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배우" - <서울예술대학교 졸업영화제>

2021년 12월 26일의 대화


지난날, 우연한 기회로, 신촌 메가박스에서 있었던, 서울예술대학교 졸업영화제에 방문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극장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들뜬 표정과 과장된 몸짓. 요란한 인사와 빛나는 뿌듯함. 그런 것들을 지나, 객석의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졸업을 앞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짧은 영화가 스크린 위로 연속해서 상영됐고. 그건 분명 영화였는데, 그저 영화라고 하기엔 설명할 수 없는 마음과 짐작할 수 없는 의미가, 스크린 속 영화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흩뿌려진 흔적을 확인했을 때,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시작됐다. 무엇을? 글쎄, 그건 그때의 나도 몰랐고, 지금의 나도 모른다. 남겨야겠다는 마음만이 사라지지 않고 떠돈다. 이 대화를 정리하며 몇 번이고 확인했던 말들, '앞으로', '계속', '함께', '하고 싶다' 각 말을 각각 읽어보고, 작은따옴표를 제거한 뒤 연결해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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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하면 구!> - 이단비 배우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본인이 출연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것이 처음일 텐데,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이제 졸업이니까, 극장에서 내가 나온 영화가 상영되는 걸 생각하면 이제 시작인 게 맞지만, 학교를 생각하면 이제 끝이어서, 아쉽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탁!하면 구!>를 본 것이, 이미 1부에 편성된 다른 친구들 영화를 본 뒤라 더욱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보니까 안 보이던 부분도 더 보이더라. 저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저 때 진짜 추웠는데..’ 그런 생각도 하게 됐고. 작품으로 보기보단 그때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봤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다른 영화와 달리 탁구를 치는 영화다 보니까 두 달 넘게 탁구를 배웠다. 연기도 잘해야 하는 게 맞지만, 탁구를 어색해 보이지 않게,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탁구 치는 ‘정하’의 모습으로 끝나는 영화니까 더 욕심이 났다. 졸업 작품이고 뭐고 그런 건 나중에 잊어버렸고, ‘탁구 이거 잘 나와야 하는데? 어설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배운 탁구를 최대한 잘 보여주고 싶었다

 

또 다른 졸업작품 중 하나인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를 보면 합동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1차로는 감독이 배우의 선택을 받아야 했고, 그다음에야 감독이 자신을 선택한 배우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는데, 그게 아주 미묘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시나리오만 읽은 상태에서 오디션 신청을 했을 텐데,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작품 선택의 기준이 궁금해지더라. 더불어 ‘구정하’란 인물에 대해, 시나리오를 읽으며 생각했던 ‘구정하’는 어떤 사람이었나

 

‘영지’와 ‘정하’가 주고받는 대사들이 우선 너무 잘 읽혔다. 사실 처음엔 ‘영지’에 지원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발랄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서 ‘영지’에 지원하려 했는데, 친구들이 옆에서 ‘너는 영지하면 떨어진다, 얼굴에 이미 정하가 있으니까 정하로 해봐라’ 그러기에 ‘그런가.. 그래 정하로 해보자’ 하며 ‘정하’에 지원하게 됐다. ‘정하’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시크함이 좋았다. ‘정하’가 가진 고비를 겪어 낸 경험도 마음에 들었고. ‘정하’에 관해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전재희’ 감독이 ‘정하’가 이후에 탁구 선수가 될 것 같냐고 물어보더라. 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고, 감독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차이가 나에겐 좀 신선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촬영 전에 알게 돼 좋았고. ‘아닌데! 할 거 같은데!’ 하고 우기기보다는, 그 차이의 이유를 찾으며, ‘정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서 ‘정하’가 꽤 정리된 상태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렇게 ‘정하’와 ‘이단비’ 사이에서 했다

 


‘정하와 ’이단비‘ 사이에서 했다는 말이 영화에서 정말 잘 느껴졌다. 나에게 ‘구정하’는 재밌는 캐릭터였다. 우선 자아와 꿈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A)이 있고, 그 인물의 주변에, 잠재된 욕망을 억누르며 사회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B)이 등장할 때, A는 B를 자극하고, 그 끝에 마침내 B의 욕망이 터져 나오며 처음으로 본인의 선택을 하게 되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구정하’는 그런 흔한 B형 인물이 아니라, 그냥 늘 자기선택을 해왔던 인물처럼 보인다. 탁구를 그만둔 것도, 탁구를 다시 치는 것도, 그냥 다 애초부터 자기선택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느꼈던 건, 당신의 연기 덕분이라고 생각했고. 물론 당신도 현실의 많은 선택지 앞에서 늘 불안하고, 고민하고, 망설이며 살아왔을 거다. 하지만 ‘구정하’를 보며 ‘이단비’라는 배우는, 끝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선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하’를 연기하는 당신의 얼굴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여유 역시 앞서 말한 선택의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고

 

‘정하’라는 인물을 그렇게 봐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난 ‘정하’를 ‘영지’에 의해 탁구를 선택하게 됐고, 엄마의 영향도 많이 받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유 얘기를 듣다 보니, ‘정하’라는 캐릭터가 여유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방금 막 들더라. 그리고 나부터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여유가 많이 생겼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지려는 쪽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많이 조급했기 때문에, 그 조급함이 날 얼마나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이제 안다. 이제 아니면 아니고, 되면 되는 거란 생각으로 여유가 생겼다. 후회와 미련에도 강해졌고

 

맞다, ‘정하’는 정말 미련도 후회도 없어보였다. 탁구가 시들해지면 언제라도 그만두고 다시 또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할 것처럼 보였고. 그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나는 좋은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덕분에 <탁하면 구>가 더욱더 내게 강하게 남았으니 그 연기는 매력적이고, 좋은 연기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감독이 됐다는 상상을 해보면서, 당신에게 어떤 배역을 맡기면 좋을까 상상해보게 되더라. 기존의 작품에서 생각해보자면,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다림’,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아가씨>의 ‘숙희’ 정도가 떠오른다. 이 작품들을 해본다면 어떨 거 같나. 또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나

 

‘다림’도 ‘이지안’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캐릭터다. ‘숙희’ 얘기도 들었던 적이 있고. <탁!하면 구!> 전에 찍었던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품 오디션에 가져간 레퍼런스가 ‘이지안’이었다.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이지안’을 보면서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란 말을 하는데, 그 대사가 나에게 많이 와 닿았다. 드라마 속 ‘이지안’이 나와 닮은 부분도 많다고 생각하고. 애정이 많이 갔던 캐릭터다. 연기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보자면 <‘이지안’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를 꼭 넣을 거다. 이런 내 마음을 내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좋아한다. 또 <마이 네임>의 ‘지우’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좋은 연기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를 떠올리면 한국엔 ‘박해일’, ‘유지태’, ‘기주봉’, ‘변희봉’, ‘김태리’, ‘전도연’이 생각나고, 해외엔 ‘줄리엣 비노쉬’, ‘드니 라방’이 생각난다. 다 다른 배우이니 연기의 공통점을 뽑을 순 없을 거 같고, 이들을 떠올릴 때 내가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다면, 배우의 얼굴과 배우가 연기한 인물의 얼굴과 그 인물이 속한 영화가 동시에 생각난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면 배우의 역할은 영화가 영화로만 존재하게 두지 않고, 인물이 인물로만, 연기가 연기로만 존재하게 두지 않고, 작품과 현실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 전달의 결과가 아닌, 태도에 따라 나는 연기가 좋다 아니다 판단하는 거 같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만이 아닌, 그 사람이 같이 묻어나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는 말인데, 사실 최근까지도 관련된 고민이 많았다. 예를 들어 ‘구정하’란 캐릭터가 시나리오에 있을 때, 내가 아는 ‘구정하’와 다른 사람이 보는 ‘구정하’는 다를 테니까. ‘이단비’ 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이런 사람이고, 또 다른 이에겐 저런 사람일 텐데, 결국 정의할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단비’가 생각하는 ‘구정하’ 그리고 그 ‘구정하’와 나 ‘이단비’가 잘 섞이면 좋은 연기가 되겠다는 거였다. 당신이 한 말이 공감이 많이 간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영지’와 단식 경기를 끝내고, ‘영지’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볼 때, 잘 안 보였겠지만 ‘정하’는 울고 있다. 오열하는 장면을 찍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꼈고, 하루 종일 호흡 훈련하며 텐션을 여유롭게 가져가려 했다. 사실 1회차부터 그 장면을 많이 걱정했는데, 그때 나의 그 부담감을 아는 친구가 나 자신을 믿으라고 하더라. 난 항상 날 믿는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넌 너를 못 믿는다고 하더라. 그래? 싶어서 호흡 훈련을 또 계속했다. 그러다 촬영 당일이 됐고, 탁구대에 두 손을 딱 뻗으며 고개를 숙인 뒤, 내 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안쓰럽더라. 여기는 어디고,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하는 동시에, 이 장면을 찍기 위해 호흡훈련을 했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고, 더 울컥했다. 그 자리에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울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투박하면서도 엄청나게 세심한 것? 현장에서 어떤 장면을 찍는다고 하면, 프레임에 들어갈 장면을 위해 그 주변을 다 치운다. 아주 투박한 태도로. 예민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기보단 투박하게 움직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투박함으로 만들어진 장면을 스크린으로 확인했을 땐, 이렇게 세심한 것이 또 없구나 생각하게 된다. 같은 장면을 보고 관객마다 보이는 게 다른 것처럼. 현장은 투박하지만, 스크린은 세심하다. 이 투박함과 세심함이 공존하는 것이 나에겐 영화다

 

<라디오스타> 식으로 정리해주다니.. 고맙다. 마지막이다.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 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연기로 돈 버는 것이 가장 욕심난다. 그리고 당신과 이야기하면서 조금 놀랐다. 내가 프리-프로덕션 기간부터 연기가 끝날 때까지 ‘정하’에 관해 생각했던 걸 똑같이 말해줘서, 내가 혼자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관객은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 말해줘서, 영화를 통해 나라는 사람이 비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내가 고뇌했던 시간이 관객에게 보인다는 점도 놀랍고, 좋다. 19살 때 연기를 시작했고, 연기를 시작하면서 ‘10년만 딱 해보자, 10년을 했을 때 마음도 가득 차고, 통장도 가득 찬다면 연기를 계속하자. 아니며 뭐 다른 길로 가자.’ 마음먹었었는데, 그런 목표를 생각했던 게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그 원동력을 느끼면서도,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만 하기보다는, 여유도 가지고, 쉬기도 하며 하고 싶다. 오늘 나눈 대화가 서른이 됐을 때 날 뒤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앞으로 5년만 잘 해서, 70세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그러고 싶다



<탁!하면 구!> - 전재희 감독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본인이 찍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것이 처음일 텐데,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큰 화면으로 보니까 부족했던 게 너무 잘 보이더라. 부족했던 것이 크게 잘 보이면서, 지금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데, ‘아 이 부분은...!’ 이러면서 봐가지고.. 민망했다. 영화가 상영된다는 벅차오름보단 민망함이 컸다. 그래도 사람들이 웃을 땐 좋더라. 난 내 영화가 소소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면 좋겠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연출을 전공했지만, 2학년 중반까지도 연출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안 하고 싶고, 미루고 싶고. 그러다 졸업할 시기가 와버렸고, 그동안 여러 실습을 통해 쌓인 경험이 있으니, 졸업을 앞두고 영화를 꼭 찍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이렇게 큰 단위의 팀으로 영화를 찍은 건 처음이어서, 졸업이란 것에 사로잡히기보단, 꼭 찍고 싶은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졸업작품 중 하나인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를 보면 합동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배우들이 여러 영화에 복수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 같은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나타났을 때 조바심이 나기도 했을 거 같다. 결과적으로 ‘김유현’, ‘이단비’ 배우가 영화를 잘 이끌어줬고, 두 배우의 상반된 분위기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그뿐만 아니라 조연으로 등장하는 ‘친구’, ‘선생님’, ‘방울토마토 자매’도 어느 하나 기능적으로만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찰나일지언정 자신의 캐릭터를 분명히 새기고 지나가더라. 캐스팅의 기준에 어떤 것들이 있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는 함께 만드는 예술이란 점에서 생각해봤을 때 배우와 감독이 함께하는 작업이란 형태 자체에 관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을까

 

‘영지’와 ‘정하’를 생각했을 때, ‘영지’는 작고, 동글동글하며, 땍땍거리는, 귀여운 이미지의 배우이면 좋겠다 생각했고, ‘정하’는 차갑고, 도도한 성격이 잘 묻어나는 이미지의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긴 머리 찰랑거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디션에 임했고, ‘이단비’ 배우를 봤는데, 내가 그려놓은 ‘정하’의 이미지와 너무 닮아 있어 처음부터 눈길이 갔다. 그런데 ‘영지’는 고민이 많았다. 원래 생각한 배우가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그렇게 캐릭터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영지’라는 인물이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 마냥 밝은데, 그렇다고 너무 과하면 또 안 돼서, 그 중간의 지점을 잡기 어렵더라. 그러면서 시간은 지체됐고, 그만큼 탁구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어 가서, 결국 1, 2학년에게 캐스팅 공고를 돌렸다. 그때 다행히 내가 생각했던 ‘영지’와 잘 어울리는 배우가 오디션 영상을 보내왔고, 그렇게 캐스팅하게 됐다. 작업 과정에선 크게 부딪히는 게 없었다. 일단 유하게 하려는 편이고, 함께 해준 스태프가 다 편하고 잘하시는 분들이라 믿음이 있었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셨고

 

<탁!하면 구!>의 컬러 얘기를 먼저 해보고 싶다. 우선 노란색이 눈에 띄는데. 팀복도 노란색이고, 점수판 중간중간 포인트 점수도 노란색이더라. 게다가 마지막 단식 경기의 10:10 상황에서, 두 숫자가 노란색인 걸 보며, 두 인물이 이제야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서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그 게임에선 두 인물이 노란 옷을 입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 노란색이 중요하게 느껴졌고

 

탁구공이 흰색도 있지만, 노란색도 있지 않나. 팀복을 노란색으로 한 건 거기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귀여운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했고, 원색을 원래 좋아해서 원색을 사용하게 됐다. 의미나 상징을 심고 노란색을 고른 건 아니다. 탁구 점수판의 노란색도 의도한 건 아니고. 우연이다

 

평소 탁구를 좀 즐겼지만, 노란색 점수판을 본 기억은 없어서 그 우연은 더 재밌게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듯 <탁!하면 구!>의 주 소재는 탁구다. 그리고 난 당신이 찍는 탁구의 순간이 흥미로웠다. 탁구는 네트 스포츠니까, 탁구라는 스포츠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건, 공이 네트를 넘어가는 찰나와 인-아웃의 여부가 결정되는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그 순간이 이 영화의 긴장감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당신은 이 순간들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더라. 오히려 당신이 관심 있는 건, 두 학생이 공을 치는 순간과 그 공이 상대의 탁구대 위로 떨어지는 순간, 두 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그걸 보며 난 이 영화과 선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겼고

 

중학교 때 방과 후 활동을 통해 처음 탁구를 접했다. 지금까지도 취미로 치고 있고. 마냥 좋아하는 구기 종목이어서, 탁구 영화를 한번 꼭 찍어보겠단 생각은 늘 있었다. 탁구의 미세한 순간들도 담고, 격렬한 탁구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CG 없이 진행해야 하다 보니 내려놓은 부분이 많다. 탁구가 단기간에 늘기 쉽지 않은 스포츠다 보니까, 배우들이 주어진 시간 내에 배운 탁구를 최대한 잘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조금은 느리게 보일 수 있는 것들도 편집을 통해 속도감을 올렸고. 기존 콘티엔 앳지가 난다거나, 달려가서 치는 장면을 슬로우로 잡는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작 환경에 의해 못 찍은 장면이 많아서, 오히려 리듬감에 집중해 씬을 보여주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다 보니 배우가 공을 치는 순간에 집중하게 됐고

 


‘영지’도 ‘정하’도 탁구 선수로 나오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그 정도의 탁구 장면이 나는 훨씬 더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탁!하면 구!>에서 또 하나 눈에 띄었던 건 대사다. 나도 대사를 써야 하는 소설을 작업하기 때문에 늘 좋은 대사가 뭘까란 고민을 하게 된다. ‘모건 프리먼’이 나래이션을 줄줄 읊은 거 같은, 비유와 해학으로 가득 찬 대사도 물론 멋지지만, 결국 좋은 대사는 그 대사를 말하는 인물을 관객에게 또는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탁!하면 구!>의 대사는 영화가 10대를 묘사할 때 꼭 등장하는 과장된 대사도 없었고, 10대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을, 10대의 입을 빌려 말하려는 멍청한 대사도 없어 좋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굉장히 자주 막히고, 오래 걸리는 편인데, 이번엔 데드라인이 급박해서 그런지 술술 써졌다. 상황과 캐릭터 성격을 정확히 정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고. 물론 고칠 땐 힘들었지만, 처음 쓸 땐 즐겁게 술술 썼다. 그리고 불친절한 영화가 나는 아직 어려워서, 친절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쓰다 보니 너무 설명적인가 싶어 고민이 되긴 했지만, 관객에게 인물이나 감정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사를 쓰고 싶었다. 또 교수님이 대사 쓰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고, 배우들이 워낙 훌륭하게 대사를 잘 살려주신 공이 크다. 마지막에 ‘영지’와 ‘정하’가 “탁 하면!” “구(속으로)” 하며 주고받는 대사가 가장 좋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영화를 하면서 힘든 점이 정말 많았지만, 잘 헤쳐 나가면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해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좋아하는 얘기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좋아하는 탁구를 소재로, 내가 겪은 학창 시절의 우정을 담아,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사람들과 이 과정을 함께 했다. 좋아하는 것이 원동력이 됐던 순간들이 기억날 것 같다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가볍고 재밌는 영화를 하고 싶다. 나부터가 영화를 보면 재밌고, 즐거워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기에,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물론 여운 있는 메시지도 살짝 숨겨놓고 싶고

 

마지막이다.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한 욕심이라면 <탁!하면 구!>가 영화제에 가면 좋겠다. <탁!하면 구!>로 이력이 한두 줄 생겨, 다음 영화를 찍을 때 제작지원을 받는 것에 도움이 돼주면 좋겠고. 이 영화가 잘 돼서 나의 앞으로에 좋은 시작으로 남으면 좋겠다. 그리고 쉬고 싶다. <탁!하면 구!>를 찍었던 시간은 나에게 진심이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 기억을 가지고 앞으로도 잘해보겠다 


<뜨거운 김치> - 전아현 감독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영화제 당일, 본인이 찍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영화에 집중을 못 하고,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데 한눈을 팔았다. 내가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관객이 조금이라도 웃으면 행복한데, 그런 리액션을 관찰했다. 무반응이면 슬펐을 텐데, 포인트를 줬던 부분에 꽤 웃어주셔서 감사했다. 만족했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이전 선배님들의 영화제를 봤을 때 감명받았던 적이 많다. 작품을 진행하며, 내가 봤었던 선배님들의 영화제 속 좋은 작품만큼 나도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망이 늘 있었다. 선배님들의 작품에서 선배님들이 너무 잘 느껴져서, 내 작품을 후배들이 봤을 때 내가 떠오르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또 다른 졸업작품 중 하나인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를 보면 합동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배우들이 여러 영화에 복수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 같은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나타났을 때 조바심이 나기도 했을 거 같다. ‘김지태’ 배우와 ‘김정진’ 배우도 이 오디션을 통해 섭외된 것이 맞나? 난 이 두 배우의 연기에 정말 깜짝 놀랐다. 두 배우 덕분에 <뜨거운 김치>는 영화 같다가도, 어느 순간은 <상남 2인조> 같은 일본의 학원물 만화 같고, 또 어떨 때는 스탠딩 코미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마지막에 두 배우가 문 앞에서 담배를 털며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 담배를 터는 손가락, 걸을 때 덜렁거리는 팔, 문을 넘어가는 걸음걸이까지, 완벽한 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했다

 

나도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근데 사실 그건 NG컷이다. 둘이 서로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서로 웃는다.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인데. 그래도 난 그 컷이 너무 좋아서 그냥 넣었다. 둘이 워낙 친한 친구다. 현장에서도 연기가 아니라 진짜 같았고, 대사도 배우들과 같이 썼다고 볼 수 있다. <뜨거운 김치>는 코로나에, 장마에 다양한 이유로 많이 밀려서 오래 찍게 된 작품인데, 장기간 장면 하나하나 재밌게 잘 해주셔서, 배우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다음 작품도 같이 하기로 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두 분이라 영향도 많이 받고, 좋다

 


<뜨거운 김치>에서 또 좋았던 건 리듬이었다. 쇼트의 리듬이 좋은 영화를 보면 절로 신이 나면서 박수가 치고 싶어진다. 그런 좋은 리듬을 느낄 땐,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는데, 하나는 감독이 자신의 감정의 길이에 따라 쇼트를 나누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고, 하나는 아주 동물적인 감각으로, 요리사가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듯이 직관적으로 썰어나간다는 생각이다. <뜨거운 김치>는 물론 후자였고. 쇼트를 어떻게 잘랐는지, 배열과 리듬을 정할 때 무엇을 신경 썼는지 들려줄 수 있을까

 

이전 작품들은 편집자에게 많이 맡겼는데, 이번 작품은 영화 찍는 내내 내가 해야겠단 생각을 계속했다. NG컷 까지 내가 다 보고 확인해가면서 하고 싶었고, 그냥 내가 제일 쓰고 싶은 장면들을 넣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영화엔 NG컷도 많이 들어가 있고. PD 맡아준 언니와 교수님이 많이 다듬어주시기도 했는데, 내가 하려던 것과 주변에서 다듬어준 것이 잘 맞물려서 이렇게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에 쓰인 음악을 또 너무 좋아해서, 음악에 맞춰 생각하기도 했고. 재밌었다. 촬영도 편집도

 

로케이션에 대한 얘기도 좀 해볼까. 대화를 준비하며 <뜨거운 김치>를 세 번쯤 봤을 때, 첫째로 굉장히 많은 공간이 등장한다는 점과 두 번째로 이 공간들이 그렇게 특별한 공간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거나, 아니면 길을 잘못 들었을 때 한 번쯤은 만났을 법한 공간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뜨거운 김치>를 봤을 때 그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평범한 공간을 영화적 공간을 끌어 올린 감독의 역량 덕분일 텐데, 대부분 넓고 열린 공간에서 찍었으니까, 그 공간 중 일부를 카메라 프레임 안에 넣겠다고 결정할 때의 기준이 궁금했다

 

나의 이전 작품도 그렇고, 많은 단편 영화가 실내에서 찍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이번엔 벗어나고 싶더라. 시원하게 오토바이 달리는 로드무비를 찍고 싶었고. 보는 내내 시원하게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케이션을 정할 땐, 우선 PD가 고생을 많이 했다. 상황에 맞는 로케이션을 찾아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다행히 학생 영화라 그런지 협조적으로 장소를 잘 빌려주셔서 감동받았다

 


<뜨거운 김치>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주성치’, ‘기타노 다케시’, ‘고봉수’ 등의 이름. 이들의 스타일은 매우 다르지만, 결국 웃음을 끌어와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그럼에도 모든 장면이 웃기기도 해서, 결국 울다가 웃게 만드는 감독이란 거다. 코미디라는 건 정말 어려운 장르이지 않나. 특히 요즘처럼 수많은 개념과 가치가 새롭게 등장하고, 충돌하는 시기에서, 코미디를 꺼내 들었을 땐, 누군가는 웃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받기도 하니,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 판단된다. 그럼에도 <뜨거운 김치>를 보면서는 그런 우려가 생각나지 않았고, 유쾌한 웃음과 애잔한 눈물만이 생각났다

 

영화과 와서 1학년 때부터 코미디를 고집해왔다. ‘주성치’를 너무 좋아해서, 나의 최종 목표는 희극지왕이 되는 거다. 한 사람이라도 웃기면 성공이라는 포부로 시작했고, 내가 생각한 코미디의 요소에 관객이 웃어주시면 너무 행복하다. 코미디가 없으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 영화제 때 영화를 보며 재밌었던 건, 두 인물이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을 나는 울컥하는 장면이라 생각하며 넣은 거였는데, 사람들은 다 웃더라. 나와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울컥하고, 감동 받았는데, 상영하는 현장에선 사람들이 웃으니까. 신기하고 재밌었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계속 가져가고 싶은 것도 배우와 스탭과의 관계다.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많이 배워서 계속 같이 영화를 통해 서로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운이 좋다. 현장에서 행복하게 찍기가 참 힘든데, 나는 폭소하면서 찍었다. 그런 순간들이 기억날 거다. 미화된 걸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모여서 한 화면을 가지고 보는.. 여기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보고, 듣고, 감정을 느끼는 그런.. 소통...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일 수도 있고.. 다양한... 이야기....

 

마지막이다.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기회. 기회를 얻고,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 (한참을 횡설수설 한 끝에)흠..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 내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이 내 영화를 통해 느끼면 좋겠다



<가을방학숙제>, <실>, <그날 밤 보았던 꿈에 관해서> - 김어진 배우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영화제 당일, 본인이 찍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난생처음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내가 나오는 영화를 보는 거니까, 그게 정말 컸다. 마음이 웅장해졌달까. 관객들이 어떻게 보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마침 옆자리에 전혀 모르는 분이 계셨는데, 미세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게 되더라. 내가 나온 영화가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그분의 정말 작은 행동을 보며 ‘재미가 없나? 재밌나?’ 하며 영화를 봤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작년부터 계속 함께했던 분들이랑 이번 작품도 촬영했다. <실>도 두 번째 같이한 작품이고, <가을방학숙제>도 수미 언니랑 같이한 두 번째 작품이고, 수미 언니랑은 그 외에도 많은 학교 과정을 함께 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쉬움이 너무 크다. 다들 너무 가족 같고, 현장에서 계속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졸업하면 이제 그럴 수 없으니까. 물론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모든 사람과 같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더 이상 같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다. 동시에 가장 순수하게 작업했던 시간인 거 같아서, 그걸 이제 잃는다는 것도 크게 느껴졌고

 

또 다른 졸업작품 중 하나인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를 보면 합동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배우들은 여러 영화에 복수 지원하기도 했던 거 같더라. 시나리오만 가지고 오디션 신청을 했을 텐데,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그 선택의 기준이 궁금해지더라. 또 오디션 전 시나리오를 읽으며 처음 구상했던 인물에 관한 본인의 설정 색 등도 궁금했고

 

<가을방학숙제>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언니와 개인적으로 친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이 ‘이런 생각과 감수성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던 거 보다 더 따뜻하다.’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두리’라는 인물은 보자마자 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고. <실> 같은 경우엔, 일단 글이 너무 잘 읽혔고, 읽으면서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게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하고 싶었다. 작업 과정을 생각해보면 <가을방학숙제>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나와 ‘두리’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점점 더 짙어졌고, <실>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다은’과 나의 경험이 겹치는 것이 전혀 없어서, 나와 ‘다은’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감독님과도 얘기를 많이 나눴고, 인터뷰나 기사를 찾아보며 연구하는 마음으로 했다. 아쉬운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은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당신이 봤을 땐 어땠나

 


<가을방학숙제>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두리’가 옷을 챙겨 입고, 백팩을 맨 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과 바로 이어 붙는 장면-‘두리’가 시골길을 혼자 걸어가는 장면이다. ‘두리’가 걷는 걸 보며 ‘<가을방학숙제>가 끝나고 나면 이 장면이 남겠구나’ 생각했다. 걸어가는 그 모습이 이 영화를 다 담아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교도 없이, 꽤나 멀리서 그저 ‘두리’의 걸음을 찍은 장면이지만, 당신의 걸음걸이가 모든 걸 얘기하고 있다 느꼈고, 또 그 전달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음이 편했다. 당신의 연기도 ‘두리’라는 친한 친구와 다정하게 노는 모습을 보는 듯했고. <실>은 클로즈업이 많은 작품이고, 당신의 얼굴이 많이 부각되는 작품이니, 얼굴 위로 지나가는 감정에 집중하며 보게 됐다. ‘다은’과 ‘남자아이’의 감정을 선으로 긋는다면 ‘다은’의 출발지는 절망일 것이고, ‘남자아이’의 출발지는 희망일 텐데, <실>은 그렇게 정반대의 출발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두 인물이 중간에서 만난 뒤,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망설이다, 끝내 희망의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발을 움직이며 마무리되는 영화지 않나. 그때 클로즈업되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나는 당신이 아직은 답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답을 모른다는 건, ‘다은’이 희망의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섣불리 답을 내릴 순 없어서, ‘다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는 얘기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맥락에서 <가을방학숙제>의 ‘김어진’은 굉장히 친한 친구와 너무 편하게 노는 모습을 함께 웃으며 보는 것 같았다면 <실>의 ‘김어진’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연기를 나 역시 고민하며 조심스레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은’을 연기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어진아, 몰라도 돼. 모르는 게 답일 수도 있어.’란 말을 해주셨고, <실>은 그 말이 가장 잘 반영된 작업이었는데, 당신이 그걸 정확히 말해주니 기분 좋다

 

조금 더 말을 해보자면 두 작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의 얼굴만 보게 되더라. 그 얼굴 위엔 여러 시대가 섞여 있고, 여러 감정이 중첩돼 있다고 생각하며 보게 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인물을 계속 보다 보니, 그 인물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느껴졌다. 아주 거칠고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 태도는 예의가 아닐까 했고. 내가 배우의 연기를 보며 예의를 느낀 건 ‘기주봉’이 유일했는데, 연기력의 비교에 대한 얘기가 아닌, 태도에 관한 얘기로써, 당신의 연기를 보며 ‘기주봉’에게서 느꼈던 예의를 느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연기를 보게 해준 것에 고마웠다

 

나도 고맙다. 연기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맥락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 인물을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아무리 거칠게 표현된다 해도 나는 그 친구를 거칠게 보면 안 된다는 마음이다. 나는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잘 알아야 하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접근한 것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실>에서 ‘다은’과 ‘김어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는데, 그 태도가 결국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청소년기를 홍콩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난 홍콩에 가본 적은 없다. 내가 경험한 홍콩의 5분의 3은 모두 ‘왕가위’의 영화 속 홍콩이고, 남은 5분의 1은 ‘찬호께이’의 소설 속 홍콩, 그리고 나머지 5분의 1은 뉴스를 통해 본 홍콩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게 정리된 홍콩은 잦은 만남과 이별이 있다는 것, 경계에 있는 지역이라는 점, 점점 그 색이 옅어진다는 점에서 내 고향 부산을 떠올리게 한다

 

되게 신기한 게, 내가 저번 달 부산에 갔을 때 똑같은 걸 반대로 느꼈다. 여기 되게 홍콩 같다 하면서. 홍콩이 내 고향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를 거기서 보냈고, 나에게 많은 것을 줬다. 우선 홍콩에서 국제학교에 다녔고, 50개국이 넘는 나라의 친구들과 수업을 들었는데, 그런 경험이 연기할 때 다양성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한 가지만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방향을 열어두고 사고하는 것에도 큰 힘이 되고. 연기도 거기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들어갔던 동아리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을 계기로 시작한 거다. 나에게 정말 고마운 곳이고, 다시 가고 싶은 공간이다. ‘왕가위’ 영화는 오히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봤다. 홍콩에 살면서 홍콩 사람들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고, 선이 짙고, 그런 홍콩 사람들의 특징이 ‘왕가위’ 영화에 잘 담겨 있고, 거리나 문화도, 예를 들어 <중경삼림>에 나오는 거리나, 그 거리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내가 겪은 것과 똑같아서 ‘똑같다...’ 하며 영화를 봤었다

 


좋은 연기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를 떠올리면 한국엔 ‘박해일’, ‘유지태’, ‘기주봉’, ‘변희봉’, ‘김태리’, ‘전도연’이 생각나고, 해외엔 ‘줄리엣 비노쉬’, ‘드니 라방’이 생각난다. 다 다른 배우이니 연기의 공통점을 뽑을 순 없을 거 같고, 이들을 떠올릴 때 내가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다면, 배우의 얼굴과 배우가 연기한 인물의 얼굴과 그 인물이 속한 영화가 동시에 생각난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면 배우의 역할은 영화가 영화로만 존재하게 두지 않고, 인물이 인물로만, 연기가 연기로만 존재하게 두지 않고, 작품과 현실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 전달의 결과가 아닌, 태도에 따라 나는 연기가 좋다 아니다 판단하는 거 같다

 

연기엔 정말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1번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사랑해야 이야기와 이야기에 속한 인물들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들을 바로바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영화와 인터뷰를 보며 어느 순간 깨달은 거다. 그들이 영화 자체를 너무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한국 배우 중엔 ‘전도연’을 너무 좋아하고, 외국 배우 중엔 ‘줄리안 무어’와 ‘레아 세이두’를 좋아하는데, 이들을 보면 정말 영화를 좋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태도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어떤 인물이 와도 그 인물을 투명하게 봐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명하게 봐야, 내 안으로 받아 낼 수 있고, 소화 시킬 수 있고, 그렇게 다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 최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게 되지 않나. 모든 파트가 모여서 작은 화면으로 모니터를 하는데, 그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모니터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엄청난 집중력으로 그 작은 화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동시에 내가 배우라는 게, 이렇게 같이 작업한다는 게, 잘했다,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걸 핸드폰으로 한 장씩 찍어 놓기도 했고. 그 순간들 덕분에 계속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나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배우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화가 너무 좋으니 공부하는 마음으로 많이 찾아봤었고. 그런데 학교에 들어와 작업할 땐, 오히려 옛날에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던, 먼 극장까지 찾아가 영화를 보곤 했던, 그 마음이 조금은 없어졌단 느낌이 들더라. 그게 미웠다. 영화는 정말 오래된 남자친구? 친구? 같은 존재인 거 같다. 나에게 너무 큰 기쁨도 주지만, 그만큼 힘든 것도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거 같다

 

마지막이다.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 뭐가 되고 싶다던지, 어디를 향하고 싶다던지, 그런 욕심은 아니다. 그것보단 일단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 그 작업이 주어졌을 때 그 안에서 욕심을 찾아 나가는 게 나에겐 즐거움이다. 새로운, 많은 작업을 계속하면서 새로운 욕심을 찾아 나가고 싶다

 


<가을방학숙제> - 양수미 감독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영화제 당일, 본인이 찍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내가 일학년, 이학년 때는 영화를 아예 안 찍었다. 사실 입학할 때도 영화를 찍는 학교라고 생각하며 들어온 게 아니었다. 만드는 것보단 보는 걸 더 좋아했고, 비평이나 이론 쪽에 더 관심이 있어 들어온 거였다. 하지만 뭐 어쨌든 연출 전공으로 들어오게 됐으니까, 영화를 찍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과 지내게 됐고, 자극되더라. 그렇게 찍은 첫 영화를 2021년 2월에 처음 틀었었다. 당시에 큰 화면으로 보지 못 한 아쉬움이 남았었고. 그 이후 <가을방학숙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풍경이 많이 나오는 영화니까, 큰 화면으로 봤을 때 전해지는 게 더 많을 거란 생각으로 썼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신촌 메가박스에서 틀었는데, 음.. 사실 영화를 틀기 전까지 자신도 없었고, 자괴감도 들고, ‘틀기 싫다’, ‘메가박스 가기 싫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상영하고 났더니, ‘내 영화가 스크린에서 보는 게 훨씬 나은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요즘엔 핸드폰이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많이 보는 시대지만, 다시 한번 극장이 주는 벅참도 느꼈다. 극장의 스크린이 내 영화를 더 좋게 만들어줬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연출자로서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찍을 때 항상 생각하는 건,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거다. 이제 겨우 두 편을 찍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영화를 찍지 못했을 거고, 이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찍는 영화일 거란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나중에 다 같이 추억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더불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었고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를 보면 합동 오디션 장면이 나온다. 배우들이 여러 영화에 복수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 같은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나타났을 때 조바심이 나기도 했을 거 같다. 또 다른 좋은 배우가 많았겠지만, ‘두리’ 역을 ‘김어진’ 배우가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두리’를 연기하는 ‘김어진’ 배우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속으로 ‘배우가 한 명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원래도 친한 사이로 알고 있기도 해서 궁금해졌는데, 처음부터 ‘김어진’ 배우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쓴 건가

 

‘김어진’ 배우가 친한 친구인 이성빈 감독(졸업영화제 출품작은 <러브 퍼폼>)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비대면 오디션이라 ‘김어진’ 배우의 연기를 영상으로만 봤다. 감독은 되게 좋아했지만, 난 사실 처음엔 매력을 못 느꼈다. 그 배역이 인싸 느낌의 발랄한 인물이었는데, 그 역할을 하기엔 ‘김어진’ 배우가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실제 ‘김어진’의 연기를 보니 인물을 너무 잘 표현했고, 분석도 많이 한 게 느껴져서,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랑도 실습 작품을 찍었었는데, 그때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 처음 봤을 때도 배역이 안 맞다 생각한 거지, 어진이의 얼굴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얼굴이다. 또 내가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데, 일본 영화 속 배우들의 눈빛이 어진이에게서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첫 작품인 <이나의 카메라>는 오디션도 안 보고 그냥 어진이랑 같이 했다. 어진이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고. <가을방학숙제> 역시 다른 연기전공 학생들에게 조금 실례가 되는 얘기일 수 있지만, 어진이를 상각하며 썼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써야 시나리오에 집중이 되는 편인데, 그게 어진이었다. 그래도 단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오디션을 열어 놓긴 했었는데, 결국 어진이가 가장 잘 어울려서 캐스팅하게 됐다. 의심의 여지 없이 좋았고



영화 얘기를 좀 해보자면 의상 얘기 먼저 해볼까 싶다. 민재의 옷은 비교적 한결같지만, 두리는 옷을 꽤 여러 번 갈아입는다. 그중에서도 사진관으로 가기 위해 두리가 머리를 묶고, 회색 백팩을 매고, 붉은 톤의 스웨터 가디건을 걸친 체 하얀 스타킹을 무릎 까지 올린 의상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 의상이 있었기에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두리’, 길을 혼자 걷는 ‘두리’, 사진관에서 잠든 ‘두리’, 그리고 민재 앞에서 서럽게 우는 ‘두리’까지의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 속 꼬마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김어진’은 이미 2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인데, 17살을 연기해야 하니까, 너무 성숙해 보일까 봐 걱정은 좀 됐다. 영화 속 ‘두리’의 행동 중, 17살이어도 안 할 것 같은 행동도 있지 않나.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동화처럼 찍고 싶었고, 그렇다면 배우의 나이와 인물의 나이의 간극을 메꿀 수 있는 요소로 외적인 부분을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어도 의상은 첫 작품부터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어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정확하게 있었다. 하얀 반스타킹도 일본 영화들을 레퍼런스 삼아 지정했고, 가방도 그랬다. 또 계절이 가을이다 보니 브릭톤 계열을 구해 사용하려 했고. ‘두리’가 길을 나설 때 귀엽고, 당찬 소녀 느낌이길 원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꽤 많은 사람이 의상 덕분에 ‘두리’가 성숙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해준 걸 보면 의상에 힘을 준 게 잘 표현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동화 얘기를 하니 해보고 싶은 얘기가 있다. 가족사진을 찍어오라는 숙제도, 방학이 여름이나 겨울이 아닌 가을이란 것도, 배경이 시골인 것까지. 그리고 CD 플레이어, 필름카메라 등의 많은 소품 때문에도 나는 이 영화를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분명 <가을방학숙제>는 기억에 관한 영화 같고, 기억이란 건 정말 사적인 것인데, 공유할 순 있어도 공동으로 소유할 순 없는 게 기억인데, 그런 기억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익숙한 기억이 아닌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 흥미로웠다

 

보통 명절이나 이럴 때 시골에 간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난 그런 경험이 없다. 경험이 없으니, 기억도 없고. 어릴 때 시골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기차나 자가용을 타고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가족이 함께 가는 걸 상상하면 더 그랬고. 경험이 없으니 시골에 대해 잘 모르고, 그러다 보니 더욱 동화처럼 만들고자 한 것도 있었다. 너무 디테일하게 연출하려고 하지 말고, 좀 더 서정적이고, 따뜻하게, 공간을 활용하면서 해보자 생각했다. 왜 잘 모르는 시골을 선택했냐 묻는다면, 물론 실제 시골에서의 삶은 무조건 정이 넘치고, 따뜻하지만은 않을 거다. 하지만 도시에서만 살았고, 시골의 경험이 없는 나에겐, 시골과 시골의 풍경이 하나의 동화다. 동화 같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찍은 <가을방학숙제>였으니, 나의 사적인 동화적 공간인 시골을 선택했다

 

당신의 얘기를 들으니,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 대해 섣불리 오독하는 일은 당연히 무례하고, 문제가 있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희망적 환상에 다짜고짜 현실을 들이대는 건, 오히려 더 폭력적인 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산타를 믿는 아이에게 정색하고 산타는 없다고 말하는 어른을 볼 때 화가 나는 것과 비슷한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얘기를 이어가 보자면, 나는 <가을방학숙제>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보여주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두리’가 오빠의 방 구석구석을 뒤지며 카메라를 찾긴 하지만, 나중에 보게 되는 방의 모습처럼 엉망으로 어지럽히는 장면은 없고, 오래 그 자리에 있었을 필름에 어떤 사진이 찍혀 있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또 ‘두리’와 ‘민재’가 함께 찍은 사진도 보여주지 않고. 당신이 이 장면들 대신 선택하는 건, ‘두리’가 옷을 갈아입고 길을 걷는 것, 정리된 방에 떨어져 있는 CD플레이어를 한참 바라보는 ‘민재’, 그리고 나무 앞에 한참을 서 있는 ‘두리’의 얼굴이다. 흔히 영화에서 감정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은 다 배제했는데, 당신에겐 감정의 격정보단, 끓어오른 감정 이후, 그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가 당신에겐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이 남매는 이렇게 행복했습니다, 행복할 거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 살아갈 거란 마음으로 끝내는 거였다. 이 가족의 관계가 갑자기 회복하는 것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행복해지는 과정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있었기에 이전보단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민재’가 CD플레이어를 내려놓을 때, ‘두리’는 사진을 찍을 때, 서로의 숙제를 해결했다고 느꼈고. 완벽히 회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보여 주지 않은 장면들은, ‘두리’의 감정을 전달할 때, 어떤 특정한 장면이 기능하기보단, ‘두리’의 행동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이루어지길 바랐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그렇게 따라가며 같이 공감하고, 슬퍼하고, 기뻐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소재나 참신성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항상 소재가 특별해야 하고, 참신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다. 지루해 보이는 시놉시스라도 그 안에서 연출을 어떻게,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영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방식과 스타일로 풀어낸다면, 그건 설령 시놉시스가 똑같다 할지라도, 그 누구와 닮은 영화가 아닌, 오직 그 사람만의 영화가 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래도 참신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소재가 뭐랑 비슷하다 이런 얘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들으면 고민은 되더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내 진심이 담긴 방향으로 영화를 찍어야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결국,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교수님과 주변의 의견, 그러니까 누가 봐도 타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의견들보단,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교내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그 상을 받고 다시 자리로 돌아갈 때 교수님이 날 붙잡고 ‘이장호’ 감독님이 내 영화를 좋아해 주셨다고 하더라. 항상 내 영화에 아쉬운 얘기를 많이 해주셨던 교수님이 칭찬해주시니까, 수고했다고 해주시니까, 그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상을 받은 건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졸업 작품을 찍고, 졸업하기까지, 나에겐 영화란 모두 도전이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있어서 욕심내지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지금 하고 있는 것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했고, 나 스스로도 더 노력하거나, 더 욕심내지 않았으며, 실패를 두려워했고 내가 무언가를 원할 때 그만큼 잃게 될 부수적인 것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항상 나는 어중간한 시간을 보내며 꿈도 없고, 욕심도 없는, 불행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정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행하진 않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간다.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불안하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이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늘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순 없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불안하더라도 불행하지 않도록

 

마지막이다. ‘유기종’ 감독의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너무 궁금하고, 나도 계속해서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앞으로 항상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

 

 

 

대화를 준비하며 <무비블록>에 들어가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아무래도 지난 21일 신촌 메가박스에서, 스크린으로 볼 때와는 감흥의 차이가 있어 아쉽게 느껴졌다. 다시 봐서 영화의 감흥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가장 좋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다. 영화제 당일, 본인이 찍은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궁금했다

 

영화를 세 편째 만든 건데, 극장에서 상영한 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극장 상영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영화를 보다 웃어도 혼자 웃고, 울어도 혼자 우는 거라 생각해서, 다른 환경에서 보는 것과 극장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내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한 뒤, 극장의 중요성을 크게 실감했다. 상영 전 여러 과정에서 주변의 친구, 동료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줬을 땐 확신이 없었다. 내가 의도한 포인트들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에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할 땐, 내가 넣은 포인트에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 치고, 울고 하는 걸 보게 됐는데, 감정이 전염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제는 극장이 소중하다

 

‘졸업 작품’이란 말은 사실 좀 이상한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영화 찍기에 관한 졸업이 되어버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러 온 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졸업작품 역시 훗날 쌓일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결국 수많은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럼에도 졸업이란 말이 작품 앞에 붙으니 졸업이란 시기와 맞물려서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학교를 졸업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 동료와의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을 준비했을 거라 상상이 되더라

 

2학년 때까지는 극영화만 찍었고, 다큐에 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2학년까지 영화를 찍고 난 뒤엔,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고. 제작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많이 가지게 됐었기 때문에. 그런데 우연히 학교의 졸업 영화를 아카이빙하는 일을 맡게 됐고, 그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졸업 작품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3년의 시간을 보낸 학교에서 졸업 영화를 찍지 않는 건 아깝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렇게 뭘 찍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졸업 영화를 찍는 친구들을 담아보자고 결정하게 됐다. 영화과에 들어오기 전 나는 부진한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성적도 안 좋았고,  이전 대학교도 한 달 만에 자퇴했었다. 사회성도 없었고. 그런데 여기에 와 친구들과 교수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좋은 기회도 많이 주어져서, 학교가 나에겐 너무 소중했다. 그렇게 학교가 내게 준 선물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다큐멘터리에 대해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말이 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한 말인데, 이런 내용이다. ‘극영화는 아무 문제도 없다. (중략) 나는 글리세린을 약간 살 수도 있다. 그것을 여배우의 눈에 몇 방울 떨어뜨리면 그녀는 울 것이다. 나는 몇 번이건 애써 진짜 눈물을 가까스로 찍은 적이 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진짜 눈물은 두렵다. 사실 내게 그 눈물을 찍을 권리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다. (중략) 그것이 내가 다큐멘터리로부터 도망친 주된 이유이다.’ 당신은 당신 친구들의 영화 찍는 과정과 그 과정에 핍진한 감정을 담기 위해 차가운 기계인 카메라를 들이대야만 하는 입장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건, 어느 순간은 극영화 보다 훨씬 찬란했겠지만, 또 어떤 순간은 그 잔인함에 몸서리쳐야만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좋아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착한 영화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나는 그가 모든 필모에 걸쳐 카메라의 필연적인 폭력성에 대해서 끝도 없이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즈업>에서 가장 많이 느꼈고.  그렇다면 카메라는 결국 폭력이니까, 그 폭력을 인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태도로 이 인물들을 담자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들을 담으면서도, 그 상황 자체가 폭력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마무리됐을 땐 이 친구들에게 선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꿋꿋하게 찍었다. 많이 울기도 했지만

 

선물 이야기를 하니, 이 친구들을 위한 마음이 더 컸던 건지, 내가 이걸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건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내 의견을 먼저 말하자면 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후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상이 어떻게 느낄지는 알 수 없지 않나. 그러니 후자의 마음에 집중해야만, 물론 그 마음이 좋은 마음이라고 했을 때, 대상도 찍는 카메라도 보다 나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나의 욕망도 중요하지만, 이번엔 선물을 받을 친구들의 마음도 나에게 너무 중요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겠단 판단이 선다

 

좋다. <마지막 영화>엔 선배가 많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지점을 이미 통과한 사람들이다.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현재에 치열한 사람에겐 안일한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신은 그 얘기들을 아주 차분하게 잘 정리했더라. 내가 속이 좁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였다면 이야기를 들으며 선배를 찍는 동안 몇 번 정도는 성질이 나기도 했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선배들을 믿었다. 졸업한 지 최소 7년 이상 지난 선배들이고, 그런 선배들이 해준 얘기라서, 의심이 전혀 없었다. 영화를 공부하려고 학교에 모였고,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많이 나눴었던 얘기들이라, 우리 안에선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얘기이기도 하다. 선배님 인터뷰하면서 재밌었던 일화가 있다면, ‘이명세’ 감독님이 출연하신 선배님 중 가장 인지도가 높으신 분인데, 처음엔 좀 힘들었다. 대화의 아귀가 안 맞는 거다. 내가 한 질문과 감독님이 해주신 답이 자꾸만 어긋났다. 얘기를 들을 때 잘 흐르지가 않으니 꿈꾸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고. 그런데 집에 와 다시 차분히 생각해보니, 감독님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랬다고 깨닫게 되더라.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말할 때는 원래 아무도 말리 수 없지 않나. 모든 것이 감독님에겐 영화인 것 같더라. 누구보다도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감독님의 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거다. 그렇게 그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후반부에 감독님의 인터뷰를 넣었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돼 작업한 적이 없고, 정설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아마 앞의 질문을 하게 된 것 아닐까 싶다. 그런 끈끈한 동료가 있다는 건 내게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 영화 얘기를 좀 더 해보면 <마지막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인서트 장면이었다. 중간중간 사람 없이 의자, 터널, 빈 교정, 도로, 복도, 마지막의 강의실까지. 그리고 이 장면들을 채우는 감정은 앞뒤로 붙어 있는 쇼트들의 감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 쇼트와 뒤 쇼트의 감정이 디졸브 되면서 인서트 장면을 채운다는 얘기다. 그걸 보고 있다 보니, 이 영화에 내가 가장 집중하게 되는 순간은, 수많은 사람이 나와 인터뷰를 하고,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찍고 있는 카메라 뒤의 당신만이 프레임 안에 존재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카메라 뒤에 혼자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가장 밀접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철저하게 그림자로 남길 원했다. 어떻게 보면 위선적일 수도 있다. 그림자로 남겠다는 것에 취해 있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내 얘기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등장하면 이 영화가 나라는 지점으로 모여버릴 것 같았고, 하지만 이 영화는 나의 영화가 아닌, 우리의 영화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의 강의실은 우리 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서울예대 가동 205 스튜디오란 공간인데, 영화과의 모든 전공 필수 수업을 거기서 한다. 모든 행사도 거기서 이루어지고. 우리에겐 그 공간이 고향이다. 이제 졸업을 하니까, 그 공간을 떠난다는 의미에서, ‘안녕’이라고 말하며 끝냈고


당신이 등장하지 않은 것엔 두려움도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한 발 떨어져 바라볼 때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는 것에 더욱 용기 내기 쉬워지니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마음을 막기 힘들어지곤 하니까. 한 발 떨어져 친구들을 담는 과정을 통해 당신이 힘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건 전혀 나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런 맥락의 두려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화 준비를 하면서, 당신이, 혹은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이 대화를 봤을 때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금 무언가 시도해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 끝에 나온 질문이 다음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이번 작품을 찍으며 만나게 된 순간 중에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순간이 있나. 꼭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이명세’ 감독님 섭외했을 때가 우선 떠오른다. 섭외 0순위이긴 했지만, 가장 마지막에 연락드렸다. 감독님에게 가장 정성스럽게 부탁을 드리고 싶었고, 영화가 정리되고 난 후에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메일 드렸더니, 바로 전화가 와서 굉장히 쿨하게 ‘언젠데? 해줄게.’ 하시더라. 입가에 미소가 숨겨지지가 않더라.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자랑하고 그랬다. 두 번째로는, 다큐는 항상 깨달음의 연속인 것 같은데, 수미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영화를 사람들과 다 같이 만든다는 게 좋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행복이 소중하다’고. 근데 난 그게 아니었다. 행복한 적도 없었고. 그때부터 ‘영화는 행복일까?’란 질문을 여기저기 하기 시작했다. 그것에 대한 답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영화를 마칠 수 없다는 생각에 편집이 중단되기도 할 정도였고. 그렇게 질문을 많은 사람에게 하다 보니, 많은 답이 돌아왔고, 자꾸 혼란스러워지기만 해서, 결국 교수님을 찾아갔는데, 그 수많은 답을 전해들은 교수님이 ‘그게 다 영화 사랑이지’라고 하시더라. 그때 내가 너무 좁게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가 내가 이번 영화를 진행하면서 경험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정답도 없으며 너무 거대한 이야기여서 굳이 잘 나누지 않아도 되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답은 또 시기에 따라 굉장히 예민하게 달라지기에, 지금 시점에서 한번 남겨놓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물어본다. 지금, 지금의 위치에서 ‘영화’라는 단어를 소리 내고,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어떤 생각, 마음들이 오가나

 

사랑

 

마지막이다. <마지막 영화>에 나온 모든 사람의 얼굴엔 끝났다는 후련함보단, 아쉬움이 더 짙어 보였다. 그 아쉬움의 다른 이름은 욕심일 것이고, 욕심이 지속한다는 건 작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을 낸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영화와 나의 글은 끝내 미완성에 그칠 것이다. 앞으로 가기도 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하고, 옆으로 새기도 하는 과정 속을 헤매다 끝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주 사적인 욕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시도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계속 욕심을 내고, 그렇게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얘기는 지금 가장 욕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마지막 영화>는 내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영화제에서 상영되길 바라는 영화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정말 많은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영화를 놓고 살았던 사람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 영화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기분 좋았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영화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걸 놓지 말고 살아가자는 마음을 여러 사람에게 전할 기회를 자주 가지고 싶다

 


사진 제공 ㅣ 전재희 전아현 양수미 유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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