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03일의 대화
야구를 본 지 20년이 넘었다. 야구를 본 건 20년이지만, 야구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2~3년에 채 안 된다. 그만큼 야구는 어렵고, 복잡하다. 야구를 얘기할 때, 우리의 인생이 자주 인용되는 까닭 역시도 이런 야구의 어렵고 복잡한 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과 복잡함의 대부분은 야구를 설명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경우의 수와 그 경우의 수를 두고 행하는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선택은 가끔은 옳고, 자주 그르다. 그럼에도 선택했다면 움직여야만 한다. 무사 만루에도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처럼, 9회 말 2아웃 풀카운트 상황에도 배트를 휘둘러야 하는 타자처럼. 주인공이 될 순 없지만, 야구를 절대 놓지 못하는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 속 등장하는 야구인들처럼
2021년 프로야구도 정규시즌은 이미 끝났고,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다. 올 시즌의 야구는 어땠나
언제나 야구는 그런 것 같다. 봄에 시작해, 여름을 지나, 가을에 끝난 뒤, 겨울 동안은 스토브리그(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난 뒤, 각 구단이 팀의 강화를 위해 선수와 계약하고, 연봉협상을 진행하는 시기 : 겨울철에 야구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들러앉아 선수의 이동, 기타의 소식을 얘기하며 흥분하는 것이 마치 실제의 게임을 보는 듯하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생겼다. - 출처 체육학대사전)가 진행된다.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야구에 맞춰 흘러간다. ‘올해가 또 이렇게 갔구나’ 생각하며 보내고 있는 가을이다.
특정 한 팀을 응원하다 보면 성적을 떠나 많은 생각이 든다. 특히 시즌이 끝날 때가 되면 은퇴하는 선수에 관한 아쉬움으로 가득 차고, 좀 지나치게 말하면 그와 그가 속한 팀의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나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 야구를 정말 잘했다. 시즌 초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나와 좋고 신기하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가 아직 남았으니 거기서도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고. 그런 차이는 있다. 과거 그저 팬으로 야구를 볼 때는 승패에 매달리며 뜨겁게 야구를 봤다. 하지만 이 산업 안에서 일하고 난 뒤로는 야구를 볼 때 한 발 떨어져 차갑게 보게 된다. 야구라는 거 자체에 관한 고민이 많아진다. 야구라는 공놀이가 뭐기에 사람들이 울고, 웃나 하며. 지난 주말 있던 경기는 팬들도 많이 왔고, 좋아하는 선수가 세레모니도 멋지게 했는데, 분위기가 마치 한국시리즈 같았다. 어떻게 보면 팬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건 취미생활이지 않나. 분명 그저 취미일 뿐인데...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게... 야구가 사람을 참 순수하게 만든다. 나 역시도 그랬고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야구와 야구장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야구장에 관한 첫 기억은 언젠가. 나는 여섯 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를 따라 형과 함께 사직야구장에 갔다. ‘펠릭스 호세’가 한창 잘할 때였고, ‘호세’가 타석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일어나 절하듯 팔을 내렸다 올리며 ‘호~~오~~세~~에~~~’ 하곤 했다. 물론 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걸 따라 했고. 사실 ‘호세’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응원 중간에 먹었던 컵라면이지만.
약간 다른 얘기를 먼저 해보겠다. 91년도, 내가 열두 살 정도일 때 ‘한일 슈퍼게임(1990년대에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프로야구 시즌이 마감된 뒤 열린 한일 프로야구 정기전)’이 있었다. 그 경기에서 ‘이정훈’이란 선수가 아주 잘 쳤는데, 난 그걸 보며 야구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야구에 빠지고 나니, 유독 완투를 자주 하는 투수들이 멋져 보이더라.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선수 보단 활짝 웃는 선수들이 난 더 멋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팬이되며 야구에 더 깊게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운드를 책임지는 투수는 정말 멋지다. 근데.. 그래서... 야구장에 관한 첫 기억은 뭔가
뭐 어릴 때 친구들과 잠실야구장에 가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단, 군대 가기 전 처음으로 갔던 지방의 한 야구장이 뇌리에 박혀있다. 서울에 살았으니 지방의 야구장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벼르던 끝에, 입대를 앞두고 간 거다. 혼자 기차를 탔다. 야구장 가겠다고.. 그게 참 소중한 추억이라 일을 하러 지방 야구장에 갈 때면 그때 생각이 가끔 난다. 야구장이란 공간을 통틀어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잠실야구장의 복도. 잠실은 좁은 복도를 지나야 탁 트인 야구장이 등장하는 구조인데, 그 복도를 걷다 보면 복도 끝으로 야구장이 서서히 보이고, 팬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 그 복도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터널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보통 고향의 팀을 응원하며 야구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일 슈퍼게임’이란 계기는 신기하다. 아무튼, 야구장에 가면 당연히 즐겁고 신나지만, 야구장 가는 것을 즐기는 것과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매력에 빠지는 건 또 다르다
야구는 그냥 내 성향과 딱 맞는 스포츠다. 정적이고, 여백이 많다. 물론 단체 구기 종목이지만, 기본적으론 개인과 개인 간의 대결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내게 매력적이다. 다른 스포츠는 그렇게까지 즐겨 보지 않는다. 어릴 때 ‘올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따면 어떨까?’ 상상하며 놀았던 적은 있지만, 다른 스포츠엔 팬이 될 정도로는 빠진 적이 없다
야구의 어떤 매력에 빠졌는지는 알겠다. 본인의 성향과 딱 맞다고 했는데, 앞서 말한 야구의 매력이 본인의 어떤 성향과 맞아떨어진 건지 좀 더 말해 달라
내가 막 단체로 똘똘 뭉치고 그런 걸 잘 못 한다. 너무 뜨겁지 않은 것도 비슷하고. 야구가 세시간 정도 진행된다고 했을 때, 뜨거운 시간은 그중 한 삼십분 안쪽이라 생각한다. 확 뜨거워질 때가 간혹 있는 거지, 대체로 한가롭고 여유롭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도 궁금하다. 누구고, 왜 좋아하나
‘정민철’. 9회까지 완투하는 그 모습이 정말 멋있다. 미소도 정말 멋있고, 그 근사한 미소.. 중학교 때 항상 신문에 적힌 타율이나 방어율을 오려 모으면서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때는 야구가 전 경기 중계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계하지 않는 경기 상황을 들으려면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전화해야 했다. 물론 유료였고. 그 전화로 돈 꽤나 썼다. 라디오 중계도 많이 들었는데, 라디오 중계를 들으면 ‘넘아갑니다.. 넘어갑니다.. 넘어갑니다!!!’ 막 이런 멘트를 들으며 상상해야 한다. 공부한다고 앉아서 머릿속으론 야구를 그렸다. 지나간 일은 아무래도 추억 보정이 돼서 그런지 그때가 좋았단 생각이 있다
‘정민철’ 말고도 있나?
‘오승환’. 동생이지만 존경하는 선수다. 올해 나이가 마흔이었는데도 성적이 대단했고, 신기록도 세웠다. 프로 선수로써 멋진 점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혹시 잊지 못하는 경기도 있나? 역시 이것도 ‘한일 슈퍼게임’인가
‘한일 슈퍼게임’의 경기 자체는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당장 떠오르는 건, 대학교 때 있었던 ‘2006 WBC’. 그때 경기 보려고 수업도 빠졌다. 보면서 막 울고 그랬다. 최근 경기 중에서는 2013년 한국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승 3패로 지고 있다가 3연승 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재밌게 봤다. 점수 낼 때 대구 시민들과 하이파이브하며 좋아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자, 그럼 이제 책 얘기를 해보자. 야구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나는 선후가 약간 다르다. 소설을 쓰겠다는 것보다 야구 관련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처음 생각했던 건 에세이였다. 약 10년 전이었고, ‘김종광’ 소설가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에세이를 보고 혹평하셨다. 마음의 상처를 약간 받은 뒤, 이번엔 소설을 써서 냈다. 그때 쓴 게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의 1장인 ‘프리미어리그 팬 이과장’이다. 그걸 읽으시고는 좀 괜찮다고 하시더라. 일 외적으로 야구와 관련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 같다. 나의 포지션 자체가 전업 작가도 아니기도 하고, 내가 어필을 할 수 있는 건 야구라는 콘텐츠니까. 그 부분에 집중했다. 소설은 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신기하다. 내가 원고지 700매 넘게 소설을 썼고, 그게 책으로 나왔다는 게
옴니버스 형식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처음에 썼던 ‘프리미어리그 팬 이과장’ 부분은 야구 쪽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축구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느낀 흥미와 아이러니를 바탕으로 나왔다. 두 번째 장인 ‘붉은 노을’은 노래를 듣고 짧은 이야기를 한번 써보라는 주변의 의견에서 나왔고. 그렇게 먼저 두 편이 완성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또 다른 소설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이 두 이야기를 제출했더니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받아 이어 쓰게 됐다. 이다음에 나올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은 아니다. 시나리오 전공을 해서 그런지 영상화 쪽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쓸 때도 늘 영상화에 염두를 두고 있고. 영상에 옴니버스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을 쓰고 난 뒤, 마지막에 이어 붙인 건가? 아니면 ‘붉은 노을’을 쓴 이후부터는 전체를 아우를 큰 틀을 정한 뒤, 옴니버스 형식의 완성을 염두에 두고 쓴 건가
옛날에 MBC에서 한 방송 중에 ‘테마 게임’이란 게 있었다. ‘김국진’ 나오고 했던 건데, 그걸 보면 첫 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이 두 번째 스토리의 조연으로 나오고 뭐 그런 식이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도 그런 게 많고. 그런 구성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 이야기를 사실 굉장히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원래는 내공이 좀 생기면 완성해야지 했었는데, 아까 말한 선생님이 그냥 빨리 쓰라고 복돋아 주신 덕분에 완성하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모두 ‘무진 드래곤즈’라는 한 팀에 속해있다. ‘무진 드래곤즈’가 어떤 팀인지 구상하는 작업이 우선됐을 것 같다
사실 쓰고나서 좀 아쉬웠던 게 팀에 관한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한 거다.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팀에 관한 디테일이 좀 떨어진다. 그리고 배경으로 비교적 옛날 야구장을 선택했는데, 그 부분의 매력도 잘 못 살린 거 같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유니폼이 푸른색인 것과 1만 명이면 가득 차는 경기장을 보면 예전 대구시민구장을 쓰던 ‘삼성 라이온즈’가 생각나고, 관중들의 열성적인 응원이나 몇 년째 시원찮은 성적은 ‘롯데 자이언츠’ 같다. 관객들도 알 만큼 유명한 ‘용단장’을 보면 ‘LG 트윈스’의 ‘차명석’ 단장이 생각나기도 하고. 부분별로 모델이 있었나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본다. 내가 야구 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욱. 근데 난 이게 특정 팀의 특정 팬만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길 바랐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도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를 들면 이야기에 ‘사직 구장’이 등장하는데, 편집 과정에서 ‘부산 사직 구장’이라고 편집자가 수정하신 일이 있었다. 그때 내가 굳이 ‘부산’을 빼달라고 했다. 물론 ‘사직 구장’ 하면 부산에 있는 야구장인 걸 다 안다. 그래도 빼고 싶더라. 그냥 소설 속 등장하는 야구장 중 하나길 바랐다
스포츠 스토리를 생각하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에이스, 은퇴를 앞둔 에이스의 황혼기 등 잘 나가는 프로 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슬램덩크>나 <H2> 처럼 아마추어 스포츠를 소재로 만들 수도 있고. 그에 반해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은 비교적 변두리에 있는 인물들이 주로 나선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잘 모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도 이 책을 쓸 때 클리셰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야구 이야기니까, 기존의 야구 관련 이야기들의 클리셰에 관한 고민이 많았고. 나부터가 야구는 좋아하지만, 야구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재밌게 본 기억이 크게 많지 않더라. 왜 재미없을까 생각해보면 뭐 뻔해서다. 역경을 이기고, 스포츠를 통해 팀의 우정을 다지는 뭐 그런. 그런 이야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잘 나가는 선수 이야기보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레퍼런스로 참고를 많이 한 게 ‘오쿠다 히데오’인데, ‘오쿠다 히데오’가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각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뒤, 하나로 모으는 걸 굉장히 잘한다. 그런 스타일을 스포츠물과 엮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기존 야구 이야기의 클리셰를 깨고 싶었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방식으로 깨고 싶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야구 콘텐츠가 있나? 소설이나 만화, 영화 뭐든 다 좋다
바이블로 생각하는 건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H2>. 발상적으로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건 <배터리>라는 영화. 투수와 포수만 좀비 세상에 남은 이야기인데 신선해서 재밌게 봤다. 하지만 역시 야구 영화 중에 최고라면 '머니볼', 그리고 드라마 중엔 ’스토브리그‘
작가가 현재 프로야구산업에서 종사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는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해외 전지훈련 풍경이나, 팀 성적에 따른 회사 분위기의 변화, 불펜 포수, 치어리더단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하지만 소설은 또 소설이니 현실을 그대로 옮길 순 없었을 텐데, 본인의 현실 경험을 소설로 옮겨올 때 고민되는 건 없었나
고민이 많았다. 이게 뭐 야구 현장을 고발하는 소설도 아니고, 그냥 코믹물이지 않나. 근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이거 누구 아냐?’ 하며 특정인을 떠올리는 일이 없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캐릭터를 따올 때도 여러 인물을 참고해서 한 인물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치어리더 얘기를 쓸 땐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아이돌, 아이돌 연습생 세계의 이야기도 좀 참고했고. 나오는 사람들은 야구장 안 사람들이지만, 따 온 사람들은 야구장 밖에도 많다. 디테일하고 살아 있는 현장감은 당연히 신경은 썼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는 거였다
모든 부분이 3인칭으로 쓰여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각 장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의 관점으로 보는 3인칭이다. 하지만 ‘꼬깔콘 아줌마’ 장은 이과장의 시점이다.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전체 이야기를 1부와 2부로 나누고, 중간에 브릿지를 넣을 계획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옛날을 생각하며 가져온 형식이다. 카세트테이프 A면과 B면 사이엔 항상 브릿지 곡이 짧게 들어갔었는데, 그런 짧은 리듬을 생각하며 ‘브릿지. 아줌마의 수다’를 집어넣었다. 즉 전체 흐름으로 봤을 때 1부 전체가 비슷한 리듬으로 가다 브릿지가 등장하고, 2부가 이어지도록. 하지만 ‘꼬깔콘 아줌마’의 독백만으로는 서사를 진행하기엔 조금 역부족이어서 흐름을 변화시켜보고자 이과장의 시선을 선택했다. 그리고 ‘꼬깔콘 아줌마’가 미스터리한 면이 있는 인물이란 점 때문에도 다른 인물이 비밀을 파헤치도록 하는 구성을 선택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무진 드래곤즈의 포스트 시즌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이때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온 ‘양민철’을 등장시키고 싶은 욕망은 없었나? 물론 현실적으론 어려운 맥락이지만, 소설이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에필로그 쓸 때가 제일 재밌었다. 원래는 ‘용단장’이 나오는 6편까지만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에 이 인물들이 만나 벌이는 경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악당처럼 그려지기도 했던 ‘깡’이 에필로그에선 영웅으로 재등장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진짜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생각하면서 재밌게 썼다.
좋은 의미로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게 느껴졌다. 제일 잘 읽혔고, 가장 몰입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쓸 때 머릿속에서 에필로그 속 경기 장면이 쫙 펼쳐졌다. 혼자 영화 찍듯이 썼다
가장 자주 등장한 ‘이과장’은 작가의 애정이 가장 많이 묻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과장’은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첫 장엔 축구 얘기가 많이 등장했고. 야구 소설로 홍보되는 책의 첫 장이 축구 얘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에 관한 부담은 없었나
나는 오히려 야구팬들이 이 부분을 읽고 ‘이과장’의 아이러니를 느껴주길 바랐다. ‘이과장’의 입장에선 야구가 한심하고 지루한 스포츠니까. 거기에 대해 야구팬들이 ‘야구가 그런 면이 있기도 하지’ 하며 재밌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과장’은 내 모습이 들어간 캐릭터는 아니다. 성격적으로도 되게 다르고. 그냥 야구단과 되게 안 맞는, 소심한 스타일의 비주류 캐릭터를 생각했고, 이런 캐릭터가 실제 직장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야구를 잘 모르거나, 안 좋아하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문적인 영역을 다룬 콘텐츠일수록 즐기기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이건 스포츠 이야기라기보단 스포츠와 함께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해준 대로 그러면 정말 좋겠다. 처음의 내 생각도 이 책이 야구 소설로 포지셔닝 되지 않기를 바랐다. ‘스토브리그’가 히트를 했던 건, 소재로 야구를 다루긴 했지만, 보편적인 직장인의 이야기인 오피스 드라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도 그냥 야구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다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한다고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는데, 본인의 문체 역시 계속해서 잽을 날리듯 빠르고 경쾌하다. 앞으론 어떤 소설을 쓰려 하나
내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두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야구팬이기도 하고. ‘하루키’ 역시 굉장히 심플한 문장을 쌓아서 소설을 쓰고, ‘오쿠다 히데오’도 난해한 문장이 없다. 나 역시도 문장 하나하나에 아주 깊은 고민을 하는 편은 아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쓴 소설의 지향점은 읽는 사람의 재미고,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영상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나 역시도 소설을 읽을 때 문장을 음미하며 읽지 않는다. 사람들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웹 소설 작가들이 독자를 두고 좋은 의미로 ‘보는 게 아니라 훑는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런 태도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쓰려고 한다. 차기작 역시도 야구 얘기를 계속 하려고 한다. 뱀파이어물나 좀비물, 타임슬립 등의 장르와 엮어서 쓸 계획도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와 야구 이야기의 팬이기 때문에 여태 보지 못한 장르와 야구를 엮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
글을 쓰는 것과 물성이 있는 책이 나오는 건 또 다르다. 책이 나왔을 때 끝으로 말해달라
우선 책이 나왔을 때 보도자료가 배포됐는데, 그게 아주 신기했다. 두 번째로 신기했던 건, 역시나 서점에 내 책이 깔린 걸 봤을 때. 스티븐 킹 신작 옆에 내 책이 있어 사진을 찍어뒀다. 책 자체를 보는 사람이 적은 시대인데, 그중 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겨주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낼 땐 누가 보기나 할까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어려서 보기 힘들겠지만, 좀 자라서 볼 생각을 하면 참 좋다. 실패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쓰려고 한다
2021년 11월 03일의 대화
야구를 본 지 20년이 넘었다. 야구를 본 건 20년이지만, 야구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2~3년에 채 안 된다. 그만큼 야구는 어렵고, 복잡하다. 야구를 얘기할 때, 우리의 인생이 자주 인용되는 까닭 역시도 이런 야구의 어렵고 복잡한 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과 복잡함의 대부분은 야구를 설명하는 수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경우의 수와 그 경우의 수를 두고 행하는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선택은 가끔은 옳고, 자주 그르다. 그럼에도 선택했다면 움직여야만 한다. 무사 만루에도 공을 던져야 하는 투수처럼, 9회 말 2아웃 풀카운트 상황에도 배트를 휘둘러야 하는 타자처럼. 주인공이 될 순 없지만, 야구를 절대 놓지 못하는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 속 등장하는 야구인들처럼
2021년 프로야구도 정규시즌은 이미 끝났고,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이다. 올 시즌의 야구는 어땠나
언제나 야구는 그런 것 같다. 봄에 시작해, 여름을 지나, 가을에 끝난 뒤, 겨울 동안은 스토브리그(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난 뒤, 각 구단이 팀의 강화를 위해 선수와 계약하고, 연봉협상을 진행하는 시기 : 겨울철에 야구팬들이 난로(stove) 주위에 들러앉아 선수의 이동, 기타의 소식을 얘기하며 흥분하는 것이 마치 실제의 게임을 보는 듯하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생겼다. - 출처 체육학대사전)가 진행된다.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야구에 맞춰 흘러간다. ‘올해가 또 이렇게 갔구나’ 생각하며 보내고 있는 가을이다.
특정 한 팀을 응원하다 보면 성적을 떠나 많은 생각이 든다. 특히 시즌이 끝날 때가 되면 은퇴하는 선수에 관한 아쉬움으로 가득 차고, 좀 지나치게 말하면 그와 그가 속한 팀의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나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 야구를 정말 잘했다. 시즌 초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잘 나와 좋고 신기하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가 아직 남았으니 거기서도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고. 그런 차이는 있다. 과거 그저 팬으로 야구를 볼 때는 승패에 매달리며 뜨겁게 야구를 봤다. 하지만 이 산업 안에서 일하고 난 뒤로는 야구를 볼 때 한 발 떨어져 차갑게 보게 된다. 야구라는 거 자체에 관한 고민이 많아진다. 야구라는 공놀이가 뭐기에 사람들이 울고, 웃나 하며. 지난 주말 있던 경기는 팬들도 많이 왔고, 좋아하는 선수가 세레모니도 멋지게 했는데, 분위기가 마치 한국시리즈 같았다. 어떻게 보면 팬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건 취미생활이지 않나. 분명 그저 취미일 뿐인데...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게... 야구가 사람을 참 순수하게 만든다. 나 역시도 그랬고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야구와 야구장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야구장에 관한 첫 기억은 언젠가. 나는 여섯 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버지를 따라 형과 함께 사직야구장에 갔다. ‘펠릭스 호세’가 한창 잘할 때였고, ‘호세’가 타석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일어나 절하듯 팔을 내렸다 올리며 ‘호~~오~~세~~에~~~’ 하곤 했다. 물론 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걸 따라 했고. 사실 ‘호세’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응원 중간에 먹었던 컵라면이지만.
약간 다른 얘기를 먼저 해보겠다. 91년도, 내가 열두 살 정도일 때 ‘한일 슈퍼게임(1990년대에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프로야구 시즌이 마감된 뒤 열린 한일 프로야구 정기전)’이 있었다. 그 경기에서 ‘이정훈’이란 선수가 아주 잘 쳤는데, 난 그걸 보며 야구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야구에 빠지고 나니, 유독 완투를 자주 하는 투수들이 멋져 보이더라. 그리고 카리스마 있는 선수 보단 활짝 웃는 선수들이 난 더 멋있었다. 그런 선수들의 팬이되며 야구에 더 깊게 빠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운드를 책임지는 투수는 정말 멋지다. 근데.. 그래서... 야구장에 관한 첫 기억은 뭔가
뭐 어릴 때 친구들과 잠실야구장에 가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단, 군대 가기 전 처음으로 갔던 지방의 한 야구장이 뇌리에 박혀있다. 서울에 살았으니 지방의 야구장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벼르던 끝에, 입대를 앞두고 간 거다. 혼자 기차를 탔다. 야구장 가겠다고.. 그게 참 소중한 추억이라 일을 하러 지방 야구장에 갈 때면 그때 생각이 가끔 난다. 야구장이란 공간을 통틀어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잠실야구장의 복도. 잠실은 좁은 복도를 지나야 탁 트인 야구장이 등장하는 구조인데, 그 복도를 걷다 보면 복도 끝으로 야구장이 서서히 보이고, 팬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 그 복도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터널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보통 고향의 팀을 응원하며 야구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일 슈퍼게임’이란 계기는 신기하다. 아무튼, 야구장에 가면 당연히 즐겁고 신나지만, 야구장 가는 것을 즐기는 것과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매력에 빠지는 건 또 다르다
야구는 그냥 내 성향과 딱 맞는 스포츠다. 정적이고, 여백이 많다. 물론 단체 구기 종목이지만, 기본적으론 개인과 개인 간의 대결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내게 매력적이다. 다른 스포츠는 그렇게까지 즐겨 보지 않는다. 어릴 때 ‘올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따면 어떨까?’ 상상하며 놀았던 적은 있지만, 다른 스포츠엔 팬이 될 정도로는 빠진 적이 없다
야구의 어떤 매력에 빠졌는지는 알겠다. 본인의 성향과 딱 맞다고 했는데, 앞서 말한 야구의 매력이 본인의 어떤 성향과 맞아떨어진 건지 좀 더 말해 달라
내가 막 단체로 똘똘 뭉치고 그런 걸 잘 못 한다. 너무 뜨겁지 않은 것도 비슷하고. 야구가 세시간 정도 진행된다고 했을 때, 뜨거운 시간은 그중 한 삼십분 안쪽이라 생각한다. 확 뜨거워질 때가 간혹 있는 거지, 대체로 한가롭고 여유롭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도 궁금하다. 누구고, 왜 좋아하나
‘정민철’. 9회까지 완투하는 그 모습이 정말 멋있다. 미소도 정말 멋있고, 그 근사한 미소.. 중학교 때 항상 신문에 적힌 타율이나 방어율을 오려 모으면서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때는 야구가 전 경기 중계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계하지 않는 경기 상황을 들으려면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전화해야 했다. 물론 유료였고. 그 전화로 돈 꽤나 썼다. 라디오 중계도 많이 들었는데, 라디오 중계를 들으면 ‘넘아갑니다.. 넘어갑니다.. 넘어갑니다!!!’ 막 이런 멘트를 들으며 상상해야 한다. 공부한다고 앉아서 머릿속으론 야구를 그렸다. 지나간 일은 아무래도 추억 보정이 돼서 그런지 그때가 좋았단 생각이 있다
‘정민철’ 말고도 있나?
‘오승환’. 동생이지만 존경하는 선수다. 올해 나이가 마흔이었는데도 성적이 대단했고, 신기록도 세웠다. 프로 선수로써 멋진 점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혹시 잊지 못하는 경기도 있나? 역시 이것도 ‘한일 슈퍼게임’인가
‘한일 슈퍼게임’의 경기 자체는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당장 떠오르는 건, 대학교 때 있었던 ‘2006 WBC’. 그때 경기 보려고 수업도 빠졌다. 보면서 막 울고 그랬다. 최근 경기 중에서는 2013년 한국 시리즈.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승 3패로 지고 있다가 3연승 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재밌게 봤다. 점수 낼 때 대구 시민들과 하이파이브하며 좋아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자, 그럼 이제 책 얘기를 해보자. 야구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나는 선후가 약간 다르다. 소설을 쓰겠다는 것보다 야구 관련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처음 생각했던 건 에세이였다. 약 10년 전이었고, ‘김종광’ 소설가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에세이를 보고 혹평하셨다. 마음의 상처를 약간 받은 뒤, 이번엔 소설을 써서 냈다. 그때 쓴 게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의 1장인 ‘프리미어리그 팬 이과장’이다. 그걸 읽으시고는 좀 괜찮다고 하시더라. 일 외적으로 야구와 관련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지게 만든 것 같다. 나의 포지션 자체가 전업 작가도 아니기도 하고, 내가 어필을 할 수 있는 건 야구라는 콘텐츠니까. 그 부분에 집중했다. 소설은 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신기하다. 내가 원고지 700매 넘게 소설을 썼고, 그게 책으로 나왔다는 게
옴니버스 형식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처음에 썼던 ‘프리미어리그 팬 이과장’ 부분은 야구 쪽 일을 하는 사람들 중 축구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느낀 흥미와 아이러니를 바탕으로 나왔다. 두 번째 장인 ‘붉은 노을’은 노래를 듣고 짧은 이야기를 한번 써보라는 주변의 의견에서 나왔고. 그렇게 먼저 두 편이 완성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또 다른 소설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이 두 이야기를 제출했더니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받아 이어 쓰게 됐다. 이다음에 나올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은 아니다. 시나리오 전공을 해서 그런지 영상화 쪽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쓸 때도 늘 영상화에 염두를 두고 있고. 영상에 옴니버스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을 쓰고 난 뒤, 마지막에 이어 붙인 건가? 아니면 ‘붉은 노을’을 쓴 이후부터는 전체를 아우를 큰 틀을 정한 뒤, 옴니버스 형식의 완성을 염두에 두고 쓴 건가
옛날에 MBC에서 한 방송 중에 ‘테마 게임’이란 게 있었다. ‘김국진’ 나오고 했던 건데, 그걸 보면 첫 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이 두 번째 스토리의 조연으로 나오고 뭐 그런 식이다.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에도 그런 게 많고. 그런 구성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그렇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 이야기를 사실 굉장히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원래는 내공이 좀 생기면 완성해야지 했었는데, 아까 말한 선생님이 그냥 빨리 쓰라고 복돋아 주신 덕분에 완성하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모두 ‘무진 드래곤즈’라는 한 팀에 속해있다. ‘무진 드래곤즈’가 어떤 팀인지 구상하는 작업이 우선됐을 것 같다
사실 쓰고나서 좀 아쉬웠던 게 팀에 관한 디테일을 잘 살리지 못한 거다.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팀에 관한 디테일이 좀 떨어진다. 그리고 배경으로 비교적 옛날 야구장을 선택했는데, 그 부분의 매력도 잘 못 살린 거 같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유니폼이 푸른색인 것과 1만 명이면 가득 차는 경기장을 보면 예전 대구시민구장을 쓰던 ‘삼성 라이온즈’가 생각나고, 관중들의 열성적인 응원이나 몇 년째 시원찮은 성적은 ‘롯데 자이언츠’ 같다. 관객들도 알 만큼 유명한 ‘용단장’을 보면 ‘LG 트윈스’의 ‘차명석’ 단장이 생각나기도 하고. 부분별로 모델이 있었나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본다. 내가 야구 쪽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욱. 근데 난 이게 특정 팀의 특정 팬만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길 바랐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도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누구나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예를 들면 이야기에 ‘사직 구장’이 등장하는데, 편집 과정에서 ‘부산 사직 구장’이라고 편집자가 수정하신 일이 있었다. 그때 내가 굳이 ‘부산’을 빼달라고 했다. 물론 ‘사직 구장’ 하면 부산에 있는 야구장인 걸 다 안다. 그래도 빼고 싶더라. 그냥 소설 속 등장하는 야구장 중 하나길 바랐다
스포츠 스토리를 생각하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에이스, 은퇴를 앞둔 에이스의 황혼기 등 잘 나가는 프로 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슬램덩크>나 <H2> 처럼 아마추어 스포츠를 소재로 만들 수도 있고. 그에 반해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은 비교적 변두리에 있는 인물들이 주로 나선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잘 모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도 이 책을 쓸 때 클리셰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야구 이야기니까, 기존의 야구 관련 이야기들의 클리셰에 관한 고민이 많았고. 나부터가 야구는 좋아하지만, 야구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재밌게 본 기억이 크게 많지 않더라. 왜 재미없을까 생각해보면 뭐 뻔해서다. 역경을 이기고, 스포츠를 통해 팀의 우정을 다지는 뭐 그런. 그런 이야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잘 나가는 선수 이야기보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레퍼런스로 참고를 많이 한 게 ‘오쿠다 히데오’인데, ‘오쿠다 히데오’가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고, 각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뒤, 하나로 모으는 걸 굉장히 잘한다. 그런 스타일을 스포츠물과 엮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기존 야구 이야기의 클리셰를 깨고 싶었는데, ‘오쿠다 히데오’의 방식으로 깨고 싶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야구 콘텐츠가 있나? 소설이나 만화, 영화 뭐든 다 좋다
바이블로 생각하는 건 역시 ‘아다치 미츠루’의 <H2>. 발상적으로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건 <배터리>라는 영화. 투수와 포수만 좀비 세상에 남은 이야기인데 신선해서 재밌게 봤다. 하지만 역시 야구 영화 중에 최고라면 '머니볼', 그리고 드라마 중엔 ’스토브리그‘
작가가 현재 프로야구산업에서 종사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부각되는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해외 전지훈련 풍경이나, 팀 성적에 따른 회사 분위기의 변화, 불펜 포수, 치어리더단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하지만 소설은 또 소설이니 현실을 그대로 옮길 순 없었을 텐데, 본인의 현실 경험을 소설로 옮겨올 때 고민되는 건 없었나
고민이 많았다. 이게 뭐 야구 현장을 고발하는 소설도 아니고, 그냥 코믹물이지 않나. 근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이거 누구 아냐?’ 하며 특정인을 떠올리는 일이 없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캐릭터를 따올 때도 여러 인물을 참고해서 한 인물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치어리더 얘기를 쓸 땐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아이돌, 아이돌 연습생 세계의 이야기도 좀 참고했고. 나오는 사람들은 야구장 안 사람들이지만, 따 온 사람들은 야구장 밖에도 많다. 디테일하고 살아 있는 현장감은 당연히 신경은 썼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의 프라이버시를 해치지 않는 거였다
모든 부분이 3인칭으로 쓰여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각 장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의 관점으로 보는 3인칭이다. 하지만 ‘꼬깔콘 아줌마’ 장은 이과장의 시점이다.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전체 이야기를 1부와 2부로 나누고, 중간에 브릿지를 넣을 계획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옛날을 생각하며 가져온 형식이다. 카세트테이프 A면과 B면 사이엔 항상 브릿지 곡이 짧게 들어갔었는데, 그런 짧은 리듬을 생각하며 ‘브릿지. 아줌마의 수다’를 집어넣었다. 즉 전체 흐름으로 봤을 때 1부 전체가 비슷한 리듬으로 가다 브릿지가 등장하고, 2부가 이어지도록. 하지만 ‘꼬깔콘 아줌마’의 독백만으로는 서사를 진행하기엔 조금 역부족이어서 흐름을 변화시켜보고자 이과장의 시선을 선택했다. 그리고 ‘꼬깔콘 아줌마’가 미스터리한 면이 있는 인물이란 점 때문에도 다른 인물이 비밀을 파헤치도록 하는 구성을 선택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무진 드래곤즈의 포스트 시즌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이때 그동안 열심히 연습해온 ‘양민철’을 등장시키고 싶은 욕망은 없었나? 물론 현실적으론 어려운 맥락이지만, 소설이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에필로그 쓸 때가 제일 재밌었다. 원래는 ‘용단장’이 나오는 6편까지만 생각했었는데, 마지막에 이 인물들이 만나 벌이는 경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악당처럼 그려지기도 했던 ‘깡’이 에필로그에선 영웅으로 재등장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진짜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야구 경기를 생각하면서 재밌게 썼다.
좋은 의미로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게 느껴졌다. 제일 잘 읽혔고, 가장 몰입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쓸 때 머릿속에서 에필로그 속 경기 장면이 쫙 펼쳐졌다. 혼자 영화 찍듯이 썼다
가장 자주 등장한 ‘이과장’은 작가의 애정이 가장 많이 묻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과장’은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첫 장엔 축구 얘기가 많이 등장했고. 야구 소설로 홍보되는 책의 첫 장이 축구 얘기로 가득 채워지는 것에 관한 부담은 없었나
나는 오히려 야구팬들이 이 부분을 읽고 ‘이과장’의 아이러니를 느껴주길 바랐다. ‘이과장’의 입장에선 야구가 한심하고 지루한 스포츠니까. 거기에 대해 야구팬들이 ‘야구가 그런 면이 있기도 하지’ 하며 재밌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과장’은 내 모습이 들어간 캐릭터는 아니다. 성격적으로도 되게 다르고. 그냥 야구단과 되게 안 맞는, 소심한 스타일의 비주류 캐릭터를 생각했고, 이런 캐릭터가 실제 직장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야구를 잘 모르거나, 안 좋아하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문적인 영역을 다룬 콘텐츠일수록 즐기기엔 한계가 있는 법인데, 이건 스포츠 이야기라기보단 스포츠와 함께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해준 대로 그러면 정말 좋겠다. 처음의 내 생각도 이 책이 야구 소설로 포지셔닝 되지 않기를 바랐다. ‘스토브리그’가 히트를 했던 건, 소재로 야구를 다루긴 했지만, 보편적인 직장인의 이야기인 오피스 드라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도 그냥 야구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다
‘오쿠다 히데오’를 좋아한다고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는데, 본인의 문체 역시 계속해서 잽을 날리듯 빠르고 경쾌하다. 앞으론 어떤 소설을 쓰려 하나
내가 좋아하는 대표적인 두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와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야구팬이기도 하고. ‘하루키’ 역시 굉장히 심플한 문장을 쌓아서 소설을 쓰고, ‘오쿠다 히데오’도 난해한 문장이 없다. 나 역시도 문장 하나하나에 아주 깊은 고민을 하는 편은 아니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쓴 소설의 지향점은 읽는 사람의 재미고,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영상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나 역시도 소설을 읽을 때 문장을 음미하며 읽지 않는다. 사람들도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웹 소설 작가들이 독자를 두고 좋은 의미로 ‘보는 게 아니라 훑는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그런 태도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쓰려고 한다. 차기작 역시도 야구 얘기를 계속 하려고 한다. 뱀파이어물나 좀비물, 타임슬립 등의 장르와 엮어서 쓸 계획도 있다. 기본적으로 야구와 야구 이야기의 팬이기 때문에 여태 보지 못한 장르와 야구를 엮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
글을 쓰는 것과 물성이 있는 책이 나오는 건 또 다르다. 책이 나왔을 때 끝으로 말해달라
우선 책이 나왔을 때 보도자료가 배포됐는데, 그게 아주 신기했다. 두 번째로 신기했던 건, 역시나 서점에 내 책이 깔린 걸 봤을 때. 스티븐 킹 신작 옆에 내 책이 있어 사진을 찍어뒀다. 책 자체를 보는 사람이 적은 시대인데, 그중 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겨주시는 분들을 보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낼 땐 누가 보기나 할까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어려서 보기 힘들겠지만, 좀 자라서 볼 생각을 하면 참 좋다. 실패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