체할 수 없이 계속되는 이끌림 때문에 그릇된 판단,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거다. 그걸 따라가며 읽는 게 재밌었다. ‘아니 에르노’에 너무 심취해서 그의 책을 다 사서 모으기도 했고. 당신은 내게 있는 성공, 사치, 글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욕망을 짚어낸 사람이니, ‘아니 에르노’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분의 저서 중에 <칼 같은 글쓰기>란 책이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문체와 스타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책인데, 그걸 보고 너무 소름 끼쳐서 손을 덜덜 떨며 책장을 덮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소회도 옅어졌지만,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 중 한 명인 건 분명하다. 당신도 읽어보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어떤 얘기로 마무리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불쑥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무런 제약 없이 지금 어딘가를 걸을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

 

제약 없이.. 어딘가를 걸을 수 있다.. 아.. 내가 몰타에 있었을 때 항상 자주 가던 카페가 있다. 옆엔 배가 정박해 있는 작은 바다가 있고, 그 옆엔 작은 도로가 나 있었는데, 그 위에 쿠바 컨셉으로 지어진 <카페 쿠바>가 있었다. 거기 앉아서 책을 자주 읽었다. 난 몰타를 배회하며 그 도시를 다시 즐기고, 당신은 그 카페에 앉아 ‘아니 에르노’를  읽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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