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에서 2024년 4월까지

'너무 크다.' 지난 1월, 목포에서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처음으로 한 생각입니다. 너무 큰 배였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바닷속으로 기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 큰 배였습니다. 저렇게 큰 배가 기울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이, 곳곳이 녹슬고, 부서지고, 벗겨져, 말라 있는, 세월호를 보면 볼 수록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기라도 했다면 현실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가능했을까요. 참사의 원인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아이를, 부모를, 친구를, 동료를 잃은 이들은 2014년 4월 16일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전히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난 10년은 어땠습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제대를 하고, 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하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의 결혼을 축하하고, 그들의 아이를 보며 웃고, 대화록을 만들고, 소설을 쓰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걸었습니다. 몇 가지 적었지만, 지금 열거한 것들의 수백 배 정도 되는 또 다른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도무지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10년은 그렇게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당신의 지난 10년은 어땠습니까. 누군가의 10년이 단 하루에 머물러 있는 동안, 당신의 지난 10년은 무엇들로 채워지고, 어디를 향해 흘러갔습니까. 이렇게 여쭙는 것이 당신의 10년을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님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우리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10년이란 시간의 부피와 무게에 대해, 그 어마어마한 부피와 무게를 단 하루로 채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입니다.


그날로부터 1년이 흘렀던 날의 저녁, 저는 여의도 광장에 있었습니다. 광장엔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렸지만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란 우산을 들고,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깃발을 들고, 노란 우비를 입고, 노란 기억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보며 2014년 하반기에 한 영화제에서 만났던 브라질 감독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영화가 무슨 힘이 있냐고, 현실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영화의 이미지와 상상력이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냐고, 좋은 영화는 분명 내게 많은 힘이 되지만, 치가 떨리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너무나도 영화가 미워진다고 퍼부었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그가 말하더군요. 영화는 힘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 극장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건 힘이 있다. 같은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묻지 않고, 서로의 표정을 살피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 안에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오가고 있으며, 그 마음의 이동과 집합은 아주 강한 힘이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여의도 광장에서 그 대화를 떠올린 건 제 곁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 때문이었겠죠. 비는 함께 맞으면 그만이었고, 서로의 마음이 뭉쳐 집합을 이뤘고, 그렇게 생긴 힘이 누군가를 살렸을, 그런 날이었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지만, 글이 매끄럽게 써지지가 않네요. 문단끼리도 잘 붙지 않고, 한 문장 한 문장 쓰는 것이 편치 못합니다. 몇 번을 다시 읽으며 쓰는 중인데 무엇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아직은 쓸 수 없는 얘기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오늘은 끝까지 써보겠습니다. 끝까지 써서, 여기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며칠 전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10년을 보냈고. 재작년에 다시 부산으로 오게 됐습니다. 고향이지만 오랜 시간 떠나있었기에 나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적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들과는 늘 쓸데없는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함께 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함께 쌓은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존재하기에 저에겐 늘 든든한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총선을 앞두고 그 친구 중 몇몇과 정말 오랜만에 정치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 얘기가 등장했고, 정치와 사회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고 자신을 평한 친구 몇몇이 제게 묻더군요. 근데 그 사람들은 왜 아직도 시위하고 그러는 거냐. 도대체 뭘 바라는 거냐. 내가 그 부모라면 힘들어서라도 그 이야기를 그만 하고, 그만 듣고 싶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화가 났고, 쏟아내고 싶은 많은 말이 있었지만, 또 화를 내고 싶지 않기도 해서, 저의 친구들이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입을 닫고 정확한 대답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저의 친구들이 제게 한 질문과 같은 것들을 묻는 사람을 한 번쯤은 다들 만나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다면 TV를 통해 보셨을 거고,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읽으셨을 거고, 차에서 흘러나온 라디오를 통해 들으셨을 거고, 휙휙 넘기던 유튜브 쇼츠에서 보셨을 겁니다. 도대체 뭘 원하느냐. 아직도 왜 그러고 있냐. 지겹다. 그만해라. 지친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피곤하다. 뭐 이런 말들. 그럴 때 당신은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제가 한 대답이 정확한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지겹고, 지치고, 피곤하면, 그럴수록 빨리 유족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들의 울분을 가장 빨리 멈추는 방법은 하루라도 앞당겨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 그날의 책임을 다하고, 그날의 죄를 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소한 그렇게라도 해야 유족들이 그날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제 대답이 제 친구들에게 제대로 전해졌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랬길 바라며, 기회가 있을 때 또다시 얘기하는 수밖에는 없겠죠. 이 글이 엉망진창인 걸 알면서도 끝까지 써보려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글과 함께 올라갈 글은 제가 쓴 소설 <능선 위 선을 이룬 나무들 아래>입니다. 목포에서 돌아와 쓰기 시작해 2월 말경 완성했던 소설입니다. 대화록에 무언가 올리는 일이 더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다시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릴 수 있어 좋습니다. <능선 위 선을 이룬 나무들 아래>는 차분하게 읽어주시고, 오늘 하루만큼은 10년의 시간 동안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지나친 일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4월 16일

대화록 : 최직경


zcott.camu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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