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두" - <곱고 맑은 영혼>

2021년 12월 17일의 대화


10월이 되면 ‘머무르는 별빛’을 듣는다. 그렇게 10월을 시작한 지가 8년이 됐다. 8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김일두’의 음악이 절실해 지는 시기가 찾아 왔었다. 부산이 그리울 때가 그랬고,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볼 때가 그랬고, 무언가를 해냈을 때가 그랬고, 어떤 걸 잃었을 때가 그랬는데, 그러다 보면 1년의 대부분은 ‘김일두’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나에게 음악은 영화나 문학과는 또 달라서, 마냥 의지하고 싶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내가 ‘김일두’를 들었다는 건, 이 사람과 나눌 이야기가, 이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사람에게 털어 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거 아닐까, 그럼 만나야 되지 않을까, 만난다면 부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고민하다, 연락을 했던 게 3년 전 일이다. 우린 그때 자갈치에서 만나, 새벽시장을 지나, 낡은 항구를 걷고, 잠깐 앉아 담배를 태우고, 다시 걷고, 중앙동으로, 보수동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때 나눈 이야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김일두’도 거의 기억하지 못 한다. 하지만 더욱 선명해진 건, 우리가 더 만나야한다는 생각인지, 마음인지 하는 것이어서, 그런데 또 상대적으로 바쁠 그에게 무턱 대고 만나자곤 할 수 없어서, 공연장에서 잠깐 인사나 나누며, 3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 11월의 어느 날, 그날은 세운 상가에서 열린 바자회에서 중고 ‘세이코’ 손목시계를 산 날이었는데, 그 옆엔 ‘김현식’ 베스트 앨범을 파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람한테 3천원을 주고, 그 앨범을 샀다. 그렇게 산 앨범을 공연 끝나고 나온 ‘김일두’에게 선물했고,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말했더니, 우린 그로부터 한 달 뒤, 그의 집에서, 흰둥이와 붕붕이와 함께 앉아, 귤을 까먹으며, 나는 시원한 커피를, 그는 따뜻한 커피를, 그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중간중간 담배를 피며, 오랜 시간 떠들게 됐다



부산에 와,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겨우 두 번째이지만, 공연장에서부터 봐온 걸 생각하면 당신을 본 지 이제 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도 이제 30대가 목전이고, 당신도 세월이 꽤 묻어나 보인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뭐 요즘엔 가만히 있는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 고양이가 아파가지고, 얘들은 한배에서 나온 애들인데, 부모 없이 둘이서만 붙어 있는 애들을 내가 데리고 왔다. 그게 2010년 2, 3월 된다. 그때 태어난 지 1개월 정도 됐다 했으니까, 내년 초에 열두 살이 된다. 나이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얘네들이 조금씩 아프더라고. 그런데 나는 요즘 공연도 일부러 안 잡았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 뭐 종일 앉아 있는 건 아니고

 

고양이가 둘 다 아픈 건가

 

외관상으론 한 놈만 아픈데, 다른 한 놈도 나이가 들어서 아픈 기미가 보인다. 우리 집에 있는 생명체는 다 아프다

 

당신도 아프나

 

나도 아프다. 대상포진 이후에도 계속 아프다

 

자세하게 물어보진 않겠다..

 

너무 웃는 거 아닌가. 사람이 아프다는데 그렇게 웃나

 

도배도 좀 하고, 그래야 건강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저 벽에 곰팡이를 보면 건강한 사람도 금방 안 좋아질 거 같다

 

저건 곰팡이가 아니다. 곰팡이가 아니고, 고양이가 지들 작품 한 거다. 미완성 작품. 내 생각엔 이게 자기들의 세계를 표현한 거지. 나도 어렵다. 같이 있으면서도 어렵다. 참고로 확실한 건, 이건 곰팡이가 아니라 애들이 긁은 거다. 곰팡이 찾아봐라. 우리 집에 곰팡이는 없다. 2층 화장실에는 좀 있는데, 집에는 곰팡이 없다

 


곰팡이 없다는 것, 알겠다. 지난 11월, <쉬바펍>에서 있었던 공연 얘기부터 해보자. <쉬바펍> 내 바엔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시 낭송 LP가 전시돼 있었고, 공연 시작 전엔 ‘톰 웨이츠(Tom Waits)의 ’Hold On'이 흘러나왔다. ‘김일두’ 음악을 얘기할 때 종종 ‘톰 웨이츠’가 언급되고, ‘부코스키’의 이름은 정말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 ‘찰스 부코스키’가 있다면 그건 ‘김일두’가 아닐까 하면서. 나 역시도 그런 언급을 통해 ‘부코스키’의 책을 알게 됐고, 신나게 읽었다

 

이야.. 그분은.. 대단하신 분이지. 뭐 삶이 어땠는지는 내가 자세히 모르지만, 글들을 봤을 땐, 특히 그 사람의 시가, 진짜 좋더라고. LA 출신인 ‘스티브’라는 친구가 나한테 알려줬다. ‘널 보니까 '찰스 부코스키‘란 사람이 생각난다.’ 하면서. 그때 처음 찾아봤는데, ‘스티브’가, 내 친구가, 왜 좋아하는지 조금 알겠더라고. 또 그 친구가 LA에 다녀오면서 ‘부코스키’ 책을 사가지고 와 나에게 줬다. 원문인데도, 내가 영어를 잘 못 하는데도, 하나하나 읽어보니까 멋있더라고. 좋고. 나와 그 사람을 비교한다는 게 참 놀랍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김일두’ 공연을 처음 본 건, 2013년, 홍대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위치했었던, 지금은 사라진 <살롱 바다비>에서 열린 <곱고 맑은 영혼>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었다. 두 번째는 <EBS 스페이스 공감 - 삼김시대> 녹화 현장이었고, 그다음은 시간이 좀 지난 2018년, <재미공작소>에서 했던 공연이다. 그리고 2019년 <오혜북스>에서 있었던 공연을 봤고, 올해 오랜만에 <쉬바펍>에서 공연을 봤다. 이번 공연을 보는데, <살롱 바다비>에서 처음 공연 봤을 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 게스트가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다른 공연은 보통 혼자 기타를 들고, 무대 위 의자에 앉아 노래했다면, 이번엔 함께 준비한 여러 사람이 함께 있어서 아늑했다

 

그날 공연 재밌었지. 정말 뭐랄까, 정말 오랜만에, 정말정말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공연을 지그시 눈을 감고 보기도 했고. 이 구성원들과, 이 멤버들과, 같이 공연하면 참 계속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연한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지금 손가락을 좀 다쳐서 기타를 오래 치면 손이 붓는다. 게다가 나온 앨범도 편곡을 해서 나온 앨범이니까 이런 구성이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리고 <쉬바펍>이란 곳에 힘을 주고 싶기도 하면서, 나도 거기에 처음 가니까 <쉬바펍>으로부터 힘을 받고 싶기도 했다. 공간도 마음에 들었고. 여하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때 공연에 워낙 감정들이 많아가지고, 뭐 하나 하나 일일이 얘기할 순 없지만, 결론적으론 재밌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봤다는 공연은 <두루미 흥업>의 1호 가수 ‘최광훈’의 공연을 말하는 거 맞나? 그때 안 그래도 저 구석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팔짱을 낀 채, 공연을 지켜보는 당신을 중간중간 훔쳐봤다. 소속 가수의 공연이 어땠나. 현장에서는 ‘이따 보자’라는 말로 정리했는데..

 

안 봤다.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그 이후에, 제주도 공항에 내려 600번 버스 타고 서귀포로 가는 길에 그날 공연 영상을 봤다. 광훈이가 보여줬다. ‘형님, 저는 못 보겠습니다.’ 하면서 나를 보여주는데, ‘야 너는 못 보면서 왜 나는 보여주냐’ 했더니 ‘형님, 지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신감 있게 봤는데.. 아찔하더라. 광훈이의 공연은 그런 아찔한 재미가 있는 거지

 

현장에서 관객은 정말 냉정하구나 느꼈던 게, 웬만하면 앵콜을 외쳐줄 법도 한데, 끝까지 앵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이 앵콜 했잖아. 전체적으로 재밌었지, 재밌다고 할 수 있지. 늘 사람들은 매끄러운 공연을 봐왔으니까. 그런 게 공연을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당연히 그렇게 준비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또 준비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또 광훈이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도 안 되고. 나도 제대로 못 하면서 광훈이한테 뭘.. 그래서 ‘광훈아 니 알아서 열심히 해봐라’ 했더니 광훈이가 연습을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 대본도 짜고, 잠도 안 자고 연습을 했다. ‘쓸데없는 말 안 하고, 필요한 말만 하면서 하겠습니다’ 해놓고도, 막상 무대라는 게 마술의 장이라는 게, 관객이 있고, 무대가 있는 곳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나 보다. 사람을 보는 순간 눈이 돈다. 더 하고 싶고, 더 보여주고 싶고, 미치는 거다 그냥. 얼마나 순수하냐. 순수하고, 진지하고. 그걸 보면서 내가 때가 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지금의 나도 생각하게 되고, 여하튼 여러 가지 생각이 나더라. 아찔하고, 조마조마하고 그랬다. 그런 재미인 거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이 사랑에 대해 진심으로 얘기하고, 표현하니까. 온몸으로

 

정말 온 몸으로 했다. 댄스까지 했으니까.. 뭐 그날 공연 얘기는 마무리하면서, 요즘 대부분의 공연 시작을 <머무르는 별빛>으로 할 때가 많고, 앵콜은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한다. 옛날엔 <새벽별>을 많이 했던 거 같은데 말이다.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궁금해지긴 하더라

 

많이 연주했던 거라서. 편해서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얘기들로 마무리를 짓고 싶기도 하고. 좀 다른 노래들을 하고 싶은데, 내가 만들어 낸 다른 노래를 하려면 연습을 해야 한다. 근데 내가 연습을 잘 안 한다.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고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한다.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해서 녹음을 딱 끝내고 나면 연습을 잘 안 하더라고. 원래 그런 가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더 나은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해봤는데, 사람이 피폐해지더라고. 계속 예민해지고. 하나하나 따지고 그런 거 있지 않나. 그런 생활을 몇 년 지속하다 보니까 사람이 좀 이상해지더라고. 내 작업이라던가 내 작품에만 그렇게 디테일하면 되는데, 그런 습관이 드니까 생활하는 게 불편해지는 거다. 그렇게 되면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들부터 불편해질 거 아니냐. 그래서 조금씩 놔 버리고, 놔 버리고, 놔 버리고 하니까, 나도 편하고, 사람들도 편하고, 나도 듣기 좋고, 사람들도 듣기 좋은 걸 하면 좋겠다 싶더라 



당신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더 좋아하는 노래니까, 뭐 나는 반갑다. 그렇게 변해간 얘기를 하니 생각나는 게, 요즘 여기저기서 ‘김일두’의 음악도, 사람도,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당신 표현대로라면 ‘꼬여 있던 예전에 비해 많이 넓어지고,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됐다’고 답해왔고. 하지만 난 그날 <쉬바펍> 객석에서 공연하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 여전히 서늘한 느낌을 받곤 했다. 누군가를 향한 서늘함이라기보단, 아무도 당신의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순 없을 것만 같은 서늘함.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일정 부분은 완성된 것이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부드러워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아닐까 짐작해보게 되더라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 노력해도 잘 안 되고. 누구나 성질이라는 게 있지 않냐. 당신도 성질이 있을 거고. 말 그대로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처럼 성질이 있는데, 성질부린다고 될 게 아니니까, 성질을 안 부리려고 노력하는 거지. 사람들은 이성이니, 합리니, 논리니,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무엇이 이성이고, 합리고, 논리고,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직관적으로 할 수도 없는 거다. 직관적으로 하면 성질이 많이 나오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순하게 나만 봤을 때 ‘전과는 조금 다르게 해야 하겠다’ 하는 거다. 왜? 전처럼 계속하니까 자꾸 그늘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더 그늘로, 더 서늘한 곳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양지로도 좀 오는 거다. 양지로도. 쉽게 얘기하자면 그냥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다. 일찍 일어나면 해 뜨는 것도 보지 않나. 그런 것처럼 계속 노력을 하는 거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탕에 가 목욕도 하고 싶고, 그런 게 내 노력인데, 지금은 코로나가 하도 퍼지니까 목욕탕에 갈 수가 없지 않나. 목욕탕에 가 보니까... 나는 못 가겠더라고. 아저씨들 하는 거 보니까 열 받고. 무언의.. 뭐라고 할까.. ‘목욕탕 왔으면 이 정도는 니가 각오하고 온 거 아이가’ 하는. 나는 그 정도는 각오하고 간 게 아니라, 목욕하러 간 건데, 각오까지 하고 가야되나, 그러니까 지금 시국이 그런 시국인 거다. 그래서 그때 돈 내고 탕 안에도 못 들어갔다. 한증막에나 들어가 사우나나 좀 하고 나올 정도였지. 사우나 하는 것도 불안불안하다. 사우나 하는데 아저씨들 올 거 같으면 얼른 나오고 그랬다. 그러니까.. 그런 노력을 하는 거지. 오늘 한파 주의보가 내렸는데, 당신은 덥다고 시원한 커피를 달라고 했다. 아마 나도 십여 년 전이면 그랬을 거다. 내복도 안 입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람이 바뀌거든. 똑같은 추윈데도 내복을 입게 되고, 따뜻한 물을 마시게 되고, 그렇게 된단 말이다. 똑같은 음식을 먹게 돼도 추위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고 그런 게 생긴다. 오늘 아침에 뭐 먹었나. 어머니가 맛있는 거 해주셨나

 

맛있는 거 해주셨다. 대구탕에, 조기에, 불고기까지.. 두 달에 한 번 내려오니까..

 

야.. 한 번에 그걸 다 먹기에는 좀 그런데.. 아무튼 그렇게 바뀌는 거다. 당신이 맨날 어머니 아버지하고 집에 있으면서 글 쓴다고 집 밖에 안 나가고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하겠냐. 노래 <극동의 3리터> 같은 거 계속 듣고, 방에만 있으면 대구탕 해주시겠나. 나도 대구탕 먹고 싶다. 뭐.. 대구탕은 소화가 잘될 거 같은데.. 아침에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시락국을 먹는다. 목욕탕 가는 것 대신 선택한 게 시락국을 먹는 거다. 아침에. 아침을 좀 편안하게 시작하고 싶어서. 그렇게 몸이 바뀌듯이, 내 성격도 바뀐다

 

그런 맥락에서 <새 계 절> 앨범은 정말 따뜻하고, 감사했다. 따뜻하다는 말을 요즘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쓰지만, 이거야말로 따뜻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 이전 앨범들부터 조금씩 밝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새 계 절>은 정말 온기로 가득했다. 피아노라는 악기 소리가 주는 감각 덕분도 있었을 것이고, 여러 사람과의 협업이 주는 뭉클함도 한몫했을 거란 생각이다. 최근 같이 공연을 자주 하는 ‘김종민’이 총괄 프로듀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 먼저 제안한 것인가

 

총괄 프로듀서는 ‘김종민’인데, 시작은 <dingn₩dents>의 ‘김창희’라는 친구와 일을 도모하면서다. <꿈 속 꿈>, <새 계 절>이 다 그렇게 나왔다. ‘김종민’ 군은 ‘김창희’ 군과 친구다. 그 모든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은 ‘김창희’ 군인 거지. 설계자다. 누가 먼저 하자 했다라고 하자면 ‘김창희’의 머리에서 나온 거다. ‘형님 이런 친구가 있는데, 정말 능력이 뛰어납니다. 형님 음악과 만나면 정말 잘할 것 같습니다.’ 하면서 만나게 된 거다.

 

다른 아티스트가 커버한 영상이 유튜브에 가끔 올라오긴 하지만, 기타가 아닌 다른 악기로 당신의 곡을 연주하고, 그 연주에 노래 부른 건 처음이지 않나. 어떤 느낌이었나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나의 작곡 능력이 더 뛰어난데?’ 뭐 이런 생각을 했지. 편곡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어쩌든 둥 편곡자한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그런 뼈대니까, 내 작곡 능력에 대해 더 탁월하다 생각을 했다

 

그렇게 편곡했을 때 특히 더 좋은 게 있었나

 

특히 좋다.. 특히 좋다라고 하면.. 지금 <새 계 절>에 포함된 거 말고도 <머무르는 별빛>의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다. 그 여러 가지 버전이 다 좋았다. 많은 시도 끝에 이것들은 선택돼서 나온 거다. 그 친구들이 시도들을 많이 했다. 어떤 노래는 한 번에 쭉 간 것도 있지만, 한 노래를 가지고도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끊임없이 노력해서 나온 거다

 

그 여러 가지 버전의 <머무르는 별빛>은 들을 순 없나

 

뭐 들을 수야 있겠지. 그 사람들이 풀면

 

‘CR태규’의 <방랑자>를 커버한 것 외엔 다른 사람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불러 앨범에 수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가깝고도 머언(3번 트랙)>, <마음에 쓰는 편지(4번 트랙)>, <투명한 너(5번 트랙)>, 이 세 곡을 아무런 정보 없이 쭉 들었을 때, 처음엔 당연히 당신이 만든 노래겠지 했다. 근데 가사가 ‘김일두’ 가사가 아니더라. 그래서 찾아봤더니 <마음에 쓰는 편지>는 ‘노영심’의 곡이었고, 나머지 두 곡은 ‘김종민’의 곡이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생각의 여름’의 <녘>, ‘강찬구’의 <가끔 들리는 것> 등 목소리로만 참여한 작업도 늘어나고 있고. 그 노래들을 들으며 다른 사람이 만든 노래를 부를 땐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더라

 

다르지

 

뭐가 다른지 말을 좀..

 

난 커버도 잘 안 한다. 커버할 능력이 안 된다. 커버를 하려면 연습을 해야 된다. 근데 좋은 노래를 내가 커버한답시고 이상하게 표현하면 원래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뭐라고 할 거 아니냐. 그게 조금 걸리더라고. 그 핑계로 그냥 내 노래만 한다. 난 들어도 내 노래만 듣는다, 집에서도

 

지금 다른 사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이거는 클라식이잖아. 클라식들은 내가 듣지. 옛날 노래, 클라식들은 내가 듣는데.. 여하튼 내가 능력이 안 된다는 생각에 안 했다, 근데 이제는 내가 창작해낼 수 있는 능력조차도 많이 떨어지더라고. 그렇게 느낀 지 한 3~4년 됐다. 그러다 보니 갈피를 못 잡겠는 거다. 나의 창작 능력은 떨어지는데, 나는 이제 마흔이 되어가는데,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되는데, 벌써 창작능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그러면 내가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며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어떤 말과 행동들, 사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듯이, 다른 사람의 노래도 불러보자. 그렇게 자연스럽게 된 거다. 그러니까 마음에 열리더라고. 내가 뭐 내가 만든 노래만 무조건 부를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런 규칙들을 만들면서 살고 있었더라고. 나 스스로 나를 좀 답답하게 만들고 한 거지. 근데 그걸 딱 푸니까 편하더라. 이 사람이 만든 노래에 내가 노래도 부르고. ‘생각의 여름’ 같은 경우에 ‘형님 노래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하는데 고맙지. 내가 또 그 사람 팬이거든. 그런 제안들이 오니까 또 반갑잖아. ‘어떻게든 해볼게’ 했다

 


그런 마음이 열린 건, 아까 우리가 얘기한 마음, 태도 같은 것들이 변한 시기와도 맞물린 거겠다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는 거지. 창작력도 떨어지고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창작력이 떨어진 것에 대해 말해보자면, 가끔 그런 생각은 했었다. 앨범을 자주 발매한 편이니까, 작업자라면 누구든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하고, 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참고, 수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러다 지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담금질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뭐 지치면 쉬면 되니까, 요새 공연도 이렇게 쉬고 있듯이. 하지만 이상하게 쉬고 있는 게 편해야 하는데, 올해는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 이상하다. 예를 들어 일을 열심히 하고 쉰다 그러면 마음 편하게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 언제가 더 편했냐면, 앨범이나 공연에 대한 생각도 별로 없이 살 때, 그럴 때 오히려 편하게 살았던 거 같다. 근데 오히려 앨범 내고, 활동도 하고, 많은 사람한테 관심도 받고 있는 이럴 때 쉬는 게 마음이 안 편하더라고.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당신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당신의 활동을 기대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는데, 과연 이 평화가 나랑 어울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다. 이렇게 말한다면 결국 난 그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시간이 드문 거지. 이 평화가 낯선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뭔가 평화로운 이 상황이 이상하다. 낯설다

 

그럼 곧 또다시 공연을 하겠다

 

공연이야 뭐 내가 마음 내키면 하는 거지. 근데 지금은 마음이 안 내켜서 안 한다 그랬다고. 초대해주시는 분들에겐 고맙지. 이 연말 연초에 나를 불러주신다는 게 얼마나 고맙나. 요즘엔 대우도 잘해주신다. 원래 대우를 잘 해주셨는데, 요새는 더 잘해주신다. ‘오시면 뭐 다 해드릴게요’ 이러는 분이 많다. 그래도 마음 편한 건 하나 있다. 내가 올해 마음 편한 일이 하나 생겼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 그러다 보니까 나의 공연의 의도가 순수해지는, 순도 높은 공연이 되어가더라고. 그런 부분은 참 좋다. 이런 건 이런 평화구나 하면서도 집에 와 혼자 앉아 있다 보면 이 평화를 의심한다. 내가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내가 내년에 결혼을 꿈꿔도 되는 것인가 하면서

 

<새 계 절>을 들으며 김일두가 한 지점 행복을 향해 더 다가서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사랑에 영혼> 앨범이 나왔을 때, 내가 당신에게 보냈던 문자 메시지가 생각났다. 정리하자면 그간 날카롭고 예민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내겐 위로가 됐던 당신의 음악이 갑작스레 행복해지자 나는 도리어 서운함을 느꼈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 하다 보니 그 서운함은 당신의 음악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문제들을 해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당신은 내게 ‘행복이 무엇일지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답했다. 2년이 지난 일이니 물어본다. 요즘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방금 내게 온 평화를 의심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것도 내겐 행복이다. 행복한 거지. 평화를 의심한다는 게. 그리고 내가 믿고 따르는 은사님이 행복은 이상향이라 하시더라고. 그 말씀을 계속 생각해보고 있다. 행복은 이상향이다? 그럼 행복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건가?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행복이 있고 없고 차이가 생기나? 그 이상향이란 말씀은 무슨 뜻일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 내가 ‘무조건 행복 합시다(’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가사)’라고 얘기했지만, 그건 20대 말, 30대 초반에 그.. 뭐라 해야 되나,, 그 힘이 들어간 가산데, 그 이후로 10여 년이 지나 생각해보니까, 그 말은 잘했다. 그래 무조건 행복 합시다 그 말은 속 시원하게 잘했다 싶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 고민하고 있다

 

언급해준 은사님 얘기를 종종 할 때가 있는데, 마음속에 품고 살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그 어른을 자주 못 뵌다 하더라도, 내가 존경할 수 있고,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는 게 많은 힘이 된다고 나는 느낄 때가 많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은사님이라고 한다면 나는 내 아버지라고 얘기할 수 있다. 내 아버지고, 내 누나고, 내 어머니고. 근데 이제 아버지가 수해 전에 돌아가시면서 마음 둘 곳이 없어졌었다. 망나니처럼 살던 자식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두고 그렇게 후회하며 살고 있을 때 만난 분이 이 은사님이다. 이 은사님이랑 강원도 홍천인가에 갔는데 ‘일두야 넌 요즘 무엇이 제일 힘드냐’ 하고 여쭤보시더라고. 그때가 귀한 쌈 채소가 있는 밭을 지나갈 때였는데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너무 후회가 되고 죄송스럽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 은사님께서 많이 챙겨주시고, 보듬어주셨다.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지금을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해봐라.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면.. 좋잖아.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 중에 한 분인 거지

 

최근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두루미 흥업>이 당신 행복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마음은 에너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 <두루미 흥업>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나

 

음.. <두루미 흥업>.. 이게 1인 면세사업자다. 아주 사적인 회사다. 그냥 <두루미 흥업> 해가지고 협동해서 하는 거다. 회사긴 회산데, 나도 잘은 모르겠다. 품앗이하는 곳인 거다. 서로 적은 금전이라 하더라도 <두루미 흥업>을 통해 나누겠다는 거다. 개인 ‘김일두’가 나누는 게 아니라 <두루미 흥업>이 나누는 거다. 흥업(흥+up)하는 게 목표다 



뭐 다른 인터뷰에서 부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왜 부산에 있으려 하는지, 부산에서 활동하는 게 어떤지 같은 건 묻지 않겠다. 다만 당신이 20대 30대에 느꼈던 부산과 현재 40대가 되어 느끼는 부산은 다를까 궁금했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부산에 왔구나 느끼게끔 하는 건 대중교통을 가득 채운 노인들을 볼 때다. 부산이 점점 늙어가고, 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부산을 떠나 있는 죄책감 역시 더욱 커졌고

 

변해야 할 것들은 변하지 않고, 안 변해야 할 것들은 변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속도감이 서울 경기보단 떨어지지만, 잘 안 느껴지지만, 그래도 조금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근데 그 바뀌는 게, 정말 변해야 할 건 안 바뀌고, 꼭 있어야 할 건 바뀐다. 그 안에서 나도 바뀌고 있는데, 난 잘 바뀌고 있나 생각이 든다. 20대 때는 부산이 그냥 부산이었고, 30대 때는 좀 자부를 했다. 30대 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더 공격적으로 살아야겠다 다짐하면서 부산을 벗어나는 일이 확연히 많아졌다. 부산을 벗어나 공연도 하고, 다니고, 하니 부산에 사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지금 40대가 되니 부산은 그냥 편안한 곳이고, 죽으면 부산에서 죽어야겠다 생각한다

 

뭘.. 죽는 얘기까지.. 알겠다.. 겨울이 정말 다 와버렸다. 겨울 바다를 좋아하나? 난 만조 때, 겨울의 부산 바다를 가장 좋아한다. 높은 해수면이 파도를 만들어 방파제에 부딪히는 걸 보면 하고 있던 고민이나 잡념이 모두 가소로운 것이 되고, 인간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걸 절절히 실감한다

 

그리고 춥다. 추운데, 겨울 산보다는 따뜻하다. 겨울 산은 정말 춥다. 그래서 겨울은 바다다. 산은 일단 겨울에 가면 푸른 것들이 싹 없다. 물론 소나무나 그런 침엽수들은 있지만, 산은 정말 다르다. 느낌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면 산은 겨울이 정말 다르다. 그래서 겨울에 산에 가면 한 번씩 정말 차갑다 생각한다. 그 가지들 보고 하면. 산에 사는 사람들 생각하며 겨울에 어떻게 사나 싶고. 그래서 겨울엔 산보단 바다를 간다. 겨울 바다 하면 일단 먹을거리도 많고, 생선들이 겨울에 다 신선하니까. 겨울엔 또 바쁘고. 여기 바로 밑에 자갈치 가면 바쁘다. 내가 사람이 좀 게으르다, 내가 좀 축 처진단 마음을 느낄 때, 자갈치 한 바퀴만 걸어도 활기가 딱 느껴진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뭐 그 사람들은 안 춥나. 당연히 춥잖아. 근데 바닷바람 맞아가면서 그 생선 해가지고 자식들 먹여 살리고 했잖아. 그래서 자갈치 아지매 동상도 있잖아. 그게 진짜거든. 근데 내가 뭐 이 뜨신 방 안에 앉아 있으면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그런 것들이 싹 사라진다. 열심히 살자 이런 생각 든다. 겨울은 바다다. 산은 진짜 무섭다

 

겨울 산이 무섭다는 걸 나도 안다. 겨울 산을 보면서 처음으로 쓸쓸함이란 감정을 이해했고, 동시에 무서웠던 기억이 있어 더 잘 이해된다. 이제 1부의 막바지인데, 내가 대화 전에 미리 건넨 질문지 중에 나와 나누고 싶은 것이 있냐 했을 때, 2020년대에 20대로 산다는 것이 궁금하다 했고, 나는 당신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내게 ‘김일두’는 가장 사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다수에게 다가가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덩치가 큰 질문을 하니 그랬던 거 같다. 이 질문이 하게 됐던 까닭을 좀 물어봐도 될까

 

요즘 20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가 궁금하다. 고민이라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왜냐하면 지금의 20대가 힘을 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힘을 내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자유롭게만 살고 싶은 건지, 여하튼 여러 가지가 궁금한 거다. 왜냐하면 그 20대들의 마음을 알아야 나도 살 거 아니냐. 그래도 30대들은 조금 접촉이 있다. 내가 조카가 셋이 있는데, 큰 조카가 스물일곱, 둘째가 스물여섯, 막내가 이번에 제대해서 스물하난가 둘인가 그런데 얘들도 20대지만 조카와 삼촌이니까 조금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다고. 그리고 내가 <씨티알싸운드> 소속이다 보니까, 거기 20대들도 날 어려워한다. 아무래도 안 어렵겠냐. 나도 20대 때 40대 형들 만나면 어려웠다고. 나는 그래서 그 20대 애들 마음이 궁금한 거다. ‘넌 무슨 생각 하니?’ 하고 묻고 싶은데 어떻게 보면 이런 질문들도 같잖잖아. 세대는 다 연결이 되는데, 20대와 얘기할 기회가 없으니 20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말이 막 막힌다. 내가 20대 때는 전혀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하고 있더라. 생각의 깊이가 엄청난 거지 지금의 20대가. 장난이 아니다

 

당신의 20대 때 고민은 뭐였나

 

나는 음악과 관련된 것만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공연을 통해 내 노래들을 더 어필할까. 노래는 좋은데 앨범은 어떻게 내야 하지? 그때는 무조건 스튜디오 가서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으니까. 나한테 좀 더 나은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야 녹음은 니 꼴리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임마’, ‘니가 집에서 니 꼴리는 대로 해라’ 이렇게 나한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녹음하려면 스튜디오 가가지고.. 빌려 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나는 계속 그런 고민만 하는 거다. 그럼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하게 되고, 그렇게 어디 나가서 일을 하는 거다. 근데 내가 일 나가서 몇 푼 벌겠냐. 그럼 또 돈이 계속 모자란 상황이 된다. 그럼 나는 또 일하고, 그런 생각만 하면서 20대를 보냈다. 그런 와중에 나한테 힘이 됐던 부분들은 뭐였냐면, ‘니 음악이 참 좋다, 끝까지 해라.’ 이런 분들도 계셨어서 그런 힘으로 살긴 살았다. 여러 고민을 하진 않았다. ‘결혼은 어떻게 하지?’ 이런 고민도 없었고. 근데 내가 30대 초반에, 10년 전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나서부터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앨범도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다. 서른 셋 넷이었는데. 그때부터 여러 가지 고민이 들기 시작한 거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나한테 얘기하기 시작하는 거다. ‘오빠야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부터 해가지고 ‘오빠야, 말할 때 인상 쓰지 마라’ ‘오빠야 집에는 냄비도 없나’ ‘집에서 뭘 안 해 먹나’ 뭐 온갖.. 그러니까 나도 고민이 되기 시작하는 거다. 전에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만날 때는 음악하고 술 한잔하고 집에 잘 가고, 못 가고, 술 한 잔 더 먹고, 또 고민하는 건 가사가 어떻고 뭐 이런 거뿐이었다. 뭐 맛집? 이런 거 없었다고. 근데 지금의 20대들은 고민이 더 많다. 나라에 대한 걱정도 많고

 

20대.. 나도 이제 며칠 후엔 20대가 아니게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우려가 된다, 위태롭다, 그런 감각은 있다. 그런데 결국 끝가지 알 수 없을 거 같다

 

모르는 게 맞다.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나대로 할 뿐인 거다. 여기서 고민하고 연구해야할 부분은 지혜롭게 가야하는 건데, 그 지혜라는 건 각자에 따라 다르겠지. 우리 담배나 한 대 피우까

 

🚬🚬🚬     🚬🚬🚬     🚬🚬🚬 



대화를 준비하며 2부를 어떤 식으로 가져갈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시기도 연말이고, 이 대화가 <대화록>의 2021년 마지막 순서이니, 연말연초를 위한 ‘김일두’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가상 앨범 트랙 리스트를 짜보면 어떨까 싶더라. 14곡 정도 생각하고, 나 하나, 당신 하나 이렇게 고르는 거다. 여태 당신이 발매한 모든 노래 중에서. 어떻겠나

 

좋다

 

처음은 나부터 하겠다. <새 계 절> 앨범의 '시작'으로 이 앨범을 시작하자. 평온하고 따뜻하게

 



연말, 좋네. 좋은 생각이다. 두 번째는 <꿈 속 꿈> 앨범의 ‘아침 해’ 먹고 사는 게 대수 아니겠나

 



그럼 나는.. 세 번째를 <Life is easy> 앨범의 ‘여든 여덟까지’로 하겠다. 이 노래가 진짜 버전이 많은데, 최근엔 이 버전이 제일 좋더라고. 늘 이 노래가 마무리하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여기 오면서 들으니 출사표 같은 노래처럼 들리기도 해서, 앨범 초반부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더라

 



이야.. ‘시작’으로 가고, ‘아침 해’로 갔다가, 여든 여덟? 아침에서 바로 노을로 가버리네. 여든 여덟? 흠.. 이거다. 이 노래(Sleep Endoscopy). 4번, 왜냐하면 겨울철에, 내시경들을 많이 하거든. 미루고 미뤘다가. 그럼 병원에서 다들 뭐라고 하냐면 ‘겨울철엔 사람이 많이 몰리니, 다른 때에 해달라’고 한다. 연말 연초에 많이 한다고, 내시경을. 내시경 해봤나? 올해 초엔가 작년 말인가 내가 이걸 했다. 내시경을. 그렇다. 수면 내시경

 


알겠다.. 네 곡 들었으니까, 잠깐 분위기를 정리해서, 연주곡으로, <When Do You Come?>의 ‘Happy Birthday To You'



그럼 나는 ‘머무르는 별빛’ <새 계 절> 버전. 이 노래 진짜 좋다? 이거 진짜 나는 엄청 들었다. 이렇게 편곡해놓으니까 참 좋더라고. 질리지가 않아. 엄청 들었다고 이 노래를. 나오기 전부터 엄청나게 들었다 이 노래를. 저 술집 가서 듣고, 딴 데 가서도 듣고, 여기서도 듣고, 저기서도 듣고, 여기서도 듣고, 온 전신에 가서 막 듣고 이랬다고. 이게.. 이제..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랑하는 여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많이 담았지. 이야기들, 감정들, 이 노래를 부르면 난 그때로 돌아간다. 지금도 좋지만, 그때는 완전 다른 세계에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이.. 참 그러고 보니까 그때가 마냥 행복했던? 그 처음에? 고민들이 많이 생기기 전에는. 마냥 행복했던 때지.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고. 지금은 이제 고민을 하는 게 뭐냐면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하게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할까 이 고민을 하는 거지. 그건 사실 복잡하다. 왜냐하면 계획 대로 되는 건 없으니까

 

나도 이 노래를 들으면 돌아가는 시절이 있다. 듣는 많은 사람이 그럴 것 같다

 

돌아가는 시절?  언제로 돌아가나

 



나도 만나는 사람이 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때 그 친구가 잠이 안 온다 그래서 이 노래를 틀어 놓고 조용히 불렀었는데, 그제야 잘 자더라. 그때 생각이 난다

 

잘 주무셨다니 다행이다

 

그럼 나도 <새 계 절>에 있는 걸로 하나 해볼까. 이 감정을 더 끌어 올리기 위해, 음.. ‘투명한 너’

 



‘투명한 너’ 다음에.. 이 노래 진짜 센 노래라 가지고.. ‘투명한 너’ 나오고 내가 이거 해버리면 이거 완전히 초 치는 노랜데.. ‘보따리’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지. 가장 나 다운 노래라고 할 수 있지

 



‘보따리’를 들으면 옛날 당신 노래가 많이 생각난다. 흠.. ‘보따리’.. 나는 ‘우리 둘이’, 아니다 ‘그 와중에’로 바꾸겠다

 

그럼 내가 ‘우리 둘이’

 



그래? 그럼 내가 ‘우리 둘이’ 하면 ‘그 와중에’ 할 건가

 

 



그럼 내가 ‘우리 둘이’ 당신이 ‘그 와중에’ 하자

 

하나, 둘, 셋, 넷.. 열 개다

 

열네 개 뽑고, 보너스 트랙 하나 더 뽑자. 다음은 <뜨거운 불> 그냥 제일 기본 버전으로

 



좋다. <나의 여인>에 보면 ‘해당화’가 있을 텐데.. 없네..? <나의 여인>이 아니라 여기 있구나. <제주 2013.4.6>의 '해당화'

 


흠.. ‘해당화’가 나오면 뒤에 뭘 할 수가 있나.. ‘해당화’를 한다면.. 다음 거 혹시 생각나는 게 있나? ‘가난한 사람들’을 넣고 싶은데, ‘해당화’ 뒤에 오면 서로에게 집중을 못 할 것 같다. 가운데 뭐가 있으면 좋겠는데

 

(정적이 흐르고, 스피커에서 ‘일곱 박자’가 흘러나온다.)



 

이거 하면 되겠다. ‘일곱 박자’ <새 계 절> 버전. 다음은 뭐한다고?

 

‘가난한 사람들’ <나의 여인> 버전으로. 이제 마지막이다. 보너스 트랙. 당신이 하나 골라달라

 



(‘새벽별’을 흥얼 거리다) 마지막 노래라..

 

추천해도 될까?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했던 ‘지니어스’의 'They were good'은 어떨까

 

어, 어어, 좋아, 좋다.

 



이 앨범을 들으며 올해를 되돌아 보기도 하고, 내년을 생각해보기도 하겠다. 고맙다

 

진짜 뭐 특별한 것 없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즐겁게,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건강하게, 조심조심하고. 나도 주위 사람들도. 많은 사람이. 모든 사람이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진 않으니까. 많은 사람이 그러길 바란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즐겁게, 평온까지 하다면 더 좋겠지

  

 




zcott.camus@gmail.com

대화의 기억과 내용에 대한 권한은 

대화를 나눈 이들과 '대화록' 페이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