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 - <더 플라워 타임머신>

2023년 4월 30일의 대화


말이 없는 사람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가 말이 없는 동안 그의 표정을 살피며 나의 말이 실례였을지 점검해 보고, 그가 생각 중인 건지, 대화가 지겨운 건지, 이 대화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생각 중인 건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상대는 말이 없고,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그 시간은 이내 불안으로 바뀌는데, 그럼 그날의 대화는 점점 꼬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을지로의 골목, 낡은 건물 계단 끝에 자리 잡은 '작은물'에 앉아 "원호"와 대화를 나누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말과 말 사이의 여백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는 의자에 조심스레 기대앉아 내가 건네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고, 생각 끝에도 말을 잘 잇지 못하고, 그러다 담배를 하나 꺼내 태우고, 담배가 다 탈 때쯤 말을 겨우 이어 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생기는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들으며 나는 마치 그의 노래와 같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리움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을 흥얼거렸다. 

그의 노래 '봄비'를 처음 들은 그날,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했던 생각들. 그의 노래는 노래가 속한 앨범명처럼 내 몸 어딘가 조용히 머물러 있던 시절을 계속해서 들춰냈고, 몇 시간 뒤 겨우 노래를 껐을 때,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에 빠진 것이 얼마 만인지 헤아리려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원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반갑다. 오늘 뭐 했나


오늘.. 그냥.. 음..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샌드위치 하나 먹고 여기로 왔다. 계란이랑 햄, 양상추가 잔뜩 들어간 뚜레쥬르 샌드위치였는데, 맛있었다. 여자친구랑 같이 나눠 먹었다


우린 오늘 을지로에 있는 ‘작은물’에서 만났다. 당신이 소개한 곳이니 책임감을 가지고 왜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설명해달라


‘작은물’은 공연장이자, 카페이자, 술집이자.. 이런 곳이다. 많은 뮤지션이 왔다 갔다 하고, 음악 안 하는 사람도 많이 오는 곳이다. 사장형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자주 오게 됐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였나, 아는 형이 친구가 공연한다고 여기로 나를 불렀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좋아서 종종 오고 있다


사실 나는 지금의 을지로를 좋아하진 않는다. 2012년쯤, 처음 서울에 와 을지로를 걸었을 때, 산업의 향기만이 짙게 나던 을지로가 더 나의 취향에 맞긴 하다. 하지만 그건 내 취향일 뿐이고, 또 을지로에 대한 나의 기억은 비교적 짧은 편인데, 당신은 서울이 고향이니 나보단 많은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을지로를 거닌 기억이 어떻게 정리돼 있나


크게 보면 여기도 종로인데, 낙원상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제일 크다. 구하기 힘든 악기 구하려고, 이펙트 페달 같은 거 사려고 발품 팔고 그랬다. 싼 국밥집도 기억나는데, 내가 국밥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도 뭐 여길 자주 온 편은 아니라 기억이 많이 있지는 않다. ‘작은물’에 자주 오면서 최근에야 이 동네에 더 자주 왔다. 여기는 그래도 옛날 서울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거 같고, 내가 낡은 걸 좋아하는데, 이런 건물도 그렇고, 따뜻하다. 그런 거 같다


아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사실을 얘기해야겠다. 당신의 앨범 <더 플라워 타임머신>을 듣고 당신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한 건 맞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 밴드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미 ‘디깅매거진’ 인터뷰에서 다 했더라. 그래서 그 얘기를 반복하는 건 당신도 재미없고, 나도 재미없을 테니, 오늘은 이번 앨범에 대해, 당신 밴드에 대해 파고드는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자. 그냥 뭐 이런저런 얘기나 나오는 대로 해보자. 근데 또 그게 다 당신 음악 얘기이긴 할 거다. 중간중간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도 좋고. 중간중간 담배도 태우고 그렇게 해보자


좋다


요즘 음악을 많이 듣나? 난 사실 음악을 찾아 듣지 않은 지가 꽤 됐다. 몸에 붙는 음악이 잘 없기도 하고, 새 앨범 소식이 들린다 해도 예전처럼 궁금하지가 않다. 당신 앨범을 제외하곤 최근 유일하게 돌린 앨범이 ‘250’의 <뽕>이다. <뽕>과 <더 플라워 타임머신>은 닮은 구석이 있다고도 나는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두 앨범이 올해 내가 들은 음악의 대부분이다


지금 나는 택배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은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나는 일할 때는 계속 이어폰을 꼽고 있다. 다양한 음악을 듣는데, 옛날 음악을 많이 듣고, 듣고 있으면 알고리즘이 알려주는 모르는 음악도 듣게 된다. 주로 듣는 건, 어렸을 때부터 컨트리 음악을 좋아해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이 밴드가 되게 좋다. 컨트리락 사운드인데, 정겹기도 하고, 이 밴드를 많이 듣는다.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도 많이 듣는다. 이 밴드는 60~70년대 히피 문화를 이끌었던 밴드 중 하나인데, 역시 포크, 컨트리 성향이 많이 묻어난다


포크, 컨트리 등 방금 내게 말해준 당신의 취향은 언제부터 자리 잡은 건가


초등학교 때부터다. 이 음악들은 자극적이지가 않다. 듣기 편하다고 해야 할까, 소리도 따듯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고, 오래 들을 수 있어 좋아한다. 그리고 낭만적인 게 있다. 옛날 음악들이 가진 사운드, 빈약하고 거친, 그런 것이 좋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기도 하다. 들으면서 연구도 한다. 이 악기는 소리가 이렇게 나고, 어떻게 썼구나 하며 찾아보고, 시도해보고 하면서




음악을 찾아 듣지를 않으니, 새로운 앨범에 꽝 하고 부딪히는 일도 없다. 그래서 그날이 더욱더 선명히 기억난다. 2023년 4월 4일, 퇴근하고 집에 와 소파에 앉았다. 뭐 재미난 소식 있나 하며 인스타그램을 켰고, 재미 없는 소식을 휙휙 넘기다 <제임스레코드> 계정에서 멈추게 됐다. 사실 그것부터 좀 이상한 일이었지. 왜냐하면 나는 원래 남이 추천해주는 음악을 듣는 편은 아니거든. 솔직히 <제임스레코드> 계정에 소개되는 음악을 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근데 그날은 멈추게 됐다. ‘봄비~’ 하는 당신 목소리 앞에서 말이다. 너무 깨끗한 유리문을 별 생각 없이 지날 때 유리문이 있다는 걸 인지 못 하고 부딪힐 때가 있지 않나. 그럼 아프면서도 멍해지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게 되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자기 전까지 계속 ‘봄비’를 들었지. 거짓말처럼 그날 봄비가 내리기도 했다.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나


나는 ‘비틀즈beatles’와 ‘퀸’Queen’으로 시작했고, ‘퀸’을 진짜 좋아했다. ‘퀸’을 들었을 때 그런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충격적이었다.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면서.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어떤 게 충격이었던 건가


충격이라기보단 충돌이라고 하는 게 맞다. 충돌이 일어났고, 거기서 에너지가 발생한 거지.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 ‘주찬권’, ‘김현식’, ‘유재하’ 이런 사람들의 음악에서 느꼈던 것, 말로 좀 설명해보자면 우선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것, 거창한 것 없이 동시대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얘기를 한다는 거다. 그런 게 당신 음악에서도 느껴진 거지. 다른 얘기로는, 당신이 내고자 하는 사운드의 질감을 표현해보려는 사람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에 사운드의 구현 수준, 기술력이 좋은 사람 역시 많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사운드의 감정적인 밀도가 얼마나 빽빽한지, 음악을 만든 사람과 한 몸이 돼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몇 없다. 당신 음악은 내가 훗날 이런 생각을 할 때 떠 오를 이름이 되겠다 싶었다. 가사도 좋았고


난 내 진심을 담아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들지만 대중성도 많이 생각한다. 알아듣기 쉽게 만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그래서 더 닿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성, 대중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런 말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수용자를 고려해서 만드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 하지만 진심, 사적인 욕망이 사전에 깔려있지 않다면 기술적인 대중성 추구는 아무런 동력도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차트 인을 할 수야 있겠지만, 마음에 남지는 않겠지. ‘봄비’를 한 17번 정도, 그러니까 ‘봄비’를 듣기 시작한 지 220분 정도 흘렀을 때 당신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이 좀 통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은 거지. 할 얘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말이 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니 어떤가, 당신도 반가웠으면 좋겠다


처음 봤을 땐 부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만났던 경상도 친구들은 까칠한 면이 조금 있었다. 약간 급한 것도 있고. 그런데 그런 게 안 느껴졌다. 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편안해서 신기했다. 그냥 좋았다



이미 만나기로 했으면서 나는 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오늘 새벽까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움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이 아니다 하더라도, 당신은 앨범 전체를 통틀어 계속해서 그리워한다. 마음의 많은 부분을 그리움이 차지하고 있는 게 맞나


나는 약간.. 음.. 내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나는 힘든 기억을 노래로 털어버리려고 한다. 그리움.. 그 시대에 대한, 내가 영감을 받은 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여러 가지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리움에 대해 조금만 더 물어보겠다. 당신에게 그리움은 뭔가. 나에게 그리움은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정의돼 있다. 되돌릴 수 없고,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것, 그런 것들이 그리움이다. 당신 음악을 들으며 나는 내가 정의한 그리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움.. 그냥 아련하고 그런 거? 닿을 수 없으니 그리움이 생기는 거겠지. ‘그리움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에서 내가 적은 그리움에 대한 정의는, 깊게 고민하고 적은 건 아닌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데, 남겨는 두고 싶은 것,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그거였던 것 같다


나는 자주 그리운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건 어떤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공간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시절에 대한 것이기도 한데, 그리움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한계에 화가 났다가, 화를 내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허무해졌다가, 그냥 지금 하는 거라도 잘해보자 하게 된다. 당신의 그리움은 어디로 흐르나. 그 종착역이 음악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음악 너머의 과정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곡을 쓰다가 슬프면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 게 나에겐 치유가 된다. 나는 가장 먼저 나를 위해 곡을 만든다. 그런 게 지나간 시간, 상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곡을 쓰고 하면서 극복하고, 해소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리움이 많으면 슬픔에 익숙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당신의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나에겐 슬프게 들렸다. 춤을 추자고 하는데 슬프고, 술잔을 들고 빙글빙글 돌라는데 슬프고, ocean paradise 하면서 영어로 뭐라뭐라 하는데도 슬펐다. 그립다는 노래는 당연히 슬프고, 봄 비~ 하는 것도 슬프고, 그냥 다 슬프더라. 근데 내가 들으며 그렇게 느끼긴 했는데, 갑자기 물어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게 맞나? 맞다면 무엇이 당신을 슬프게 만드나. 끝나버린 사랑도 이유인 거 같고, 각박한 세상도 이유인 것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더라. 정확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너무 힘든 일이 많았지. 20대 초반에 소속사에 들어갔다가 망하고 나온 적도 있고, 3년 만난 애인이 떠나기도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니까 옆에 있기 힘들었던 거지.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과도 갈등이 생겨 멀어지는 경우가 허다했고,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가 죽기도 했다. 인생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살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곡을 쓴다. 이런 걸 느껴주면 고맙다. 좀 더 얘기해보자면 사람들이 서로 헐뜯는 것도 싫었고, 젠더 갈등도 힘들었고, 서로 혐오하는 게, 나는 그냥 항상 중도를 지키려고 했다


나랑 좀 다른 게 있다면 난 일단 분노하는 사람이다. 각박한 세상에 화가 나고, 끝나버린 사랑에도 화가 나고, 한 자리 차지하고 잘난 척하면서 재미없는 일만 벌이는 인간들에게도 화가 나고, 멍청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난다. 나는 일단 화가 나고, 화를 내다보면 슬퍼지는데, 당신은 일단 슬프고, 이후에 화가 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람이라고 느꼈달까. 아 물론 만나기 전에, 음악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힘든 일, 여러 가지 갈등, 겪게 되는 일, 세상의 문제에 대한 조용한 외침 같은 거지, 나에게 음악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라서, 내 방식으로, 음악으로 하는 것 같다


당신에게 음악은 문제의 집합 속에 당신이 설 수 있게 하는 도구이자 태도라고 이해하겠다. 난 이 앨범이 A면 B면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느꼈고, 앨범 막바지에 이르러선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날 정도로 슬픔의 핵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 해서 슬픔이 다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했다. 슬픔으로만 가득 찬 사람이 앨범 한 장을 온전히 완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앨범 한 장을 만들어 낸 당신에겐 힘이 있다는 얘기다. 당신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들이 당신에겐 힘이 되나


나도 사실 화가 많다. 부글부글하는데, 남들에게 잘 보여주진 않는다. 그런 분노의 에너지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원래 힘들어도 토 달지 않고 하는 편이다. 이 앨범 만들 때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거 해 봤자 누가 이런 거 듣겠냐 하면서. 잘 돼서, 음악으로 절대 뭐라고 못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그렇게 했다. 승부욕도 강하다. 내가 제일 잘해야겠다는. 내가 제일 멋있어야 하고, 음악이 아니라 뭘 해도 그렇다


일상에서 받게 되는 힘도 있을까


자는 걸 되게 좋아한다. 지금은 앨범을 하나 끝낸 상태인데, 좀 쉬고 싶고 해서 게임도 많이 하고 그랬다. 서든어택을 한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해와서.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고, 술도 자주 먹는다


얘기가 좀 정신없긴 하지만, 슬픔과 분노 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그 후에 얻게 되는 힘, 이 과정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라고 칭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말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우리가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갈아서라도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음악이 나에겐 행복이고, 그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게 또 행복이다. 세상에 진정성 있는 음악이 너무 없다고 생각해서 더 그렇다. 그리고 이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가사엔 어떤 방식으로든 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당신은 물방울 속에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도 있다. 물이라는 물성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들이 드나


촉촉한 거? 비는 나도 가사에 많이 쓰기도 하고, 아련하고, 촉촉하고, 그런 거 내가 좋아하니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당신의 다음은 더 깊은 물일지, 물 밖일지. 열심히 하는 거 말고, 꾸준하게 하는 거 말고, 잘하는 거 말고,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나


일단 써놓은 곡이 30개 정도 있고, 이건 발표도 거의 바로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던 것들을 좀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새로운 곡을 쓰고 싶다기보다, 해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마무리하고 싶다. 비슷한 결로 되겠지. 사운드의 질적인 부분에 대한 건 더 발전시키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더 깊게 들어갈 거다


영문 없이 당신에게 만나자고 보낸 메시지가 그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중요하지만 별것 아닌 것들이나 좀 물어보면서 마무리해 보자. 담배는 뭘 태우나


말보로 골드 아니면 하이브리드를 핀다. 그냥 그게 제일 낫더라. 던힐은 너무 떫고, 국산 담배는 맛이 없고, 뭐 그렇다


담배 얘기가 나왔으니 담배 하나 태우며 마무리하자. 그 전에 오늘 대화가 재밌었는지 궁금하다. 이런 걸 물어본 적이 없는데, 왠지 당신에겐 묻고 싶다. 오늘 대화가 어땠나. 뭐 나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도 좋다


날 처음 봤을 때 어땠나?


인터뷰하는데 여자친구랑 같이 왔네? 하는 생각.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진짜로 같이 왔네? 했다. 또 몸이 좋다고 생각했지. 나도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사람들의 몸 구경하기 좋아해서 더 눈에 들어왔을 거다. 대화하면서는 말을 천천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당신이 말을 천천히 하고, 한참 고민하고 나서야 대답을 하니까, 그게 좋았다. 난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보면 불안해 보이고, 신뢰가 안 가거든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게 너무 많으니까


내 생각도 그렇다. 음악 얘기를 너무 안 해서 아쉽진 않나. 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정말 ‘디깅매거진’에서 다 했다고 봤고, 내가 장르나 음악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아니라 묻기에도 조심스러웠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서 묻고 싶지도 않았고


난 이래도 저래도 좋다. 굳이 장르를 구분 안 해도 된다. 나도 장르를 엄청 따져서 만든 건 아니다. 취향은 있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있으니까. ‘존 레논John Lennon’, ‘활주로’, ‘신중현’, 그런 쪽으로 음악풍이 가긴 하겠지만 장르를 따지는 건 의미가 있을까 싶다. 평론가들이 할 일인 거 같다. 난 평론가를 안 좋아한다


왜 안 좋아하나?


그냥 재수 없다, 남을 평가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서


난 평론가를 좋아하고, 아티스트와 공생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티스트의 대부분은 자기가 만든 게 뭔지 잘 모를 때가 많다고 보는데, 그걸 건져 올려서 언어로 풀어내는 게 평론가가 아닐까. 그들이 풀어낸 것이 아티스트들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줄 거고


그 말은 맞다. 그럴 때는 분명히 있다



그런 얘기는 어떠냐, 당신의 음악에 대해 얘기할 때 함께 등장하는 한국 대중음악 황금기의 이름들. 그 이름들과 함께 언급되는 게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제한되는 것 같아 나는 답답하기도 하더라. 손쉬운 정리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그렇게만 들을 앨범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미세한 차별점을 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느껴주면 좋겠다. 내가 좋아했던 음악들에 영감은 받지만, 나는 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고, 21세기에 사는 사람이다. 촌스러운데 촌스럽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서구의 것들과 섞으려고도 많이 했고


나는 당신의 음악이 그들의 음악과 닮은 게 있다면 그건 사운드나 가사가 아니라, ‘유재하’, ‘들국화’, ‘산울림’ 등등 그들이 했던 동시대와의 호흡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에게도 운다는 표현을 한 것처럼 그들의 음악은 내게 동시대를 향해 뜨겁게 우는 사람들의 음악으로 들렸으니까


내가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많았으니까, 음악을 만들 때 항상 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고


요즘엔 어떤 고민, 걱정을 하나


돈을 좀 벌어서 ‘원호와 타임머신’ 밴드를 잘 이끌고 가고 싶다는 생각, 내가 많이 벌어야 유지될 수 있으니까. 또 앨범을 3년 동안 만드느라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은데, 어떻게 다시 힘을 낼까 생각한다. 자꾸 내가 도피하려고 해서. 그래서 인터뷰도 하고, 공연도 하고, 뭐라도 하려고 한다. 힘을 너무 뺀 거 같다. 앨범 만드느라. 피지컬 앨범 만드는 것도 힘을 너무 많이 썼다. 자꾸 잔 실수가 생겨서 몇 달을 붙잡고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그런 생각들에서 빠져나오고자 한다. 근데 내 앨범에서 뭐가 제일 좋았나?


처음에 들었던 게 ‘봄비’였으니까 처음엔 ‘봄비’를 많이 들었고, 그 이후 가장 많이 들은 ‘그리움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이었다. 아직도 나는 음악을 가사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서, 아마 나의 정서에 가장 친하게 다가왔던 두 곡을 많이 듣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해 보자면 나는 당신의 3집 정도를 아주 기다리고 있다. 몇 단계는 더 당신이 올라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도 좀 더 쌓이며 정리될 것이고, 음악적으로는 완숙해질 거고, 나이도 들면서 무르익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내가 <대화록>을 하면서 물론 나도 도움을 많이 받고, 많이 배우지만, 나와 대화하는 사람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시간을 내 진심을 털어놓으려고 애쓰는 대화의 시간은 사람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니까. 말을 좀 더 해보자면 당신의 이번 앨범이 명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의 등장은 명반을 만들 수 있는 원석의 등장이라고도 생각한다. 내가 아까 계속해서 당신에게 감정에 대해서 묻고, 단어에 대해서 물은 건, 그것들에 대한 정리가 당신 스스로 안 돼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인상을 이번 앨범에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할 필요도 없고, 급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지만, 그 정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무르익었을 때의 당신 앨범을 나는 지금부터 기다릴 거다


기대를 굉장히 많이 해주는구나. 알겠다. 나에게도 독특한 대화였다. 재밌었다



zcott.camus@gmail.com

대화의 기억과 내용에 대한 권한은 

대화를 나눈 이들과 '대화록' 페이지에 있습니다.