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수" - <녹두장군의 식도락>

2023년 5월 1일의 대화


거제리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네이버에 들어가 '거제리 맛집', '거제리 노포', '거제리 중식', '거제리 숨은 맛집', '거제리 오래된', '거제리 중국집', '거제리 탕수육', '거제리 밥집'을 연달아 검색한다. 쏟아지는 블로그와 그 블로그들이 소개하는 식당들. 블로그 이벤트 중인 식당들의 이름이 앞단을 차지하는 걸 보며 스크롤을 계속 내린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꽤나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내는 식당에 대해 소개한 블로그가 있다. 2021년 포스팅이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내용을 살펴본다. 음, 메뉴는 이렇고, 가격은 이 정도면 괜찮네, 주차도 편하고, 탕수육 소스 직접 만드는 걸 보면 영 엉망은 아니겠다.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이어지고, 다른 사람의 포스팅과 비교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색을 시작한다. 하지만 네이버에 식당 정보가 바로 뜨지 않는다. 이 식당을 다룬 포스팅을 살펴보니 2022년 1월이 마지막이다. 폐업했다는 얘기다. 다시 한번 위와 같은 검색어들을 나열하며 블로그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시간은 금방 흐르고, 식당은 정해지지 않고, 약속 시간이 다가온다. 갑자기 의문이 든다. 누가 나한테 찾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찾고 있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거제리는 우리가 20년 동안 산 동네고, 우리가 제일 잘 아는 동네인데, 뭐하러 지금 이 검색을 하고 있는 거지. 기분이 확 나빠지고, 검색을 그만두기로 한다. 핸드폰을 침대에 대충 던지고, 샤워를 한 뒤, 옷을 챙겨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탄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20분 정도가 남는다. 일찍 가서 기다릴까 고민하다 어디로 갈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좀 전에 나빠진 기분을 금방 잊은 나는 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이건 방금 막 만들어 낸 이야기이고,  늘 목격하는 또 내가 실제 실행하는 반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정보를 찾고, 남들이 보장해 준 정보에서 남들이 아직 잘 모르는 정보에 이르기까지  정보 속을 끊임 없이 헤맨다. 그 끝에 채택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서고, 돈을 지불하는데, 식당 문을 닫고 돌아서는 혀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난 식당에 간 걸까? 식사를 한 걸까?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내게 그 정보를 건넨 이는 누구인가 수상해진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날씨가 쌀쌀하다 싶긴 한데, 그래도 봄은 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 나는 걷는 게 일상인데, 걷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얼마 전까지 미세먼지가 좀 심하긴 했지만 최근엔 그마저도 없으니, 밥 먹고, 술 마시고, 걷고, 가끔 책 읽고 하는 게 내 생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소중한 시간이고,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당신은 흔히 말하는 맛집 블로거이지만, 그만큼 전국 곳곳을 다니는 여행 블로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봄이 오면 어느 지역이 생각나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섬진강. 구례와 하동을 지나는 게 섬진강인데, 봄마다 가고 싶다. 실제로 몇 번 가기도 했었고. 봄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나에겐 섬진강 일대다. 시끄럽지 않고, 강 따라 산책하기 좋은 동네다


당신 머릿속에 있는 섬진강 일대를 묘사해 줄 수 있을까


굉장히 어려운..건데.. 일단은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고, 사람이 많지가 않다. 꽃 피고, 근처에 산이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의 느낌이다


가면 재첩국도 먹나


그렇다. 부산에 가면 복국으로 해장하듯 하동은 자연스레 재첩국이다


안 먹는다고 하면 아쉬울뻔 했다. 당신은 쭉 대전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왔다. 어릴 때 큰집이 대전에 있어 명절마다 오간 적이 있는데, 대전역에 내려 큰집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창을 통해 대전 시내를 보며 참 무난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도시 안에 사는 사람의 일상이야 어디 그렇겠냐만, 도시의 표면은 그렇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그런 인상이 노잼 도시 같은 밈을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당신이 자라며 느낀 대전은 어떤 도시인가 


어렸을 때는 다른 지역을 가 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 다들 비슷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살에 서울로 와서 다른 지역 사람들을 보니 자연스레 비교가 되더라. 노잼 도시라는 말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무난하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개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그게 취향이 맞는 사람은 또 너무 살기 좋은 그런 곳이다. 천재지변도 거의 없다. 많이 덥지도, 춥지도 않다. 성급하게 일반화할 순 없지만, 평균적으로 사람들도 유순하고, 무난하다. 대학교 가서 부산 친구들 많이 만나봤는데 상대적으로 열정이 솟구치고, 파이팅 넘치는 친구들이 많더라. 그런데 대전은 비교적 무던하다. 다른 지역에 살다 대전으로 와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극과 극으로 나뉘더라.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어서 못 살겠다 하는 사람도 있고, 차도 안 막히고, 집값도 안 비싸고, 문화생활도 어느 정도 있고, 서울도 가까우니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정서가 생겨난 맥락이 있을까. 아무래도 천재지변이 없고, 날씨가 좋고 하면 변화의 필요성을 예로부터 못 느끼며 살긴 했을 것 같다


지역적으로도 한 가운데 있으니까, 드센 사람, 무던한 사람이 섞이면서 그렇게 된 것도 있지 않을까


좋다. 음식 얘기를 슬슬 해보자. 대전의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역시 대전하면 성심당이겠지만, 난 고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친구네 친척이 하시던 <판암면옥>의 냉면이 떠오른다. 그때는 또 입맛이 다르던 때라 밍밍한 맛에 이게 뭐야 했지만, 지금 먹는다면 분명 내가 좋아할 거 같다. 아 그때도 물론 조카 친구 왔다고 곱곱배기로 주신 양을 다 먹긴 했지만. <판암면옥>의 그 냉면 맛도 어쩐지 대전이 주는 느낌과 같은 맥락에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대전의 음식.. 이것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좀 있다. 나는 대전에서 쭉 자랐으니 20살 이후 여행할 때 대전으로 갈 일은 없지 않았겠나. 부산, 목포, 제주도를 갔고, 가기 전에 무슨 음식이 유명한가 찾아보곤 했는데, 그러다가 10년 정도가 지나, 그사이 돌아다닐 곳은 얼추 다 가보고 나니, 대전엔 무슨 음식이 유명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릴 때 대전에 살면서는 외식을 별로 안 했고, 서울에 있을 때도 가끔 대전에 가면 집에서 밥을 먹지 밖에 나가서 밥을 먹을 일이 잘 없었으니까 그 동안은 생각해 보지 못한 거지. 그래서 대전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대전이 자랑하는 향토 음식, 10미, 이런 걸 보게 됐다. 그걸 보면서 두부 두루치기? 다른 곳엔 없나? 뭐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으니까 그래.. 칼국수? 칼국수는 대구, 부산, 전국에 너무 많은데.. 뭐 워낙 꼽을 게 없으니 그랬나 보다.. 그러다 나머지가 돌솥비빔밥, 삼계탕, 이런 게 나오니까 너무 말이 안 된다 싶더라. 그때 좀 충격을 받고 블로그에도 이런 게 대전의 10미라고 돼 있는데 말이 안 된다고 썼었다. 대전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10미 안에 돌솥비빔밥이나 삼계탕이 들어가는 걸 맞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규모에 비해 음식 쪽으론 열악하다. 아무래도 내륙에 있다 보니, 바다가 있어야 유명한 게 있는 거니까. 포항의 과메기, 부산의 복국, 아니면 산 근처라면 산나물 비빔밥이라도 유명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라서, 지금은 성심당이 대전의 10미 전체를 압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도 녹두장군이니, 대전의 1미 정도는 꼽아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나 정도는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도 대전으로 여행을 온다면 두부 두루치기가 될 거 같다. 대단한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있지만, 그래도 대전에서 오래 해 온 곳들이 있으니까. 가장 유명한 곳은 <진로집> 4, 50년은 됐을 텐데,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여기 식당이 있어? 할 법한 곳에 있다. 나도 아주 가끔 간다


부모님은 요리를 잘하셨나? 난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요리를 잘하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보통은 평범하거나 잘하시진 못하더라. 그 사실을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급식이 맛이 없어 도시락을 싸 다니며 깨달았다. 친구들과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데 친구들 반찬이 정말 맛이 없더라고.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맛집 블로거의 가정 식생활 환경은 어땠나. 물론 부모님이 해주신 음식을 평가하면서 먹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평범하게, 밑반찬 위주로 밥을 먹었다. 외식도 거의 안 했고. 그래서 오히려 20살 이후에 맛집을 더 열심히 찾아 다닌 게 아닐까 생각도 한다. 백종원 씨처럼 어릴 때부터 미식에 단련이 돼서 쭉 이어온 케이스가 있다면 난 반대로 어릴 때 전혀 경험이 없다가 서울에 와 새로운 음식들을 먹으며 눈을 뜬 경우가 있을 거다. 눈이 돌아가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 거지. 20살 이전과 20살 이후의 음식 경험의 다양성은 엄청 다르다


뭘 주로 많이 먹었나? 우리 집은 반찬을 여러 개 두고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찌개 하나와 김치, 고기와 파절이, 생선구이와 국, 이런 식으로 메인 메뉴와 곁들일 메뉴 한두 개 정도로 상이 다 차려졌다. 이건 순전히 우리 가족의 식습관 때문에 고정된 식사 메뉴 구성이다


특별한 음식보다는 평범한 반찬들이다. 당장 딱 떠오르는 건 미역 줄기 무침, 가지무침, 이런 걸 어릴 때부터 많이 먹었다. 난 어릴 때부터 잘 먹어서, 식당에 갔을 때 밑반찬으로 나와도 잘 먹는데, 그 물컹한 식감을 못 먹는 사람이 굉장히 많더라고. 난 몰랐다. 어려서부터 많이 먹었으니까. 그런 평범한 밑반찬들이 생각난다. 꼬막도 생각나고, 어렸을 때 많이 먹었던 반찬들이 지금도 선호는 반찬이 됐다.


식사의 풍경도 기억나나? 가족과 함께 밥 먹은 시절을 떠올리면 난 그런 게 생각난다. 일요일이면 삼겹살을 구워 먹곤 했는데, 밥 먹을 준비하자 그러면 거실 바닥 전체에 신문지를 다 깔고, 일본에서 온 원형 그릴을 창고에서 꺼내 왔다. 일본 제품이라 110V여서 도란스를 설치하고, 그릴 온도가 올라가는 동안 상추, 감자, 버섯 등 고기와 같이 먹을 것들이 함께 준비됐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가족 4명에서 삼겹살 2키로씩 먹고 그랬다. 이런 기억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식사에 대한 정의를 구성한다. 귀한 기억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나는 누나가 셋이다. 누나들과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여섯 식구가 다 같이 식사할 경우는 잘 없었고, 4명, 5명 정도가 동그란 밥상에, 바닥에 앉아, 아까 얘기한 평범한 밑반찬을 도란도란 먹었던, 대전의 이미지와 비슷한 집밥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서울로 갔다. 자리 잡은 녹두거리가 훗날 유명 블로거로 알려지는 녹두장군이란 이름의 기원이 됐는데, 대학 생활 중에도 학내 미식 동아리를 운영했다고 들었다. 요즘이야 빵투어, 노포투어 등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모임이 여기저기 많지만 당시엔 좀 생소한 반응이었을 것 같다


학창 시절에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반장, 부반장도 한 적이 없었고. 그런데 대학교, 대학원 생활하며 먹고 다니는 것에 눈이 뜨였고, 혼자 다니면서 느끼는 한계를 마주했다. 중국집 가서 요리를 시킬 수도 없으니까. 기존 모임이 있었으면 내가 들어갔을 텐데,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내가 만든 거다. 많은 음식을 먹고, 경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워낙 컸으니까. 동아리는 계속 나오는 사람도 있고, 한번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어서 몇 명이다 할 순 없지만,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2~30명은 됐다. 처음에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가입하겠다는 사람이 수백 명 될 정도였으니까. 송년회를 하면 5~60명 정도 모이고 그랬다. 그 당시 학생들 사이에 먹으러 다니는 거에 대한 욕구가 있지 않았나 싶다


당신의 그 욕구는 왜 생긴 거라고 보나. 대전에 있을 땐 없던 욕구라고 했으니까


어디를 간다 그러면 뭐 맛있는 게 근처에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건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때 이미 맛집 블로그를 하시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의 블로그를 보며 인식이 바뀐 거지. 이런 게 있구나. 맛에 이런 깊이가 있고, 식도락이란 세상이 있구나 하면서. 그때부터 주객이 전도됐다. 이전엔 춘천에 갈 일이 있으면 춘천에 갔으니 닭갈비도 먹고 오자 하는 식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춘천에 닭갈비 먹으러 가자 한 뒤, 먹고 난 후 시간 남으면 이왕 갔으니 뭐 다른 것도 보고 오자 하는 식으로. 먹는 게 1순위가 된 거지


얘기를 듣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든다. 맛, 미식 그 자체에 대한 욕구였다기보다 이를 경험하고 기록하는 욕구가 더 앞섰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반반이었던 거 같다. 맛 자체에 대한 것도 있었고, 역사, 조리법, 제철 등의 정보를 공부하고, 공유하는 것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찾아보고, 조사하고, 현장에 가 확인하고 하는 과정은 성격과도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보는데, 어릴 때부터 그렇게 파고드는 성향이었던 건가


글쎄, 뭔가 모으는 걸 좋아하긴 했다. 우표수집처럼 수집도 좋아했고. 블로그를 하는 것도 결국 기록을 모아두는 거더라고. 내가 녹두거리에 살았는데, 오랫동안 자취를 하면서 그 동네에서 나름 맛있다는 곳들을 알게 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겨서 후배들에게 알려주면 유용하니까, 그렇게 시작한 게 녹두거리에서 관악구로, 서울로, 전국으로 점점 넓어진 거지. 먹다 보면 궁금해지고, 그럼 또 찾아보고, 다시 먹고, 또 궁금한 게 생기고 그랬다


알겠다. 다시 대학 때 얘기로 돌아보자. 짐작하건대 IMF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학 생활을 했을 텐데, 이 시기는 대학가 운동권의 위세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열중하는 걸 천박하다고 보는 인식이 과거엔 많았으니까.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미식이란 여흥거리에 욕망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미식은 소득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이 좋은 시기였던 게 맞다. 연속적으로 점점 커지는 거지만, 그 시기가 급격히 좋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블로그도 많이 생겨났고, 방송에서도 맛집맛집 하면서 많이 다루기 시작했지. 와인도 그때 급격히 커졌고. 2005년부터 10년까지,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가던 단골집들은 어떤 게 있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학가에서 뭘 먹으려고 먹기 힘들지만, 그 시절엔 또 그 나름대로 최고의 식당 리스트 같은 게 있기 마련 아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양꼬치집이다. <성민양꼬치>라고 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우연찮게 지나가다 가서 먹게 됐고, 너무 맛있었다. 이전에도 서울에 양꼬치가 있긴 했지만, 그런 곳들은 냄새도 좀 나고 그랬는데, <성민양꼬치>는 호주산 어린 양을 쓰고 하니 너무 맛있더라. 이전의 가리봉동의 양꼬치 집들이 경험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면 여기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생각했고, 친구들을 막 데리고 갔지. <성민양꼬치>가 잘될 때쯤부터 전국적으로 양꼬치집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타지역 사람들이 관악구에 와서 맛있는 걸 먹는다는 개념이 없었는데, <성민양꼬치>는 서울에서 맛있는 것 좀 먹는다는 사람들이 다 찾아올 정도였다. 강남이나 이태원을 가는 게 아니라 봉천동으로 오는 거다. 이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그 식당이 기억난다


당시에 검색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물론 온라인이 점차 커지던 시기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검색을 쉽게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기억나는 건 일간지 한구석에 기자들이 지역의 맛집을 소개하고 했던 거 같다. 그럼 그걸 모아뒀다가 주말에 한번 가본다거나 하면서. 당시엔 맛집이란 말도 없었지만


2000년대 초반엔 나도 맛집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고, 2005년 정도부터가 시작인데, 그때는 검색해도 나오는 게 별로 없었다. 나보다 먼저 블로그를 활발히 하시던, 맛집 블로거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그 분들이 올리면 그냥 가는 거였다. 어 이거 맛있어 보인다 하면서. 그분들이 올려 주시는 게 바이블 같은 거였지.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비밀이야’가 있다



이제 블로그 얘기를 해보자. 올해 6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네이버로 플랫폼을 옮긴다고 밝혔다. 이글루스라는 플랫폼 자체가 폐쇄되기 때문인데, 이 블로그를 유지한 것이 햇수로도 10년이 훌쩍 넘어가고, 글 목록 번호로도 600이 넘는다. 이렇게 오랜 시간과 방대한 기록을 쌓아온 블로그를 이사하는 심정이 어떤가


이글루스가 문을 닫으면서 어쩔 수 없이 옮기는 게 맞고, 주변에서도 어떡하냐, 너무 아깝지 않냐 하면서 걱정을 많이 한다. 근데 난 좀 덤덤했다. 예전처럼 내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내게도 큰일이었을 텐데, 요즘은 살짝 흐지부지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새는 집에서 이사 갈 수는 없고 하는 마음에 근근이 붙잡고 있다가, 철거를 해서 옮겨야만 하는 상황이 됐으니까, 홀가분하다. 아쉬운 마음도 당연히 있지만. 이번 기회에 옮겨서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다. 거기 있는 게 다 원본이다. 백업이 돼 있는 건 없고. 이글루스에서 백업 기능을 제공한다고는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이글루스 플랫폼에 개설한 <녹두장군의 식도락> 이게 당신의 첫 블로그인데, 왜 이글루스였나 


원래 조금 마이너한 감성이 있는 것도 있고, 당시에도 네이버 블로그가 대세였는데 유명한 분들이 이미 많아서 나까지 뭘 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학교 주변에 식당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였으니까. 식당을 해도 대로변에서 크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뒷골목에서 조용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나는 후자에 가까웠던 거지


처음 올린 포스팅들을 보니 음식에 대한 정의, 설명, 지역의 식문화 등에 대한 글이 많더라. 식당을 소개하는 현재의 포스팅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던 블로그인가


미식의 세계를 접하면서 그냥 먹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음식의 기원이나, 제철 등 이론적인 것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었고, 공부하고 찾아본 걸 올린 거지. 책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찾아 보고 했다. 스스로 정리하는 것에 가까웠지


그러다 지금 남아 있는 포스팅을 기준으론, 가장 처음 소개한 식당이 녹두거리에 있는 <바다 어장>이다. 검색해 보면 지금은 없어진 것 같은데, 메뉴판 가격에 새삼 놀랍기도 하고, 이때가 기억나나? 


당신이 본 포스팅은 첫 포스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내가 비공개로 돌려놓은 것들도 많으니까. 큰 기억은 없다


알겠다. 지금부터 내가 느낀 음식 관련 블로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 우선 이거부터 물어보고 싶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이상이랄까, 상상한 모습 같은 게 있나? 물론 당신이 수많은 음식 블로거를 대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편히 말해주면 좋겠다


전혀 없었다. 밥벌이와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취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지금도 그렇다.


블로그 얘기를 하기 위해 몇 가지 단어에 대한 당신의 정의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당신에게 음식, 식사, 식당은 각각 어떻게 정의되나 


음식은 쌓아야 할 경험치 또는 숙제랄까. 이를테면 내가 홍어를 안 좋아해도 홍어를 먹어봐야 하는 거지. 식도락가라면 말이다. 식사는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정의고, 거기에 조금 더 덧붙인다면 그것 역시도 숙제인 것 같다. 먹어보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기록으로 남기고 하는. 식사라는 단어를 딱 떠올리면 혼자 하는 식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식당, 식당은.. 특별한 의미보다는 공간의 의미가 큰 것 같다. 요즘엔 배달하면 집에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HMR도 잘 나오니까, 맛으로써의 의미보다는, 공간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식당의 맛도 중요하지만 점점 공간의 의미도 중요해지고 하니까. 


맛집이란 단어는 어떤가. 당신이 만든 단어도 아니고, 당신 블로그에 잘 등장하는 말도 아닌 거 같긴 하지만, 결국 당신은 맛집 블로거 중 한 명으로 분류될 텐데,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음식과 식사, 식당, 그리고 이 콘텐츠들과 이를 구성하는 사람 사이에 작용하는 풍성한 감정을 폭력적으로 단순화하고, 맛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폐합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맛집이란 말을 블로그에 잘 안 쓰고, 사실 안 좋아한다. 맛있는 집이라는 게 뭐 나쁜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의미가 너무 퇴색됐다고 본다. 맛집이란 말을 너무 많이 쓰니까 그 단어 자체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달까. 정치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따라붙는 것처럼 맛집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것들이 먼저 따라붙고, 그래서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맛집이라고 하면 맛을 확인하러 가는 것도 아닌, 그냥 맛집이라고 해서 가는 것 같다. 맛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가면 다행이지만, 그냥 맛집이라고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래서 당신의 블로그명은 <녹두장군의 식도락>이었고, 당신은 블로그 명에 식도락이란 말을 쓰는 이유에 대해 미식이라고 했을 때 오는 어떤 엄숙함, 평가자의 태도 같은 것이 싫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당신의 포스팅은 하나의 기준이 됐고, 당신을 추종 또는 동경하는 ‘00의 식도락’ 블로그가 생겨났다. 당신 블로그의 방문자가 많아지면서 당신의 포스팅이 가진 힘이 강해져 자연스레 생긴 변화이기도 하지만, 이는 언제 어디서나,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예상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온라인 플랫폼의 하드웨어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제 더 이상 당신의 포스팅은 혼자 즐기며 자유롭게 해보자고 시작했던 초창기와는 무게가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그대로 썼다. 하지만 어느 새부턴가 당연히 그렇게 하기가 조심스러워지더라. 표현을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하지 못하고 에둘러서 하게 되는 거지. 예전 같으면 ‘여긴 맛 없어서 다신 가고 싶지 않다.’라고 쓸 수도 있는 걸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쓰는 거지. 속마음은 불호라는 얘긴데, 그렇게 쓰는 게 뭐 내 입맛에 안 맞는 거지 누군가의 입맛엔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지고, 좋게 말하면 겸손해지고 그랬다. 책임으로부터 한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그런 것 중 하나가 전국 5대 짬뽕과 관련된 일이었다. 내가 가본 전국 여러 지역의 짬뽕집 중에 영업시간이 짧고, 독특한 매력이 있는 짬뽕집을 모으니 5곳이어서 5대 짬뽕이라고 했는데, 키워드 자체가 눈에 띄다 보니 유명해지고, 욕을 많이 먹었지. 무슨 자격으로 5대 짬뽕이라 하냐, 가봤다니 별로다 등등의. 뭐 그렇게 말하면 재미로 한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그다음부터 좀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좀 더 자유롭게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해, 이번에 플랫폼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꿔 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아주 잠깐 생각해 본 적은 있다. 녹두장군은 이제 끝났습니다 하고, 아예 새롭게 할 생각을 해봤지. 근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녹두장군이 예전 같지 않고, 그냥 써도 임팩트가 크진 않아서, 그냥 그대로 썼다.



좋다, 이제 좀 더 내 본색을 드러내 보겠다.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앞에 자락을 좀 깔아봤는데, 블로그 문화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블로거가 영향력이 생기고, 힘이 생기는, 이런 변화가 처음엔 블로거지 같은 말로 불리던 비교적 단순한 문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요즘엔 그 문제의 정도가 다르다고 느낀다. 어떤 날이 기억나는데, 그 당시의 나는 구독하듯 자주 찾는 블로그 목록을 정리해 놓고, 어느 지역으로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목록 내 블로그에 지역명을 검색해 보곤 했다. 그날도 역시 그렇게 검색하던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난 내가 보던 블로그의 주인들이 식당을 여럿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그때 느낀 기분은 공포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식당 주인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블로그 운영 방식은 분명 문제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고 직감했는데, 그 카르텔에 구성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모두 유명한 음식점의 사장이었고, 서로의 식당을 서로의 블로그에 아주 객관적인 것처럼, 거리를 두고 하는 평인 것처럼 리뷰하는 포스팅이 많았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식이다. 카르텔에 속한 a가 식당을 낸다. 그럼 카르텔에 속한 b, c, d, e, f, g, h가 a가 낸 식당에 대한 포스팅을 올린다. 티 나게 동시에 올리진 않는다. 텀을 두고 천천히 올린다. 그럼 이미 유명한 이 카르텔의 멤버들이 올린 포스팅만으로도 a의 식당은 유명해져 있고, 맛집이 돼 있다. 본인의 노력으로 인기를 얻은 블로그, 그리고 본인과 같이 노력해 블로그를 만든 타인과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것까지 괜찮다고 치자.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이 카르텔의 눈 밖에 난다면 식당 하나 망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 카르텔의 블로그들을 무심코 봐선 이들이 식당 사장이란 걸 알기가 어렵다. 일부러 감추는 건지 알 순 없지만, 드러내지 않는 건 분명하다. 드러냈을 때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걸 난 그들이 인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얘기다. 이런 걸 경계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떳떳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뭐든지 시장이 커지면 권력을 가지는 사람이 생기고, 권력이 모이면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정확하게 카르텔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형성돼 있고 이런 건 아니고, 듬성듬성 친한 형태인데, 글쎄. 안 좋게 보이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다. 친한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런 것까진 괜찮지 않을까, 이런 건 좀 문제가 되겠다 하는 기준도 다 다르다. 완벽하게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기준이 높다 해서 낮은 사람을 욕하기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뒤섞여 있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그래도 나름의 선을 지키자고 얘기를 하는데, 그 선도 아마 다 다를 거다


난 블로거가 운용하는 건 음식이나 맛, 식당이 아니라 결국 정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보의 불균형, 정보의 독점 때문에 아마 나는 공포를 느꼈던 것일 테고. 식사라는 개념과 식당이란 공간이 블로그 문화가 활성화되고, 익숙해지면서 점차 온라인에서 본 정보를 오프라인에서 확인하는 과정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느끼는데, 소수의 인원이 정보를 쥐고 있는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외식업은 그렇게 무너질 거라는 걱정이 든다


블로거, 인스타그래머, 유튜버, 처음부터 권력을 갖기 위해 시작한 사람은 드물 거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겠지. 그렇게 하다 보니 권력을 가지게 되고, 퇴색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식 산업이 꺾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공간이나 맛보다 마케팅에 더 신경을 쓰는 식당이 많이 있지만, 전반적인 외식업 수준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고 본다. 좋은 식당을 찾아 다니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그렇게 무너질 거 같다는 생각은 안 든다


외식 산업의 발전, 식당의 질적 발전은 지속될 거라는 생각엔 동의한다. 하지만 이건 계급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과 식사라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계급의 문제로 전환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원시시대 때부터 가장 계급적인 성격을 띤 것이 식문화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르겠지만, 각종 분야에서 계급의 해체를 위해 애쓰는 요즘 식문화에 있어선 계급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으니 하는 얘기다. 오마카세 열풍이나 파인 다이닝 열풍에 블로거들의 많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런 식당에 갈 수 있는 계층이 국내에 얼마나 될까. 하지만 새롭고 화려한 정보를 계속해서 내세워야 하는 요즘 시대에, 값비싼 음식만이 소개되는 걸 보고 있으면 먹어보고 싶다, 먹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없다로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보내는 정보만 늘어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식당은 손님이 줄어들 것이고, 손님이 줄어든 만큼 식당의 수도 줄어들고, 식당의 퀄리티도 낮아질 것이다. 그렇게 식사라는 기본권의 질이 낮아질 거고. 내가 얘기하는 외식업의 몰락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얘기였다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나는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한 끼에 2~30만 원 하는 오마카세 시장이 커진 것처럼 한 끼에 1만 원 이하인 식당들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택의 폭도 넓어졌고. 영양소에 대한 것까지는, 외식을 하면서 영양소까지 챙기고자 하는 건 욕심이라고 보고, 한 끼 맛있고 즐겁게 먹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1만 원 이하 식당의 경쟁도 많이 치열해졌고, 그러면서 좋은 식당이 많아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행이겠다. 나는 내가 제기한 문제가 블로그 포스팅의 형식이 가져오는 문제는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보통의 포스팅 순서는 식당의 간판 - 외관 - 메뉴판 - 주문한 음식 - 먹는 과정 - 다 먹은 사진 - 코멘트 이런 흐름인데, 이 순서가 나는 채점표의 형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평가할 종목, 세부 기술표, 총평 형식의 채점표 말이다. 그래서 이런 형식이 좀 달라진다면 내가 느끼는 블로그 문화에서 파생된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블로그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얘기한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긴 하다. 나도 그 흐름을 따르고 있는데, 나는 평가라기보단 내가 궁금할 것 같은 요소를 순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포스팅을 작성한다. 경험하는 순서이기도 하고. 자기 나름의 의미가 담긴 형식일 거라 생각한다


블로그에 대한 질문은 여기까지다. 혹시 못다 한 말이 있을까


블로그 문화 자체가 내 생각엔 2008년 정도부터 쭉 성장을 해오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등장으로 예전만큼의 힘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체감하기엔 영향력이 30%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이제는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채널이 많아졌기 때문에 특정한 채널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블로그라는 오래된 플랫폼의 숙명이기도 하고. 10년 전 정도에 내가 블로거로서 인지도를 얻었을 때, 내가 잘나가는 블로거인가? 하고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냥 블로거 문화가 커지는 흐름에 잘 올라탔고, 꾸준히 했기 때문인지, 대단한 뭔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대화의 막바지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식당은 뭔가


당연히 맛을 빼놓을 순 없겠지. 그리고 예전엔 위생이 좀 떨어져도, 좀 불친절해도, 맛이란 점수가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요즘은 맛에 대한 기대치도 조금 낮아졌고, 경험치도 많이 쌓이다 보니, 맛이 뭐 특별한 게 있나? 라는 생각도 하면서, 맛보다는 친절함이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친절한 곳은 보통 맛있다. 맛없게 하기도 어렵지 않나. 친절한 사람이 일부러 맛없게 할 리도 없고. 친절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가려 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그런 식당 중, 지금 당장 가서 먹고 싶은 식당은 어딘가


남영동의 <이치젠>이 생각난다. 난 그런 곳이 좋은 식당이라고 본다. 가격대도 저렴하고, 다른 곳에 잘 없는 메뉴고, 친절하고, 영업한 지가 꽤 된 곳인데도 여전히 좋은 점들을 유지하고 있다. 훌륭한 식당이라고 생각한다    




6월 16일, '녹두장군의 식도락' 이글루스 블로그는 문을 닫았고, '녹두장군'은 네이버로 터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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