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0일의 대화
오늘도 각종 채널을 통해 수많은 식당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나 역시도 꽤 긴 세월을 그 소개에 응답하기 위한 부지런함으로 채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먹은 음식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까. 음식을 먹으러 갔었던 게 맞나? 정보를 확인하러 간 건 아니었을까?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화려하게 소개되는 새로운 식당에 더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발이 닿은 식당에 더 흥미가 생겼고, 그 우연이 행복한 식사로 이어지면 지속해서 방문했다. 그렇게 지속하는 몇몇 식당과의 관계만으로도 나의 식사는 충분히 즐거웠고, 희미하게 쌓여있던 수많은 식당과 음식에 관한 기억은, 소수의 식당과 음식에 관한 선명한 기억에 의해 완전히 투명해졌다. <마리오 파스타>는 선명한 기억 중 그 첫 번째 기억이다.
가게를 연 지 3년이 넘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마리오 파스타>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면 어떤가
재밌게 했다. 첫 장사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했고. 사실 이탈리아 음식이 내 전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음식에 대해서, 장사에 대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 번 해보자란 마음으로 시작한 가게다. 내가 장사 수완이 어느 정도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계속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처음 오픈했을 땐 장사가 잘 안됐다. 홍보를 전혀 안 하기도 했고. 그 시간이 힘들었어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인 건지 주변에 나 같은 사장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그 사장님들과 정말 재밌게 놀았다. 가게를 열고 나면 현금이 있어야 하니 누구나 여유자금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그 돈으로. 괜히 기분 안 좋아질까 잔고 확인도 안 하고 놀면서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놀면서 장사를 1년쯤 하니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잘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 해도 잘된 기간은 또 얼마 안 된다. 코로나 때문에. 그래도 난 혼자 장사를 하니 인건비 나갈 일은 없었고,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기도 했고, 여유 있게 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뭐.
3년 전이면 망원동이 가장 뜨겁게 얘기되던 시기다. 신촌에서 홍대로, 홍대에서 합정, 합정을 넘어 망원까지 퍼지던 홍대권 상권의 확장이 절정에 달했던. 그때, <마리오 파스타>도 망원에 둥지를 틀었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거의 4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서울을 다 다녔다. 너무 많이 보니까 지치더라. 다 비슷해 보였고. 그러던 와중 거의 막바지에, 그날도 마음을 못 정하고 돌아가려 했었는데 우연히 이 골목에 도착했다.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번화한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가게 앞의 세탁소나, 이발소, 그런 것들이 좋더라. 옛날 할머니 집 앞이 생각나기도 했고. 내가 정해두었던 여러 조건에도 맞았다.
방금 여러 조건이 맞았단 얘기를 했고, 4개월간 그 기준에 부합하는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텐데, 그 조건엔 어떤 것들이 있었나
어느 정도 유동인구가 있어야 하지만, 가게의 위치는 그 유동인구에선 살짝 벗어나길 원했다. 가게 앞에 망원시장 가는 길이 접해있지만,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을 이 골목까지 끌어오는 건 쉽지 않다. 그런 게 나에겐 매력이었다. 평일에 와도 사람이 정말 많은 동네인데 이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오면 또 한적한, 그런 거. 물론 지금은 이 골목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가게도 별로 없었다.
망원동은 내가 서울에서 동네란 말을 붙이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살기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얘기다. 아마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망원시장의 풍요로움 덕이 클 거다. 그리고 망원동은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들과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퍽 잘 어우러져 산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곳을 관광지로 인식하며 한껏 꾸미고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다른 동네에 비하면 편한 차림으로 나와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독 많이 보인다.
망원동에 처음 자리 잡게 한 매력은 분명 그랬다. 하지만 조금 다른 얘기도 하고 싶다. 이 골목부터가 내가 처음 편안함을 느꼈던 조용한 곳에서 많이 바뀌었다. 그 당시 가게 주변은 거의 다 주택가였는데, 이젠 상가로 많이 리모델링하는 중이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거다. 이 골목의 건물들이 리모델링하게 되면 여기 사시는 분들은 이 골목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나와 안면이 있으신 분들도 이제 간다며 인사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한 편으론 나도 여기서 장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반기게 되는 마음도 부정할 순 없다.
식도를 처음 쥔 순간부터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러니까 직업으로 요리사를 선택하기 이전, 요리가 재밌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나도 요리하는 걸 꽤 즐기는 편인데, 나 같은 경우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엄마의 지도 아래 카레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근데 내가 만든 카레가 제법 맛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부터 요리를 즐겨 해보기 시작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형제가 많았음에도 명절이면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전 부치고 하는 걸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했다. 송편이나 만두도 빚었고. 어머니는 옆에서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나가 놀고 싶어 할까 봐 일꾼을 붙잡아두기 위한 연막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칭찬을 들으며 ‘난 요리를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어린 나이엔 관계의 종류가 가족이 전부고, 부모님의 말이 진리니까. 그래서 착각이 시작됐고, 요리가 내 재능이라 믿었다.
많이들 흔히 하는 말처럼 그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건 다르지 않나. 요리사를 직업으로 해야겠단 마음은 건 어떤 과정을 거치며 굳어졌나
난 요리를 직업으로 해보자 결정한 것이 많이 늦은 편이다. 대학생 때 방학이면 요리 관련 자격증을 땄고,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요리 쪽으로, 군대에서도 취사반 지원했지만, 그냥 취미로 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다. 요리를 직업으로 한 계기는 대단할 게 없다.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고. 제약회사의 생산파트에서 품질관리 일을 하는 게 내 첫 직장생활이었다. 온종일 컴퓨터 보고 하는 게 재미없더라. 그리고 상사들을 보면 딱 보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저 사람 위치까지밖에 못 가겠구나 하는 게. 그리고 그 자리에 가는 것조차 확률이 희박한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힘든 게 보이더라. 퇴사 결정을 한 게 28살이었고, 1년간 준비해 29살부터 제대로 시작했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를 많이 하셨다. 그래도 경험이 있기에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걸 해보자란 생각이 확고했다.
그렇게 29살에 이탈리아로 갔다.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가는 것이 생뚱맞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 중국, 일본 등이 아닌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야겠다 결정한 이유는 궁금하다
내가.. 뭐든 거창한 게 별로 없다. 크게 생각 안 했다. 이탈리아에 많이들 가는 학교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토리노, 하나는 베로나에 있다. 나는 유벤투스(이탈리아 토리노를 연고지를 하는 축구 클럽)를 좋아했으니까.. 가면서는 또 토리노를 내 제2의 고향으로 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원래 결정한 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고민은 많이 하지만, 결정 과정에서 선택지를 견주어 보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결정하는 건 쉬웠다.
이탈리아 하면 맛있는 음식과 지중해의 아름다움이 떠오르긴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일부의 아름다움 이면엔 고단한 일상이 존재한다. 토리노 생활은 어땠나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짧다. 그 이후엔 학교와 제휴를 맺은 미슐랭 식당 중 한 곳에 나가 실습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거기까지의 코스를 마치는 커리큘럼이 대략 1년 정도다. 내가 식당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첫 식당은 간단히 말해 시골 레스토랑이었고, 내는 음식도 시골 가정식, 그리고 할머니 두 분이 셰프로 계신 곳이었다. 그 식당에 가서 처음 음식을 먹었을 때 바로 일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식당 앞의 텃밭에서 가꾼 재료로 요리했는데, 한국에선 꿈같은 얘기니까. 하지만 일하러 가서는 후회 많이 했다. 내 업무 중의 절반은 밭일이었고, 또 밭에서 수확한 재료들을 정리해야 하니 창고정리 일도 많았다. 당연하다. 물론 당연한데, 근데도 불만은 생기더라. 게다가 견습생 신분이라 무급인 게 맞는데 내게 돈을 주더라. 그때 이건 아니다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내가 할 일이 아닌 걸 지금 시키고 있단 얘기니까. 그래서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학교랑 많이 싸웠다. 결국 학교 도움 때려치우고, 같이 클래스를 들었던 친구들 기숙사에 얹혀 지내며 매일 ‘어디서 온 누군데 ---에서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 끝에 두 번째 레스토랑을 갔다. 거긴 완전히 다른, 세련된 곳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기숙사도 있고. 절대 설거지는 시키지 않는. 뭐..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토리노가 이탈리아 북부니 추운 지방이지 않나. 특별히 기억나는 음식이나 식당이 있나
토리는 산간 지역이고, 낙농업을 많이 한다. 와인과 트러플도 유명하고. 그때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특이한 건 송아지 뇌 요리였다. 그런 요리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해안가로 좀 내려오면 제노바란 해안 도시가 있는데, 그쪽 해산물 요리도 생각난다.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다 맛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엔 1년만 있었다. 한국으로 1년 만에 돌아온 까닭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는데 짐작이 잘 안 가더라
커리큘럼 내 동안은 학생비자로 있을 수 있고, 그게 끝나고도 이탈리아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레스토랑에 정식으로 취업해야 했다. 근데 그게 잘 안됐다. 토리노의 많은 레스토랑은 번화가에 있지 않은 이상 눈 때문에 오랜 시간 문을 닫는다. 그래서 12월쯤 되니 일하던 식당에서 나보고 ‘너는 한국으로 가야 된다.’하더라. ‘3월에 다시 오면 일할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엔 안돼.’란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또, 난 내가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것처럼 굉장히 잘 살 거로 생각했는데 집에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더라. 그렇게 뭐 ‘다시 오면 되니까’하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가게를 차리기까지 얼마나 걸린 건가
8년이 걸렸다. 8년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한국의 유명 식당들은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 그래서 나처럼 시작이 늦고, 굴러들어온 돌은 기회가 잘 안 주어지더라. 덕분에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전전했다. 그 시간 중에 3년 정도는 이탈리아 음식을 하기도 했는데, 너무 달랐다. 내가 배운 걸 써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배운 걸 좋게 봐주지도 않았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이란 게 있고, 이곳의 음식 형태라는 게 있어서 그랬을 거다. 난 평소에도 불만이 많은 편이다. ‘이건 아니야, 난 새로운 거 할래.’하는. 그래서 한식도 해보고, 일식도 해보고 그랬다.
요리를 잠시 놓은 적도 있었나
번아웃의 주기가 좀 있어서 길게 쉬어야 하는 편이라 백수로 지낸 적은 있어도 요리 외에 다른 것으로 돈을 번 적은 없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도 한 번 더 다녀왔다. 이탈리아엔 생면만 파는, 한국의 두붓집 같은 작은 공장 같은 상점들이 있는데, 그때 그런 파스타집 중 한 곳에서 일하며 많이 배웠다. 그때 배운 걸 지금 가게의 음식을 낼 때도 쓰고 있고.
인천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천에서 자랐는데, 가게의 장소를 정할 때 부천을 고려해보진 않았나
부천은 생각조차 안 했다. 상권분석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내가 하려는 건 서울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파스타가 특이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기 때문에, 좀 더 많이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서울로 결정했다
서울에 대한 예상이 그럴 수 있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부천은? 부천은 어떤 인상이었기에
장소로 부천을 생각했다면 이 메뉴가 아니었겠지. 부천은 전형적인 잠자기 위한 도시니까. 내가 어렸을 땐 뭐, 재밌었다. 퐁퐁도 타고, 축구하러 다니고, 정감 넘치는 곳이었다.
내가 이 가게를 드나든 것도 3년이 넘었다. 처음 친구의 소개를 받아 가게를 찾게 됐고, 음식을 먹고 다시 문을 나서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명징했던 생각은 ‘좋은 식당을 하나 알게 됐구나.’ 하는 거였다. 내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다. 가게를 열며 가장 신경 썼던 건 무엇인가
깔끔해 보이게 하자. 내가 인테리어 감각이 없어서 그냥 무조건 하얗게 했다. 그게 제일 깔끔한 거 같아서. 근데 이게 때가 잘 탄다... 그래도 내가 부지런한 편이긴 해서 잘 관리했다. 내가 기본이라 생각하는 기준이 남들보다 높은 편이기도 하고. 메뉴에 있어선 독특했으면 좋겠고, 새롭길 바랐다. 근데 지금은 손님이 메뉴를 받아 들었을 때 뭔지 상상할 수 있는 메뉴를 하고 싶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 그때 당시엔 실수했던 것도 많고, 그래서 그때 손님들을 생각하면 죄송한 것도 많다.
방금 내가 좋은 식당이란 말을 했는데, 내게 좋은 식당이란 그 식당의 사장이 자신의 식당과 음식을 얼마나 아끼고, 맛있어하는지가 기본이다. 물론 식당은 장사하는 공간이고, 이익을 남겨야 하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병행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음식과 공간이 우선해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는 아마 식당을 하셨던 내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할 거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신경 쓰며 음식을 내고, 당신의 식당에서 손님과 주인이 서로의 예의를 잃지 않도록 애쓰셨던 모습을 오랜 시간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버지의 식당을 보며 자연스럽게 정립된 좋은 식당에 대한 정의를 <마리오 파스타>에 와서 첫 식사를 했을 때 마주하게 됐고, 정말 기뻤다
좋은 식당.. 글쎄.. 좋은 식당이 뭘까. 손님도 만족해야 하고, 나도 만족하고 싶다. 그래도 조금은 손님이 더 먼저인 것 같다. 내가 좀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손님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표현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손님의 입장에서 좋은 식당이라 느낀 곳도 있나
어렵다. 배려해 주는 식당? 맛은 어느 정도만 되면 된다. 나는 혼밥을 자주 하는데, 허기져 찾아갔을 때 편하게 받아주는 식당이 좋다. 그런 곳은 여럿이 갔을 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구체적인 가게 이름도 말해줄 수 있나
자주 가고 싶은데 자리를 옮기셔서 이제는 자주 못 간다. 월드컵시장 쪽에서 하시다 좀 더 멀리 가셨는데, 백반을 하시면서 술도 파시고, 뭐 여러 가지 하시는 곳이다. 할아버지들 많이 계시고. 그런 곳을 좀 좋아한다. 로뎀식당이라고..
하던 얘기를 이어 하자면 나 역시도 식당에서 일하며 서빙과 요리를 각 1년씩 했었다. 2년의 세월을 보내며 느꼈던 건, 좋은 식당의 5할이 주인의 몫이라면 5할은 손님의 몫이란 거다. 물론 모든 손님이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입장이란 건 안다. 그래도 좋은 손님은 뭘까
내가 하려는 걸 이해하는 손님? 손님이 드시고 간 접시는 항상 확인하는데 진짜 맛있어서 싹싹 비운 손님이 있고, 그냥 먹을만한 정도지만, 배가 고파 다 비우는 손님도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이런저런 손님 중 맛있어서 싹싹 비운 손님을 만나면 기분 좋다. 나도 혼밥을 많이 하니 혼자 온 손님은 좀 더 잘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그리고 이건 아직 손님들에게 얘기해본 적은 없는데, 우리 파스타에 빵이 한 조각씩 나오지 않나. 이게 사실은 용도가 있다. 다 먹고 나서 접시에 남은 소스를 훑어 먹기 위한 거다. 이탈리아에선 ‘스카르페타(Scarpetta)’라는 용어도 있다. 근데 또 한국 사람들은 먹는데 참견하는 걸 안 좋아하니까 설명해 드려본 적은 없지만, 간혹 그렇게 드시는 분이 있다. 그런 게 난 기분 좋다.
메뉴판 한편에 작게나마 설명을 해놓으면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특히나 ‘스카르페타’라는 있어 보이는 용어까지 곁들인다면 말이다. 한국에선 아무래도 남은 소스를 닦아 먹는 것을 지저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 않나. 누군가 ‘뭐 지저분하게 그러고 먹냐’할 때 ‘야 스카르페타, 스카르페타 몰라?’하며 거드름 피우기 딱 좋을 것 같다. 맛있기도 하고.
맞다. 그게 필요하기도 한 게 우리 빵은 제일 맛있는 상태로 나가는 게 아니다. 빵에 수분이 조금 빠져야 소스에 적셨을 때 맛있기 때문에 빵만 먹으면 정말 맛이 없다. 대부분의 손님이 빵을 안 드시거나, 식전빵이라 생각하고 되게 맛없게 드신다. 설명이 좀 필요하긴 하다. 인스타가... 인스타가 소통의 도구인데 내가 활용을 잘 못 한다. 그런 걸 풀어내야 하는데... 열심히 해야지...
유독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나?
정말 장사 안될 때였다. 장사가 안될 때는 나 스스로 아무리 맛있게 먹어도 내 음식에 의심이 자꾸 든다. ‘이게 괜찮은 걸까?’, ‘이런 파스타, 돈 주고 먹을까?’ 하는 생각도 한참 했다. 그때 한 손님이 와서 ‘이 파스타 정말 훌륭하다’고 말하며 음식을 먹었다.
혼잣말을 그렇게 한 건가?
혼자면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겠지? 여자친구랑 같이 와서 한 말이었다. 가게가 작으니 내게도 다 들렸고. 그 손님 덕분에 자극을 줬고 자신감도 많이 줬다. 이 근처 사시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는데, 그 손님은 많이 기억이 난다. 만약 가게를 이전하거나 이 가게를 그만두게 돼도 꼭 다시 뵙고 싶다.
파스타란 음식 얘기도 좀 해보자. 파스타를 몇 번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달을 텐데, 파스타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 않나. 물론 그렇기 때문에 높은 수준으로 진입하기엔 더욱더 어렵단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일상적이고 간단한, 뭐든 볶으면 맛있는 한국식 볶음밥처럼 파스타 삶아서 남은 재료에 대충 볶으면 맛있는 게 파스타라고 생각한다.
파스타는 그냥 밥이다. 그리고 나는 밥집 같은 파스타 가게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사실 많이 벗어났다. 가격적인 면에서. 밥이라면 한 그릇의 가격도 중요하니까, 그래야 자주 찾을 수 있는데 지금은 많이 올랐다. 그렇게 된 게 손님이 기대하시는 건 또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밥처럼 파스타를 즐기시는 분도 있지만. 여하튼 다음 가게가 될지, 다음다음 가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원하는 방식대로 파스타를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파스타가 밥이란 걸 처음 느낀 게 언제인가
내가 요리를 하다 이탈리아를 간 게 아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관한 환상이 되게 많았다. 그 환상이 바로 깨진 게, 파스타를 먹는데 당시 내 기준에서는 면만 주었을 때다. 근데 그 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육수가 소스처럼 달라붙어 있고, 거기에 치즈가 뿌려져 있었다. 그런 파스타를 그냥 일상에서 늘 먹는다. 나는 그게 가장 파스타다운 파스타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이닝 쪽으로 가면 파스타는 고급요리가 되기도 하지만, 파스타는 일상에서 즐기는 밥이다. 맨밥에 간장, 버터 넣고 비벼 먹는 것처럼. 하지만 물론 이것 역시 내 고집일 뿐이다. 어쨌든 장사고, 수익이 나야 하지 않나. 트러플 올리고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윤 창출 때문일 수도 있다.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파스타집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리오의 대표 메뉴는 누가 뭐래도 클래식 라자냐고, 그 외에도 다양한 파스타를 시도한다. 요즘엔 피자도 메뉴에 포함됐고. 만들 때 가장 기분 좋은 메뉴는 뭔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만들 때 유난히 신나는, 그런 메뉴가 생기더라
파스타가 아니어도 되나? 피자가 좋다. 불에서 조리하고 하는 건,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할 수도 있겠는데, 빵은 좀 재밌다. 반죽에서부터 변화하는 걸 다 캐치해야하기도 하고, 피자 만들면 아주 재밌다. 지금도 아침에 도우 부풀어 있는 거 보면 ‘아, 이거 손님들이 정말 좋아하겠다, 정말 맛있게 되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도우 레시피는 쓰는 밀가루부터 해서 수도 없이 바꾸고 있다. 피자 정말 재밌다.
대화의 막바지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앞으로 <마리오 파스타>의 시간이 얼마 정도 남은 것 같나
이 자리에서는 이미 나가기를 원했는데, 그로부터도 시간이 좀 지났다. 내년에는 옮길 거다. 이 자리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멀리 가진 않고 망원동에 있을 거다.
이름은 그대로 가나
아마도? 이게 괜찮더라고. 사람들 머릿속에 나름대로 각인도 되고.
좀 닮기도 했다
그 얘기도 많이 한다. 마리오는 내 세례명이다. 그냥 나 마리오니까, 마리오 파스타 할래 하면서 쉽게 정했던 가게 이름이다.
완성하고 싶은 궁극적인 식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자리 잡고 싶은 동네와 인테리어부터 메뉴와 손님까지, 어떤 식당을 만들어가고 싶나
이거는 아마 다들 비슷할 거 같은데, 심야식당이다. 진짜 오마카세를 하는. 손님이 먹고 싶은 거 해줄 수 있는 작은 식당. 근데 그거 하면 먹고살기는 힘드니 돈이 많아야 할 거 같다. 이거는 내가 여유가 되고, 주방에 서 있을 힘만 있으면 머리기 희끗희끗해도 하고 싶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친구들 초대하는 느낌으로.
SNS로 간간이 소식을 전하긴 하지만, 이 인터뷰가 어쩌면 처음으로 식당이 아닌 공간에서, 음식이 아닌 도구로, 손님에게 마음을 전하는 자리일 거다. 찾아주셨던 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일단 감사하다.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 보면 더 챙겨드리고 하고 싶고 한데, 또 오히려 그런 분들은 원하시지도 않는다. 알게 모르게 조용히 왔다 가시는 분들이 많은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진 이규오 최직경
2021년 10월 20일의 대화
오늘도 각종 채널을 통해 수많은 식당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나 역시도 꽤 긴 세월을 그 소개에 응답하기 위한 부지런함으로 채웠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먹은 음식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까. 음식을 먹으러 갔었던 게 맞나? 정보를 확인하러 간 건 아니었을까?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화려하게 소개되는 새로운 식당에 더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발이 닿은 식당에 더 흥미가 생겼고, 그 우연이 행복한 식사로 이어지면 지속해서 방문했다. 그렇게 지속하는 몇몇 식당과의 관계만으로도 나의 식사는 충분히 즐거웠고, 희미하게 쌓여있던 수많은 식당과 음식에 관한 기억은, 소수의 식당과 음식에 관한 선명한 기억에 의해 완전히 투명해졌다. <마리오 파스타>는 선명한 기억 중 그 첫 번째 기억이다.
가게를 연 지 3년이 넘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마리오 파스타>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면 어떤가
재밌게 했다. 첫 장사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했고. 사실 이탈리아 음식이 내 전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음식에 대해서, 장사에 대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 번 해보자란 마음으로 시작한 가게다. 내가 장사 수완이 어느 정도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계속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처음 오픈했을 땐 장사가 잘 안됐다. 홍보를 전혀 안 하기도 했고. 그 시간이 힘들었어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인 건지 주변에 나 같은 사장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그 사장님들과 정말 재밌게 놀았다. 가게를 열고 나면 현금이 있어야 하니 누구나 여유자금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그 돈으로. 괜히 기분 안 좋아질까 잔고 확인도 안 하고 놀면서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놀면서 장사를 1년쯤 하니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잘되기 시작했지만, 그렇다 해도 잘된 기간은 또 얼마 안 된다. 코로나 때문에. 그래도 난 혼자 장사를 하니 인건비 나갈 일은 없었고,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기도 했고, 여유 있게 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뭐.
3년 전이면 망원동이 가장 뜨겁게 얘기되던 시기다. 신촌에서 홍대로, 홍대에서 합정, 합정을 넘어 망원까지 퍼지던 홍대권 상권의 확장이 절정에 달했던. 그때, <마리오 파스타>도 망원에 둥지를 틀었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거의 4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서울을 다 다녔다. 너무 많이 보니까 지치더라. 다 비슷해 보였고. 그러던 와중 거의 막바지에, 그날도 마음을 못 정하고 돌아가려 했었는데 우연히 이 골목에 도착했다.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번화한 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가게 앞의 세탁소나, 이발소, 그런 것들이 좋더라. 옛날 할머니 집 앞이 생각나기도 했고. 내가 정해두었던 여러 조건에도 맞았다.
방금 여러 조건이 맞았단 얘기를 했고, 4개월간 그 기준에 부합하는 공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텐데, 그 조건엔 어떤 것들이 있었나
어느 정도 유동인구가 있어야 하지만, 가게의 위치는 그 유동인구에선 살짝 벗어나길 원했다. 가게 앞에 망원시장 가는 길이 접해있지만,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을 이 골목까지 끌어오는 건 쉽지 않다. 그런 게 나에겐 매력이었다. 평일에 와도 사람이 정말 많은 동네인데 이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오면 또 한적한, 그런 거. 물론 지금은 이 골목으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가게도 별로 없었다.
망원동은 내가 서울에서 동네란 말을 붙이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간단히 말해 살기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얘기다. 아마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망원시장의 풍요로움 덕이 클 거다. 그리고 망원동은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들과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퍽 잘 어우러져 산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이곳을 관광지로 인식하며 한껏 꾸미고 찾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다른 동네에 비하면 편한 차림으로 나와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독 많이 보인다.
망원동에 처음 자리 잡게 한 매력은 분명 그랬다. 하지만 조금 다른 얘기도 하고 싶다. 이 골목부터가 내가 처음 편안함을 느꼈던 조용한 곳에서 많이 바뀌었다. 그 당시 가게 주변은 거의 다 주택가였는데, 이젠 상가로 많이 리모델링하는 중이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거다. 이 골목의 건물들이 리모델링하게 되면 여기 사시는 분들은 이 골목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나와 안면이 있으신 분들도 이제 간다며 인사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 걸 보면 많이 아쉽다. 하지만 한 편으론 나도 여기서 장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반기게 되는 마음도 부정할 순 없다.
식도를 처음 쥔 순간부터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러니까 직업으로 요리사를 선택하기 이전, 요리가 재밌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나도 요리하는 걸 꽤 즐기는 편인데, 나 같은 경우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엄마의 지도 아래 카레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근데 내가 만든 카레가 제법 맛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때부터 요리를 즐겨 해보기 시작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형제가 많았음에도 명절이면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전 부치고 하는 걸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했다. 송편이나 만두도 빚었고. 어머니는 옆에서 계속 잘한다 잘한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나가 놀고 싶어 할까 봐 일꾼을 붙잡아두기 위한 연막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칭찬을 들으며 ‘난 요리를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어린 나이엔 관계의 종류가 가족이 전부고, 부모님의 말이 진리니까. 그래서 착각이 시작됐고, 요리가 내 재능이라 믿었다.
많이들 흔히 하는 말처럼 그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건 다르지 않나. 요리사를 직업으로 해야겠단 마음은 건 어떤 과정을 거치며 굳어졌나
난 요리를 직업으로 해보자 결정한 것이 많이 늦은 편이다. 대학생 때 방학이면 요리 관련 자격증을 땄고,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요리 쪽으로, 군대에서도 취사반 지원했지만, 그냥 취미로 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다. 요리를 직업으로 한 계기는 대단할 게 없다.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고. 제약회사의 생산파트에서 품질관리 일을 하는 게 내 첫 직장생활이었다. 온종일 컴퓨터 보고 하는 게 재미없더라. 그리고 상사들을 보면 딱 보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저 사람 위치까지밖에 못 가겠구나 하는 게. 그리고 그 자리에 가는 것조차 확률이 희박한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힘든 게 보이더라. 퇴사 결정을 한 게 28살이었고, 1년간 준비해 29살부터 제대로 시작했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를 많이 하셨다. 그래도 경험이 있기에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걸 해보자란 생각이 확고했다.
그렇게 29살에 이탈리아로 갔다. 요리를 배우러 이탈리아로 가는 것이 생뚱맞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프랑스, 중국, 일본 등이 아닌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야겠다 결정한 이유는 궁금하다
내가.. 뭐든 거창한 게 별로 없다. 크게 생각 안 했다. 이탈리아에 많이들 가는 학교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토리노, 하나는 베로나에 있다. 나는 유벤투스(이탈리아 토리노를 연고지를 하는 축구 클럽)를 좋아했으니까.. 가면서는 또 토리노를 내 제2의 고향으로 삼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가 원래 결정한 것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고민은 많이 하지만, 결정 과정에서 선택지를 견주어 보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결정하는 건 쉬웠다.
이탈리아 하면 맛있는 음식과 지중해의 아름다움이 떠오르긴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일부의 아름다움 이면엔 고단한 일상이 존재한다. 토리노 생활은 어땠나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은 굉장히 짧다. 그 이후엔 학교와 제휴를 맺은 미슐랭 식당 중 한 곳에 나가 실습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거기까지의 코스를 마치는 커리큘럼이 대략 1년 정도다. 내가 식당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첫 식당은 간단히 말해 시골 레스토랑이었고, 내는 음식도 시골 가정식, 그리고 할머니 두 분이 셰프로 계신 곳이었다. 그 식당에 가서 처음 음식을 먹었을 때 바로 일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식당 앞의 텃밭에서 가꾼 재료로 요리했는데, 한국에선 꿈같은 얘기니까. 하지만 일하러 가서는 후회 많이 했다. 내 업무 중의 절반은 밭일이었고, 또 밭에서 수확한 재료들을 정리해야 하니 창고정리 일도 많았다. 당연하다. 물론 당연한데, 근데도 불만은 생기더라. 게다가 견습생 신분이라 무급인 게 맞는데 내게 돈을 주더라. 그때 이건 아니다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나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내가 할 일이 아닌 걸 지금 시키고 있단 얘기니까. 그래서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학교랑 많이 싸웠다. 결국 학교 도움 때려치우고, 같이 클래스를 들었던 친구들 기숙사에 얹혀 지내며 매일 ‘어디서 온 누군데 ---에서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써서 보냈다. 그 끝에 두 번째 레스토랑을 갔다. 거긴 완전히 다른, 세련된 곳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기숙사도 있고. 절대 설거지는 시키지 않는. 뭐..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토리노가 이탈리아 북부니 추운 지방이지 않나. 특별히 기억나는 음식이나 식당이 있나
토리는 산간 지역이고, 낙농업을 많이 한다. 와인과 트러플도 유명하고. 그때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특이한 건 송아지 뇌 요리였다. 그런 요리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해안가로 좀 내려오면 제노바란 해안 도시가 있는데, 그쪽 해산물 요리도 생각난다. 이탈리아는 기본적으로 다 맛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엔 1년만 있었다. 한국으로 1년 만에 돌아온 까닭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는데 짐작이 잘 안 가더라
커리큘럼 내 동안은 학생비자로 있을 수 있고, 그게 끝나고도 이탈리아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레스토랑에 정식으로 취업해야 했다. 근데 그게 잘 안됐다. 토리노의 많은 레스토랑은 번화가에 있지 않은 이상 눈 때문에 오랜 시간 문을 닫는다. 그래서 12월쯤 되니 일하던 식당에서 나보고 ‘너는 한국으로 가야 된다.’하더라. ‘3월에 다시 오면 일할 수 있어, 하지만 그 전엔 안돼.’란 말을 덧붙이면서. 그리고 또, 난 내가 원래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것처럼 굉장히 잘 살 거로 생각했는데 집에 너무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더라. 그렇게 뭐 ‘다시 오면 되니까’하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가게를 차리기까지 얼마나 걸린 건가
8년이 걸렸다. 8년 동안 여기저기를 전전했다. 한국의 유명 식당들은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 그래서 나처럼 시작이 늦고, 굴러들어온 돌은 기회가 잘 안 주어지더라. 덕분에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지만, 나쁘게 말하면 전전했다. 그 시간 중에 3년 정도는 이탈리아 음식을 하기도 했는데, 너무 달랐다. 내가 배운 걸 써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배운 걸 좋게 봐주지도 않았고. 한국 사람들의 입맛이란 게 있고, 이곳의 음식 형태라는 게 있어서 그랬을 거다. 난 평소에도 불만이 많은 편이다. ‘이건 아니야, 난 새로운 거 할래.’하는. 그래서 한식도 해보고, 일식도 해보고 그랬다.
요리를 잠시 놓은 적도 있었나
번아웃의 주기가 좀 있어서 길게 쉬어야 하는 편이라 백수로 지낸 적은 있어도 요리 외에 다른 것으로 돈을 번 적은 없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도 한 번 더 다녀왔다. 이탈리아엔 생면만 파는, 한국의 두붓집 같은 작은 공장 같은 상점들이 있는데, 그때 그런 파스타집 중 한 곳에서 일하며 많이 배웠다. 그때 배운 걸 지금 가게의 음식을 낼 때도 쓰고 있고.
인천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천에서 자랐는데, 가게의 장소를 정할 때 부천을 고려해보진 않았나
부천은 생각조차 안 했다. 상권분석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내가 하려는 건 서울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파스타가 특이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기 때문에, 좀 더 많이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서울로 결정했다
서울에 대한 예상이 그럴 수 있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부천은? 부천은 어떤 인상이었기에
장소로 부천을 생각했다면 이 메뉴가 아니었겠지. 부천은 전형적인 잠자기 위한 도시니까. 내가 어렸을 땐 뭐, 재밌었다. 퐁퐁도 타고, 축구하러 다니고, 정감 넘치는 곳이었다.
내가 이 가게를 드나든 것도 3년이 넘었다. 처음 친구의 소개를 받아 가게를 찾게 됐고, 음식을 먹고 다시 문을 나서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명징했던 생각은 ‘좋은 식당을 하나 알게 됐구나.’ 하는 거였다. 내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다. 가게를 열며 가장 신경 썼던 건 무엇인가
깔끔해 보이게 하자. 내가 인테리어 감각이 없어서 그냥 무조건 하얗게 했다. 그게 제일 깔끔한 거 같아서. 근데 이게 때가 잘 탄다... 그래도 내가 부지런한 편이긴 해서 잘 관리했다. 내가 기본이라 생각하는 기준이 남들보다 높은 편이기도 하고. 메뉴에 있어선 독특했으면 좋겠고, 새롭길 바랐다. 근데 지금은 손님이 메뉴를 받아 들었을 때 뭔지 상상할 수 있는 메뉴를 하고 싶다.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 그때 당시엔 실수했던 것도 많고, 그래서 그때 손님들을 생각하면 죄송한 것도 많다.
방금 내가 좋은 식당이란 말을 했는데, 내게 좋은 식당이란 그 식당의 사장이 자신의 식당과 음식을 얼마나 아끼고, 맛있어하는지가 기본이다. 물론 식당은 장사하는 공간이고, 이익을 남겨야 하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병행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음식과 공간이 우선해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는 아마 식당을 하셨던 내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할 거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신경 쓰며 음식을 내고, 당신의 식당에서 손님과 주인이 서로의 예의를 잃지 않도록 애쓰셨던 모습을 오랜 시간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버지의 식당을 보며 자연스럽게 정립된 좋은 식당에 대한 정의를 <마리오 파스타>에 와서 첫 식사를 했을 때 마주하게 됐고, 정말 기뻤다
좋은 식당.. 글쎄.. 좋은 식당이 뭘까. 손님도 만족해야 하고, 나도 만족하고 싶다. 그래도 조금은 손님이 더 먼저인 것 같다. 내가 좀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더라도, 손님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표현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손님의 입장에서 좋은 식당이라 느낀 곳도 있나
어렵다. 배려해 주는 식당? 맛은 어느 정도만 되면 된다. 나는 혼밥을 자주 하는데, 허기져 찾아갔을 때 편하게 받아주는 식당이 좋다. 그런 곳은 여럿이 갔을 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구체적인 가게 이름도 말해줄 수 있나
자주 가고 싶은데 자리를 옮기셔서 이제는 자주 못 간다. 월드컵시장 쪽에서 하시다 좀 더 멀리 가셨는데, 백반을 하시면서 술도 파시고, 뭐 여러 가지 하시는 곳이다. 할아버지들 많이 계시고. 그런 곳을 좀 좋아한다. 로뎀식당이라고..
하던 얘기를 이어 하자면 나 역시도 식당에서 일하며 서빙과 요리를 각 1년씩 했었다. 2년의 세월을 보내며 느꼈던 건, 좋은 식당의 5할이 주인의 몫이라면 5할은 손님의 몫이란 거다. 물론 모든 손님이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입장이란 건 안다. 그래도 좋은 손님은 뭘까
내가 하려는 걸 이해하는 손님? 손님이 드시고 간 접시는 항상 확인하는데 진짜 맛있어서 싹싹 비운 손님이 있고, 그냥 먹을만한 정도지만, 배가 고파 다 비우는 손님도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 이런저런 손님 중 맛있어서 싹싹 비운 손님을 만나면 기분 좋다. 나도 혼밥을 많이 하니 혼자 온 손님은 좀 더 잘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그리고 이건 아직 손님들에게 얘기해본 적은 없는데, 우리 파스타에 빵이 한 조각씩 나오지 않나. 이게 사실은 용도가 있다. 다 먹고 나서 접시에 남은 소스를 훑어 먹기 위한 거다. 이탈리아에선 ‘스카르페타(Scarpetta)’라는 용어도 있다. 근데 또 한국 사람들은 먹는데 참견하는 걸 안 좋아하니까 설명해 드려본 적은 없지만, 간혹 그렇게 드시는 분이 있다. 그런 게 난 기분 좋다.
메뉴판 한편에 작게나마 설명을 해놓으면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특히나 ‘스카르페타’라는 있어 보이는 용어까지 곁들인다면 말이다. 한국에선 아무래도 남은 소스를 닦아 먹는 것을 지저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 않나. 누군가 ‘뭐 지저분하게 그러고 먹냐’할 때 ‘야 스카르페타, 스카르페타 몰라?’하며 거드름 피우기 딱 좋을 것 같다. 맛있기도 하고.
맞다. 그게 필요하기도 한 게 우리 빵은 제일 맛있는 상태로 나가는 게 아니다. 빵에 수분이 조금 빠져야 소스에 적셨을 때 맛있기 때문에 빵만 먹으면 정말 맛이 없다. 대부분의 손님이 빵을 안 드시거나, 식전빵이라 생각하고 되게 맛없게 드신다. 설명이 좀 필요하긴 하다. 인스타가... 인스타가 소통의 도구인데 내가 활용을 잘 못 한다. 그런 걸 풀어내야 하는데... 열심히 해야지...
유독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나?
정말 장사 안될 때였다. 장사가 안될 때는 나 스스로 아무리 맛있게 먹어도 내 음식에 의심이 자꾸 든다. ‘이게 괜찮은 걸까?’, ‘이런 파스타, 돈 주고 먹을까?’ 하는 생각도 한참 했다. 그때 한 손님이 와서 ‘이 파스타 정말 훌륭하다’고 말하며 음식을 먹었다.
혼잣말을 그렇게 한 건가?
혼자면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겠지? 여자친구랑 같이 와서 한 말이었다. 가게가 작으니 내게도 다 들렸고. 그 손님 덕분에 자극을 줬고 자신감도 많이 줬다. 이 근처 사시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는데, 그 손님은 많이 기억이 난다. 만약 가게를 이전하거나 이 가게를 그만두게 돼도 꼭 다시 뵙고 싶다.
파스타란 음식 얘기도 좀 해보자. 파스타를 몇 번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달을 텐데, 파스타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 않나. 물론 그렇기 때문에 높은 수준으로 진입하기엔 더욱더 어렵단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주 일상적이고 간단한, 뭐든 볶으면 맛있는 한국식 볶음밥처럼 파스타 삶아서 남은 재료에 대충 볶으면 맛있는 게 파스타라고 생각한다.
파스타는 그냥 밥이다. 그리고 나는 밥집 같은 파스타 가게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사실 많이 벗어났다. 가격적인 면에서. 밥이라면 한 그릇의 가격도 중요하니까, 그래야 자주 찾을 수 있는데 지금은 많이 올랐다. 그렇게 된 게 손님이 기대하시는 건 또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밥처럼 파스타를 즐기시는 분도 있지만. 여하튼 다음 가게가 될지, 다음다음 가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원하는 방식대로 파스타를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파스타가 밥이란 걸 처음 느낀 게 언제인가
내가 요리를 하다 이탈리아를 간 게 아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 관한 환상이 되게 많았다. 그 환상이 바로 깨진 게, 파스타를 먹는데 당시 내 기준에서는 면만 주었을 때다. 근데 그 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육수가 소스처럼 달라붙어 있고, 거기에 치즈가 뿌려져 있었다. 그런 파스타를 그냥 일상에서 늘 먹는다. 나는 그게 가장 파스타다운 파스타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이닝 쪽으로 가면 파스타는 고급요리가 되기도 하지만, 파스타는 일상에서 즐기는 밥이다. 맨밥에 간장, 버터 넣고 비벼 먹는 것처럼. 하지만 물론 이것 역시 내 고집일 뿐이다. 어쨌든 장사고, 수익이 나야 하지 않나. 트러플 올리고 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윤 창출 때문일 수도 있다.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파스타집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리오의 대표 메뉴는 누가 뭐래도 클래식 라자냐고, 그 외에도 다양한 파스타를 시도한다. 요즘엔 피자도 메뉴에 포함됐고. 만들 때 가장 기분 좋은 메뉴는 뭔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만들 때 유난히 신나는, 그런 메뉴가 생기더라
파스타가 아니어도 되나? 피자가 좋다. 불에서 조리하고 하는 건,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할 수도 있겠는데, 빵은 좀 재밌다. 반죽에서부터 변화하는 걸 다 캐치해야하기도 하고, 피자 만들면 아주 재밌다. 지금도 아침에 도우 부풀어 있는 거 보면 ‘아, 이거 손님들이 정말 좋아하겠다, 정말 맛있게 되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도우 레시피는 쓰는 밀가루부터 해서 수도 없이 바꾸고 있다. 피자 정말 재밌다.
대화의 막바지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앞으로 <마리오 파스타>의 시간이 얼마 정도 남은 것 같나
이 자리에서는 이미 나가기를 원했는데, 그로부터도 시간이 좀 지났다. 내년에는 옮길 거다. 이 자리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멀리 가진 않고 망원동에 있을 거다.
이름은 그대로 가나
아마도? 이게 괜찮더라고. 사람들 머릿속에 나름대로 각인도 되고.
좀 닮기도 했다
그 얘기도 많이 한다. 마리오는 내 세례명이다. 그냥 나 마리오니까, 마리오 파스타 할래 하면서 쉽게 정했던 가게 이름이다.
완성하고 싶은 궁극적인 식당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자리 잡고 싶은 동네와 인테리어부터 메뉴와 손님까지, 어떤 식당을 만들어가고 싶나
이거는 아마 다들 비슷할 거 같은데, 심야식당이다. 진짜 오마카세를 하는. 손님이 먹고 싶은 거 해줄 수 있는 작은 식당. 근데 그거 하면 먹고살기는 힘드니 돈이 많아야 할 거 같다. 이거는 내가 여유가 되고, 주방에 서 있을 힘만 있으면 머리기 희끗희끗해도 하고 싶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친구들 초대하는 느낌으로.
SNS로 간간이 소식을 전하긴 하지만, 이 인터뷰가 어쩌면 처음으로 식당이 아닌 공간에서, 음식이 아닌 도구로, 손님에게 마음을 전하는 자리일 거다. 찾아주셨던 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일단 감사하다.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 보면 더 챙겨드리고 하고 싶고 한데, 또 오히려 그런 분들은 원하시지도 않는다. 알게 모르게 조용히 왔다 가시는 분들이 많은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진 이규오 최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